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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 가문의 병약한 막내님-87화 (87/124)

악당 가문의 병약한 막내님 87화

모든 일이 끝나고 내 방에 들어온 나는 만족스럽게 알림창을 확인했다.

[퀘스트를 달성하였습니다.]

[퀘스트 보상 : 새로운 직업과 모든 능력치 +5, 300루비, 흑룡의 뿔]

에반이 다크 이글을 잡은 대가였다.

[이름 : 샤샤 윈체스터(LV.8)]

[직업 : 초보 구원자]

[특성 : 메키우스의 열쇠]

[능력치: 체력 33 / 근력 25 / 이능 15 / 지능 46 / 생명력 51]

에반에게 이능을 써서 깎인 생명력까지 ‘5’나 복구되다니, 좋다.

그리고 인벤토리에는 300루비가 추가됐다.

새로 얻은 아이템, ‘흑룡의 뿔’과 함께 말이다.

어디 흑룡의 뿔을 정제해 볼까?

나는 저번에 산 제조기로 흑룡의 뿔을 정제했다.

검은 알약의 형태가 툭 떨어졌고, 나는 한참 동안 그것을 보다가 다시 인벤토리에 넣었다.

죽은 사람을 되살릴 정도로 강한 효능을 가진 알약이다.

내가 지금 섭취하면 생명력의 상당한 상승을 볼 수 있겠지만, 더 필요할 일이 있을지 모르니 보관하는 것이 낫겠다.

“아가씨, 공작 전하께서 찾으십니다.”

마야의 말에 바깥으로 나오자, 로빈이 딱딱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로빈을 보며 조금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아, 로빈.”

로빈은 삐지기라도 한 듯 몸을 돌렸다.

“가시죠.”

그럴 수밖에. 그에게 약을 먹여 파라메나로 날 데려다주게 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아까 레카르도에게 고했기에 로빈에 대한 징계는 없었지만, 내게 배신감을 느낄 만도 하다.

“로빈…….”

나는 로빈의 뒤에서 걸으며 그를 불렀다.

“많이 화났어?”

하지만 로빈은 성큼성큼 걸을 뿐이었다.

나는 종종종 뛰어 로빈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것밖에 방법이 없었어.”

로빈이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응시하다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쪼그려 앉듯 몸을 아래로 내려 나와 시선을 맞추었다.

“지금 하신 말도 변명이 되지 않습니다.”

“로빈…….”

“아가씨께서는 스스로를 위험에 몰아넣으셨습니다. 그것도 저를 이용하셔서.”

“…….”

“만약 아가씨가 잘못되기라도 했다면 저는.”

나는 로빈을 와락 껴안았다.

로빈이 말을 멈추었다.

이렇게라도 그가 내 진심을 알아주었으면 했다.

“윈체스터를 구하고 싶었어. 다들 내게는 소중한 사람이니까.”

“…….”

“로빈이 나를 소중히 여겨 주듯 내게는 이곳이 소중해서. 그래서 로빈 경을 이용했어. 정말 미안해.”

나는 로빈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잠시 후 로빈을 안은 손을 놓자, 나를 보는 로빈의 눈동자가 보였다.

그는 작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다음에는, 부디 저도 소중히 여겨 주십시오.”

나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일어선 로빈은 다시 몸을 돌리려다가 흠칫했다.

“…….”

나 또한 선연히 깔린 흑염의 기운에 깜짝 놀랐다.

너무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다. 앞쪽에 진이 서 있는지 말이다.

등골이 서늘해질 만큼의 한기를 내뿜으며 진은 로빈을 응시했다.

나는 황급히 진에게 변명했다.

“오라버니, 제가 약으로 로빈을 세뇌해서…… 저를 파라메나로 데려간 것은 로빈 경의 잘못이 아니에요.”

하지만 진의 굳은 눈썹은 조금도 풀리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로빈을 죽여 버릴 것 같은 기세로 진은 우리에게 다가왔다.

어쩌지, 스킬이라도 써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진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

윽, 안 잡으면 죽을 것 같다.

나는 진의 손을 잡았다.

진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서늘한 눈으로 로빈을 보다가 내 손을 잡고 이끌었다.

로빈은 멍하니 서서, 나를 데리고 떠나는 진의 뒤통수를 응시하고 있었다.

― 방금 했던 거, 로빈에게 한다면, 죽여 버릴 거야.

이 순간, 돌쟁이 때 진에게 뽀뽀했었다가 들었던 말이 떠오르는 이유는 뭘까.

나는 잡생각을 지우고 진을 따라갔다.

잠시 후 집무실의 문이 열리고 우리는 안으로 들어갔다.

레카르도가 앉아서 흰 손수건으로 검을 닦고 있었다.

그리고…….

“오셀로!”

“오빠라고 하랬지.”

오셀로가 와 있었다.

나는 반가운 기색을 숨기지 않고 오셀로를 껴안았다.

다행이다. 모든 일이 끝난 뒤에 도착해서.

오셀로 같은 다혈질 성격은 지능캐인 다크 이글에게 취약하니, 진처럼 냉정히 도발을 참지 못했겠지.

잠깐 흠칫하던 오셀로는 내 등을 쓰다듬었다.

“여기나 저기나, 마음에 안 드는 하루군.”

침묵을 유지하고 있던 진은 오셀로를 보며 인상을 조금 찌푸렸다.

오늘따라 심기가 조금 날카로운 듯한 모습이다.

