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 가문의 병약한 막내님 43화
스퀘어에 기록을 남긴 에반은 제 방으로 복귀했다.
내일이면 윈체스터 공작가에 가게 될 것이다.
윌너스 산맥의 검붉은 암석으로 쌓아 올린 거대하고 웅장한 저택.
가 본 적 있었다. 스무 번 이상이나.
그 저택에는 늘 죽음의 연기가 피어올랐고, 많은 이들의 죽어 가는 얼굴과 그들에게서 흘러나온 피를 보았다.
그들에게 검을 꽂았고 그들을 단죄했었다.
그들은 그러한 최후가 어울리는 악당들이었으니까.
그러나 이렇게 어린 나이에 가게 되는 것도, 청명이 각성하지 않은 채 가는 것도 처음이었다.
어차피 청명이 없어도, 검술만으로도 레카르도 윈체스터의 공격을 열 합은 받아 낼 수 있을 실력이기에 테일러스 저택에서 제게 위협이 되는 이는 없을 것이다.
변수는 진 윈체스터 정도이려나.
그리고…… 얇고 선명한 은색 머리카락의 유력한 주인.
― 윈체스터 공작가의 셋째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라. 보통의 아이가 아니다.
샤샤 윈체스터를, 틀림없이 만나 봐야 할 것이다.
그가 새카만 창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 어느 순간,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그리고 고개를 돌렸을 때, 기척 없이 다가온 한 남자가 있었다.
“무슨 일이냐.”
에반은 눈썹을 찡그렸다.
루체 레그윈, 그는 테일러스 저택의 경비대장이었다.
하지만 에반이 평가하기에 그의 실력은 제게 기척을 숨길 만큼 대단치 않았다.
에반은 눈썹을 찡그렸고 루체는 에반의 앞에 무릎을 꿇은 뒤 품에서 무언가를 내밀었다.
무언가가 담긴 붉은 주머니였다.
“가주님께서 공자님께 특명을 내리셨습니다.”
에반은 그것을 받지 않고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경비대장은 고개를 들어 에반을 보고 말했다.
“윈체스터의 식사에 이 가루를 넣으십시오. 되도록 많은 이들을 파멸로…….”
에반은 문득 수년 전 일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사냥 대회 후의 무도회, 우습게도 레카르도 윈체스터가 그 아기를 안고 등장했었지.
그리고 테일러스가가 뒤집어졌다.
샤샤 윈체스터의 머릿속에서 흘러나온 기억 때문에.
“……루체.”
에반은 경비대장에게서 나는 익숙한 냄새를 알고 있었다.
“네 주인은 샤샤 윈체스터를 아나?”
“예?”
에반은 경비대장이 건넨 붉은 주머니를 받았다.
경비대장의 얼굴에 옅은 화색이 도는 것이 보였다.
세 번째 회귀나 다섯 번째 회귀였다면 주저 않고 실행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
에반은 경비대장의 머리를 잡아채 손에 쥔 붉은 주머니로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경비대장의 얼굴로 새카맣게 독이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귀 뒤에 새겨진 카이사의 문장, 그는 처음부터 시체였을 뿐이다.
“아버지의 명령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고.”
핏대가 선 눈동자가 흐리멍덩해지더니, 경비대장의 몸이 파스슥 무너졌다.
수년 전 체노아 테일러스는 샤샤 윈체스터에 대해 조사했지만, 퀠른가의 여자가 낳은 아이라는 것 빼고는 알려진 정보가 없었다.
“지금은 누구이건 간에 어울릴 생각 없어.”
에반은 손수건을 꺼내, 재가 묻은 손을 닦았다.
“내가 관심이 있는 것은 그 애뿐이라서.”
그의 푸른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 * *
[이름 : 샤샤 윈체스터(LV.7)]
[직업 : 무직]
[특성 : 딸랑이 마스터, 꼬마 탐구자]
[능력치: 체력 18 / 근력 10 / 이능 ― / 지능 31
*오픈되지 않은 능력치가 있습니다.]
[스킬 : 검은 지배(LV.3/SS)]
[인벤토리 : 푸른 매의 비밀 / 370루비]
일곱 살이 되며 레벨이 7로 올랐다.
더 어릴 때에는 생일이 느려서인지 조금 늦은 타이밍에 오르는 듯하더니, 이제는 거의 새해가 되자마자 오르는 걸 보면 성장 맞춤형 레벨인 듯하다.
레벨 5부터 상세 능력치가 오픈되었지만, 헥토르 할아버지와의 특훈으로 쑥쑥 자란 지능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보잘것없었다.
그리고 초보자 버프가 끝나서 이제 레벨 업 선물은 들어오지 않는다.
뽁뽁 신발은 내구도가 남았지만, 발이 자라서 더 신을 수 없었기에 20루비에 상점에 팔았다.
이외에 자잘한 퀘스트를 하며 200루비를 더 벌었고, 스킬 레벨도 올릴 수 있었다.
“…….”
나는 오랫동안 인벤토리 안에 있던 ‘푸른 매의 비밀’을 보며 눈썹을 찌푸렸다.
