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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 가문의 병약한 막내님-95화 (95/124)

악당 가문의 병약한 막내님 95화

카실리온은 첫 번째 결계석 근처에 가서 결계 해독을 시작했다.

결계는 이능이 얽힌 복잡한 수식들로 만들어진다.

마치 암호 다발처럼, 보통의 사람은 풀 수가 없다.

아카다의 주인인 엘리시온이 와도 일곱 개나 되는 결계를 푸는 것은 힘들 것이다.

나는 수학 전공은 아니지만, 대충 수식 구조를 보았을 때 고등학생 미적분 정도의 난이도보다는 수백 배 어려운 것 같았다.

그런데 그걸 고작 여덟 살의 카실리온이 한다고?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믿을 수가 없다.

“다 했어. 헤에.”

카실리온의 말이 들리자마자 일곱 결계 중 하나의 빛이 끊어지는 것이 보였다.

경악할 만한 사실은 여기엔 펜이나 종이는 없다는 것이다.

암산만으로 결계석의 수식을 조정해서 풀어 버린 것이다.

“네 친구라고 했지.”

뒤에서 오셀로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 비슷한 개념이야.”

“어벙하게 생겨서 허풍인 줄 알았는데, 어떤 분야에서는 진보다 똑똑할지도 모르겠군.”

“응.”

진은 어떤 면으로 보아도 영재이다.

“아마…… 저쪽으로는 따라갈 사람이 없을 거야.”

이능이면 이능, 판단력이면 판단력, 계산 능력, 사람을 통솔하는 사회적 기술까지 나이에 비해 현저하게 높다.

물론 반사회적인 성향이기는 해도, 그것은 악당 가문의 후계자로서의 그의 이능과 강함을 더욱 돋보이게 할 뿐이다.

카실리온은 조금 다르다.

‘정상’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많이 특이한 점이 보인다.

더 커 봐야 알겠지만 원작을 보았을 때, 카실리온의 사회성은 절대 정상 범주에 들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두뇌 능력이 미쳤다. 모든 스텟을 몰빵하기라도 한 것처럼 천재적인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이것도 완료.”

카실리온의 눈이 신난 듯 번득이고 있었다.

“10분 걸렸지?”

“응.”

나는 오셀로에게, 카실리온이 결계 하나 푸는 데 걸린 시간을 물었다.

오셀로 역시 눈썹을 굳힌 채 괴물 보는 듯한 눈으로 카실리온을 보고 있었다.

그래, 저런 천재이니 나중에 엘릭서도 개발하는 것이겠지.

카실리온의 표정은 어려운 수식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베타 항을, 이렇게 대입해서 치환하면…….”

카실리온은 중얼거리며 세 번째 결계를 풀고 있었다.

이렇게 쉽게 풀라고 걸어 둔 결계가 아닐 텐데 말이다.

“세 번째 결계도 풀었어, 샤샤.”

카실리온은 기쁜 듯 눈을 찡긋했다.

나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카실리온을 응원했다.

“어서 다른 결계들도 풀어.”

“응. 그런데 샤샤, 여기에 뭐가 있는 거야?”

네 번째 결계로 다가가는 카실리온의 말에 나는 놀라 카실리온에게 물었다.

“정말, 여기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고 나만 따라온 거야?”

최소한 뭐가 있는지 예측하기라도 했을 줄 알았다.

오셀로도 카실리온이 나만 따라왔다는 것을 처음에는 믿지 않는 눈치였고.

“응, 샤샤의 표정이 들떠 보여서.”

“아…… 그래도 그렇게 몰래 따라오면 안 돼.”

“왜에?”

“몰래 따라오면 기분 나쁘잖아. 카실리온도 누군가 몰래 따라오면…….”

“누군가 나를 몰래 따라올 일 없어. 이미 다들 기분 나빠 하거든.”

카시리온은 아무렇지도 않은 평이한 어조로 내게 대답했다.

나는 멈칫했고, 오셀로는 눈썹을 꿈틀 움직였다.

휙 돌아서는 오셀로의 목소리가 들렸다.

“기분 나쁜 녀석.”

작은 목소리이지만 카실리온이 들었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카실리온은 네 번째 결제에 조금 고심하기는 했지만 다시 해제를 시작했다.

* * *

“풀었습니다!”

카실리온의 목소리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일곱 번째 결계가 사라지자, 오르테안을 감싼 마지막 빛이 사그라졌다.

정말 일곱 개의 결계를 혼자서 다 풀어낸 것이다.

천재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한 번 더 감탄한 순간이었다.

“잘했어, 카실리온.”

나는 기쁜 마음에 카실리온을 꼭 껴안았다.

“정말 번거로웠지만, 샤샤를 위해 해냈어.”

