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 가문의 병약한 막내님 83화
“재료도…….”
페르메티스가 나가고 카실리온은 쭈뼛쭈뼛 내 방에 들어왔다.
“언니도 아니라고 했잖아.”
“……으응.”
“샤샤라고 해 봐.”
“샤샤.”
카실리온이 멍하니 나를 바라보더니 싱긋 미소 지었다.
“샤샤.”
되뇌듯 다시 내 이름을 불렀다.
“방금은 어떻게 된 거야?”
“나를 보고 짜증이 났나 봐. 원래부터 기분 나쁘게 생각했거든.”
페르메티스의 더러운 성격을 보았을 때, 카실리온 같은 약자를 괴롭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의 카실리온은 유명하지도 않고 가문에서도 내버려 둔다는 소문이 자자하니까.
“사실을 말해 줬을 뿐인데.”
“뭐?”
“페르메티스에게는 고약한 냄새가 나.”
카실리온은 침울한 표정으로 입술을 달싹였다.
“내 앞에 서 있었는데 너무 지독했다고.”
나를 킁킁대며 좋은 재료 냄새가 난다고 했었는데, 페르메티스에게는 고약한 냄새가 난다고?
“설마 그걸 그대로 말한 거야?”
“응.”
“괴롭힘당해도 싸군.”
나는 고개를 저었다.
물론 여덟 살이면 사회성이 완벽할 시기는 아니다.
하지만 그건 대부분 사랑 속에서 자라는 현대 아이들의 이야기이고, 여기는 사회성 없는 여덟 살은 목숨이 위험한 세상인데…….
안타깝지만 페르메티스의 원수가 된 것도 인과응보였다.
“앞으로 그런 생각은 숨기도록 해.”
“응…… 그런데 왜?”
“누가 너에게 냄새난다고 하면 기분이 어떻겠어?”
“궁금할 것 같아. 무슨 냄새인지.”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지독한 냄새, 썩은 냄새가 난다고 하면…….”
“그럼 독의 재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내 몸 말이야.”
하지만 카실리온은 도리어 흥분하는 말투로 즐거워했다.
“냄새란 사람의 본질이거든. 어떤 독은 생물의 영혼에서 기인하니까 뛰어난 정신계의…….”
그래, 얘를 평범한 아이라고 생각한 내가 잘못이다.
에반이 다시 끌어들이고 싶지 않다는 것이 가끔은 이해가 될 정도이니.
나는 말을 멈추고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왜 온 거야?”
그제야 카실리온은 흥분해서 주절주절 말하던 것을 멈추었다.
“아아, 위험을 경고해 주려고.”
“위험?”
나는 눈썹을 꿈틀했다.
카실리온은 전과 달리 꽤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저택을 돌아다니다가 들었어. 제국에 나타난 예언자가 사람들을 선동하고 다닌다며…… 그리고 네 가지 재앙에 대해 예언했대. 늑대와 뱀, 그리고 독수리와 소녀.”
“나도 마야에게 들었어.”
꽤 혼란스러운 시국이라고 한다.
윈체스터 영지뿐 아니라 헤일로나 아카다, 테일러스의 사람들까지 들끓게 한다고 했었지.
“바히모스가 늑대, 라비아탄이 뱀, 독수리는…… 잘 모르겠지만.”
“독수리는 다크 이글이야.”
“다크 이글?”
얼마 전 책에서 읽었던, 멸종된 몬스터들 중 하나였다.
바히모스와 라비아탄이 모두 멸종된 몬스터였으니, 다음 적이 나타난다면 앞서와 비슷할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세뇌를 이용하는 무서운 맹금류야.”
카실리온의 말이 믿을 만한지는 모르겠지만 검토할 여지는 있었다.
“그리고 이거…….”
잠시 후 카실리온이 내게 다섯 개의 병이 든 파우치를 내밀었다.
나는 주머니를 받아 열어 보았고 그곳에는 아주 작은 유리병들이 들어 있었다.
유리병의 크기는 어른의 손톱만큼 작았다.
“이게 뭐야?”
“첫 번째 건 추위를 느끼지 못하게 해 주는 약. 보온 효과가 있어서 체온을 유지시켜 줘. 두 번째 거는 말 잘 듣게 해 주는 약이고. 약마다 설명 라벨이 있으니 읽어 봐.”
