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당 가문의 병약한 막내님-66화 (66/124)

악당 가문의 병약한 막내님 66화

레카르도가 정복으로 갈아입고 방을 나서자 곧장 부관 로웬이 따라붙었다.

그는 뒷머리가 눌려 있었고 눈에는 눈곱이 붙어 있었다.

“공작 전하.”

“진에게 채비를 하라 일러라.”

급히 명을 듣고 자는 도중 뛰어온 로웬이 정황을 알 리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레카르도가 급히 움직이는 것에는 언제나 이유가 있었다.

“에반 테일러스도.”

예상치 못한 이름에 멈칫했던 로웬은 곧 대답했다.

“존명.”

이내 로웬의 명에, 그의 뒤에 있던 병사가 황급히 뛰어갔다.

그리고 로웬도 막 발을 바깥으로 내디디려는 순간, 익숙한 시녀가 하얗게 질린 채 달려왔다.

신발 한쪽이 벗겨진 채 황급히 달려오는 그녀는 마야였다.

“아가씨께서 사라지셨어요!”

마야의 뒤를 이어 로빈이 뛰어왔다.

“저택을 뒤져도 아가씨가 보이지 않습니다.”

로웬은 인상을 쓰며 로빈을 다그쳤다.

“문단속을 어찌했기에 아가씨가 또 사라지신단 말이냐.”

하지만 레카르도의 낮은 음성이 로웬의 말을 끊었다.

“……이곳에 없는 모양이다.”

모두가 레카르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레카르도는 세상을 얼려 버릴 것 같은 서늘한 눈으로 밤하늘을 응시하며 입술을 달싹였다.

“샤샤가 위험하다.”

* * *

“오셀로!”

나는 오셀로의 몸을 흔들었지만, 차가운 그의 손목은 그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그의 손등이 나뭇가지에 닿는 소리가 너무도 선명했다.

어떻게 된 거지? 설마 이게 꿈이 아니라는 건가?

오셀로는 의식이 없었다.

오셀로의 몸은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펑펑 내리는 눈은 그칠 기미가 없었다.

어떡해…… 어떡하면 좋지?

오셀로의 옆에는 눈이 쌓인 검이 놓여 있었다.

오셀로의 검이다. 그리고 검날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묻은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 선연한 붉은 피가.

그리고 그 순간, 으르렁― 하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본능적으로 스킬을 발현했다.

[검은 지배(LV.5/SS)를 사용합니다.]

그리고 엄청난 속도로 내 앞까지 달려든 짐승과 마주했다.

하이에나와 닮은 짐승은 날카로운 이빨을 가지고 있었다. 얼굴과 달리 몸집은 하이에나라기보다는 사자만큼 컸다.

나는 도서관에서 이 짐승의 이름을 본 적 있었다.

바히모스. 지금은 멸종된 설원의 포식자.

아이스 베어 따위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강한 몬스터이다.

으르렁―

나는 바히모스의 붉은 눈과 가느다란 동공을 똑바로 응시했다.

검은 지배가 잘 먹혀들어서인지 바히모스는 우리에게 다가오지 못했다.

하지만 금방이라도 우리를 먹어 치울 것처럼 이를 으득, 갈고 있었다.

“오셀로!”

나는 바히모스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오셀로를 불렀다.

도망쳐야 한다. 이곳에서 도망치지 않으면 죽는다.

포식자와의 조우는 나의 뇌리에 경고 신호를 강하게 보내고 있었다.

“제발, 일어나!”

바히모스의 옆으로 하얀 입김이 새어 나왔다.

뾰족한 이빨이 가득한 입 주변으로는 침을 흘리고 있었다.

“제발…….”

진 덕분에 스킬 레벨이 5까지나 오를 수 있었지만, 더 이상은 무리였다.

바히모스는 레카르도나 진 정도는 되어야 사냥이 가능한 몬스터이다.

바히모스가 멸종된 이유도 너무 강해서였다. 백여 명이 살던 마을을 단 한 마리가 궤멸시켰으니까.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해 온 나라가 바히모스 섬멸에 나선 것이다.

“특별 구역이라도 들여보내 줘!”

나는 절실한 마음으로 외쳤지만 상태창은 여전히 나타날 기미가 없었다.

도망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뭐든 좋다.

카테르는 저택 안에서만 운용할 수 있고…… 어쩌지?

그리고 그때 겨우 유지하고 있던 스킬이 깨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와 대치하고 있던 바히모스는 흉흉한 눈을 빛내며 입을 쩍 벌리며 내게 달려들었다.

이제 다 끝인 건가, 생각하며 눈을 감고 움츠렸다.

“…….”

하지만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나 죽은 건가, 생각하며 눈을 떴을 때. 나는 굳어 버렸다.

오셀로가 피투성이의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셀로의 왼쪽 가슴부터 어깨까지, 바히모스가 물고 있었다.

“오셀로!!”

그는 나를 보호하듯 바히모스를 등지고 있었다.

피로 젖어 가는 그의 어깨와 가슴을 보며 나는 외쳤다.

오셀로의 짙은 녹안에 내 얼굴이 비쳤다.

그는 숨을 쉬기조차 불편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오세…… 오셀로……!”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가슴이 세차게 뛰어왔다.

지금…… 지금 뭐 하는 거야.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건데.

“……도망쳐.”

오셀로가 입술을 달싹였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검은 지배, 속으로 셀 수도 없이 외쳤지만 스킬은 더 이상 발현되지 않았다.

