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당 가문의 병약한 막내님-46화 (46/124)

악당 가문의 병약한 막내님 46화

― 죽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낫는 법을 찾고 있어요.

잔뜩 긴장한 얼굴로 말하던 샤샤의 표정은 꽤 인상 깊었다.

아장아장 앞을 향해 걷던 또렷한 눈빛의 꼬맹이.

훌쩍 자라난 샤샤는 정원의 꽃에 물을 주고는 했다.

콜록―

기침을 하면서도, 끈질기게 책을 보았고.

그런 모습들은 늘 눈에 띄었으며 거슬리기도 한다.

“고…… 공자님, 제가 잘못……! 크흑윽!”

잠시 방문한 로젠토의 아지트, 암흑가의 행동대장 자르한은 진 앞에 무릎을 꿇고 바들바들 떨다가 진의 흑염에 목이 붙잡혔다.

그의 옆에는 세 동강이 난 단검이 있었다.

습격 실패의 결과물이었다.

남자를 보는 진의 눈동자는 서늘하게 일렁였다.

그리고 일순간 진에게서 뻗어 나간 다른 흑염의 줄기가 그를 후려쳤다.

콰과광―!

남자는 엄청난 소리를 내며 뒤로 날아가 벽에 처박히고 다시 땅에 떨어졌다.

진의 곁에 있던 암흑가의 수족들은 쯧쯧, 혀를 차며 불쌍한 표정으로 자르한을 바라보았다.

“콜록…… 고…… 공자님, 쿨럭…… 죽을죄를…….”

“날 죽여서 어쩌려고 했지?”

뚜벅, 뚜벅, 자르한의 앞까지 걸어온 진이 그를 내려다보았다.

자르한은 한때 암흑가의 2인자였다.

버림받은 고아들과 부랑자들, 청부 살인업자들이 모두 그의 손에서 움직였다.

여느 귀족 나리들 못지않은 제 나름대로의 풍족한 삶이 언제까지고 지속되리라 생각했다.

“이곳을 다시 장악하려고?”

그래, 수년 전 고작 어린아이들이었던 윈체스터 형제들이 일인자의 목을 날려 버리고 이곳을 장악할지는 꿈에도 몰랐단 말이다.

“그건…….”

“내가 죽어도 오셀로가 남잖아.”

진의 입술이 휘어졌다.

진 윈체스터는 성인 여자 정도 되는 키의 앳되고 잘생긴 모습이었지만, 서늘한 눈매 속의 눈동자는 사납기 그지없었다.

‘이능’을 발현하는 4대 공작가의 소년들이 보통의 인간이 아니라는 것은 안다.

정신연령과 신체 능력도 보통의 소년들보다는 성숙하다고 하고, 용병 열 명이 덤벼도 이능을 가진 소년 하나도 상대하기 어렵다.

그런 괴물이 둘이나 쳐들어왔으니 일인자이고 이인자이고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쿨럭…… 쿨럭…….”

진 윈체스터의 말이 맞았다.

용케 진을 처치했어도, 오셀로 윈체스터가 제 멱을 따 갔을 것이다.

“게다가 내 아버지는 레카르도 윈체스터 공작인데.”

진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름에 모두가 몸을 움찔했다.

어둠의 지배자, 암왕.

그가 로젠토에 영향을 끼친다면 모든 어둠의 족속들이 그에게 복종할 것이다.

“후환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는 칭찬하지.”

밤을 생업으로 삼는 자라면 경외할 수밖에 없는 절대적인 지배자, 그게 바로 레카르도 윈체스터다.

“……컥.”

진의 흑염이 다시 자르한의 목을 치켜들었다.

얼굴이 피범벅이 된 자르한은, 진의 서늘한 녹안과 마주했다.

만용은 죽음을 낳는다, 지금처럼.

“자르한.”

진의 낮은 목소리가 골을 울렸다.

“아무것도 모르고 평온히 죽을 기회를 줄게. 내게 협조해.”

“마…… 말씀만 해 주십시오.”

“너는 20년 전 네가 수발하던 아카다의 의사를 죽이고, 그의 금품을 빼앗아 제국의 수배자가 되었다.”

자르한이 로젠토의 암흑가에 귀의하게 된 이유였다.

“예…… 예.”

“그때 그의 서재에서 사라진 책이 세 권 있어. 불사의 약에 대한 책.”

자르한의 턱을 타고 코에서 흐른 피가 뚝, 뚝 떨어졌다.

자르한은 쿨럭거리며 대답했다.

“그…… 그 책들이 필요하십니까…… 쿨럭.”

“응.”

간결한 대답이었다.

자르한은 이런 다 가진 꼬맹이라도 불로불사에 대한 열망은 어쩔 수 없군, 생각했다.

20년 전 아카다의 의사를 모시는 제자였던 그는, 그 책을 훔쳤었다.

하지만 책에 불로불사의 방법 따위는 나와 있지 않았다.

‘엘릭서’라는 만병통치약 제조법이 있기는 하지만 그 또한 미완성의 술식이다.

그러나 이를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제가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자르한은 쿨럭이며 진에게 협조하겠다 말했다.

하지만 진은 한참이 지나도록 자르한을 풀어 줄 기색이 없었다.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을 때는, 진의 입꼬리가 올라간 후였다.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다면, 그럴 필요 없어.”

“예…… 예?”

진의 손에 흑염이 일렁였다.

