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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 가문의 병약한 막내님-63화 (63/124)

악당 가문의 병약한 막내님 63화

“카미파라돈 세 스푼에, 벨레시오스 두 스푼. 빠짐없이 넣었습니다.”

검은 로브를 입은 부하는 체노아 앞에서 당황한 표정으로 변명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멀쩡하지?”

“멀쩡한 척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속은 썩어 들어가고 있을 겁니다.”

옥좌 같은 화려한 의자에서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체노아가 싸늘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벨레시오스는 이능의 근원을 막는다 하지 않았는가.”

“그…… 그렇습니다.”

두 약물 모두 케일 산맥의 험지에서 나는 독초였다.

카미파라돈은 정신을 흐려지게 만들며 육체를 점점 약화시키고, 벨리시오스는 이능이 순환하는 기의 흐름을 막는다.

먹자마자 사람을 죽이는 독초들보다는 순했지만, 볼모를 차츰 약화시키는 데는 이만한 독초가 없었다.

몸에 흡수된 후에는 독이 검출되지 않아 후환이 없으니까 말이다.

“시…… 시간이 걸리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기다리다 보면…….”

로브의 사내는 말을 더 잇지 못했다.

체노아의 손에서 방출된 청명의 기운이 사내의 가슴을 꿰뚫었기 때문이다.

“컥…….”

체노아는 무료한 표정으로 사내를 바라보며 말했다.

“기다린 지가 벌써 여섯 달이군.”

“커…… 커억…….”

“그 여섯 달 만에 오셀로 윈체스터는 소드 오러의 초입에 이르렀고.”

4대 가문 직계 소드 오러 유저는 매우 희귀했다.

이능은 타고나는 것. 이능만으로도 무기를 드는 의미가 없을 정도로 강력해, 레카르도와 같은 별종을 제외하고는 검을 깊이 수련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능을 지닌 자가 소드 오러의 경지에 이르기까지 검을 수련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대부분의 날붙이는 이능을 깊게 주입하면 이기지 못하고 부서져 버리지만, 소드 오러는 검으로 이능의 진수를 구현할 수 있다.

자신과 검과 이능이 완전히 합일되는 강력한 경지인 것이다.

또한 소드 오러는 근접전에서 굉장한 우위를 지니는데, 강력한 청명을 지닌 체노아였지만 일대일로 레카르도와 대결한다면 밀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셀로 윈체스터는 후계는 아니지만, 소드 오러 유저가 된다면 테일러스에 막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

에반 테일러스가 아직 이능 발현조차 하지 못한 반편이인 것을 감안하면 더욱.

“오셀로를 처리해야겠다. 전쟁을 불러올지라도.”

체노아의 말이 끝나자 그림자 속에서 부관 루크가 나타났다.

그는 시체가 된 로브의 사내를 바라보며 말했다.

“공자님께서 위험해질 것입니다.”

“대체제가 있다.”

“둘째 공자님께서는…….”

부관은 무거운 표정으로 말을 잇지 않았다.

체노아 테일러스의 이복동생, 헤리트 테일러스…… 갓 두 살 난 그 아기는 오른손이 없는 채로 태어났다.

후계자로서는 부적절하다.

“에반을 잃더라도, 에반을 상회하는 전력을 적에게 넘길 수는 없다.”

“공작 전하, 확실치 않은 정보이나 어제 들어온 첩보로는…….”

윈체스터 성에 수십 번이나 첩자를 보냈으나 그곳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에 대해서도 들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부관은 제가 들은 것이 확실한 정보인지 알 수 없었다.

여태껏 각성하지 못하고 있다가 이제 각성했다는 것이 상당히 부자연스럽지만, 가주의 성급한 결단으로 테일러스의 존망이 흔들리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공자님께서 이능을 각성하신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부관의 말에 체노아의 눈썹이 굳었다.

* * *

느린 듯해도 시간은 흘러갔다.

“잘 지내고 있어, 오셀로?”

흠흠, 헛기침을 한 나는 곰인형에게 말을 걸었다.

갈색 곰인형은 멍청한 얼굴로 내 앞에 누워 있을 뿐이다.

이 곰인형이 ‘루네’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나는 한 번도 곰인형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제대로 알려 주지도 않고 이걸 보낸 오셀로가 조금 얄밉기도 했고.

“나는 그냥 그렇게 지내.”

하지만 오늘 같은 날이면, 조금 오셀로가 생각난다.

“이제 헥토르 할아버지도 없고, 진 오라버니도 임무를 받고 떠나서 저택이 썰렁해.”

덕분에 하루 종일 나를 찾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꽤 무료하면서도 즐거운 하루였다.

“그곳에서의 나날은 어때?”

에반은 이능 폭주 사건 이후 거의 방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온종일 저택은 적막 속에 있는 것 같다.

