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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 가문의 병약한 막내님-58화 (58/124)

악당 가문의 병약한 막내님 58화

오셀로는 읽던 책을 덮었다.

비스듬히 볕이 들어오는 그의 방, 책상 위에는 샤샤에게 전달한 것과 같은 곰 인형이 올라와 있었다.

한동안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것을 보면 그 곰이 루네라는 거, 알아챈 건가.

어쩐지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 회귀를 했던 모양이야, 에반 테일러스.

제법 열심히 쫑알거리던 소리가 꽤…… 즐거웠는데.

오셀로는 고개를 저었다.

자리에서 일어선 오셀로는 검을 챙겨 방 바깥으로 나갔다.

이곳은 테일러스 저택과 맞붙어 있는 작은 오두막.

테일러스는 자신을 저택 안에 들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체노아 테일러스가 워낙 의심 많은 작자라, 예상치 못한 일은 아니었다.

“…….”

오셀로가 나가자, 바깥에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이 경계 태세를 취했다.

늘 그랬듯 오셀로는 오두막 뒤편으로 향했다.

오두막 뒤편에는 넓지 않은 공터가 있었다.

오셀로는 나무를 조각해 훈련용 표적으로 사용하고는 했다.

오셀로가 검을 들자 검 주변으로 흑염의 기운이 피어올랐다.

“소름 끼쳐.”

아침으로 주는 빵을 가져오던 하녀가 나가며 혼잣말을 하는 것이 들렸다. 이능의 힘으로 남들보다 발달한 오감 탓이다.

테일러스의 영토에서 흑염은 매우 불길하고 피해야 할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오셀로는 당연히도 그런 시선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흑염을 쓰면 병사들이 알아서 피해 주니 즐거울 따름.

“…….”

오셀로는 30미터 거리의 목각 인형을 향해 검을 그었다.

그러나 검에서 나온 흑염은 목각 인형의 아랫부분을 스칠 뿐이었다.

오셀로는 다시 긋고 또 그었다.

― 다들 죽게 될 거래. 페르세토스가 부활하는 거야…….

고민에 찬 샤샤의 목소리가 뇌리에 생생했다.

진지하게 믿을 가치는 없는 이야기였다.

어린애들이란 원래 엉뚱한 것을 상상하곤 하니까.

그럼에도 그날 에반 테일러스를 죽이지 않았던 이유는…….

― 에반이 죽으면 나도 끝날지도 몰라. 아빠도, 진 오라버니도, 오셀로도…… 이제 못 보게 되려나.

역시 그 목소리 때문이겠지.

스윽―

오셀로의 검에서 나온 흑염의 강기 덩어리가 목각 인형의 중간을 정확히 토막 내었다.

아니, 토막 내다 못해 폭발하듯 산산이 부수어 버렸다.

오셀로는 서늘한 눈으로 목각 인형이 서 있었던 곳을 응시했다.

그는 정확히 그 느낌을 기억하기로 했다.

적을 벨 때 이런 식으로, 정확하고 가차 없이.

잠시 후 오셀로는 형형한 묵빛의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 오늘은 오셀로가 보고 싶어.

샤샤의 모든 말이 진실이라고, 믿기로 했다.

* * *

“으…… 오늘도 실패.”

간만에 흑탑에서 낑낑대던 나는 작은 한숨을 내쉬며 돌아섰다.

얼른 그 안을 열고 엘릭서나 세계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싶은데, 지금의 성장 수준으로는 탑이 나의 입장을 허락하지 않았다.

지식의 보고인 헥토르 할아버지도 곁에 없어서 도서관의 책들 중 이해 안 되는 내용이 있으면 해석을 찾기도 힘든데 말이다.

나는 목에 걸린 열쇠를 다시 옷 안으로 집어넣었다.

[이름 : 샤샤 윈체스터(LV.7)]

[직업 : 무직]

[특성 : 딸랑이 마스터, 꼬마 탐구자]

[능력치: 체력 18 / 근력 10 / 이능 ― / 지능 31

*오픈되지 않은 능력치가 있습니다.]

