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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 가문의 병약한 막내님-52화 (52/124)

악당 가문의 병약한 막내님 52화

이내 카테르의 세 쌍의 눈에서 차례로 매서운 빛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카테르가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열린 세 개의 입에서 입김이 나오고 있었다.

그것들이 나를 보는 눈은 더 이상 적의를 담고 있지 않았다.

“하아…… 하아…….”

나는 겨우 숨을 내쉬었다.

카테르의 뾰족하고 날카로운 이빨은 여전히 무서웠으나, 나는 이들에게 인정받았다.

윈체스터 가문의 일원이자 자신이 공격해서는 안 될 주인으로 말이다.

그리고.

“소울 볼 내놔.”

나는 카테르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가 굳이 이렇게까지 찾아서 카테르를 복종시킨 이유.

커엉― 켁―

가운데에 있는 머리가 구슬 하나를 토해서 내 손에 뱉었다.

나는 내 손바닥 위에 있는 작은 금색 구슬을 응시했다.

이것은 카테르의 소울 볼.

유사시 카테르를 부를 수 있는 장치였다.

물론 저택 내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다시 누군가 내 방에 침입하는 등의 위험에 처했을 때 소울 볼을 꾹 누르면 카테르가 달려와 적을 물어뜯는 것이다.

“잘했어.”

방 밖에 대기하는 호위 기사들이나 로빈이 있지만, 급한 상황에서는 이것이 더 유용할 것이다.

나는 카테르의 가운데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양쪽 머리들이 차례로 내 손에 머리를 들이댔다.

“그래, 너희도 쓰다듬어 줄게.”

아까는 맹수 못지않던 개들이 서로 귀여움받으려 하다니, 극적인 태도 변화가 신기했다.

나는 카테르의 머리를 차례로 쓰다듬었다.

“굳이 그렇게 번거로운 짓 하지 않아도.”

뒤에서 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 수집물이 되면 안전할 텐데.”

등골에 소름이 쫙 돋으며 나는 그를 돌아보았다.

“오라버니, 이제 연기는 그만해 주세요.”

내 말에 진은 어깨를 으쓱하며 입술을 비틀었다.

“연기라, 그렇게 보이는구나. 그럼 그만둬야겠지.”

어쩐지 어조가 이상하다.

“고마워요, 협조해 주셔서.”

“이 노력은 너를 위협했던 에반 그 녀석 때문인가.”

진은 투덜거리듯 말을 이었다.

“역시 감옥에 있는 동안 죽여 버리는 게 나을 것 같군.”

진의 몸 뒤로 살기 섞인 흑염이 흘렀다.

윈체스터의 사람들은 ‘죽인다’는 말을 밥 먹듯 자연스럽게 한다니까.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꼭 에반 때문만은 아녜요.”

내 말에 진은 눈썹을 찡그렸다.

그리고 잠시 후 입을 열었다.

“이 저택에 에반 테일러스 말고도…….”

“…….”

“네게 위협이 될 만한 게 더 있는 건가?”

나는 문득 에반의 말을 떠올렸다.

누구의 몸에 페르세토스가 들어 있는지 모른다.

언젠가 세상에 대한 비밀들을 레카르도나 오빠들에게도 말해야 할까?

진의 몸에서 페르세토스가 솟아오르던 순간을 떠올린 나는 마음이 조금 복잡했다.

* * *

누군가가 덜컹하고 감옥의 문을 열었다.

“…….”

저만한 키는, 적어도 간수는 아니다.

에반이 시선을 들었을 때 짙은 녹안을 가진 소년이 그의 앞에 있었다.

소년은 신분을 위장하려는 듯 로브를 걸치고 있었고, 오래 달린 듯 신발이 해져 있었다.

에반은 소년을 알고 있었기에 눈썹을 찡그렸다.

오셀로 테일러스는 지금 여기 있어서는 안 될 인물이었다.

저벅저벅 제 앞으로 다가온 오셀로가 에반의 어깨를 밀쳐 눕혔다.

“…….”

단검이 바닥에 박히는 소리가 귓가에 흘러들었다.

저를 눕히고 올라탄 오셀로의 눈에는 차가운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메르코에서 오셀로와 검을 겨루었다.

모든 회차에서 오셀로는 검술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검술만으로는 후계자인 진 윈체스터조차 상대하지 못할 정도였다.

‘오셀로의 흑염이 이 정도였던가.’

오셀로의 몸 주변에 흘러넘치는 흑염의 농도가 지독할 정도로 강해 에반은 눈썹을 꿈틀했다.

지난 회차들에서는 보이지 않던 변화였다.

“저번에도 마음에 안 들었는데.”

오셀로의 입술에서 위협하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다시 만나니까 더 죽여 버리고 싶네, 꼬맹아.”

강렬한 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넌 이곳에 있으면 안 될 텐데.”

무미건조한 에반의 목소리에 오셀로는 더욱 거친 시선으로 에반을 응시했다.

에반의 얼굴 옆, 바닥에 박은 단검을 지금이라도 그에게 찔러 넣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에반 테일러스가 윈체스터의 지하 감옥에서 죽는다면 곤란하다.