오오, 생각지도 못한 아이템들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것을 챙겼다.
“그런데 이건 다 어디에서 얻은 거야?”
“내가 만들었지. 진 공자님이 천 피스(piece)의 독약 제조를 조건으로 윈체스터의 실험실 사용권을 주셨어.”
천 피스의 독약이라니.
아카다 출신의 아이를, 쓰임대로 잘 이용하고 있는 진이었다.
뭐, 이것도 카실리온의 능력 개발과 엘릭서 제조에 도움이 된다면 나쁘지 않다.
“고마워.”
“아니야, 재료 언, 아니 샤샤는…….”
카실리온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황홀해지는 냄새가 나는걸. 그러니 이것저것 선물하고 싶었어.”
장차 이 소년은 제국에서 이름을 날리는 괴짜로 성장하게 된다. 그러니 내가 이러한 태도를 정정해 줘 봤자 소용이 없다.
속으로 생각하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알았어. 잘 쓸게…….”
“에반 테일러스도 분명 샤샤의 냄새에 반했을 거야. 그래서 내게 허튼 생각 하지 말라며 협박하는 거겠지.”
갑자기 두통이 밀려드는 것 같다.
“협박은 또 뭔데.”
“있어, 그런 게. 참, 에반이 적을 만나러 갔어.”
하지만 선명히 들려오는 카실리온의 목소리.
나는 이마를 감싼 손을 내리고 눈썹을 찡그렸다.
“그게 무슨 말이지?”
“파라메나에 가는 걸 봤거든. 분명 다크 이글이 노릴 만한 곳인데 말이야.”
폭도를 제압하러 레카르도와 함께 길을 나섰던 인원들 중 절반가량이 파라메나에 머물고 있다고 알고 있다.
그중에는 레카르도의 부관인 로웬도 있었다.
“에반이 왜……?”
“다크 이글은 샤샤를 노릴 테니까. 바히모스나 라비아탄이 그랬던 것처럼.”
“잠깐만. 바히모스는 오셀로를 공격하려 했는데 내가 끼어든 경우였고, 라비아탄도 굳이 나를 노렸다는 증거는…….”
“메키우스의 열쇠잖아.”
하지만 카실리온이 한 말에 나는 할 말을 잊어버렸다.
메키우스의 열쇠. 그것이 나의 특성이었다.
카실리온의 또렷한 자주색 눈동자 속에 내 모습이 비쳤다.
눈이 내린 듯한 새하얗고 아름다운 은발과 푸르른 녹안.
“퀠른의 예언서를 해독했고, 이제는 4대 가문의 가주님들 모두 네가 특별한 어떤 존재라는 걸 알아. 일부러 티 내지는 않는 것뿐이지.”
나는 종종 레카르도가 나를 응시하던 시선을 떠올렸다.
서늘한 눈빛은 그에게 말조차 걸기 어렵게 느껴졌지만, 의외로 언제나 먼저 내 근황을 묻는 것은 레카르도였다.
바네사가 마지막으로 한 말에 대해서도 레카르도는 내게 묻지 않았다.
그 또한 레카르도의 배려일까.
신수에 대해 많이 캐묻지 않는 것도 그 일환일지도 모른다.
메키우스의 열쇠라는 중요한 존재임에도, 나는 아직 어리고…… 만약 그가 나를 보호해 줘야 한다고 여기고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나는 마음을 짓누르고 있던 문제를 조금 꺼내 보기로 했다.
“그 말은, 내가 재앙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으로 들리는데.”
애초에 홀에 라비아탄이 나타난 것도, 오셀로가 바히모스에게 공격당한 것도 나의 탓이라면…….
죄책감이 생기지 않을 리가 없다.
“내가 없으면 그것들도 안 나타나지 않았을까?”
나는 다소 굳은 표정으로 카실리온에게 물었다.
“그것보다는…….”
카실리온은 티 없이 즐거운 표정으로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샤샤가 언젠가 할 일을 사악한 존재들이 무서워하는 거겠지.”
카실리온의 접근에 나는 가슴이 쿵쿵 뛰었다.
남을 강화시키는 이능이라.
오셀로와 진도 그 정도로 강해졌다면, 회귀자인 에반은 어느 정도가 될까.
