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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 가문의 병약한 막내님-31화 (31/124)

악당 가문의 병약한 막내님 31화

[수호의 구슬이 작동합니다.]

[충격의 50%를 상쇄하였습니다.]

[수호의 구슬이 작동합니다.]

[충격의 70%를 상쇄하였습니다.]

[수호의 구슬이 작동합니다.]

[충격의 30%를 상쇄하였습니다.]

“으!”

데굴데굴 구르다가 바닥에 엉덩이가 통 부딪힌 나는 신음을 내뱉었다.

방금 어떻게 된 거지? 나는 기억을 되짚었다.

산장의 바닥이 덜컹이더니 큰 바위가 뚫고 들어왔다.

마야는 나를 안고 밖으로 탈출하려 했으나 갑작스런 충격에 마야의 몸에서 떨어진 순간, 나는 비탈길을 따라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의 비명 소리를 들은 거 같은데.

“…….”

지금 나는 내 키만 한 풀 속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문득 산사태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와. 재수도 더럽게 없구나.

그래도 ‘수호의 구슬’ 덕분인지, 다행히 내가 구른 거리에 비해 내 몸에는 자잘한 생채기밖에 없었다.

[수호의 구슬이 소멸합니다.]

나는 무릎을 털고 일어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야나 다른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가늘게 이어진 계곡을 따라 물 흐르는 소리만 들릴 뿐.

음…… 어떡하지?

곤충이나 자연 따위는 멀리서 보는 것이 좋다.

슉슉, 다가오는 뱀 소리를 들으며 나는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내가 가진 치트키, 인벤토리를 열었다.

* * *

울창한 숲길, 진의 화살에 흰뿔사슴이 쓰러졌다.

페르메티스는 신이 나서 손뼉을 쳤다.

“역시 대단해요, 오라버니.”

오셀로도, 진도 백발백중이었다.

“오늘 오라버니들 덕분에 많이 배웠다니까요.”

페르메티스가 잡은 것은 작은 토끼 하나.

갓 일곱 살의 나이를 생각할 때 그것도 대단한 것이었지만 직계인 형제의 발치에도 따라가지 못하는 실력이다.

뒤따르던 사병들이 사냥감의 사체를 정리했다.

“이곳도 많이 변했군.”

화살을 재정비한 진의 말에 페르메티스는 싱긋 미소 지었다.

“어머니께서 많이 신경 쓰셨거든요.”

“그렇구나. 요즘은, 어떠셔?”

별 의미 없이 묻는 듯한 말이었지만 페르메티스는 순간 흠칫했다.

제스티아가 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 오셀로와 진을 사냥터 깊이 안내해. 두 사람이 휘말리지 않도록 말이야.

얼마 전부터 조부인 바쉬론의 집에 머무는 치료사가 있었다.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제스티아와 여러 이야기를 하며 자신의 지혜를 나누었다.

어둠의 기일에서 망신을 당하고 경고장까지 받은 뒤 레카르도에 대한 적의에 들끓던 제스티아는 치료사와의 대화 이후 조금씩 활기를 띠었다.

얼마 전에 그는 여름 저택까지 온 뒤 제스티아와 함께 사냥터를 둘러보고 왔었다.

― 초대한 그들을 해할 생각은 아니시죠? 들키는 날엔 분명 어머니도 저도 죽일 거라고요.

― 걱정 말고 어미를 믿으렴.

제스티아는 홀린 듯한 눈으로 말했었다.

― 모든 것이 널 위한 일이니 넌 얌전히 손님 대접이나 하렴.

불안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페르메티스에게 오셀로와 진을 안내하라고 명령한 이유는, 적어도 그 둘은 손대지 않을 생각이기 때문이리라.

그거면 됐다. 그 발칙한 샤샤 따위는 신경 쓸 필요 없지.

“항상 똑같죠. 오라버니들을 잘 대접하라고 신신당부하고 떠나셨어요. 오늘 저녁은 기대하세요.”

잠시 후 오셀로는 활을 꺼내 활시위를 당겼다.

멀리 흰뿔사슴이 한 마리 보였다.

활시위가 팽팽하게 당겨진 어느 순간 오셀로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

잠시 후 오셀로는 서늘한 표정으로 활을 빼며 활을 원위치로 되돌렸다.

거의 잡을 뻔한 상황에서 포기하자 페르메티스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그러세요, 오라버니?”

오셀로가 입술을 달싹였다.

“소리, 안 들려?”

페르메티스는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잠시 후 진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오셀로를 보았다.

오셀로가 말을 이었다.

“뽁, 뽁. 새끼 새가 울고 있어.”

잠시 후 눈매가 날카로워지더니, 오셀로는 말을 달리기 시작했다.

페르메티스는 당황했다.

“오라버니!”

제스티아는 두 사람을 사냥터에 붙잡아 두라고 했다.

그쪽에서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곳에 소리가 들릴 리 없는데, 생각하며 페르메티스는 진에게 말했다.