오셀로는 치미는 살기를 견디고 에반의 목을 지그시 누르며 협박했다.

“다시는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을 건드려서.”

으르렁대는 목소리가 에반의 귀에 흘러들었다.

“명을 재촉하지 말라고 경고하러 왔어.”

잠시 후 오셀로가 에반의 목에서 힘을 풀었다.

더러운 것이라도 만진 듯 오셀로가 손을 털고 일어서자 에반이 무표정한 얼굴로 오셀로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샤샤 윈체스터 때문에 여기까지 달려온 건가?”

나흘을 쉬지 않고 걸어야 도착할 수 있는 먼 거리였다.

“내가 네 여동생을 공격해서?”

테일러스의 삼엄한 경계를 뚫는 건 어려웠을 텐데.

돌아가서 생기는 일조차 스스로 감당해야겠지.

“…….”

싸늘한 시선으로 에반을 내려다보던 오셀로가 입술을 달싹였다.

“처음에 네가 한 짓을 듣고는, 네놈을 죽일 생각이었다.”

오셀로의 다혈질에 대해서는 에반도 알고 있었다.

그런 각오로 테일러스 저택을 나섰겠지.

“지금도 찢어발기고 싶은 생각이고.”

하지만 지난 회차들에서 오셀로는 샤샤 윈체스터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다.

모든 것이 뒤틀리는 그 중앙에, 샤샤 윈체스터가 있다.

“샤샤 그 녀석이…….”

오셀로의 눈빛은, 그가 유일하게 집착하던 페르메티스에 대해 감정을 드러내던 눈빛보다 강렬했다.

“너에 대해 다른 말을 하지만 않았더라면 널 살려 두지 않았을 거야.”

“…….”

오셀로의 감정은 명확해 보였다.

자신을 매우 죽이고 싶어 하면서도 간신히 자제하고 있는 상태.

그리고 그 원인이…… 샤샤 윈체스터라.

“……그 애를 소중하게 여기나?”

에반의 질문에 오셀로는 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타오를 듯 살기 어린 녹안은, 에반의 질문에 대한 충분한 답이었다.

‘바뀌었다, 자신 말고는 무엇에도 인간적인 감정을 가지지 않던 인간. 페르메티스를 향한 감정조차 고루한 집착일 뿐이었던 녀석이…….’

잠시 생각하던 에반이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오셀로의 발치에 던졌다.

“가져가라.”

일순간 익숙한 향이 오셀로에게서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오셀로는 눈썹을 꿈틀 움직였다.

“이 넝마 덩어리는 뭐지?”

“해독제.”

“샤샤에게 독을 먹였나?”

오셀로의 등 뒤에서 아까보다 한층 살기가 짙어진 흑염이 피어오르는 순간 에반은 다시 입을 열었다.

“샤샤 것이 아니라 당신 거야.”

오셀로가 무슨 개소리냐는 듯 눈썹을 구겼다.

에반은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테일러스에서 취급하는 대부분의 독을 해독한다. 지금 당신 몸에 똬리를 튼 독도 날려 버릴 정도로 강한 해독제지.”

이미 오래전부터 제 가문인 테일러스에 회의감을 가졌다.

체노아가 윈체스터의 볼모에게 독을 쓰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도 짐작했고.

윈체스터 공작가는 지난 스물일곱 회차 동안 적이었으나, 이제 많은 것이 달라지고 있었다.

그 변화의 시작은 아마도 그 여자아이.

오셀로는 땅에 떨어진 해독제를 잡았다.

“내가 너를 어떻게 믿지? 테일러스의 후계인 네가, 테일러스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해독제를 건넨다고?”

오셀로가 손에 조금만 흑염을 흘려보내면 해독제는 재가 될 것이다.

“믿기 싫으면 믿지 마.”

담담하게 말하는 에반을 오셀로는 한참 동안 응시했다.

건방지고, 가만 놔두고 싶지 않은 꼬맹이였다.

샤샤에게 일어났던 일에 대해 알게 된 뒤에는 죽일 마음뿐이었다.

‘루네’를 통해 들었던 샤샤의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제 자제력이 발휘되지 못했을 것이다.

“나도 내가 왜 네게 이걸 주는지, 확신은 없으니.”

에반의 푸른 눈동자는 초연했다.

무고한 표정으로 파동을 만들던 샤샤의 말이 다시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

사나운 시선으로 에반을 응시하던 오셀로는 주머니를 품에 넣었다.

그리고 잠시 뒤 천천히 뒤로 돌아섰다.

“내 경고 잘 기억해. 그 애에게 또 위협이 된다면 널 죽일 거다.”

오셀로의 낮은 목소리가 에반의 귀에 흘러들었다.

이내 감옥 문이 다시 덜컹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에반은 차가운 벽에 등을 대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 * *

누군가 내 이마를 쓰다듬는 꿈을 꾸었다.

손은 차가웠고 꽤 거칠었지만 어쩐지 기분이 좋았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내 옆에는 오셀로의 곰돌이가 보였다.

나는 곰돌이를 한번 쓰다듬어 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사를 가져온 마야가 싱긋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아가씨, 공작 전하께서 베루스(월례 회의)를 마치고 돌아오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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