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 가문의 병약한 막내님 34화
“공자님! 대체 어디에……! 저쪽으로 가 봐!”
“오셀로 공자님! 어디 계세요!”
새벽 중 저택이 소란스러워졌다.
진은 눈썹을 찌푸린 채 제 방에서 나와 시녀장에게 물었다.
“또 오셀로가 사라진 건가?”
시녀장은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 사흘 동안 조용하시다 싶었는데…….”
진과 오셀로의 나이 일곱 살.
윈체스터의 이능 ‘흑염’이 오셀로에게 발현한 지 한 달 차였다.
이능이 발현하는 시기는 아이들에 따라 다른데, 진은 네 살에 이미 발현했다.
문제는 이능의 발현 과정에서 육체와 정신에 심한 부담을 느끼는 체질도 있다는 것이다.
진은 사흘 정도 미열이 있는 수준이었지만 오셀로의 반응은 그보다 격했다.
심한 몽유병으로 의식이 없는 채 저택을 돌아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돌아다니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발현한 흑염을 통해 무언가를 파괴하고는 했다.
일주일 전에는 농장 중 하나가 초토화되었고, 나흘 전에는 보초를 서던 병사들 여섯이 중경상을 입었다.
“오셀로 공자님이…….”
진과 시녀장의 대화에 누군가 불쑥 끼어들었다.
붉은 머리카락과 청안을 가진 젊은 아가씨의 이름은 트리샤 퀠른이었다.
임신 6개월인 그녀의 배는 볼록했고 두 쌍둥이 형제의 이복동생을 품고 있었다.
정식 혼인조차 올리지 않은 그녀는 ‘부인’이라는 호칭으로 하녀들에게 불렸다.
“……사라지신 건가요?”
트리샤의 질문에 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시녀장은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예, 부인. 창문이 깨진 것을 하인이 발견하였습니다.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고요.”
잠깐의 정적이 감돌았다.
진은 시선을 돌려 무표정한 얼굴로 복도로 발을 옮겼다.
트리샤는 진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진 공자님께서도 나가서 찾아보실 생각이신 것 같습니다.”
시녀장의 말이 들렸다.
트리샤는 잠시 생각하더니 캄캄한 창밖을 바라보았다.
* * *
― 네가 죽어 버렸으면 좋겠어, 오셀로.
― 후계자인 진과는 달리 잘하는 게 뭐지? 같은 날 태어났는데 왜 이리 다를까.
― 그래서 나도 일찍 떠난 거야. 잘 생각해 봐, 사랑받은 기억은 있어?
낮에는 맑은 연못이었지만 달조차 구름 속에 숨은 밤에는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검었다.
상처 많은 오셀로의 맨발이 차츰 연못의 안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오셀로의 청녹안은 새카맣게 비어 있었다.
― 네가 그 여자를 괴롭히는 이유를 알아, 오셀로. 그 여자가 아기를 낳으면…….
― 너는 버림받을 거야. 원래 무능한 둘째들의 운명이란 그러하지.
― 셋째도 너보다 나을지 누가 알겠어.
찰랑이는 물이 오셀로의 정강이에 차올랐다.
오셀로의 입가에는 의미 없는 웃음이 맺혀 있었다.
연못의 중앙에 돌아가신 모친의 드레스 자락이 살랑이고 있었다.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어둠 속 홀로 빛나는 그녀의 모습은 온기를 약속하는 것 같았다.
― 하녀들과 병사들조차 모두 너를 싫어해. 성격 더러운 말썽꾸러기. 네가 지나가면 다들 수군거리는 거 알잖아.
― 너는 윈체스터의 수치야. 네 형제의 발끝에도 따라가지 못하는 가여운…….
― 차라리 나와 같이 죽는 게 낫지 않을까?
검은 물이 가슴에 차올랐다.
조금만 더 걸으면 저 드레스 자락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텅 빈 눈의 오셀로가 한 발을 더 내디디려 할 때였다.
“아니.”
누군가 뒤에서 오셀로를 강하게 잡아당기며 끌어안았다.
“아니에요!”
차가운 물속, 푹신한 느낌이 오셀로를 감쌌다.
오셀로의 귀에 여자의 절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자님은 멋지고 강한 아이이고…….”
오셀로의 텅 빈 눈에 초점이 돌아오고 있었다.
“소중한 존재예요.”
오셀로는 시선을 들어 트리샤를 보았다.
몇 달 전 아버지가 집에 들인, 트리샤 퀠른.
지금 이 집에서 제일 거슬리는 존재가 된 그녀.
그녀가 자신을 꼭 안고 있었다.
그제야 그는 지금 자신이 연못 안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임신한 몸으로 차디찬 연못까지 들어온 트리샤는 오셀로를 놓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나는…….”
“그러니까 그런 말은 하지 않아요.”
