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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 가문의 병약한 막내님-96화 (96/124)

악당 가문의 병약한 막내님 96화

“간밤에 꿈자리가 사나워서 와 봤더니, 역시나군.”

레카르도의 말에 나는 흠칫했다.

사실 내가 로웬에게 오르테니안에 대해 물었다는 사실이 레카르도에게 전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은 했었다.

하지만 오르테니안 말고도 다른 것에 대해서도 주변에 묻고 다니는 경우가 많아서 크게 의미는 두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레서 여기 올 거라는 예상은 하지 못했는데.

‘꿈이라면…… 또 어머니의 꿈인가.’

이능 발현 전 설산으로 이동되었을 때도, 레카르도는 꿈을 통해 내가 있는 위치를 알아챘다고 한다.

당황했지만 내 머릿속은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래…… 오르테니안의 정당한 주인이 레카르도라면.’

윈체스터의 순혈과 흑염의 힘을 가진 건 진이나 오셀로도 마찬가지지만, ‘위대한 그림자의 왕’이라는 표현은 레카르도를 암시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오르테니안의 정당한 주인이 아직 오르테니안을 취하지 못한 이유는, 활성화의 조건을 갖추지 못해서일 터.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운명…… 아니, 시스템이 모두를 인도한 것일지도.’

슥―

레카르도가 검을 뽑는 모습이 보였다.

“뒤로 물러서라.”

서늘한 목소리에 심장이 뛰었다.

레카르도의 시선은 오로지 오르테니안을 향해 있었다.

쿵―

오르테니안이 박동하고 있었다.

쿵, 쿵, 쿵, 쿵.

심장 소리처럼 거대한 고동 소리가 들렸다.

레카르도의 검에 새카만 흑염이 일렁였다.

“활성화된 오르테니안의 비활성화는 불가하다. 흡수하는 방법밖에 없지.”

“아버지…….”

“흡수에 실패하면 근처가 전부 증발할 것이다. 지금, 반대 방향으로 뛰어라.”

그는 검을 고쳐 잡으며 오르테니안을 응시했다.

레카르도의 주변에는 엄청난 기세의 흑염이 흐르고 있었지만, 오르테니안도 맹렬히 박동하고 있었다.

그 순간 흑탑에서 본 책의 문장이 다시 떠올랐다.

오르테니안의 힘을 귀속하는 조건은 어쩌면, 이 순간을 예견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

나는 레카르도의 망토를 잡았다.

레카르도가 서늘한 눈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양심이 쿡 찔렸다.

“벌은 집에 가서 받을게요, 오늘은 제 이능을…….”

오르테니안의 힘은 어찌나 막강한지, 레카르도의 저세상급의 흑염을 꾸역꾸역 막아 내고 있었다.

‘믿어 보겠어, 시스템. 이능을 발현했던 그때처럼.’

결국 승기는, 저 단단한 껍질을 깨어야 확실히 잡을 수 있는 것.

“제 이능을 사용해 주세요.”

내 말에 레카르도의 눈빛이 잠시 일렁였다.

“너.”

“부탁이에요, 제가 활성화시킨 것이니까.”

결계를 다 풀고 오르테니안의 의식을 끌어내었다.

“도움이 되게 해 주세요. 어차피 지금 도망쳐도 늦어요.”

결연한 의지의 내 말에 레카르도는 눈썹을 굳히며 입술을 달싹였다.

“……샤샤.”

서늘한 목소리였지만, 더 반항할 시간이 없었다.

나는 더 망설이지 않고 이능을 사용했다.

내 몸에서 레카르도에게로 기운이 흘러들었다.

오셀로를 이능으로 강화했을 때가 떠오른다.

단번에 몇 단계는 업그레이드된 듯한 막강한 이능을 보였었지.

그런데 그 대상이, 내 이능으로 업그레이드된 오셀로보다 강력한 레카르도라면…….

오늘 흑염의 새로운 역사를 볼 수 있을까?

두근―

이능의 발현이 끝나고 심장이 크게 박동했다.

두근―

나는 내 가슴을 잡았다.

단순히 생명력이 빠져나가서는 아니다.

뭔가 엄청난 것이 몰려오는 듯, 심장이 뛰고 있었다.

이런 기분을 느끼는 것은 나뿐만이 아닌 것 같다.

카실리온이 창백하게 얼어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아버…… 지.”

오셀로의 마른 입술에서 낮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순간, 하늘을 향해 엄청난 기운의 흑염이 솟구쳤다.

“……!!”

나는 놀라서, 레카르도에게서 시작해 하늘로 솟구치는 흑염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흑색 용과도 같았다.

승천하듯 하늘을 꿰뚫을 기세에 곧 하늘이 온통 새카매졌다.

나는 레카르도를 보았다.

