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 가문의 병약한 막내님 71화
[상태 이상 면역 효과가 해제되었습니다.]
[체력과 근력 증가 효과가 해제되었습니다.]
[새로운 능력치가 개방됩니다.]
[이름 : 샤샤 윈체스터(LV.7)]
[직업 : 새싹 구원자]
[특성 : 메키우스의 열쇠]
[능력치: 체력 26 / 근력 18 / 이능 8 / 지능 39 / 생명력 21]
붉은 글씨의 ‘생명력’이라는 글씨가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주의사항이 작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생명력은 포션으로 보충할 수 없습니다.’
‘적정 상태의 적정 생명력 참고치 : 30~70’
‘적정 상태의 생명력 기준을 하한하면 생명력은 계속하여 감소합니다.’
아…… 그러니까 생명력을 대가로 이능을 쓴다는 의미가 이거지?
“콜록, 콜록.”
“아가씨…… 이마가 불덩이 같아요.”
마야는 걱정 어린 눈으로 내 머리 위의 물수건을 갈았다.
버프 효과가 해제되자마자 이렇게 아플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
오셀로는 무서운 표정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가 시야에서 사라지기 전 나는 정신을 잃었고, 정신이 가물가물할 때 오셀로에게 안겨 방까지 왔다.
오셀로를 돌보던 의사는 지금 내 옆에서 약초를 빻아 약을 짓고 있었다.
“샤샤가 또 감기에 걸린 건가.”
진이 들어오며 의사에게 물었다.
의사는 코끝까지 내려간 안경을 올리며 말했다.
“전형적인 감기의 증상은 아니고, 기력이 쇠해서 일어나는 일 같습니다. 목이 붓지는 않았는데 기침이 나고 피를 토하셨으니까요.”
“…….”
“최근에 크게 놀라서 겁에 질리시거나, 이능적으로 극한 피로감을 느낄 만한 일이…….”
“……있었지.”
오셀로가 입술을 달싹였다.
가쁜 숨을 내쉬는 나를, 오셀로는 한참 동안 응시했다.
부담스러울 만큼 말이다.
“와서는 안 될 곳에 와서.”
오셀로가 말을 이었다.
“이능으로 나를 도왔으니.”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오셀로는 그날의 일에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내가 그날 설산에 있었던 일은, 이능 발현의 전조라는 점으로 설명되었다.
오셀로도 이능이 발현하던 무렵 몽유병으로 온 저택을 돌아다녔다고 하니.
그렇더라도 하필 그 순간에 오셀로를 만났다는 것은 설명이 안 되는 일이기는 했다.
“이능이 안정되지 않아서 열이 나는 가능성은?”
진의 물음에 의사가 고개를 저었다.
“제가 윈체스터가의 공자님들과 공녀님들을 많이 진찰했지만, 이능이 안정되지 않는 상태에서는 언제나 심박 수의 변화가 컸습니다.”
의사는 말을 이었다.
“하지만 샤샤 아가씨의 심박은 매우 안정적입니다. 이능 때문은 아닌 것으로 판단됩니다. 오히려 이능의 발현으로 체력이 소진되어 아픈 것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당분간 진 공자님이 주신 엘릭시아와 파라스 향으로 심신을 안정시키고, 열을 내리며 아가씨의 상태를 지켜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편찮으신 것은 맞는데 병으로 판명되지는 않는 상황이니 말입니다.”
의사의 설명에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없이 나를 보고 있던 오셀로가 의사에게 물었다.
“해 줘야 할 것은 없나.”
오셀로의 말에 의사는 흠칫했다.
며칠간 오셀로를 보며 그 성정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듣기로 의사의 멱살만 세 번은 넘게 잡았다고 한다.
그런 그가, 여동생을 위해 해 줘야 할 것은 없는지 차분한 목소리로 물으니 색다를 만하다.
잠시 생각하던 의사는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생각나는 것이…….”
그리고 그때 진이 입을 열었다.
“사리야는 어떻지?”
그 말에 의사는 놀라 진을 보고 되물었다.
“공자님께서 그걸 어떻게 아시는 겁니까.”
진은 이전에 얻었던 책에 대해 떠올렸다. 완성된 엘릭서를 만들 방법은 나오지 않았으나, 가능성 있는 특별한 재료들이 있었다.
죽은 사람도 살아 돌아오게 할 만큼 강력한.
“사리야가 뭐야?”
오셀로의 물음에 의사는 다시 입을 열었다.
“……헤일로의 얼음 계곡 마리하드 동굴에, 10년에 한번 자라는 사리야라는 영물이 있는데, 달여서 먹으면 아가씨와 같은 이능에 관련된 상세불명의 증상에 효과가 있다고 들어 본 적 있습니다.”
“사리야?”
“네, 잠시만요.”
의사는 가지고 다니던 가방에서 두꺼운 책을 꺼냈고, 그중 한 페이지를 찾아 버섯 그림을 펼쳐 보였다.
버섯은 얼음처럼 투명한 갓을 쓰고 있었다.
“지형이 너무 험해 산꾼들도 채취하지 못하는 곳에 자라지만요.”
“채취할 때 금기시되는 것이 있나?”