“그런 것들의 적수가 될 거라니. 정말 대단하잖아.”
이능, 그리고 생명력…….
정수 열아홉 개.
그날이 십 년쯤 남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앞으로의 삶이 무겁기도 했다.
눈앞의 이 아이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카실리온은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넌 특별한 존재야, 샤샤.”
* * *
“파라메나의 주민이라고?”
체노아는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
서 있는 그의 앞에 무릎을 꿇은 남자는 벌벌 떨며 말했다.
“어마어마한 재앙이 닥칠 겁니다. 놈들은 정말…….”
남자의 안색은 곧 죽을 듯 시퍼렜다.
“무시무시한 힘을 가졌습니다. 테일러스가의 후계자께서는 저희를 구하려다 위험에 처하셨고요.”
남자가 붙잡혀 올 때만 해도 시큰둥한 표정이던 테일러스가 눈썹을 세웠다.
“방금 뭐라고 했더냐.”
“제가 여기까지 달려온 이유입니다. 어차피 레카르도 공작께서는 테일러스의 후계자가 죽건 말건 상관치 않으실 것 같아서…….”
“에반 테일러스가 파라메나에 있다고?”
“네, 파라메나를 도우러 오셨다가 붙잡히셨습니다.”
남자는 테일러스의 가주와 후계자를 위해 생산된, 특유의 문장이 새겨진 단추를 내밀었다.
에반의 모든 의복에 달려 있는 단추, 그것을 본 체노아 테일러스의 표정이 굳었다.
그의 몸에서 푸른 청명의 기운이 사납게 일렁이기 시작했다.
자아의 깊은 곳이 에반의 금제에 걸려 있었지만, 후계자를 지켜야 한다는 가주의 본능은 건재했다.
“위치를 안내해라. 루크, 넌 병사들을 준비시키고 윈체스터에 확인 서한을…….”
체노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무릎을 꿇은 남자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체노아는 눈썹을 사납게 뜨며 청명의 칼을 쏟아 내었다.
소드 오러로 남자를 해친 오셀로는 체노아의 공격을 막았다.
하지만 오셀로가 소드 오러를 전개했음에도 강력한 청명의 이능 세례에, 결국 입가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큭…….”
방어 자세를 취한 오셀로에게 체노아는 성큼성큼 걸어가며 말했다.
“필시 오늘은 널 죽여야겠구나. 감히 테일러스가의 일에 끼어들어?”
오셀로는 선연한 살기를 띤 체노아를 노려보며 손가락으로 죽은 남자를 가리켰다.
“눈이 있다면 똑바로 보시길.”
한 치의 물러섬 없는 오셀로의 도전적 표정에 체노아는 눈썹을 꿈틀 움직였다.
“저것이 인간입니까? 가주?”
그리고 오셀로가 가리킨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가 있던 자리에 사람은 없고 마치 녹아내린 것처럼 새카만 기름만 고여 있었다.
“……이건!”
애초에 멀쩡한 인간이 아니었다.
적은 의도가 있어서 테일러스가에 온 것이다.
테일러스가가 이 일에 끼어들면 얻을 이득이 있어서.
“분명 인간의 기척이었다.”
체노아는 한낱 눈속임에 속는 종류의 인간이 아니었다.
빛의 테일러스가의 가주.
그런 그를 속일 정도면 이는 필시 엄청난 능력을 가진 술사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이 분명하다.
“…….”
오셀로가 검집에 검을 넣으며 말을 이었다.
“테일러스의 일이 아닙니다.”
소드 오러는 거짓을 간파한다. 다른 것들보다 더 정확하게 측정한다.
고행으로 쌓아 올린 그 힘은 영혼의 진동과 공명하기 때문이다.
오셀로는 성가신 표정으로 입가의 피를 닦았다.
“윈체스터의 일이지.”
체노아는 아직도 기름 덩어리를 멍하니 보고 있었다.
“에반이 붙잡혔다는 것도 거짓이리라.”
“그건 확인해 보아야 아는 거겠죠. 저 단추는 진짜이지 않습니까.”
귓가에 오셀로의 낮은 목소리가 스며들었다.
오셀로의 말대로 단언할 수 없는 문제였다.
“집에 가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