그냥 평범한 매 모양의 브로치일 뿐이다.
도서관에서 책을 찾아봐도 관련된 정보는 없다.
이것도 언젠가 쓰일 날이 오려나…… 모르겠다.
“아가씨, 곧 테일러스의 마차가 도착한대요.”
마야의 목소리가 들렸다.
문득 사흘 전 오셀로가 떠났다는 사실이 떠올라 마음이 휑한 느낌이다.
다시 돌아오는 날에는 오셀로도 키가 더 커 있을까?
“어머, 벌써 저기 오네요.”
마야가 창밖을 가리켰다.
창밖, 숲을 지나 이쪽으로 오는 마차가 보였다.
마차에는 테일러스가의 문장이 있었다.
저택 바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일을 멈춘 채 경계 어린 시선으로 테일러스의 마차를 응시했다.
무거운 정적이 저택을 감돌았다.
나는 창가로 다가가 창밖을 보았다.
저택의 입구에 도착한 마차는 멈추었고, 마차의 문이 열렸다.
쿵, 쿵, 심장이 뛰고 있었다.
저 마차에…… 원작 주인공인 에반 테일러스가 타고 있다.
잠시 후 한 소년이 마차에서 걸어 내려왔다.
수년 전에 보았던 얼굴이지만 나는 로브를 쓴 그 애가 에반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제는 열두 살이겠지, 에반 테일러스.
검은 머리카락과 차가운 푸른 눈을 가졌으며, 피부는 시릴 정도로 희다.
<테일러스의 가주> 속, 꺾이지 않는 불굴의 의지를 가진 주인공.
언젠가 윈체스터 저택을 화마에 휩싸이게 할 강력한 징벌자이자 제국의 영웅.
땅에 발을 내디딘 에반의 망토가 눈바람에 흔들렸다.
모두가 그를 보고 있었지만 그는 적지에서도 태연한 얼굴이다.
진과 오셀로만큼이나 그 존재감이 남달랐다.
이내 에반이 고개를 들어 위를 보았다.
그 예상치 못한 행동에 나는 바짝 얼어붙었다.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다.
꽤 먼 거리였음에도 그가 나를 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뭐…… 뭐야, 방금.’
나는 황급히 몸을 창틀 아래로 숙였다.
심장이 쿵, 쿵, 불안하게 뛰고 있었다.
“체노아 공작 전하와 꼭 닮았네요. 섬찟하게도요.”
마야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체노아를 본 적 있었지만 에반은 체노아와 닮지 않았다.
닮은 것은 겉껍데기뿐인 것을, 저 공허한 우주가 실린 눈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에반의 세계는 깊다.
“방금 이쪽을 본 것 같은데…… 하하, 착각이겠죠?”
마야의 어색한 웃음에 나는 입술을 달싹였다.
“응.”
오셀로가 떠나고 에반이 오기 전 사흘 동안 나는 생각했다.
윈체스터에 볼모로 오느라 썩 좋지 않은 기분일 에반 테일러스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독자로서의 나는 주인공 에반 테일러스를 진심으로 응원했었다.
지독한 악당들을 가차 없이 물리치고 본인이 생각하는 정의의 길을 망설임 없이 걸어갔으니 그야말로 사이다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내가 윈체스터가의 막내, 샤샤 윈체스터가 된 지금, 입장은 달라졌다.
윈체스터는 내 가문이었고 나는 그들과 꽤 유대관계를 쌓았다.
가문과 생사를 함께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문을 돕고 싶은 마음도 있다.
물론 그전에, 병약의 상징이 될 내 몸부터 챙겨야 하겠지만.
그러니…… 에반 테일러스를 관찰하고 경계하되, 그와 엮이지 않는다.
그가 가문에 해가 될 일을 할 것 같으면 곧장 레카르도 공작에게 보고한다.
이것들을 내 행동 수칙으로 삼았다.
[인물 열람]
[1. 레카르도 윈체스터
칭호 : 흑염의 지배자
인과율 : 17%]
이내 그 밑으로 내렸다.
[2. 진 윈체스터
칭호: 없음
인과율: 16%]
[3. 오셀로 윈체스터
칭호: 없음
인과율: 17%]
[4. 체노아 테일러스
칭호: 청명의 지배자
인과율: 해당 없음]
[5. 에반 테일러스
이하의 정보를 표기할 수 없습니다.]
[6. 페르메티스 윈체스터
칭호: 없음
인과율: 해당 없음.]
[7. 헥토르 윈체스터
칭호: 흑염의 수호자
인과율: 해당 없음]
나는 [인물 열람]을 확인했고 특수 문자들이 가득하던 5번에는 역시나 에반 테일러스의 이름이 보였다.
‘이하의 정보를 표기할 수 없습니다’는 그가 주인공이기 때문이겠지.
책 속의 에반이 스물다섯이 되었을 때 윈체스터는 멸망한다.
저 에반 테일러스의 손에 의해서.
하지만 아직까지는 시간이 많다. 초조해할 필요는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