“아뇨, 그냥 버섯처럼 따면 되는데, 동굴은 얼음 계곡에서도 워낙 지형이 험난합니다. 게다가 헤일로의 가주님께서 돌아가시고, 개량된 바히모스들을 가두어 두던 감옥이 파괴되어…… 계곡 주변에 바히모스들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바히모스라는 말에 오셀로가 눈썹을 꿈틀 움직였다.
“그래서 보통의 산꾼들도 계곡 주변에 접근을 하지 못한다고…….”
“결국 로젠토의 시장에서도 구할 수 없다는 말이겠군.”
진이 입술을 달싹였다.
서늘한 표정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던 오셀로가 잠시 후 뒤돌아서며 말했다.
“사흘 안에 구해 오도록 하겠다.”
그날은 오셀로가 테일러스로 돌아가기로 한 날이었다.
“하…… 하지만 공자님, 공자님의 몸도…….”
“그동안 샤샤를 돌보고 있어. 샤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당신은 내게 죽는다.”
“아…… 허…… 알겠습니다.”
바네사가 죽고 두 가문 간의 오해도 풀려 볼모 교환이 마무리되나 싶더니, 테일러스가에서 이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능이 발현한 에반을 윈체스터에 두는 것은 자신들이 더 손해일 텐데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오셀…… 콜록.”
나는 그의 이름을 부르고 싶었지만 오셀로는 급한 걸음으로 나갔다.
진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괜찮으니까 믿어.”
“하지만…….”
오셀로에게 정신이 팔려서 진이 나를 계속 보고 있다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다.
“말했잖아. 소중히 여기는 것은 절대 빼앗기지 않는다고.”
서늘한 눈빛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진…….”
목에서는 쌕쌕거리는 소리만 났다.
심장도 쿵, 쿵, 빠른 속도로 뛰고 있었다.
“다녀올게.”
잠시 뒤 오셀로에 이어 진이 나가고 나는 의사와 함께 방에 남았다.
진이 같이 간다는 말에 오셀로의 안위가 걱정되지는 않았지만, 마음이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두 사람이 나를 위해 위험하고 번거로운 일을 하러 간다니 말이다.
* * *
북쪽의 첨탑 위에 앉은 에반은 조용한 풍경을 바라보았다.
‘푸른 복종’이라 일컫는 청명의 힘은 당사자에게 평소와 같은 이성을 유지하면서도 시전자의 뜻에 거역하지 않게 해 준다.
체노아 테일러스는 지금 에반의 이능에 복속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
한가로운 가을의 하늘이 지나가고, 눈구름이 새까맣게 낀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
윈체스터의 겨울은 필시 테일러스의 것보다 혹독할 것이다.
가주를 잃은 헤일로에게는 더욱 그러하겠지.
헤일로는 후계자감이 없어 난항이라고 한다.
역대급으로 약한 가주를 맞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네 가문의 균형은 어떤 방식으로든 어그러진다.
이 또한 페르세토스의 계획일까? 모르는 일이다.
에반은 회색빛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는 설산에서 오셀로의 몸에 독특한 이능이 흐르던 그 순간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샤샤 윈체스터의 근원이 흔들리는 듯한 느낌.
그것이 샤샤 윈체스터가 가진 이능 때문이라면 장차 샤샤 윈체스터는 제 생명을 태우는 불나방이 되는 것일까.
― 이번에는 내가 너보다 오래 살 거야.
문득 샤샤의 목소리가 뇌리를 지나갔다.
온 감각을 깨우는 감정이 에반의 심기를 조금 건드렸다.
에반은 그 감정의 근원을 알지 못했다. 앞으로도 알지 못할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뭔가에 매여 버린 것 같은 자신을.
“…….”
시선은 샤샤의 주변을 떠돌았다.
미간을 꿈틀 움직인 에반은 첨탑을 빙글 돌아 아래로 뛰어내렸다.
청명은 낙하 속도를 조절했고 에반은 3층 창틀에 착지했다.
― 로젠토의 의사와 약제사들을 모두 데려와라.
― 이미 공자님들께서 귀한 약초를 구하러 가셨습니다.
체노아와의 연결을 통해, 그와 한자리에 있는 레카르도가 자신의 부관과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일어나겠다. 직접 봐야겠군.
자리를 뜨려는 듯 일어나는 레카르도의 목소리는 낮고 엄격했다.
― 하지만 아직 헤일로의 처분에 대한 논의가……!
― 차후에 돌아와서 하도록 하지.
단칼 같은 목소리에 수반된 그 표정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 순간 레카르도에게 다른 가주들 따위는 안중에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일순간 들려오는 다른 소리.
“아가씨, 이런 상황에서 책을 대출해 오라니요.”
“여기, 이거…… 이거, 가져와.”
아래쪽 창에서 시녀와 샤샤의 목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의사는 잠시 자리를 비운 상황 같아 보였다.
“의사가 있잖아요. 굳이 아가씨가 이런 약재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는…….”
“의사라도 여기 의학 수준이…… 아무튼 내가 할 수 있는 거를 할 거야. 전에 할아버지가 읽으라고 했던 책이 있는데. 콜록.”
어김없이 말끝에 콜록,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쉽게 죽을 것 같지는 않은 또랑또랑한 목소리이다.
“난 정말 오래 살아야 하거든. 콜록.”
샤샤의 목소리는 비장하기까지 했다.
창틀에 앉아 등을 기댄 에반의 입꼬리 끝, 복잡한 미소가 찰나의 순간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