그의 주변에 엄청난 기세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서늘하고 짙은 녹안에는 스파크가 튀듯 붉은 기가 보였다.

“무슨…… 일이…….”

떠오르던 해는 자취를 감추었다.

마치 다시 밤이 되어 버린 것처럼 하늘이 새카맸다.

흑염이 밤을 불러올 수 있는 것인가.

본능적인 두려움에 솜털이 빳빳하게 서는 느낌이었다.

“……!”

하늘을 보던 카실리온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나는 한 템포 늦게 하늘을 보았다.

그리고 그때는 이미 뇌전과 섞인 엄청난 기운의 흑염이 땅으로 내리꽂히기 시작한 때였다.

그것은 정확히 오르테니안을 향했다.

쿠과과과광―

지진이 일어난 듯 대지가 흔들렸다.

폭음과 진동의 강도가 너무도 강해 서 있기 힘들 정도였다.

내가 비틀대자 오셀로가 나를 잡아 주었다.

수십 초간 지속되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폭격은 주변을 뿌옇게 만들었다.

이런 건 들어 본 적도, 책에서 본 적도 없다.

파스슥, 레카르도가 들고 있는 검에서 붉은 스파크가 연신 일어나고 있었다.

흙먼지가 조금 가실 무렵 나는 볼 수 있었다.

알이 쪼개지듯, 단단한 껍질이 쪼개지며 나타난, 완연히 홀로 빛나고 있는…… 검은 탁구공 모양의 오르테니안의 핵을 말이다.

메키우스의 유지를 이어받은 흑룡이 남긴 가보.

그것을 응시하던 레카르도는 내게 시선을 옮겼다.

나는 레카르도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

레카르도의 눈썹이 꿈틀하더니, 입술 끝이 비틀렸다.

“오늘부터.”

레카르도의 입술이 달싹였다.

“근신 석 달이다, 샤샤.”

레카르도의 말에 나는 흠칫했다.

아……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레카르도는 오르테니안의 핵에 다가가 검으로 그것을 찔렀다.

찌르자마자 다시 진동이 느껴졌다.

하지만 오르테니안의 곁에서 위험하게 지직대던 스파크가 레카르도의 검에 뭉치기 시작하며, 성공의 기미를 알렸다.

진정한 세계관 최강자 등장인가.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내 아빠라고 해도, 엄연한 악당가의 공작님인데 말이다.

가령 오르테니안에서 얻은 힘을 잘못 쓰기라도 한다면…… 제국이 반으로 쪼개질 것이다.

지금도 성 하나 정도는 혼자만의 힘으로 초토화할 수 있는 레카르도이니 말이다.

검을 통해 레카르도에게 강한 흑염의 기운이 몰아쳤다.

점차 그 파동은 심해졌고, 폭풍이 닥치듯 강한 바람이 불었다.

아까 오르테니안을 공격했던 것만큼이나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오르테니안은 수명을 다했다는 듯 검을 통해 레카르도의 몸으로 흡수되어 가고 있었다.

레카르도의 망토가 펄럭이고, 그의 눈동자에는 붉은 기가 번뜩였다.

잠시 후 흡수가 끝난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

레카르도는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뒤늦게 달려온 로웬이 헥헥댔다.

“공작 전하, 오르테니안은…….”

하지만 레카르도를 본 로웬은 말을 잇지 못했다.

원래도 차고 넘치는 레카르도의 존재감은 지금 이 순간 완전히 달라졌으니 말이다.

오랜 세월 동안 가보로 이어지던 오르테니안의 에너지는 필시 레카르도가 원래 가지고 있는 힘 이상이었을 것이다.

“……오르테니안을 흡수하셨군요. 세상에…….”

로웬의 목소리가 들렸다.

“윈체스터 역사상 이런 일이 생길 줄은…….”

이내 로웬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경하드립니다, 공작 전하.”

그리고 복덩이라도 바라보듯 나를 응시했다.

그러잖아도 강한 레카르도는 이제 먼치킨이다.

‘그래도…… 나, 역시 사고 친 거겠지?’

오르테니안의 흡수를 마친 레카르도는 발을 옮겼다.

그리고 이내 나를 돌아보았다.

‘와…… 이 기운, 뭐야.’

레카르도가 앞에 서자 나는 더욱 압도당했다.

내 버프 따위는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그의 기운이 어마어마했다.

이 과정을 보지 않았더라면, 같은 레카르도인가 의심했을 정도로 그 크기가 다르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레카르도를 올려다보았다.

“더욱 강해지신 거, 축하드려요!”

당황한 나는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무서워, 저리 가…….

“…….”

그러나 레카르도는 차가운 손으로 내 턱을 잡았다.

감싸는 것이 아닌, 얼굴을 보기 위한 투박한 움직임이었다.