그리고 카실리온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렸다.

지금만큼은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

“그렇다고 냄새는 맡지 말고.”

“으응…….”

카실리온이 눈치를 보며 냄새 맡는 것을 멈추었다.

오셀로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놀랄 만큼 음침하지만…… 쓸모는 있군. 네 친구 비스무리한 녀석.”

나는 카실리온을 놓고, 오르테니안 앞으로 다가갔다.

공중에 떠 있는 용의 알은 짙은 에너지 파장을 내뿜고 있었다.

마치 뜨거운 용암을 앞에 둔 것처럼, 그것을 함부로 만지면 안 된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면서.

쿵―

그리고 어느 순간 오르테니안이 박동하듯 울렸다.

“오셀로, 방금 들었…….”

나는 오셀로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내 시야에 검은 무언가가 가득 들어찼다.

귓가에 선명한 목소리가 들렸다.

* * *

“뭐지?”

새카맣다.

옆도, 위도, 아래도, 온통 검을 뿐이다.

여기가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실재하는 공간인지, 혹은 무의식의 공간인지조차.

“가람아, 내 목소리 들려?”

남자와 여자의 목소리가 뒤섞인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목소리는 나를 부르는 것일까.

분명 내 이름이다. 이곳에 오기 전, 한국에서의 내 이름.

“이제 일어나야지. 응?”

이내 선명한 목소리가 다시 한번 들렸다.

그 사람은 나를 부르고 있었다.

“사고 나고 병원에서 지낸 지 벌써 한 달이야. 이제 정신 차려서…….”

목소리가 문득 엄마의 목소리로 바뀌었다.

어둠은 너무 깊어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가족에게 돌아와야지.”

이내 그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만히 목소리를 듣고 있던 나는 내 손을 보았다.

아까 없었던 검은 칼이 내 손에 들려 있었다.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이 어둠에서 깨어나는 방법은 하나야.”

어둠은 너무 깊어 눈을 뜬 것과 감은 것의 차이가 없다.

“찔러.”

나는 단검을 잡은 채 눈을 감았다.

“현실에서 죽어서 꿈속으로 간 것처럼, 꿈속에서 죽으면 현실로 돌아갈 수 있다.”

어둠에 익숙한 오빠들이라면 몰라도, 나는 앞을 볼 수 없었다.

보이지 않을 때는.

― 마음으로 보는 거다.

헥토르 할아버지가 언젠가 해 주었던 말이 떠올랐다.

나는 정신을 집중했다.

“모두가 기다리고 있어. 엄마도…… 네가 보고 싶어. 그러니 제발 눈을 떠.”

그리고 다시 귀를 통해 울리는 목소리.

잠자코 듣고 있던 나는 서서히 눈을 떴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거짓말.”

고요하고도 진득한 정적이 흘렀다.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당신은 내 엄마가 아니야.”

나를 향해 뜬 커다란 하나의 눈을.

이내 물이 끓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잠잠했던 대기가 요동치고 있었다.

“우리 엄마는 그런 말투 안 쓰거든.”

이와 같은 기운을 느껴 본 적 있다.

헥토르 할아버지가 준 에시르의 금공에서 말이다.

현실과 과거가 뒤섞인 듯한 불편감과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

나는 이 진실과 거짓을 구분할 줄 알았다.

“게다가 우리 가족은 로또 당첨되어서 잘 지내고 있다고.”

이내 나는 기도하듯 내 두 손을 모았다.

그 순간 내 몸 안에서 거대한 힘이 느껴졌다.

[이능을 발현합니다.]

그리고 내 몸이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나의 이능은 누군가의 이능을 증폭시킨다.

강력한 파괴의 힘은 더 파괴적으로, 살상의 힘은 더 가혹할 만큼 강력하게.

지금 이 순간엔 내 안의 빛을 증폭시킨다.

“이제 여기가 내 집이야!”

살상력과 파괴력은 없어도 된다.

이내 내 몸에서 터져 나온 빛은 시야의 검은 장막을 거두었다.

[오르테니안의 ‘진실의 시험’을 통과하였습니다.]

[‘메키우스의 열쇠’에 감응한 오르테니안이 활성화합니다.]

그리고 나는 검은 구체로부터 튕겨 나왔다.

당연히 바닥에 내동댕이쳐질 거라 생각했는데, 충격은 없었다.

나는 나를 안은 누군가를 돌아보다 흠칫했다.

“아…… 버지……?”

레카르도가 눈썹을 굳힌 채 나를 안고 있었다.

문득 책에서 보았던 문장이 떠올랐다.

― 메키우스의 힘이 오르테니안의 껍데기를 깰 것이며, 합당한 강자가 그 과실을 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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