[스킬 : 검은 지배(LV.4/SS)]

[인벤토리 : 푸른 매의 비밀 / 370루비]

시간의 속도가 굉장히 더디게만 느껴지는 나날이다.

아직도 자물쇠를 달고 있는 상점이라도 열린다면 괜찮은 아이템이 있는지 찾아볼 수 있을 텐데.

엘릭서라든지, 엘릭서라든지, 엘릭서…….

에취!

“아가씨, 또 기침을 하시네요.”

마야가 나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엘릭시아로 꽤 도움을 받고 있지만 병약함은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닌다.

사흘 전에는 또 열이 나서 의사가 거의 하루 종일 나를 지켜보았다.

파라스 향도 약효가 통하지 않는지 꽤 근심 어린 표정을 지었지.

원작의 샤샤 윈체스터에 대한 설명을 떠올리면 이건 어쩔 수 없는 운명이다.

“들어가자.”

“네에.”

하늘의 먹구름을 올려다보던 나는 발걸음을 다시 옮기기 시작했다.

“점심에는 비텔로 토나토랑 알베제 먹을래.”

“요리사에게 준비하라고 할게요. 그래도 잘 드셔서 다행이에요, 우리 아가씨.”

확실히 몸이 약한 애치고 나는 식욕이 좋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편의점에서 식사를 때우던 흙수저 출신이었던 내가 귀족 아가씨가 되어 제일 좋았던 점이 음식이다.

무미건조한 이유식기를 마치고 화려한 음식을 맛보았을 때의 전율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윈체스터 공작가는 꽤 풍요로웠고 없어서 못 먹을 만큼 맛있는 음식들을 진이나 오셀로는 절반도 넘게 남기고는 했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나는 내게 주어진 음식은 하나도 남김없이 먹었다.

의사가 그랬었지.

선천적으로 약하게 태어났지만, 식성으로 극복하고 계시다고.

“라임 그라니타도.”

상큼한 맛의 얼음을 떠올리며 나는 메뉴를 추가했다.

“아가씨도 참, 기침까지 하시면서.”

“그래도 덥단 말이야.”

우리가 저택에 들어서자마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타이밍이 좋다고 생각하며 발을 옮기는데 어디선가 다급한 소리가 들렸다.

“야단났군. 이러다 잘못되면 전쟁이라고……!”

“의사 선생 어디 있어?”

“안에 들어가 계십니다.”

나는 조금 발걸음을 빠르게 움직여 2층으로 향했다.

“공작 전하께서는요?”

“영지를 감찰하러 나가셔서 시간이 걸리실 것 같아요.”

복도에 하인들과 하녀들이 모여 있었고, 창백한 얼굴의 시녀장도 있었다.

그리고 에반의 방문 앞에는…… 놀랍게도 피에 젖은 진이 서 있었다.

진의 허리춤에 걸린 검을 보고 나는 어떻게 된 상황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진 오라버니.”

내가 그 앞에 서자 진은 서늘한 표정으로 내게 시선을 돌렸다.

그의 짙은 눈동자에 살기는 남아 있지 않았지만 에반과 위험한 상황이 있었다는 것은 명백했다.

물론 나는 진을 추궁할 위치가 되지 않았다.

“다치지 않으셨어요?”

내 질문에 눈썹을 꿈틀 움직인 진은 잠시 후 작은 한숨을 쉬었다.

심기가 상당히 불편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테일러스의 후계자 녀석이 다쳤다.”

여기서 이해되지 않는 점은 그가 진 윈체스터라는 것이다.

오셀로라면 에반을 죽이고도 남았겠지만 진은 굉장히 이성적인 성격이었다.

“연무하다요?”

진의 침묵은 긍정을 의미했다.

물론 진이 에반을 봐주면서 연무했을 것이라는 상상은 하지 않았다.

진은 모르겠지만, 회귀자인 에반은 진보다 강할 가능성도 큰데 어쩌다가…….

펑―!

