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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 가문의 병약한 막내님-38화 (38/124)

악당 가문의 병약한 막내님 38화

[퀘스트 : 헥토르 윈체스터의 문제를 풀고 그로부터 인정받으세요.]

헥토르가 문제를 내는 순간 눈앞에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제한된 기능을 해제하거나 레벨을 올리는 ‘업적’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퀘스트는 내게 요구하는 구체적인 것이 있었고, 무엇보다 보상이 있다.

[퀘스트 보상 : 100루비, 푸른 매의 비밀]

참고로 루비를 쓸 수 있는 상점 기능은 아직 해제되지 않았지만, 나는 아이템 판매로 50루비를 가지고 있었다.

루비를 모아 두면 상점 기능이 열렸을 때 쓸 만할 것이라는 추측이 들었다.

그리고 ‘푸른 매의 비밀’, 수수께끼 같은 말이었지만 보상이라 하니 쏠쏠한 아이템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내가 이 공의 비밀을 풀기 위해 끙끙대는 것은 당연했다.

“물에 너을래!”

“공을 물에 넣겠다는 말씀이세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마야는 공을 들어 분수 위에 띄웠다.

보통 소설을 보면 영 미스테리한 물건이 있을 때, 물에 넣으면 비밀이 풀리는 경우가 많았다.

“음…… 잘 뜨네요.”

하지만 공은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굴려도 반응이 없고, 던져도 반응이 없고, 물에 넣어도 반응이 없다.

정말 아무런 장치가 되어 있지 않은 평범한 공일까.

금색 공에는 에시르 테일러스라는 주인의 이름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새겨져 있지 않았다.

나는 한적한 정원을 바라보며, 공을 만지고 있는 열두 살의 소녀를 떠올렸다.

발로 툭 치면 굴러가는 금공과, 미소 지으며 그것을 잡는 에시르.

먼발치에서 에시르를 지켜보던 카이사 테일러스는, 살의에 찬 표정을 짓는다.

다섯 자녀들 중 에시르를 희생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의 무엇이 카이사의 눈에 특별했을까, 혹은 거슬렸을까.

“……아가씨?”

“웅, 마야.”

멍한 눈으로 물 위에 둥둥 뜬 공을 바라보던 나는 마야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비가 오려나 봐요.”

마야의 말에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새카만 구름이 조금씩 두꺼워지고 있었다.

“이제 그만 들어가셔야겠어요. 비에 맞지 않으려면.”

“웅. 드러가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마야는 내 금공을 들고 한 손으로는 내 손을 잡았다.

우리가 저택에 들어가자마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초가을 비가 내리자 팔에 오한이 돋을 만큼 기온이 싸늘해졌다.

“마야, 있자나.”

“네, 아가씨.”

“이거 어디서 만들었는지 알 수 있어?”

내 말에 마야는 골똘히 공을 보더니 입을 열었다.

“굉장히 오래된 물건이라서 알기는 쉽지 않을 거예요. 테일러스의 물건이기도 하고요.”

하긴, 100년 전에는 엘르 토이숍도 없었을 것이다.

“꼭 문제를 풀고 싶으신가 봐요, 아가씨.”

“웅. 풀꺼야!”

내 당찬 말에 마야는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공자님들께 도움을 요청해 보는 건 어떨까요?”

“오셀로 시러!”

“진 공자님께라도…….”

마야의 말에 나는 멈칫했다.

진은 윈체스터 최고의 수재이다.

주인공 에반 테일러스가 워낙 무쌍을 찍어서 그렇지, 에반이 없었으면 진이 세계를 정복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면 안 된다는 조건은 없었다.

나는 발을 멈추었다.

* * *

마야를 내보낸 진은 문을 닫았다.

지금 진의 방에는 나와 진, 둘뿐이었다.

방은 현대 기준으로 침실이 딸린 거실 정도의 굉장히 큰 공간이었다. 저번에 가 보았던 오셀로의 방과 같은 구조였다.

진은 공을 들어 그것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궁금하다는 거군.”

나는 초롱초롱 빛나는 눈으로 진을 계속 응시했다.

“네에.”

[인물 열람]

[1. 레카르도 윈체스터

칭호: 흑염의 지배자

인과율: 8%]

이내 그 밑으로 내렸다.

[2. 진 윈체스터

칭호: 없음

인과율: 9%]

[3. 오셀로 윈체스터

칭호: 없음

인과율: 10%]

[4. 체노아 테일러스

칭호: 청명의 지배자

인과율: 해당 없음]

[5. #@$% , #$%%, $#$%^^$$#@

이하의 정보를 표기할 수 없습니다.]

[6. 페르메티스 윈체스터

칭호: 없음

인과율: 해당 없음.]

[7. 헥토르 윈체스터

칭호 : 흑염의 수호자

인과율 : 해당 없음]

인물 열람에는 헥토르 윈체스터 추가.

아무튼 현재 나와 인과율이 제일 높은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오셀로였다.

진도 높은 편이기는 했지만 두 자리인 오셀로에 비해서는 여유가 있다.

“……샤샤.”

진이 입술을 달싹인 것은 한참의 시간이 흘러서였다.

“네에?”

“언제 받은 거지? 받고 나서 조심하라는 말은 없었어?”

진의 질문에 나는 대답했다.

“아까. 헥토르 하부지가 줘써요! 그런 마른 없썼는데?”

