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 가문의 병약한 막내님 91화
* * *
“세리안 숲의 동물 사체들을 모두 정리했습니다.”
잠시 후, 집무실에 질린 듯한 표정의 로웬이 들어왔다.
“진 공자님의 흑염은 날로 범위가 넓어져서…… 공작 전하를 모시는 저조차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입니다.”
샤샤는 모르고 있을 것이다.
윈체스터 저택 근방의 작은 숲, 포식자라 불릴 만한 생명체들이 오늘 몰살당했다는 것을.
진은 실수를 가장해 로빈의 다리를 접질리게 한 뒤 세리안 숲에 갔다.
그리고 제 여동생에게 혹시나 위협이 될 만한 것들을 모두 쓸어버렸다.
강력한 파괴력의 흑염은 숨을 쉬는 대부분의 것들의 생명을 앗아 갔다.
살아남은 것은 부상을 입은 토끼 몇 마리뿐.
“윌너스에서 늑대를 데려와 풀어 놓아라.”
그렇지 않으면 생태계는 엉망이 될 것이다.
“존명.”
로웬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잠시 뒤 레카르도에게 물었다.
“아가씨께서는…….”
“영락없는 윈체스터이지.”
트리샤 퀠른이 받은 사명,
그리고 예언이 있었다.
검은 연못이 새벽을 끝낼 수 있다.
― 그 아이……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언젠가의 월례 회의 후 엘리시온이 물었다.
― 제가 아는 ‘윈체스터’들과는요. 조사를 해 보면 알겠지만요.
날카로운 이야기였다.
샤샤 윈체스터에게 윈체스터의 피가 섞이지 않았다면, 엘리시온은 이를 공론화할 수 있었다.
장차 있을 미래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는 샤샤를, 모두의 공유 자산으로 하는 것에 대해 말이다.
― 이에 대해 가주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돌아선 레카르도는 서늘한 눈빛으로 그에게 말했다.
― 샤샤는…… 내 딸이다.
금방이라도 제 심장을 관통할 듯 날카로운 형태로 살랑이는 흑염의 자태에 엘리시온은 입을 닫았다.
― 누군가 헛소리를 한다면, 그자의 혀를 끊어 놓아야겠지.
만약 샤샤 윈체스터에게 함부로 손을 댄다면,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레카르도의 의지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레카르도는 그날의 일을 생각하다가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 * *
[인물 열람]
[1. 레카르도 윈체스터
칭호: 흑염의 지배자
인과율: 27%]
[2. 진 윈체스터
인과율: 29%]
[3. 오셀로 윈체스터
인과율: 30%]
[4. 체노아 테일러스
칭호: 청명의 지배자
인과율: 해당 없음]
[5. 에반 테일러스
인과율: 28%]
[6. 페르메티스 윈체스터
칭호: 없음
인과율: 해당 없음]
[7. 헥토르 윈체스터
칭호: 흑염의 수호자
인과율: 해당 없음]
[8. 카실리온 아카다
칭호: 없음
인과율: 25%]
나는 간만에 인물 열람을 확인했다.
지금의 내 나이 여덟 살.
인과율은 오셀로가 가장 높았지만 아직 50퍼센트에는 이르지 못한다.
인과율이 100퍼센트가 되면 특전 엔딩과 같은 그다지 상상하고 싶지 않은 미래를 맞는다.
어쩌면 이 인과율은 페르세토스의 부활과 연관이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보았던 특전 엔딩은, 거의 페르세토스가 부활한 이후의 이야기 같으니까.
‘혹시 내가 페르세토스인 거 아니야?’
의심해 보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저승사자와 염라대왕이 아무리 개XX여도 그런 짓을 할 리가.
‘저 중에만 없었으면 좋겠다.’
인물 열람을 닫으며 생각했다.
페르세토스를 막는 방법은 그가 인간의 몸에서 부활하기 전 죽이는 것.
내가 아는 사람이 죽는 것은 싫다.
특히 가족들…… 레카르도와 진, 오셀로는 더더욱!
“아가씨, 약 드실 시간이에요.”
생각에 빠져 있는데 마야가 들어왔다.
‘이 말은 들을 때마다 기분이 이상하단 말이야.’
그녀가 들고 있는 쟁반 위에는 약이 든 컵이 있었다.
나는 약을 들고 한 번에 마셨다.
“으, 써.”
그리고 곧바로 차이베리 젤리를 먹었다.
약을 먹어도 생명력은 올라가지 않았지만 몸 컨디션에 영향을 주는 것은 맞기에 참고 먹고 있었다.
영양제라고 생각하고 말이다.
“첫 사냥은 어떠셨어요?”
“소질이 없는 것 같아.”
“뭐든 잘하기만 할 수는 없으니까요. 대신 아가씨께서는 엄청 똑똑하시니…….”
“진 오라버니는 똑똑한 데다가 사냥도 잘하지.”
내 비교에 마야는 풋 웃었다.
“질투하시는 거예요?”
“그럴 리가. 진 오라버니는 질투의 대상이 아니지. 그냥 그만큼 대단하다는 거야.”
메키우스의 열쇠니 뭐니를 뒤로하더라도 내 이능이 힘을 보완해 주는 역할이라 다행이다.
만약 강한 흑염이 발현하기라도 했으면, 사람들은 후계 경쟁 어쩌고 하면서 데드 플래그에 가까워질 말을 지껄였을 테니까.
하지만 적어도 내 이능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나를 진의 경쟁자로 보지 않는다.