그리고 내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진이 검을 뽑아 제 쪽으로 쓰러지는 문을 베었다.

진의 뒤에 있던 나는 놀라 얼어붙었고, 문은 우리를 사이에 놓고 두 갈래로 갈라졌다.

문이 날아가자 에반의 방 안 풍경이 보였다.

상체를 벗은 채 침대에 의식을 잃고 누워 있는 에반의 모습이 보였다.

에반의 상체에는 피가 덕지덕지 묻은 붕대가 감겨 있었고, 그의 주변으로 칼날 같은 청명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의사는 손을 베인 듯 물러나서 제 손을 지혈하고 있었고, 하인들 몇이 나동그라져 있었다.

“연무장에서 부상을 입어 방으로 옮기긴 했는데, 예상치 못했던 일이 생겼다.”

진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저 녀석이 청명을 각성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줄이야.”

존재감 뚜렷한 청명의 기운에 나는 손을 움찔했다.

에반 테일러스가…… 청명을 각성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일순간 언젠가 보았던 창이 떠올랐다.

[‘길 잃은 28회차 회귀자’의 능력이 봉인되어 있습니다.]

[‘길 잃은 28회차 회귀자’를 강제 각성합니다.]

설마…… 그게 이능 ‘청명’의 각성이었던가?

그렇다면 여기 오기 전까지 청명을 사용하지 못했었다고?

원작대로 네 살 때 각성한 거 아니었어?!

“청명이 폭주하고 있다.”

언젠가 마야에게 들었던 적 있다.

이능을 각성하게 되면, 이능을 받아들이기까지 꽤 몸이 고생하게 된다고.

그 시기에 무리하면, 이능을 담는 그릇인 몸이 부서지는 경우도 있다고.

오셀로는 흑염을 각성했을 때 무의식 상태로 돌아다니며 저택에 꽤 피해를 입혔다고 들었다.

“우선 물러나십시오, 공자님.”

시녀장이 다가와 진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지금으로서는 어찌할 바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에반의 몸을 둘러싼 강렬한 기운을 한참 동안 응시했다.

* * *

“뭐가 어떻게 되는 거지.”

원작에서의 에반은 네 살 무렵 청명을 각성했다.

큰 어려움 없이 지나갔으며 전대에 없던 엄청난 능력을 뽐냈었지.

지금의 에반은, 원작에서부터 여러 번 회귀를 반복한 회귀자이다.

그래서 당연히 훨씬 전에 청명을 각성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응애, 하면서 각성해도 이상하지 않은 먼치킨이니까.

‘각성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면…….’

각성 이후의 몸은 꽤 불안전하다.

이능을 완전히 몸에 안착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랬던 거구나.’

리소니아를 꼈던 밤, 에반은 나를 공격하려 했다.

하지만 내 머리에 멈추어선 청명은, 사실 조금 어색한 느낌이었다.

일렁인다고 해야 할까. 만약 그게 흑염과 청명의 차이가 아니라면…….

에반은 아직 청명의 사용에 능숙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진과의 연무로, 청명을 한계까지 끌어올렸다면 저런 폭주 상태에 빠진 것도 이해가 갔다.

에반의 성격상, 진과의 연무를 거부했을 리도 없고 말이다.

‘에반이 저렇게 죽는다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방에 들어온 나는 잠시 고심했다.

에반은 회귀자이고, 에반이 죽는 순간 세상이 회귀했다.

그렇다면 나도 다시 아기 때로 돌아가는…… 아니면 그냥 저세상인가? 제기랄 내 점심!

[아이템 ‘푸른 매의 비밀’이 특별 구역에 반응합니다.]

문득 신경 쓰지 않고 있었던 특별 구역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에반 테일러스의 공간.

어쩌면 여기에 이 상황을 타개할 힌트가 숨어 있지 않을까.

잠시 고심하던 나는 특별 구역 안으로 들어갔다.

익숙한 그의 방이 내 앞에 펼쳐졌다.

“후…….”

나는 심호흡을 했다.

영 달갑지 않은 이곳에 다시 들어가야 할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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