그 순간 진의 눈빛에 짙은 서늘함이 감도는 느낌이 든 건 착각일까.

진은 눈썹을 찌푸려 다시 공을 보더니 입을 열었다.

“……어이가 없군.”

나는 진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동글동글한 눈을 떠 그를 쳐다보자 그가 공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어린애에게 이런 걸 주다니.”

“무슨 말이에요?”

진은 입술을 비틀더니 손에 흑염을 실었다.

그러자 강렬한 흑염이 공을 감싸기 시작했다.

흑염이 주는 위압감은 가슴을 쿵 내려앉게 할 정도로 컸다.

흑염은 공을 감싸고 빙빙 돌더니 공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어쩌면 평범한 공이 아닐까 잠시 생각했는데, 역시 아니었나 보다.

“에시르 테일러스는 퀠른가의 여자가 낳은 아이였어.”

처음 듣는 이야기에 나는 흠칫 놀랐다.

에시르 테일러스도 나와 같은…… 퀠른 성의 엄마를 가졌다고?

진이 내게 공을 돌려주었다.

공의 무게는 아까와 다를 바가 없었다.

진의 짙은 눈동자에 나의 얼굴이 비쳐 보였다.

“오늘 밤 이걸 가지고 자면 문제를 풀 수 있어.”

그는 눈썹을 찡그리며 입술을 달싹였다.

“……정말요?”

가지고 자면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의외로 간단하다.

“흑염을 불어넣었으니 위험한 일은 없을 거야.”

그의 눈썹 끝은 굳어 있었고 눈매는 차가웠다.

“네가 문제를 꼭 풀어야겠다니 돌려주는 거지만.”

진이 말을 덧붙였다.

“……경고 하나 하지. 윈체스터의 그 누구도 믿지 마.”

진의 말에 심장이 쿵, 쿵, 뛰었다.

공의 무게가 갑자기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내가 태어난 가문이 어디인지 알게 된 순간부터 나는 윈체스터의 사람들과 거리를 두리라 결심했다.

하지만 조금 자란 지금,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점점 깨닫고 있었다.

내 심장은 흑염으로 만든 것이 아니었으니까.

나는 잠시 뒤 진에게 물었다.

“……지니 오라버니도?”

그 말에 진의 눈썹이 잠시 꿈틀했다.

의외의 질문을 들었다는 듯 말이다.

문득, 여름 저택에 도착했을 때 진과 마주했던 찰나의 순간을 떠올렸다.

언제까지 이렇게 평온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지.

잠시 후 진이 입술을 달싹였다.

“조금 더 크면…….”

내가 한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었다.

“……대답해 줄게, 샤샤.”

이내 그가 잘 빗긴 내 머리를 세심치 못하게 쓰다듬었다.

잠깐 드러나는 듯했던 감정은 금세 자취를 갖추고, 한 겹 막을 씌운 것 같은 평소의 눈빛이 되었다.

나는 한참 동안 멍하니 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의 방을 나서며 생각했다.

믿어도 되냐는 것에 대한 답은 듣지 못했지만, 알려 준 것에 대해서는 믿어 보아도 되겠지.

내 시선은 그의 흑염이 담긴 공으로 향했다.

* * *

레카르도의 집무실.

그는 한창 서류를 검토하고 문서에 서명을 하고 있었다.

바쉬론에게서 받은 전리품의 보관, 여름 저택의 인수, 그리고 테일러스가에서 답신한 조건의 검토.

처리할 현안들은 언제나 넘쳤다.

“대가주님이 아가씨께 에시르의 금공을 주셨다고 합니다.”

테일러스의 조건을 검토하는 중 로웬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보고에 레카르도가 눈썹을 조금 찡그렸다.

에시르의 금공이라. 그걸 헥토르 윈체스터가 보관하고 있었던 것인가.

“혹시 모를 사념을 대비하여, 진 공자님께서 조치를 취해 주셨습니다.”

“…….”

“대가주님의 의도를 도통 모르겠습니다. 아가씨께 호의를 가지신 건 맞는지. 아무리 그래도 어린 아가씨께 그런 물건을…….”

잠시 멈추었던 레카르도의 깃펜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아가씨께서 공을 읽는 것에 실패하신다면, 흑염을 불어넣으신 진 공자님께도 부담이 될 텐데 말입니다.”

레카르도의 집무실에는 한참 동안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검토와 서명을 완료한 레카르도는 깃펜을 꽂으며 입술을 달싹였다.

“샤샤를 시험하고 진에게 경고하는 것이지.”

“시험은 이해하겠는데, 경고는…….”

“뒤틀린 욕심은 어떤 방식으로든 파멸을 가져온다.”

로웬은 도통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말을 줄였다.

레카르도는 서늘한 눈으로 검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자신을 포함한 윈체스터가의 역대 가주들이 무언가 한두 가지쯤 결여되어 있듯, 진 또한 그러했기에 일전의 징계를 통해 경고한 바 있었다.

헥토르 역시 빤히 진의 본질을 꿰뚫어 보았겠지.

“되새길 필요가 있어.”

또한 선호물에 대한 강박적인 수집 욕구는, 성장기 동안 강력하게 자제될 필요가 있었다.

그것을 매우 자극하는 존재가 곁에 있더라도.

“그 애는 수집해야 할 물건이 아니라, 지켜야 할 존재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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