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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 가문의 병약한 막내님-78화 (78/124)

악당 가문의 병약한 막내님 78화

그것이 내뿜는 살기는 너무도 흉포하여 온몸을 마비시켰다.

라비아탄은 300년 전에 멸종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위력이 너무 막대했기에 4대 가문은 이 괴물들을 소탕하기로 결정을 내렸었다.

100년에 걸친 소탕 작전 끝에 단 두 마리가 남았다지.

아카다와 테일러스의 가주가 그 두 마리 중 한 마리를 잡았고, 헤일로의 가주가 다른 한 마리를 처치하고는 부상으로 숨을 거두었다.

그 후 라비아탄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런데 왜…….’

나는 금방이라도 나를 집어삼킬 것 같은 라비아탄을 보며 필사적으로 스킬을 발현했다.

[스킬 ‘검은 지배(LV.5/SS)’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불타오르는 거대한 횃불의 온도를 내리겠다고 다가간 작은 눈송이처럼, 내 스킬은 조금도 먹히지 않았다.

라비아탄의 붉은 눈이 섬뜩하게 빛나는 것처럼 보였을 때.

그 거대한 몸체가 내 눈에는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나를 향했다.

하지만 쿠쾅, 하는 폭음과 함께 내 시야는 달라져 있었다.

“……괜찮아?”

소름 끼치는 붉은 눈이 아닌, 차가운 암녹색 눈동자가 내 앞에 보였다.

이내 내 발이 바닥에 닿았다.

“오라버니…….”

진이 나를 낚아채어 구한 것이다.

아마 그가 아니었으면 죽는 줄도 모르고 죽었을 것이다.

“제기랄, 입구가 무너졌어!”

“가주는. 가주는 언제 오는 건가!”

바닥이 파괴되고 엉망이 된 와중 사람들의 외침이 들렸다.

하나뿐인 입구인 철문이 찌그러져서 잠금쇠도 어그러진 모양이다.

완전히 갇혀 버린 것이다.

“레카르도 공작을 데려와야 해!”

라비아탄은 직계가 아닌 방계의 혈족이 상대하기에는 너무도 위력적인 상대였다.

이능이 없는 자라면 한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기절할 정도이니 말이다.

“아버지를 기다릴 여유는 없습니다.”

나를 내려놓은 진이 앞으로 향하며 말했다.

진의 등 뒤로 두른 검은 망토가 그의 전진에 맞추어 움직였다.

“그렇다면 우리끼리 저 괴물을 상대해야 한다는 건가!”

바쉬론이 쉰 듯한 목소리로 진에게 항의했다.

바쉬론도 방계에 속하기는 하지만 헥토르의 피를 이어받은 자답게 꽤 강한 이능을 가지고 있었다.

레카르도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한창 성장하고 있는 진과 오셀로의 사이는 될 것이다.

불꽃의 강도로 추측하기에는 그러하다.

“더 나은 방법을 알고 계신 분은 말씀해 주십시오.”

진이 서늘한 눈빛으로 좌중을 향해 말했다.

고개를 처박은 라비아탄이 서서히 고개를 드는 것이 보였다.

페르메티스는 끔찍하다는 표정으로 그것에서 시선을 돌렸다.

“…….”

결국 누구도 대안을 말하지는 못했다.

쉬익―

여기서 저 괴물을 혼자 상대할 수 있는 자는 없으며, 그렇다고 도망치지도 못하는 상황이니까 말이다.

“제 이능이 가장 강하니.”

열네 살 소년이 꺼내기에 건방진 말이지만 옳은 이야기였다.

“공격은 제가 하겠습니다. 남작께서 저를 엄호하십시오.”

바쉬론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약점을 알고 있나?”

“…….”

“허. 대가주께서 계실 적과 다르게 지금의 아이들은 멸종된 괴물들에 대해서는 배우지 않는다고 하더군. 부실하게도 말이야.”

잠시 페르메티스를 보던 바쉬론이 말을 이었다.

“라비아탄은 배에 거꾸로 난 비늘이 있다.”

용의 역린이라는 것인가.

“청색의 몸체와 달리 유독 검은빛이지.”

바쉬론의 몸에 검은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우리와 적대적 관계이기는 했지만, 바쉬론은 강하고 경험이 많았다.

“다들 출구를 만들도록 해라.”

바쉬론이 진을 뒤따르며 말했다.

지금만은 그도 역시 윈체스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울 볼!”

나는 인벤토리 안에 넣어 두었던 카테르의 소울 볼을 꺼내 강하게 쥐었다.

그러자 이내 공간이 열리며 머리 셋 달린 개가 튀어나왔다.

“저…… 저건……!!”

“으악!!”

괴물이 하나 더 추가되자 사람들이 놀라 기절할 것 같은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말했다.

“카테르, 사람들을 도와줘!”

반으로 길을 낸 사람들 사이를 으르렁대며 걷던 카테르는 내 명령에 따라 철문에 머리를 찧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두려워하고 있었지만, 카테르가 자신들을 돕는다는 건 인지하고 있었다.

“……벌써 카테르까지 길들였다니.”

바쉬론의 눈썹은 감탄의 표현인 듯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뭣들 하느냐, 너희도 도와라.”

“……예…… 예!”

바쉬론의 명령에 사람들도 카테르의 뒤를 이어 철문에 흠집을 내기 시작했다.

쉬익―

20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몸체와 갑옷 같은 비늘.