절로 얼굴을 치켜든 나는 레카르도의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흠잡을 데 없이 잘생긴 얼굴, 그러나 꿈에 나오는 게 두려울 만큼 무서운 눈빛.

‘근신으로 끝내는 거 맞겠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겸연쩍고 어색하게 살짝 미소 짓는 거.

“……다친 곳은 없는 것 같군.”

잠시 후 나온 말은 의외라서 나는 손을 움찔했다.

“네, 죄송해요. 멋대로 움직여서. 그냥 꼭 이걸 해야겠다는…… 저도 꿈자리가 사나웠다고 해야 할까…….”

레카르도의 눈동자가 서늘하게 일렁였다.

“아버지께서 와 주셔서 참으로 다행…….”

이내 그가 붉은 입술을 달싹였다.

“머릿속에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레카르도의 말에 흠칫 놀랐다.

목소리가…… 들린다고?

“흡수한 오르테니안의 자아가 귀찮게 떠드는군.”

쿵, 쿵, 심장이 뛰었다.

“아까 네 기억을 흡수했다면서.”

레카르도의 눈빛은 날카롭게 내 속을 꿰뚫는 것 같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레카르도를 올려다볼 뿐.

이내 그의 입술이 비틀렸다.

그러더니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가슴에 뭔가 덜컹 내려앉는 소리가 들렸다.

레카르도는 내 턱을 잡은 손을 놓았다.

그리고 나를 두고 발걸음을 옮겼다.

* * *

[오르테니안의 봉인이 해제되었습니다.]

[퀘스트 보상 : 500루비, 위대한 업적]

[업적 보상으로 ‘직업’이 업그레이드됩니다.]

[업적 보상으로 모든 능력치가 5만큼 오릅니다.]

[이름 : 샤샤 윈체스터(LV.8)]

[직업 : 중급 구원자]

[특성 : 메키우스의 열쇠]

[능력치: 체력 38 / 근력 30 / 이능 20 / 지능 51 / 생명력 51]

[스킬 : 검은 지배(LV.5/SS), 피해 반사(LV.3/A)]

[업적 보상으로 ‘조합’ 기능이 해제됩니다.]

저택으로 돌아가는 길, 검은 시야에 푸른 상태창만이 줄줄이 떴다.

‘위대한 업적’답게 보상이 컸다.

체력과 근력이 5씩 오르니 걷는 게 훨씬 편해졌다.

게다가 ‘조합’ 기능 해제라. 유용한 기능이려나.

“너무 좌절하지 마, 근신 기간 동안 종종 놀러 갈 테니.”

오셀로는 입술을 비틀며 나를 놀리려 말을 걸었다.

“네가 그리워할 바깥 이야기를 해 줄게.”

“아마 오빠도 근신일걸?”

“뭐?”

“카실리온, 어떻게 생각해? 우린 다 공범이잖아.”

카실리온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근신 명령에 오셀로 공자님도 포함된다는 것이 논리적인 추론입니다.”

“뭐?”

오셀로가 사납게 노려보자 카실리온이 눈을 피했다.

“카실리온 째려봐 봤자 변하는 건 없어.”

“샤샤, 네 근신이랬어. 내 근신이라는 말은 없었다고.”

“불행히도…….”

우리의 앞에 있던 로웬이 슬쩍 돌아보며 끼어들었다.

“공자님도 포함이십니다.”

오셀로의 표정이 폭격 맞은 듯 구겨졌다.

“제기랄.”

아무리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 사회적 눈치가 없어도 그렇지, 둘이 같이 와 놓고 나만 근신을 받는 줄 알았던 거야? 어이가 없다.

“유감이야, 오셀로.”

내 말에 오셀로가 눈썹을 찡그렸다.

“너 때문이야, 꼬맹아.”

나는 흥, 하고 오셀로의 말을 무시했다.

찔리지 않는다면 거짓이지만 나와 같이 온 것은 오셀로의 선택이었다.

이내 오셀로가 헤드락을 걸듯 내 목에 팔을 걸었다.

우우, 무겁다.

“어떻게 책임질 거야, 이 빚을. 응?”

협박하는 듯한 오셀로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비틀거리면서도 열심히 걸었다.

상대해 주지 않으면 곧 잠잠해지겠지.

“그래, 어차피 혼자 근신하는 것도 아닌데…….”

오셀로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내 귓가에 조용히 속삭이듯 말했다.

“세 달 동안 너만 괴롭힐 거야. 이렇게 붙어서.”

“알면서도 재미있을 것 같아서 따라왔으면서.”

말장난을 나누면서도 내 마음속에는 찝찝한 부분이 영 사라지지 않았다.

오르테니안이 내 기억을 읽었다고 했었지.

설마, 전생의 기억까지 레카르도에게 전해 주는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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