“동생을 위한 선물은 잘 받을게.”

진은 잔혹한 눈빛으로 입술을 달싹였다.

“도…… 동생분이시라면…….”

“심연의 그림자.”

정신을 파고들어, 모든 비밀을 낱낱이 드러내게 하는, 그러나 그 대가로 시전받은 자를 백치로 만들어 버리는 위력적인 흑염의 술법이 자르한을 에워쌌다.

“이…… 이건…… 으악!! 머리가!! 아아아악!!”

자리에 함께 있던 암흑가의 일원들은 두려운 표정으로 모두 고개를 숙였다.

진의 선연한 녹색 눈에, 자르한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20년 전 자르한이 단검으로 경동맥을 베어 죽인 의사의 죽어 가는 모습과, 자르한이 훔친 책…… 그리고 그 책을 어디에 숨겼는지까지.

“흐억. 으아악! 으아악!!”

자르한의 고통스러운 비명 소리 사이로 쓸 만한 정보들은 모두 수집했다.

“크어억! 컥! 어억!”

진의 입꼬리가 잔혹하게 올라갔다.

“샤샤, 널 위한 선물을 얻었어.”

* * *

솔직히 말하자면, 에반은 이해할 수 없었다.

― 어서 날 죽여 줘.

깡마른 몸으로 제게 애원하던 여자의 얼굴을 기억한다.

그녀는 그의 모든 회귀 동안, 죽어 가는 모든 생물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참으로 일관되게도 죽음으로의 탈출을 원했고, 몇 번은…… 그 소원을 들어주었지.

“…….”

에반은 수도 없이 피가 묻었던 제 손을 문득 펴 보았다.

어느 순간부터 가슴의 통증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이 죽는 것을 봐도 무덤덤해졌고.

회귀를 거듭한 그는 인간으로서의 정체성, 인격이 점점 마모되어 가고 있었다.

페르세토스와 별반 다름없는 괴물이 될지도 모른다.

남아 있던 모든 희망을 버렸다 생각했을 때, 청명은 발현하지 않았다.

불청객처럼 제 스퀘어에 나타난 침입자.

윈체스터 저택에 도착했던 날, 그 애는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

2층 창문, 동그랗게 솟은 은발.

눈이 마주치니 아래로 쏙 들어간다. 장난이라도 걸듯.

‘알아야겠군.’

에반의 푸른 눈이 서늘하게 빛났다.

‘우선 네가 진짜 샤샤 윈체스터인지부터.’

스퀘어를 드나들던 범인을 특정했으니 어려울 것은 없다.

그리고 샤샤 윈체스터와 가까운 방으로 배정되었으니 기회는 많을 것이다.

그때, 복도 너머에서 이질적인 소리가 들렸다.

“아가씨가 또 열이 나요, 주치의를 불러와요. 공작 전하께도 보고하고.”

“알겠습니다, 마야 님.”

에반은 서늘한 눈동자로 제 방의 닫힌 문을 응시하다가 눈썹을 찌푸렸다.

생각해 보면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늘 창백했고, 아픈 듯한 표정이었다는 것 외에는.

잠시 후 방 밖에서 다시 소리가 들렸다.

“공작 전하께서 오고 계세요.”

“헉, 벌써? 알겠습니다.”

전하러 간 지 1분도 되지 않았는데 나타난 것이라면, 이미 오고 있었던 모양이다.

사용인들은 조용하지만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공작 전하께서 오신다고 한다. 준비하라!”

에반은 눈썹을 찡그리며 침대에 누웠다.

레카르도 윈체스터, 인간을 벌레 정도로밖에 취급하지 않던 그 남자가 제 딸이 아프다고 찾을 줄 아는 인간이었던가.

윈체스터 저택의 아픈 여자아이와, 그 꼬마를 찾는 암왕이라.

2년 전 사냥제의 무도회에서 꼬마를 안고 들어오던 모습은 작은 우연이라 생각했으나, 이 정도이면 우연일 수 없겠지.

그 비릿한 혈향이 가득했던, 삭막하기만 했던 저택은 작은 꼬마 하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듯한 느낌까지 풍기고 있었다.

지난날의 무수한 기억들과 상충하는 이야기이다.

* * *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열이 심해서인지 몸이 덜덜 떨렸다.

“콜록, 콜록.”

의사가 처방한 약을 먹었지만 내 열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눈앞이 핑핑 도는 것 같다.

“우우…….”

나는 내 옆에 있는 손가락을 꼭 잡았다.

마야의 손인가. 길고 가늘긴 한데 조금 더 커진 것 같기도 하고…….

원래 이렇게 힘줄이 도드라졌었나.

“힘드러…….”

갈라진 목소리가 입술 새에서 새어 나왔다.

색색거리는 숨소리에 목이 뜨겁게 느껴진다.

“보고 싶어…… 엄마…….”

아플 때 가장 생각나는 것은 역시 가족인가 보다.

이전 삶에 두고 온 엄마와 동생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 없이도 잘살고 있겠지……?

말을 하면서도 자꾸 몸에 힘이 빠졌다.

나는 눈을 스르르 감았다.

귓가에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렇게 보면 영락없이.”

마야의 목소리가 아니었지만, 나는 더 생각지 않고 잠에 빠져들었다.

“……어린아이군.”

아프다. 쉬고 싶다.

조금 거친 손이 내 이마를 부드럽게 덮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