오셀로가 물총을 쏘거나 내 공을 뻥 차 버리던 나날이 조금 그리운 것을 보면…….

“테일러스는 어때? 음식은 맛있어? 그리고 키는 좀 컸어?”

몇 가지 질문들을 하던 나는 푹 한숨을 쉬었다.

역시 인형에 혼자 이야기하는 건 좀 아닌 것 같다.

나는 천장을 보고 누웠다.

어쩐지 오늘따라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때 마야가 문을 열고 말했다.

“아가씨, 공작 전하께서…….”

* * *

집무실 안으로 들어가자 레카르도의 모습이 보였다.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업무를 처리하던 그는 시선을 돌려 나를 보았다.

그리고 소매를 들어 작게 기침을 했다.

“……무슨 일이지?”

그 순간 나는 내가 조금 착각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 공작 전하께서 아프세요.

마야의 걱정 어린 목소리가 귀에 선했다.

하녀들은 내게 와서 의견을 개진했다.

― 아가씨께서 달콤한 디저트를 가져가셔서 공작 전하를 위로해 주시는 게 어떨까요?

― 어려운 공무 이야기도 좋지만, 아플 때는 모름지기 쉬어야 하니까요.

― 보기만 해도 피로가 풀릴 정도로 귀여운 드레스를 준비할게요.

그렇게 해서 아픈 레카르도 병문안 겸, 디저트 바구니를 두 개나 들고 집무실을 찾았는데.

“……감기…….”

나는 멍하니 입술을 달싹였다.

이게 어딜 봐서 아픈 사람이냐고.

“……걸리셨어요?”

조용한 집무실에 정적이 흘렀다.

나는 시녀들의 성화에 백의의 천사처럼 하얀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옷차림이 무색할 정도로 레카르도는 멀쩡했다.

“…….”

한참 동안 나를 응시하던 레카르도가 입술을 달싹였다.

“앉아라.”

아…… 이게 뭐냐고.

나는 집무실에 온 것을 후회하며 테이블에 앉았다.

그러고는 바구니에 들어 있는 디저트와 차를 눈치 보며 꺼내기 시작했다.

“꼭 이런 것들이 필요하실 것 같지는 않지만…….”

내가 목이 아플 때마다 먹는 달콤한 벌꿀 차를 따랐다.

생강이 든 차인데, 이곳에서는 원래 생강을 차로 끓여 먹는 문화가 없었다.

그러니 이 차는, 이 세계에서는 내가 개발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목이 아플 때는 따뜻한 차를 마시는 것이 좋아요.”

차를 따르는 나를 레카르도가 말없이 응시했다.

“향이 독특하군.”

“생강이에요. 감기를 완화하는 데 좋아요.”

“대가주에게 배운 건가.”

“아뇨.”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자주 아프니까, 덜 아프기 위해 이것저것 방법을 찾아 쓰고 있어요.”

내 말에, 찻잔을 든 레카르도가 멈칫했다.

잠깐의 정적 후 그가 입을 열었다.

“……그렇군.”

내가 아플 때마다 의사들이 우르르 달려왔지만 누구도 허약한 체질의 원인을 알지는 못했다.

진이 주는 엘릭시아로 그나마 컨디션 조절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이상의 효능은 없었고.

“…….”

이내 벌꿀 생강차를 마신 레카르도가 잔에서 입술을 뗐다.

그는 한참 동안 가만히 있다가 입술을 열었다.

“벌꿀은 취향이 아니었는데, 생강향이 거북하지 않게 중화하는군.”

생각보다 취향에 맞는 모양이었다.

나는 가져온 디저트도 내밀었다.

“좋아하실 줄 알았어요. 그래서 레몬과 생강으로 만든 쿠키도 가져왔어요.”

지나치게 멀쩡한 레카르도의 상태를 보면 좀 오버인가 싶지만, 호의에 기분 나쁠 사람은 없으니.

그리고 내가 아플 때마다 레카르도가 신경 써서 의사들을 보내고, 종종 제 상태를 확인하러 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제국 최고의 명의들은 윈체스터가에서 다 쓸어간다는 소문이 퍼졌을 정도라고 하니까.

그러니까 오늘만은 정성을 다해 보자.

“…….”

바삭, 레카르도가 쿠키를 베어 물었다.

나는 레카르도의 감상을 기대하며 그를 응시했다.

“……사실은 제가 직접 만든 거예요, 아버지를 생각하며.”

어쩐지 쓸데없는 말까지 덧붙여 버렸다.

쿠키를 먹던 레카르도는 잠시 후 입술을 달싹였다.

언제나 차갑고 무섭기만 하던 그의 얼굴이, 오늘따라 다소 평온하게 보였다.

“……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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