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 가문의 병약한 막내님 75화
[8. 카실리온 아카다
칭호: 없음
인과율: 13%]
이 애는 왜 나타나자마자 인과율이 13%를 찍는 거냐고.
불안하게 하필 숫자도 13일의 금요일을 연상시킨다.
“좋은…… 재료라니?”
내게 찰싹 붙어 킁킁거리던 카실리온이 자주색 눈동자를 번뜩였다.
여덟 살에게서 이런 표정이 나온다니,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언니에게서 느낄 수 있어. 틀림없이 좋은 재료라는 것을. 언니로 실험을 한다면…….”
“언니 아니라고. 게다가 너 남자잖아!”
나는 카실리온을 밀치며 말했다.
카실리온은 질겁하는 내 표정에 흠칫했다.
얼굴은 확실히 여느 귀족가의 꼬마 영애님들 못지않게 아름답다.
나보다도 조금은 예쁠지도 모른다.
“어떻게 알았어?”
“아카다에서 위탁 교육을 오는 애가 남자애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내 단호한 대답에 카실리온의 눈망울이 다시 일렁였다.
“재료 언니는 똑똑하기까지 하구나!”
나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너 자꾸 재료라고 하지…… 그리고 아카다에서도 인체 실험은 금지되어 있잖아!”
100년 전 테일러스의 가주 카이사 사건 이후로 제국에서 인체를 이용한 모든 실험이 금지되었다.
“그건 언니만 비밀로 해 주면…….”
“미친…….”
어린애에게 험한 말을 쓰고 싶지는 않았지만 절로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물론 카실리온은 여전이 세상 행복한 아이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성악설이 떠오르는 모습이다.
“아무튼 난 재료가 아니라 사람이라고. 윈체스터 가문의 막내 샤샤 윈체스터! 그러니까 이상한 소리 하지 마!”
내 말에 카실리온의 얼굴에서 기쁨이 서서히 가셨다.
그리고 약간은 기가 죽은 표정으로 바뀌었다.
“역시…… 이상하지?”
나는 눈을 깜빡였다.
“다들 나를 이상하다고 해. 아빠도 나를 기분 나쁘다고 하고, 친구들도 놀아 주지 않아. 그냥 난 좋은 냄새를 맡아서 기쁜 거뿐인데.”
불어오는 바람에 카실리온의 금발이 살랑거렸다.
“당연하지. 넌 앞으로도 여장을 하고 다닐 테니 기분 나쁠 수밖…….”
“향기가 나는 재료로 새로운 것을 발명할 생각을 하면 가슴이 뛰어. 기뻐서 정신이 나가 버릴 것 같은데, 참기가 힘들어. 특히 재료 언니처럼 좋은 냄새가 나면 내가 어떻게…… 하아…….”
카실리온의 얼굴이 언제 시무룩해졌냐 싶게 발그레해졌다.
원작에서, 혹은 푸른 매의 비밀에서 본 것보다 더 최악이다.
지금도 이 지경인데 어떻게 클까…… 미래가 전혀 기대되지 않는다.
그래도 엘릭서를 제작하긴 해야 하니까 적으로 만들 수도 없고.
“아가씨.”
고심의 순간 마야가 나를 불렀다.
마야의 손에는 엘르 토이숍에서 받아 온 신형 장난감들이 있었다.
“마야! 왜 이제 왔어!”
나는 황급히 카실리온의 곁에서 떨어져 마야의 치맛자락에 달라붙었다.
“보고 싶었어. 우리, 들어가자.”
슬쩍 카실리온의 표정을 보니 조금 상처받은 표정이다.
하지만 카실리온의 재료 타령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마야는 싱긋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아가씨. 그런데 친구신가요……?”
나는 마야의 손을 이끌었다.
“아닌 걸로 할게.”
* * *
“결국 페르메티스가 오게 되었어.”
― 짜증 나는군. 몰래 가서 암살해 줄까?
“뭐? 그래도 암살은 좀…….”
― 넌 너무 마음이 약해. 윈체스터답지 않다고.
루네 너머의 오셀로가 말했다.
루네가 둘 모이니 마치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하듯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가씨, 저녁 약 가져왔어요.”
나는 루네에 대고 말했다.
“아, 오셀로. 나 약 먹고 올게.”
― 그런데 너, 진에게는 오라버니라고 하고 존대도 쓰면서 내게는 왜…….
“안녕, 다음에 또 얘기해.”
잠시 후 마야가 약 트레이를 협탁에 올리고 컵에 든 엘릭시아 약액을 내게 주었다.
엘릭시아는 내 생명력이 더 낮아지지 않게 수호해 주는 느낌도 있었다.
생명력에는 관성이 있어, 떨어질수록 더 낮아질 수 있어 미리미리 건강을 안정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로젠토의 약국 하나를 통째로 인수했다고 들었는데…… 참 대단한 오빠이긴 해.
약은 늘 썼지만 나는 불평치 않고 마시고 있었다.
“으…….”
“잘하셨어요. 그런데 아가씨.”
마야가 싱긋 웃으며 내게 말린 차이베리 사탕을 주었다.
나는 그것을 입에 쏙 넣고 오물거렸다.
가득하던 쓴맛이 단맛에 중화되고 있었다.
“키가 많이 크셨어요. 드레스를 새로 맞추셔야겠는데요?”
병약함과는 별개로 키는 쑥쑥 크고 있긴 하다.
