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당 가문의 병약한 막내님-88화 (88/124)

악당 가문의 병약한 막내님 88화

제국에 나에 대한 소문이 퍼지고 있다고 한다.

윈체스터가의 막내 공녀, 여덟 살 된 여자아이, 샤샤 윈체스터.

메키우스의 열쇠부터 네 몬스터 중 최종 보스라는 의심까지…… 장래가 촉망되는 아이라면서 말이다.

내가 제국의 운명에 해가 될지 도움이 될지, 떠드는 사람이 많다고 들었다.

점을 치는 사람도 있었고, 목숨이 아깝지 않은 자 중에서는 저렇게 저택 앞으로 몰려와 나를 구경하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오셀로와 진이 나에 대해 떠드는 인간들의 혀를 자른다는 거짓말 같은 소식도 번번이 들리고…….

요즘 상황을 알고 나니 레카르도가 내게 근신 명령을 내린 것도 이해가 가는 조치였다.

“……홍차 먹을래?”

“과자는 어떤 거 있어? 테일러스의 다과는 영 밋밋해서 짜증 났거든.”

오셀로를 따라 복도를 돌아가던 도중 나도 모르게 멈칫했다.

에반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둘이 만나면 으르렁거릴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에반을 만난 오셀로의 표정은 태연했다.

에반 역시 그러했고 말이다.

마치 전에도 여러 번 만난 적 있던 사람처럼.

내가 에반을 지나치려 할 때, 에반의 입술이 달싹였다.

“……대단한 이능이더군.”

감탄의 어조도 비꼬는 말투도 아니었다.

나는 에반의 옆에 멈추어 에반을 바라보았다.

“저녁에 잠깐 시간 좀 내.”

우리는 아직 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었다.

게다가…… 지금의 에반은 언제 떠날지 모르는 상태였다.

전에는 체노아가 볼모 귀환에 반대하여 오셀로를 데려오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제 양 가문이 각자의 볼모를 되돌려보내는 협의가 된 모양이었다.

“스퀘어에서 만나도록 하지.”

에반의 답에 나는 조금 놀랐다.

복잡한 방법으로 만든 ‘특별 구역’, 스퀘어.

정원이 1명이라 에반이 들어올 때마다 쫓겨났었는데…… 임의로 인원을 늘릴 수 있었던 거야?

“으…… 응.”

그렇다면 우리가 다른 곳에 있더라도 스퀘어를 통해 소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셀로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그리고 잠시 후, 오셀로는 내 어깨를 감싸다시피 나를 밀어 걷게 했다.

마치 경계하는 것처럼 말이다.

“오빠!”

“연습 꽤 했나 봐. 나쁘지는 않네.”

오빠라는 말에 오셀로는 만족스러운 듯 입꼬리를 올렸다.

나는 입을 삐죽대었다.

“이제 소원 성취 한 거야?”

오셀로는 여전히 심술궂고 괴팍하다.

열네 살이면 철들 때도 되지 않았는가.

“저녁에 나도 같이 나가. 테일러스 녀석 만날 때.”

오셀로의 말에 나는 흥, 하고 팔짱을 끼었다.

“싫어.”

“왜 싫은데.”

“할 이야기가 있단 말이야.”

“속이 새카만 그 녀석과 내통이라도 하려고?”

마치 윈체스터의 정보를 빼내는 스파이 짓을 하려느냐고 묻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빠졌다.

“내가 없는 동안 아주 친하게 지낸 모양이야. 아버지도 그렇고, 서운한걸.”

“…….”

“스퀘어는, 둘만의 암호인가?”

그리고 마치 비꼬는 듯한 말투.

“오랜만에 봤으면서 왜 말을 그런 식으로밖에 못해?”

나는 멈추어 서서 오셀로에게 따졌다.

“나…….”

오셀로가 흠칫하는 모습이 보였다.

“나흘 전까지는 오빠가 조금 보고 싶었는데, 취소야.”

나는 오셀로에게 한껏 쏘아 주고 앞으로 걸었다.

오셀로의 시선이 오랫동안 뒤통수에 느껴졌다.

* * *

아까는 오셀로에게 조금 심했나, 생각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내적으로 많이 가까워졌다고 생각했지만 오셀로는 결국 엄청난 악당이 될 사람이니 그 본성은 숨길 수 없겠지.

사람에게 너무 벽을 두는 것도 좋지 않지만 완전히 믿는 것도 그렇게 좋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오셀로 미워!

[특별 구역에 입장하시겠습니까?]

푸른 매의 비밀이 사라진 이후 등장한 적 없는 문구가 떴다.

아마 스퀘어의 주인인 에반의 의지일지도.

나는 심호흡을 하고 스퀘어에 입장했다.

“…….”

여러 번 와 본 적 있었던 방이다. 에반이 먼저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주변을 둘러보며 방 중앙으로 들어오자 에반이 말했다.

“여기에서 누군가와 만나는 것은 처음이군.”

“너도 여기…… 글자가 떠?”

[정원 2/2]

나는 상태창을 가리키며 말했다.

하지만 에반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눈살을 찌푸릴 뿐이었다.

“음…… 아냐.”

아마 에반에게는 다른 방식으로 이 스퀘어가 작동하는 모양이다.