레카르도는 우리의 재회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아카다에서 다크 이글의 뇌를 회수하기로 했다.”

나는 흠칫 놀랐다.

“뇌를 회수한다면…….”

“아카다의 마법사들이라면 배후에 대해 알아낼 수도 있겠지. 에반 테일러스가 용케도 뇌에는 훼손이 없게 처리했더군.”

에반이라면 의도하고 했을 것이다.

예언자로서 제국을 돌아다니며 4대 가문에 대한 불신의 씨앗을 뿌리고, 영혼을 갉아먹어 힘을 보충한 다크 이글.

고등 지능을 가진 몬스터의 특징은 뇌가 크고 잘 발달되었다는 것이다.

아카다는 엄청난 기술력을 가졌고, 그 안에서 쓸 만한 정보를 캘 수 있다면…….

어쩌면 페르세토스의 부활에 대한 정보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도 인간의 몸에 숨어 있을 페르세토스는 아직 직접적으로 힘을 쓰지 못한다.

그러니 우리가 그날이 오기 전에 먼저 페르세토스를 처치한다면…… 미래가 바뀐다!

“뇌를 처리하고 기억을 읽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요?”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물었다.

“빠르면 일 년, 길면 삼 년이 걸린다고 하더군.”

정보를 해독하면 페르세토스가 누구의 몸에 있건 간에 우리가 힘을 합쳐 물리칠 수 있지 않을까?

내 이능의 힘을 받은 에반의 능력은 잠시나마 레카르도를 능가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샤샤.”

“네, 아버지.”

“너는 앞으로 한 달간 근신이다.”

한 달이나 근신이라고? 저택에서 나가지 못한다고?

“아버지, 샤샤는 이번 일에 공을 세웠습니다.”

진이 나를 변호해 주었다.

“샤샤가 파라메나에 신속히 당도하지 않았더라면 저택의 피해가 컸을 것입니다. 그리고 샤샤가 저택에 있었더라면 더 위험했겠죠.”

진의 말에는 틀림이 없었다.

나는 중앙 창고에 갇혀 있는 레카르도와 에반을 흑탑의 열쇠로 구했다.

만약 그러지 못하고 저택에 있었더라면…… 진이 공성전을 벌이는 동안 덜덜 떨어야 했을 것이다.

다크 이글은 역시 나를 노렸다고 했으니까.

“그러나 샤샤는 제 자신을 위험에 빠트렸다. 문을 열었던 것도 천운이 따랐기 때문일 뿐.”

레카르도의 서늘한 눈빛에는 변함이 없었다.

“만약 파라메나에서 다크 이글과 마주쳤다면 쉽게 목숨을 내주었을 것이다.”

다크 이글과 나는 엇갈렸다.

다크 이글이 나를 잡으러 저택으로 향하던 때, 나는 파라메나로 갔으니 말이다.

그건 레카르도의 말대로 천운일지도 모른다.

퀘스트 창이 보여서 그것을 믿어 보았다는 말을 할 수는 없었기에 나는 잠자코 있었다.

“아버지의 말씀이…….”

그리고 이내 나를 변호해 주려는 듯 입을 여는 오셀로.

“……옳습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다음 말에 나는 눈썹을 꿈틀했다.

“오셀로?”

그래도 샤샤가 최선을 다했다고, 근신은 너무한 처사라고 변명해 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오셀로는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샤샤 윈체스터는 당분간 근신이 필요합니다.”

오셀로를 바라보던 진은 입술을 닫았다.

반박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물론 근신이 내려질 만한 짓을 한 것은 맞지만, 나는 억울했다.

나 혼자 잘 먹고 살겠다고 간 것도 아니고, 모두를 구하려고 갔는데…….

이렇게 나쁜 사람 취급하는 게 어디 있어? 하는 생각이 치밀었다.

물론 그걸 따질 만큼의 담력은 없었다.

나는 알현을 끝마치고 바깥으로 나왔다.

창밖을 통해 영지민들이 윈체스터가를 둘러싼 것이 보였다.

정확히 말하면 두 무리로 나뉘어 있었는데 외치는 것이 달랐다.

“샤샤 윈체스터는 세상을 구원할 진정한 구원자이시다!”

“샤샤 윈체스터를 그들에게 내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재앙이 닥칩니다!”

“예언자의 예언이 성취되고 있다!”

“샤샤 님을 경배해라!”

내 앞으로 훅 들어온 오셀로는 창문을 열었다.

그러자 그의 허리춤에 찬 검이 어둠을 발하며 공중으로 쏘아 올라졌다.

“안 돼!”

그가 어마어마한 짓을 할 것 같다는 생각에 나는 오셀로의 옷을 잡았다.

공중에 쏘아진 검이 두 무리의 중앙에 떠서 시커먼 흑염을 내뿜으며 돌기 시작하자 앞줄에 선 사람들은 겁에 질렸다.

그러더니 차츰차츰 물러나기 시작했다.

“사람을 죽이면…….”

“죽이는 거 아니야. 겁주는 거지.”

섬뜩하리만큼 차가운 안광을 발하는 오셀로의 모습이 보였다.

“네가 없었으면 죽였을지도 모르겠지만.”

검의 위협적인 움직임에 결국 사람들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오셀로의 검은 빠른 속도로 비행하기 시작했다.

테일러스에 가기 전에는 상상하지도 못하던 검술의 완성이었다.

잠시 후 태연히 검을 회수한 오셀로가 내게 말했다.

“가자, 꼬맹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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