오셀로를, 오셀로를 구해야 한다.

오로지 머릿속에는 그 생각뿐이었다.

일순간 오셀로의 입술이 비릿하게 비틀렸다.

“얼른, 꼬맹아.”

파스슥, 하고 심장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바히모스가 오셀로를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둑이 무너진 듯 새어 나오는 처절한 감정에 휩싸이며, 나는 외쳤다.

“싫어!!”

오셀로를 잃을 수는 없다.

이렇게 잃을 수는 없어.

제발. 싫어.

그리고 눈앞에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찬란한 어떤 창이 떠올랐다.

[※이능이 발현하였습니다※]

[메키우스가 파멸된 대지를 되살리기 위해 네 용에게 진실한 힘을 나누었듯, 당신은 당신의 생명력을 대가로 대상을 치유하고 힘을 부여할 수 있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보았던 이능은 그저 싸움에 특화된 힘이었다.

사람을 죽일 수 있고 견고한 성을 파괴하고 몬스터의 가죽을 꿰뚫는 무력.

그러나 내 눈앞의 메시지는 내가 발현한 이능이 그런 종류가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었다.

흑염이…… 아니다. 진이나 오셀로 같은, 내 눈앞의 바히모스를 도륙할 수 있는 힘이 아니야.

하지만…… 내 생명력을 대가로 힘을 줄 수 있다고?

심장이 쿵, 쿵 소리를 내며 격하게 뛰고 있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몸에 흘러넘치는 이능을 손에 담고 오셀로를 향해 뻗었다.

마치 처음부터 어떻게 이능을 사용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처럼.

[대상의 인과율이 낮아 이능의 효율이 저하됩니다.]

그리고 일순간 오셀로의 몸이 강한 빛무리에 휩싸였다.

인상을 찌푸린 내가 오셀로를 다시 보았을 때, 바닥에 놓여 있던 검이 마법처럼 그의 손으로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오셀로의 검에서 선명하고 짙은 흑염이 폭발하듯 이글거렸다.

흉흉한 바히모스의 동공이 위아래로 흔들렸다.

“……죽어.”

검을 쥔 오셀로의 입술이 달싹였다.

그리고 오셀로의 검에서 나온 날카로운 흑염은 바히모스의 몸을 꿰뚫었다.

일격에 심장이 꿰뚫린 바히모스의 턱 근육이 풀어졌다.

바히모스가 쓰러지며 오셀로의 어깨와 가슴이 드러났다.

크게 물린 상처로 여전히 피가 나고 있었지만, 처음 물렸을 때보다는 덜한 출혈이었다.

오셀로는 쓰러진 바히모스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멍한 얼굴로 오셀로를 올려다보았다.

[이능의 재사용이 당분간 제한됩니다.]

[퀘스트 보상이 정산됩니다.]

[목표보다 빠르고 강렬한 이능을 발휘한 당신은 ‘메키우스의 열쇠’ 칭호를 습득하였습니다.]

내가 방금…… 그리고 오셀로는 방금…….

머릿속이 하나도 정리가 되지 않았다.

“오…….”

겨우 한 글자를 꺼낸 순간, 오셀로의 가슴이 내 이마에 와닿았다.

오셀로가 나를 끌어당겨 안은 것이다.

아까는 느껴지지 않던 온기가, 오셀로의 심장 소리와 함께 내 귀에 스며들었다.

왜인지는 몰라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하지만 문득 다시 가슴이 차가워지는 소리가 들렸다.

으르렁―

바히모스의 소리였다. 오셀로가 나를 안은 채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나, 둘, 셋…….

멸종되었다던 바히모스의 소리가 수도 없이 들렸다.

대상의 인과율이 낮아 이능의 효율이 저하된다고 했었다.

그래서인지 오셀로의 상처는 완전히 수복되지 않았다.

[퀘스트 보상 : 모든 능력치 +8, 회복 포션, 상점 개방]

맞아, 퀘스트 보상에 회복 포션이 있었어.

겨우 그것을 떠올렸지만 문득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복 포션을 꺼내기도 전에 바히모스가 오셀로를 다시 물어뜯을 거야.

컹―!

나는 오셀로의 품에 갇히듯 안겨 있었지만 기류만으로도 그들이 우리를 공격해 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제 정말 끝인 건가, 생각하며 오셀로의 품에서 눈을 꼭 감았을 때.

캥―!

무언가가 가죽을 꿰뚫는 예리하고 서늘한 소리와 함께, 바히모스의 들어 본 적 없는 신음 소리가 들렸다.

나를 보호하듯 안은 오셀로의 팔에 힘이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오셀로의 품 너머를 보았다.

세상에 지옥이 도래하듯, 땅에서 솟아오른 흑염의 줄기들이 세 마리의 바히모스들을 꿰뚫고 있었다.

그리고 흑염의 구름에 갇힌 다른 바히모스 한 마리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재로 산화했다.

흑염의 줄기에 다리 하나를 내주고도 죽지 않은 바히모스가 눈을 번뜩이며 우리 쪽으로 기어 온 순간, 푸른빛을 내는 검이 바히모스의 정수리에 꽂혔다.

나는 멍하니 그들을 보았다.

레카르도의 검은 망토가 눈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바히모스가 재가 된 구름의 너머에는 서늘한 녹안을 형형히 빛내는 진이 서 있었고, 에반은 바히모스의 정수리에 꽂힌 검을 회수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