“지금도 이렇게 훌륭하신데, 좀 더 자라시면 여기저기에서 혼인 요청이 올 것 같아요. 과연 공작 전하나 공자님들이 그런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으실지…….”
“뭐어? 마야, 여덟 살에 그런 말은 이르잖아.”
“그런가요. 제가 듣기론 벌써 여기저기에서 아가씨와 연을 만들고 싶어 한대요.”
팔불출 마야는 벌써 오버 삼매경이었다.
“몰라, 나 잘래.”
나는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었다.
마야가 미소 지으며 내 가슴을 토닥여 주었다.
* * *
“가주님…….”
새카만 밤, 윈체스터 공작저의 모두가 잠에 빠져 있었다.
숙소 건물의 뒤편 공터에 있는 로브를 입은 남자와 카실리온을 제외하고는.
엘리시온의 앞에 선 카실리온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엘리시온은 소녀처럼 아름다운 카실리온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그러자 카실리온이 고개를 들어 엘리시온을 보았다.
“그동안 잘 지냈느냐.”
“네, 이곳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듭니다.”
카실리온의 말에 엘리시온이 미소 지었다.
“네 마음에 들기는 용이 바늘을 통과하기보다 어려울 텐데, 의외로구나.”
“좋은 향기가 풍기는 곳이니까요.”
카실리온은 희대의 천재였다.
엘리시온마저 감히 미래를 예측하지 못할, 뛰어난 창의성과 능력을 겸비한…… 불세출의 아이.
“좋은 향기라…….”
엘리시온은 멀리 있는 저택 본관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뒤 카실리온에게 말했다.
“어쨌든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군.”
“…….”
“이제 슬슬 적응이 된 것 같으니 네게 임무를 주겠다.”
엘리시온의 서늘한 눈이 카실리온을 향해 있었다.
여덟 살의 카실리온은 눈썹을 꿈틀 움직이며 엘리시온을 올려다보았다.
“가주에게 임무를 부여받는 것은 아주 자랑스러운 일이지.”
카실리온은 볼에 붉은 기를 띤 채 밝게 미소 지었다.
“재료 언니와 친해지라는 임무이신가요?”
엘리시온은 카실리온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은 뒤, 다시 입을 열었다.
“샤샤 윈체스터와 친해지는 것 이상이 필요해.”
아직 어린아이였지만, 미리 공을 들여놓을 필요가 있었다.
어린아이일 때부터 베루스를 흔들어 놓았고, 지금은 더 큰 예언의 중심으로 주목받는 것을 보면 말이다.
특히 레카르도 윈체스터의 엄청난 총애.
“너를 믿고 의지하게 만들어라. 은근히 마음을 파고들어 제 가족들과 이간질하면 더욱 좋고.”
훌륭한 연구 대상이 아카다에게 호의적이라면 일이 쉽게 풀릴 것이다.
“그 애에 대한 정보가 있다면 내게 전하고, 아카다에 대해 흥미를 가지게 유도하라. 장차 제국의 경쟁 구도에서 아카다가 우위를…….”
“죄송하지만, 가주님.”
엘리시온의 형형한 눈빛이 카실리온에 닿았다.
카실리온은 무표정한 눈으로 엘리시온을 마주 보았다.
“저는 이곳에 위탁 교육을 받으러 왔을 뿐입니다. 샤샤 윈체스터는 제 친구이고요. 그러니 그 애에게 해를 끼치는 임무를 수행할 수는 없어요.”
엘리시온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카실리온, 네 성이 어디에서 왔다고 생각하느냐.”
“…….”
“이 위탁 교육은 아카다의 정규 교육에 부적응하는 너를 위해 내가 베푼 은혜이다. 가문에서 배척당할 네 녀석을 쓸모 있게 만들어 줬더니 거절하겠다는 거냐.”
엘리시온의 서늘한 목소리가 들렸다.
조용히 말을 듣고 있던 카실리온이 한참 뒤 입을 열었다.
“거짓말.”
“뭐?”
“가주님의 아이를 포함해, 저를 괴롭히는 그 애들을 제가 모두 죽여 버릴까 봐 걱정하셔서였잖아요.”
카실리온의 말에 엘리시온의 눈동자가 크게 일렁였다.
“그렇지 않나요?”
카실리온의 자줏빛 눈은 오히려 즐거운 기색을 띠고 있었다.
무향, 무취, 무색, 무미, 무형의 독. 아카다에서 평생을 연구한 자들도 제조하기 힘든 역작을 카실리온은 불과 일곱 살에 제조해 냈다.
그것은 카실리온이 나쁜 마음만 먹는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어쩌면…….”
엘리시온은 여장을 좋아하는 괴짜 어린애라 생각했던 카실리온에게 처음으로 섬뜩함을 느꼈다.
“가주님의 목숨도.”
“……!”
엘리시온의 얼굴이 굳었다.
“네가 감히.”
“저를 괴롭힘에서 구해 주려면, 저를 이곳으로 쫓아낼 것이 아니라 그 애들의 엉덩이를 차 주셨어야 해요. 그 애처럼…….”
카실리온의 자주색 눈동자에 해맑은 적의가 어려 있었다.
“그 애는 그랬거든요.”
엘리시온은 자신이 카실리온에 대해 잘못 판단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멋대로 쥐락펴락할 수 있기는커녕, 이대로라면…….
“제 친구 건드리지 마세요, 가주님.”
윈체스터의 무기고에서 빛나는 폭탄이 될지도 모른다.
이 또한 샤샤 윈체스터가 일으킨 변화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