그제야 오셀로는 제 귀에 엄마의 목소리로 들려오던 말들을, 사실은 줄곧 제가 내뱉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눈앞에 환상처럼 보이던 여자와 드레스는…… 모두 환영이었다.
잔혹한 흑염이 만들어 낸 시련이었을까.
트리샤의 목소리가 들렸다.
“퀠른은 꿈의 목소리를 들어요. 윈체스터 부인의 목소리도 들었죠.”
그 말에 오셀로는 멍하니 트리샤를 보았다.
윈체스터 부인.
그러다가 사나운 눈빛으로 그녀에게 일갈했다.
“거짓말하지 마! 엄마의 자리를 꿰차려고 거짓말을 하는 주제에!”
“로클랜드의 별.”
하지만 곧바로 돌아오는 외침.
그 말에 오셀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갈무리되지 않은 거친 흑염이, 감정 변화에 불안정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그 오르골을 기억하세요?”
로클랜드의 별은, 모친이 오셀로를 위해 직접 작곡하여 오르골에 담아 준 노래였다.
오셀로는 엄마가 돌아가신 뒤 한 번도 오르골을 틀지 않았다.
어쩌면 그 말을 들은 오셀로가 트리샤를 공격할 수도 있겠지만, 트리샤의 눈에는 짙은 확신이 담겨 있었다.
지금까지 무례하고 난폭하게 행동하던 오셀로에 대한 확신.
“저를 계속 미워해도 돼요. 윈체스터 부인의 자리를 탐내는 탐욕스러운 여자라고 악담을 해도 돼요. 하지만…….”
트리샤의 입술이 달싹였다.
“……이제 나쁜 꿈은 꾸지 말아요.”
트리샤를 바라보던 오셀로는 끝내 시선을 내렸다.
뚝, 하고 떨어지는 물방울에 검은 연못이 일렁이고 있었다.
* * *
오셀로는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의 눈동자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았다.
검은 연못에 들어갔던 날 이후 오셀로는 잘 때 오르골을 틀었다.
더 이상 나쁜 꿈도, 밤에 돌아다니는 일도 없었으며 흑염은 그의 몸에 자리 잡았다.
트리샤는 죽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아직은 어린 소년의 몸이지만 오랜 훈련의 결과로 몸은 단단했다.
트리샤가 살아 있었다면 키도 그녀의 턱 끝에는 닿았을 것이다.
숨을 가다듬고 한 바퀴 돌고, 반 바퀴를 더 돌았을 때 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검술만으로는 내가 상대가 안 되겠어.”
오셀로가 고개를 돌리자, 언제 왔는지 앉아서 자신을 응시하는 진이 보였다.
오셀로는 입술을 비틀며 이마의 땀을 닦았다.
“너 재수 없어, 진.”
오셀로다운 대답에 진도 피식 웃었다.
힘의 우위는 태어날 때부터 결정된 것이다.
흑룡에게서 후계로 선택받은 핏줄은 다른 이들이 범접하지 못할 강함을 가진다.
하지만 오셀로가 영원히 우위를 극복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는데, 흑염을 검에 깃들여 사용하는 ‘소드 오러’의 경지가 된다면 그때는 진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역대 윈체스터 가주들 중에서도, ‘소드 오러’를 사용하는 자는 넷밖에 되지 않았다.
“새벽부터 여기는 무슨 일이야.”
“사냥터에서의 일에 대한 조사 결과가 나왔어.”
이틀 전 파슈리트 산맥, 여름 저택의 사냥터에서 사고가 있었다.
산사태로 산장이 무너졌고 샤샤가 죽을 뻔했었다.
수십 미터 아래로 떨어진 샤샤를 오셀로가 데려왔었고 말이다.
금세 눈빛이 차갑게 식은 오셀로에게 진이 말했다.
“증거 부족, 혐의 없음, 처벌 불가.”
그 말에 오셀로의 눈동자에서 매서운 살기가 피어올랐다.
“아버지에게 가야겠어.”
오셀로는 연무장 바닥에 들고 있던 검을 툭 내던졌다.
오셀로의 몸에서 그의 분노를 기뻐하는 흑염의 뱀이 스멀거리며 올라오기 시작했다.
뒤돌아선 오셀로에게 진이 말했다.
“제스티아를 처벌하지 않는 이유가 있어.”
“그 이유가 무엇이든 납득할 생각 없어.”
“오셀로.”
제 이름을 낮게 부르는 진의 목소리에 오셀로가 발을 멈추었다.
농도 짙은 흑염의 기운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이미 처벌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말이야.”
진의 목소리가 귀에 흘러들었다.
오셀로의 눈 속 흑염이 사납게 꿈틀거리고, 그제야 그 의미를 알아들은 입술이 조금 열렸다.
“죽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