“비가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저렇게 달리면 위험해요. 오라버니께서 오셀로 오라버니를 말려 주…….”

하지만 진 역시 서늘한 표정으로 채찍을 꺼내 들었다.

“너는 들리지 않는구나.”

신사적이던 진의 표정은, 간담이 서늘해질 만큼 식어 있었다.

진과의 거리가 이 순간만큼은 엄청나게 멀게 느껴졌다.

“우리를 부르는 소리가 이렇게 선명한데.”

보이지 않았던 견고한 벽이 그와의 사이에 드러나는 느낌이었다.

페르메티스는 심장이 덜컹거리는 것을 느꼈다.

새카만 흑염을 드러내며 진은 빠르게 말을 달리기 시작했다.

“오라버니! 같이 가요!”

* * *

뽁뽁 신발을 신었으니 이제 누구든 날 구하러 올 것이다.

나는 마음을 편히 먹기로 했다.

어차피 조난당한 거, 쫄아 있어 보았자 소용이 없다.

그렇다고 저 높은 절벽 위로 올라갈 수도 없는 일이고 말이다.

수호의 구슬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즉사했을 것이다.

아이템은 강력하고, 나는 아이템을 믿는다.

“우선 물부터 확보하자.”

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이 좋지만, 이런 날씨에 마냥 기다리다간 탈수에 빠지고 말 것이다.

나는 고작 세 살이고 물을 자주 마셔야 한다.

잠시 귀를 기울이자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내 키만 한 풀숲은 무섭지만 나는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몇 발짝도 떼지 않아 내가 꽤 싫어하는 존재를 마주쳤다.

슈슉― 슉―

세모꼴의 머리와 화려한 무늬, 분명 독사인 것 같았다.

문제는 뱀의 길이가 내 키보다 길다는 것이다.

그리고 좋은 먹이를 발견한 듯 나를 보고 있었다.

‘으으. 하필이면 독사를 만나다니.’

세모꼴의 눈은 나를 보고 있었고, 등골에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입을 벌리면 나를 삼키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이겠지.

우우― 우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멀리서는 늑대 울음소리까지 들려 왔다.

마치 배고픈 포식자들의 우리에 덩그러니 떨어진 것 같았다.

등에 식은땀이 흘렀지만 나는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스킬 ‘검은 지배(SS/LV.1)’를 사용합니다.]

나는 뱀을 노려보며, 언젠가 얻었던 스킬을 사용했다.

카이사의 저주에 걸렸던 남자처럼, 뱀에게도 효과가 있기를 바라며 말이다.

하지만 뱀은 상관치 않고 슉슉댈 뿐이었다.

‘이렇게 끝날 리 없어.’

나는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 내 이마를 세게 한 대 때렸다.

이 스킬이 통하지 않으면 다른 스킬이라도 나오기를 바라며 말이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뱀은 여전히 나를 보고 있었고 말이다.

“자…… 잠깐만. 저승사자 어디써. 여기 보내쓰면 책임을…… 악!”

결국 뱀이 코앞까지 다가오자 나는 눈을 꼭 감았다.

통째로 나를 잡아먹으려나? 아프겠지?

몸을 움츠린 채 최악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내 코를 핥는 듯한 선명한 느낌.

나는 흠칫 놀라 눈을 떴다.

똬리를 튼 뱀이 머리를 세워 나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혀를 내밀어 내 코끝을 슉, 하고 핥았다.

“뭐, 뭐야?”

금방이라도 나를 잡아먹을 기세의 뱀은 온순하게 나를 보고 있었다.

마치 강아지처럼 말이다.

나는 조심스레 뱀에게 손을 뻗었다.

그리고 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슈슉―

애초에 공격의 의사는 없었던 것처럼, 너무도 온순한 뱀이었다.

설마 아까 스킬이 먹힌 건가…… 생각하기에는 뱀은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어쩌면 그 스킬은 나를 해치거나 방해하려는 자에게만 발동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뱀은 처음부터 나를 잡아먹을 생각이 없었던 것이고.

“너, 물 어딨는 줄 아라?”

내가 묻자 뱀은 멍청한 표정으로 혀만 날름거렸다.

나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뱀의 머리를 다시 쓰다듬었다.

“내가 차자볼께. 오해해서 미아내.”

뱀은 다시 혀를 날름거리더니 제 갈길을 갔다.

나는 전보다는 용감하게 물소리를 향해 걸어갔다.

사람이건 동물이건 역시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 같다.

* * *

드디어 누가 나를 찾으러 왔나, 노을이 내려앉기 시작했을 무렵 나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내 앞에는 나뭇잎으로 된 물잔이 있었고 나는 떨어진 나뭇잎을 모아 제법 안락한 내 자리를 만들어 쉬고 있었다.

처음 조난당했을 때는 무서웠지만 곧 무사히 돌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수풀 속에서 누군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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