배의 절반은 땅에 닿아 있어 약점은 보이지 않았다.

진이 제게 달려오는 것을 본 라비아탄이 꼬리를 치켜들었다.

그리고 잔상만 겨우 스쳐 가는 듯한 엄청난 속도로 진을 공격했다.

쿠콰광―

흙먼지가 일었고, 조마조마한 눈으로 나는 흙먼지 속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잠시 후 흙먼지가 조금 걷히자 라비아탄의 꼬리를 붙잡은 바쉬론의 흑염이 보였다.

라비아탄은 성을 내듯 꼬리를 한번 저었고, 바쉬론의 흑염은 너무도 쉽게 부서졌다.

“큭.”

반동으로 바쉬론이 뒤로 내동댕이쳐졌다.

하지만 틈을 타 안으로 들어온 진이 선연한 흑염을 품은 손으로 라비아탄의 배를 강타했다.

유독 흑빛이 나는 라비아탄의 역린이 내 눈에도 똑똑히 보였다.

부싯돌이 부딪칠 때 나는 듯한 불꽃의 수백 배 강도로 불꽃이 튀겼다.

흑염은 원거리에서도 사용할 수 있으나, 시전자와 멀리 있을수록 강도는 약해진다.

진은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최대 위력의 공격을 가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바히모스라면 서너 마리는 저세상으로 보낼 만한 위력이다.

그러나.

“오라버니!”

라비아탄의 눈이 번뜩이는 것을 본 나는 외쳤다.

그러나 그 외침이 라비아탄의 공격보다 늦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쿠과과과광―

자유로워진 라비아탄의 꼬리는 엄청난 강도로 진을 날려 버렸다.

진이 바닥에 처박히며 엉망이 된 바닥에 폭탄이 터진 듯한 흔적이 주르륵 생겨났다.

“아아…….”

진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의식은 있었지만 눈빛만 사납게 번득일 뿐, 입가에서는 피가 흘러나왔다.

“오라버니!!”

나는 진에게 뛰어가 그의 상태를 살피려 했다.

그리고 그때 한 사람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철문이 거의 뜯겼어! 다들 이능을 보태 문을 열자고!”

나는 급하게 인벤토리에서 포션을 꺼내 진의 입에 흘려 넣었다.

“이건…… 콜록…….”

“약이에요.”

부러진 것으로 보이는 가슴뼈의 형태가 붙는 것이 내 눈에도 보였다.

쉬이익―

하지만 알고 있었다.

이대로 진이 회복된다고 하더라도 라비아탄을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을.

최대 위력으로 역린을 강타했지만 작은 흠집만 날 뿐이었다.

레카르도가 오지 않는 이상 우리에게 승기는 없었다.

달아날 길도 없고, 달아나더라도…… 마야와 로웬을 포함한 저택의 모든 사람들이 위험해지게 된다.

“샤샤.”

“말하지 마요, 오라버니.”

“하지 마. 너…….”

레카르도와 진, 오셀로, 에반. 이 네 사람은 내가 이능을 사용하면 몸에 무리가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제가…….”

진의 눈이 서늘하게 빛났지만 결국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마지막 희망을 모른 체할 수는 없었다.

“……해야 해요.”

나는 진을 보며 말했다.

언제나 차가운 어둠에 싸여 있던 그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쉬익―

라비아탄이 나와 진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나는 정신을 집중하고 진을 향해 나의 힘을 불어넣었다.

오셀로를 구하고 싶었던 그 순간의 느낌을 떠올리며.

[이능을 발현합니다.]

[대상에게 힘을 부여합니다.]

나의 손을 타고 하얀 빛이 퍼지기 시작했다.

철문의 파쇄에 집중하고 있는 사람들마저 손을 멈추고 돌아볼 만큼의.

[대상의 인과율이 낮아 이능의 효율이 저하됩니다.]

그리고 예상했던 문구가 떠올랐다.

진과의 인과율이 그리 높지 않으니 최고의 효율은 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한 방울의 힘도 남지 않았던 오셀로가 바히모스를 단칼에 죽이게끔 만든 능력이니.

진에게도 그러한 효과를 부여하기를.

쿠과과과광―!

라비아탄과 우리의 중간 지점에서 엄청난 폭음이 들렸다.

아까 라비아탄이 진을 날려 보냈을 때와 같은 크기의 폭음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홀린 듯 진을 향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흙먼지 사이에서, 진이 똑바로 서 있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믿지 못하겠다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뼈가 부러지고 만신창이가 된 진은 누가 보아도 당장은 재기 불능의 상태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포션으로 몸이 회복되고, 나의 이능으로 힘이 강화된 진은 아까보다 더 흉흉한 흑염을 흘려보내며 라비아탄과 대치하고 있었다.

“레카르도 윈체스터가 나타난 줄 알았어.”

뒤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레카르도로 착각할 만큼의 강렬한 흑염이었다.

그리고…….

레비아탄의 배에 있던 검은 비늘이 갑옷의 기능을 다한 듯 반쯤 부서져 있었다.

“역린이다!”

부상 상태로 앉아 있던 바쉬론이 진에게 외쳤다.

우리는 진의 표정을 볼 수는 없었지만, 진이 한 치의 물러섬 없이 라비아탄의 기세에 맞서고 있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진.”

나도 모르게 진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일순간 진의 손에 흑염이 뭉치기 시작했다.

족히 첫 공격의 두 배는 되는 규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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