“응, 다니기 편한 활동복도 맞추고 싶어.”
“조만간 아네뜨 부인과 재단사를 부를게요.”
로젠토의 아네뜨 살롱은, 여성복계의 엘르 토이숍이었다.
제국에서는 제일 규모가 크고 유명하다는 뜻이다.
“분명 제국에서 가장 예쁜 드레스들을…….”
“잠깐만.”
나는 마야의 말을 멈추게 했다.
“네?”
“쉿, 해 봐.”
바깥의 무언가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서 마야에게 말했다.
“마야, 잠시 다녀와야 할 데가 있어.”
* * *
“아, 헛간 냄새.”
“어쩔 수 없잖아. 보는 눈이 많으니 이런 곳으로 올 수밖에.”
불평을 내뱉는 네빌에게 바몬트는 짜증스럽게 대꾸했다.
그들은 윈체스터의 방계 혈족의 아이들로 페르메티스와 함께 본가에서 교육받게 된 아이들이었다.
네빌이 여덟 살, 바몬트는 열 살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앞에는 카실리온 아카다가 고개를 숙이고 쭈그려 앉아 있었다.
“수업 내내 거슬려 죽는 줄 알았네. 기분 나쁜 꼬맹이 때문에.”
바몬트는 카실리온의 가슴을 발로 퍽 찼다.
“바몬트, 살살 해. 이러다가 아카다에서 항의하기라도 하면 어떡해?”
“우리 아버지가 이 자식에 대해서 이미 조사해서 알려 주셨어. 아카다의 교육 시설에서도 기분 나쁘게 행동해서 쫓겨나다시피 했다는데?”
“아, 그래서 여기까지 위탁 교육을 온 거야?”
“여기서 죽어도 신경도 안 쓸걸.”
바몬트는 킬킬대며, 배를 잡고 신음하는 카실리온을 한 번 더 걷어찼다.
“그렇다고 죽이지는 마. 문제 일으켜서 좋을 거 없잖아.”
“교육은 제대로 해 줘야지.”
그들에 비해 체구가 작은 카실리온은 대응할 바가 없었다.
“사내자식이 치마나 입고 다니고.”
네빌은 이죽거리며 말을 이었다.
“페르메티스가 말을 걸어 주면 고마운 줄 알아야지, 못 들은 척 무시를 해?”
바몬트가 말을 곁들었다.
“듣기로는 이 자식 애비도 반쯤 미쳤다더군. 이놈 누나가 아파서 낫게 한답시고 온갖 약으로 인체 실험을 했다는데 결국 죽었대. 그런데 제 딸이 죽었다는 걸 인정하지 못하고 얘한테 여자 옷을 입히고 키…… 윽!”
그때 웅크리고만 있던 카실리온이 바몬트의 발목을 물어뜯자 바몬트가 다른 발로 카실리온을 걷어찼다.
카실리온은 단번에 나가 떨어졌다.
“닥…… 쳐.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카실리온의 자주색 눈에 독기 같은 거센 감정이 서렸다.
“뭐라고? 하.”
바몬트의 눈에 사나운 살기가 어렸다.
“같잖은 자식이. 조금 교육만 해 주려 했더니 안 되겠네. 개처럼 나를 물어뜯어?”
그리고 카실리온에게 저벅저벅 걸어간 그가 다시 걷어차려 할 때.
“이빨을 다 뽑아서…….”
[스킬 ‘검은 지배(LV.5/SS)’를 사용합니다.]
바몬트는 다리를 올린 그대로 멈추었다.
“……!”
그 상태 그대로 굳어 버린 사람처럼 말이다.
네빌은 어색한 바몬트의 모습을 보며 멍하니 있다가, 어느새 문이 열려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뭐…… 뭐야……!”
“아악!”
그 순간 바몬트는 제 몸을 지탱하고 있는 다리를 더 듦과 동시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퍽 소리가 헛간 안에 울려 퍼졌다.
“누, 누구야!”
심상찮은 느낌에 네빌이 막대기를 잡고 허공에 휘둘렀다.
“어…… 어떤 놈이……!”
[스킬 ‘피해 반사(LV.3/A)’를 사용합니다.]
그리고 그때 휘두르던 막대기가 별안간 제 머리통을 후려 갈겼다.
“으어억!!”
헛간의 오래된 마석 조명이 깜빡이며 스산하고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했다.
바몬트는 긴장한 표정으로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들은 얼어붙은 채 주변을 빠르게 둘러보았다.
“네…… 네빌.”
“가자. 도망치자.”
호기롭게 카실리온을 여기까지 데려온 것에 비해, 둘 다 겁이 많았다.
누가 자신들을 공격하는지는 모르지만 자신들보다 강한 사람이라는 것은 본능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뛰어!”
결국 둘은 카실리온을 두고 꽁지 빠지게 도망쳤다.
“……윽.”
카실리온은 바몬트에게 가슴과 배를 걷어차였던 통증 때문에 한참을 수그려 있다가 겨우 허리를 폈다.
더러운 헛간 바닥에 굴러서 옷이 잔뜩 지저분해져 있었다.
손도 생채기투성이가 되었고 말이다.
카실리온은 차가운 바람이 새어 들어오는, 열린 문을 바라보았다.
이내 카실리온은 눈을 감고 코를 킁킁댔다.
잠시 후 다시 눈을 뜬 카실리온이 볼이 붉어진 채 몽롱한 표정으로 입술을 달싹였다.
“재료 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