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 가문의 병약한 막내님 89화
[‘개 관리인’ 엔딩의 맛보기 영상입니다.]
[※인과율 100%를 달성하면 스토리 진행과 상관없이 랜덤 특전 엔딩을 맞이합니다.]
[사용자의 정신적 충격을 고려하여 전체 연령가로 재편집되었으며, 실제 특전 엔딩은 맛보기 영상과 다소 상이할 수 있습니다.]
나는 눈을 떴다.
내 방이었지만 방의 분위기는 매우 스산했다.
창밖은 검은 밤을 배경으로 눈발이 날리고 있었으며, 책상과 집기에는 먼지가 쌓여 있었다.
마치 오랫동안 버려진 방처럼 말이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서 거울을 보았다.
거울 속 내 모습은 성인으로 보이는 나이이다.
갇혀 있나? 생각하는 순간 내 손은 문을 열었다.
익숙한 복도가 나타났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정돈된 복도가 아니었다.
여기저기 깨진 조각들과 피가 굳은 자국들, 난장판이다.
마음만 같아서는 눈을 감고 싶었지만, 내 의지대로 몸을 조종할 수 없는 처지라 나는 마음을 졸인 채 시선을 따라갔다.
잠시 후 나는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복도를 걸어 끝까지 갔다.
거긴 창고로 쓰이는 방인데…… 생각했을 때 나는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사람을 본 순간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
형형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넓은 어깨와 탄탄한 몸을 드러내고 있었는데, 상체는 벗은 채였다.
그의 목은 줄에 매여 있었으며…… 머리는 분홍색이었다.
그리고 손도 뒤로 묶인 채였다. 자유로운 것은 두 다리뿐.
‘오셀로…….’
짙은 녹안에는 선연한 광기가 가득 차 있었다.
오셀로가 나를 향해 움직이려 했지만, 목에 있는 줄 가운데의 보석이 깜빡이며 오셀로를 결박했다.
아마 이능을 구속하는 효과가 있는 물건 같았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지. 내가 이렇게 묶어 둔 건가?’
나는 오셀로에게 아주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불렀다.
“오셀로.”
“……샤샤.”
짐승처럼 묶인 채라 말을 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오셀로의 입술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샤샤.”
그가 재차 내 이름을 불렀다.
오셀로는 내게 얼굴을 가까이 하려 했지만 나는 아슬아슬하게 닿지 않을 정도의 거리에서 발을 멈추었다.
“샤샤.”
오셀로의 입에서 거칠게 내 이름이 튀어나왔다.
나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는 계속 내 이름만 반복하고 있었다.
그의 눈이 나를 향해 무언가를 갈망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안 돼. 풀어 주면 다 죽일 거잖아.”
“샤샤.”
“로웬과 로빈, 마야를 죽였듯 남은 사람들을 전부…….”
오셀로는 또 내 이름을 불렀다.
“샤샤.”
마치 ‘샤샤’라는 이름밖에 알지 못하는 듯.
그의 벗은 상체는 생채기투성이였다.
나는 조금 무릎을 숙여 창고방의 바닥에 있던 물병을 들었다.
그리고 그 끝을 오셀로에게 내밀었다.
“이런 것밖에 해 줄 수 없어, 이제.”
으르렁, 오셀로는 사납게 인상을 찌푸리더니 얼굴로 물병을 쳐 내어 떨어뜨렸다.
이내 그가 나를 향해 다시 갈망하는 눈빛을 보냈다.
나는 허리를 숙여 다시 오른손으로 물병을 들었다.
그리고 내 왼손을 오목하게 만들어 물을 쏟았다.
그리고 그 손을 오셀로에게 내밀었다.
물병을 거칠게 밀어 떨어뜨렸던 오셀로는 내 왼손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것을 기울여 주자 마시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갈증에 시달렸던 것처럼 말이다.
아찔하게 높은 콧날과 짙은 눈동자. 얼굴만 보아서는 귀공자처럼 잘생긴 모습이지만 피폐함이 넘쳐흐른다.
물을 마신 그가 젖은 입술로 짖듯 말했다.
갈증이 풀렸는지 아까보다는 덜 신경질적인 얼굴로 말이다.
“샤샤.”
그의 녹안은 공허할 뿐, 어떤 희망의 빛도 보이지 않는다.
어쩌다 이런 신세가 되어 버린 걸까.
속에서 뭔가 끓어오르는 느낌.
“시X.”
속에서 솟아오르는 거친 욕지거리가 입 밖으로 배출됨과 함께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도 모르게 숨을 가쁘게 내쉬고 있었다.
창밖은 밝은 아침이었고, 심장은 아직도 쿵쿵 뛰고 있었다.
언제 잠들었지? 하며 나는 두 손을 모아 얼굴을 가렸다.
아직도 오셀로의 눈빛이 생생했다.
* * *
― 사냥 도구 좀 챙겨 나와 줘.
편한 옷을 차려입은 나는 로빈을 기다렸다.
마야는 양 갈래로 머리를 땋아 양처럼 말아 주었다.
“로빈은 유능한 기사이기는 하지만 사냥은 좀 걱정되어요…….”