스퀘어의 주인인 그가 원했기에 나를 초대할 수 있었고 말이다.

“앉아.”

에반은 테이블 옆 의자를 보며 내게 말했다.

나는 어색하게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이곳에 마석으로 작동되는 물건은 없었다. 이능도 사용할 수 없는 장소라고 했었지.

그래서인지 에반과 마주 앉아 있는 것이 더 어색한 느낌이었다.

“다크 이글과의 전투는 어땠어?”

나는 본론으로 들어가서 전투에 대해 물었다.

에반은 잠시 생각하더니 입술을 달싹였다.

“……시시할 정도였지.”

“역시. 이능이 통했어.”

나는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말했잖아. 우리가 협력한다면 페르세토스도…….”

그러나 에반은 단호한 표정으로 말을 끊었다.

“다크 이글이 천 마리.”

“…….”

“아니, 만 마리가 있어도 페르세토스의 상대가 되지 못해.”

나는 잠시 생각했다. 에반이 나를 겁주려고 오버하는 것은 아닐까.

파라메나를 3초 전으로 끝없이 되돌리던 능력은 경이로울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괴물이 만 마리가 모여도 페르세토스의 상대가 안 된다고?

“알고 있다며, 멸망.”

에반의 말에 나는 푸른 매의 비밀에서 본 장면을 떠올렸다.

그야말로 대멸망의 순간, 땅이 갈라지고 하늘을 뒤덮는 괴물들.

검게 변한 대지와 아무런 희망이 없는 풍경.

“…….”

나는 다시 주먹을 쥐고 잠시 품었던 희망을 삼켰다.

“기회는 오로지, 페르세토스가 부활하기 전뿐이야.”

에반의 목소리가 들렸다.

에반의 말이 절대적으로 맞았다.

하지만 누구 안에 들어 있는지 알 방법이 아직도 없었다.

에반이 살아 있던 모든 것들을 도륙하던 풍경을 떠올리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에반.”

그런 일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

세상을 위해서도, 그리고 에반 자신을 위해서도.

“우리, 이번에도 잘 해냈으니까 앞으로도 동료 같은 마음으로…….”

“난 널…… 동료로 생각하지 않아.”

내가 무언가 말하려 할 때, 에반이 내 눈을 보고 먼저 말했다.

가슴이 덜컹하며 욱신거렸다.

그의 푸른 눈동자가 유달리 짙어 보였다.

“동료가 아니면 뭔데! 아직도 적이라는 거야?”

나는 따지듯 물었다.

우리가 긴밀히 협조하지는 않았지만,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쩐지 배신당한 느낌이다.

잠시 후 그가 다시 입술을 달싹였다.

“……그럴 리가 없잖아.”

잠시 후 입에서 나온 한 마디. 어쩐지 괴로우면서도 답답한 감정이 느껴졌다.

낯빛이 조금 붉은 것 같기도 하고.

나는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어서 에반을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에반의 목소리는 무거웠고, 눈빛 역시 그러했다.

“기다리고 있어. 그동안 네 아버지와 오빠들이 지켜 줄 테니 그들에게서 떨어지지 말고,”

잠시 후 에반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그시 푸른 눈으로 나를 보고 있던 에반의 입술이 다시 달싹였다.

“준비가 되면 데리러 오겠다.”

그리고 내가 뭔가 말할 새도 없이 알림창이 떴다.

[인원 초과로 자동 퇴장당합니다.]

나는 다시 내 방에 있었다.

“인원을 다시 조정한 건가.”

나는 김샌 표정으로 침대에 누웠다.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속으로 구시렁대고 있을 때 문밖에서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아가씨, 오셀로 공자님이세요.”

* * *

나는 잠든 척 눈을 감고 다른 쪽을 보고 누워 있었다.

오셀로가 들어오는 인기척이 들렸다.

‘지금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오셀로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잠시 뒤 오셀로의 목소리가 들렸다.

“샤샤.”

조금 잠긴 듯한, 낮은 목소리였다.

“…….”

그리고 한참 뒤 오셀로가 말을 이었다.

“너도 알다시피 나는 성격이 좋지 않아. 태어나서부터 비교당하며 자라다 보니,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에 대해서는 집착이 강하지.”

오셀로는 내게 이렇게 속에 있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잠시 뒤 오셀로가 내 침대에 앉는 것이 느껴졌다.

오셀로의 시선이 더욱 가까이 와닿았다.

“사과는 하지 않을게. 그 기분 나쁜 녀석이랑 붙어 다니는 걸 보면 나는 또 짜증을 참지 못할 거라서.”

오셀로다운 언어였다.

당당하고 오만하고 자기중심적이며, 심각하게 무언가가 결핍되어 있는 화법.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적나라할 만큼 인간적이기도 하다.

“그래도 샤샤.”

꼭 묶인 내 머리 끈이 툭 끊어졌다.

오셀로의 이능이었다.

머리카락을 꼭 묶은 채 누웠었기에 두피가 덜 당기며 편안해지는 느낌은 있었지만, 서늘한 기운이 목과 머리를 타고 온몸으로 흘러드는 느낌이었다.

속삭이는 듯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네가 보고 싶었어.”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