마야는 영 걱정이 되는 눈치였다.
“윈체스터에게는 당연한 일이야.”
나는 걱정 말라는 듯 그녀에게 말했다.
“게다가 토끼 사냥인걸.”
윈체스터의 귀족들은 더 어린 나이에도 사냥에 나간다.
식사 매너를 배우는 것처럼, 어릴 때부터 사냥하는 것은 당연한 일.
여자들은 조금 늦다 하더라도 일곱 살인데, 나는 여덟 살이다.
‘그리고 기분 전환 좀 하고 싶어.’
에반이 떠나고 오셀로가 돌아온 지 일주일이 흘렀다.
그리고 제법 삶이 평온하다 여기고 있을 때 찾아온 꿈.
꿈은 상처에 소금을 뿌리듯 나를 긴장하게 했다.
아니, 왜 죄다 피폐의 극을 달리는 거냐고.
윈체스터로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거대한 피폐 엔딩의 잔상에 뒤덮였다.
‘샤샤’라는 말밖에 하지 못하는 백치가 된 오셀로라니.
‘다 페르세토스의 부활에 수반된 결과일 뿐이야.’
아직 미래는 바뀌지 않았다.
페르세토스의 부활은 예견되어 있으니까.
그러니까 그 엔딩은 페르세토스의 멸망과 연관이 있다.
만약 페르세토스를 일찍 처리하게 된다면, 엔딩의 방향도 분명 바뀔 것이다.
설령 인과율이 100퍼센트를 돌파한다고 해도 말이다.
“샤샤.”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어떤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나는 흠칫 문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사냥 도구를 든 진이 서 있었다.
“오라버니?”
“로빈은 사정이 생겼어.”
“아…….”
“그러니 사냥은 나와 함께하자.”
* * *
우리는 저택과 가까운 숲 안으로 들어갔다.
마야가 따르겠다고 했지만 진의 서늘한 눈빛에 물러섰다.
뭐 진이 나를 해칠 리가 없으니, 쉽게 포기하기도 했고 말이다.
나는 조금 어설픈 자세로 말을 타고 있었다.
기사가 올려 주지 않았으면 절대 혼자서는 말을 타지 못할 키이긴 하다.
말에는 활과 화살 통이 달려 있었다.
내가 들기에는 무거우니까 말이다.
말을 탄 채 내 옆에서 동행하던 진이 물었다.
“왜 갑자기 사냥을 할 생각이 들었지?”
“생존 기술은 많이 알수록 좋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이제 무력한 아기는 아니었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세상을 살아나갈 수 있을 정도로 강하지는 않았다.
에반은 기다리라는 말만 남긴 채 떠났다.
뭔가를 할 생각인 것 같은데, 그동안 나도 열심히 성장하고 있어야겠지.
“나와 오셀로가 미덥지 않은 건가.”
그 말에 나는 강하게 부정했다.
“그럴 리가요. 하지만 준비는 많이 할수록 좋으니…….”
바히모스, 라비아탄, 다크 이글은 죽었지만 진에게도, 오셀로에게도 동기를 부여했다.
더 강해져야겠다는 강한 동기.
그리고 한계를 극복해야겠다는 동기 말이다.
나의 이능을 통해 더 강해진 힘을 맛보았기도 하고.
“오빠들을 믿고 있지만 적들이 어떤 틈을 노릴지는 모르는 거니까요.”
내 대답이 만족 범위 내에 있는지, 진의 입술이 비틀렸다.
잠시 후 그는 말을 멈추었다.
“네가 생존 기술을 쓸 날은 오지 않겠지만.”
활을 들어 화살을 겨누었다.
화살촉의 방향은 하늘을 향해 있었다.
그의 목표물이 무엇인지 보려고 했지만 태양이 바로 앞에 있어 눈이 부셔서 볼 수 없었다.
“가르쳐 줄 수는 있어.”
이내 화살이 하늘을 향해 날아갔다.
푸드덕, 하고 하늘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었다.
검은 새였다. 아까 한 줄로 날고 있던 새의 무리들 중 하나이다.
날아가는 새를 관통하다니…… 대단한 기술이다.
“적을 만나면 이렇게 하는 거야.”
진을 보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활시위를 겨누어 보았다.
물론 내 화살의 방향은 하늘이 아니었다.
가까운 나무 옆쪽, 내가 무언가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활이 아이용이라서 작은 사이즈이기는 했지만, 상당히 무거워 조준이 어려웠다.
사냥감이 저기에 있는데…….
“어깨는 똑바로.”
나는 진의 어깨를 곁눈질로 보았다.
“표적물의 이동 방향을 살피고.”
간신히 화살촉의 끝이 토끼를 향했다.
나는 활시위를 끌어당겼다.
“조금 더 당겨.”
이내 충분히 팽팽해질 만큼 당긴 뒤 놓을 타이밍일 때, 나는 흠칫했다.
“됐어, 이제 쏴.”
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나는 화살을 쏘지 않은 채 내렸다.
“…….”
의아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진에게 조금 굳은 얼굴로 말했다.
“오라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