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 가문의 병약한 막내님 98화
[조합]
드디어 이 메뉴를 오픈해 볼 때였다.
무슨 기능일까 조금 설렜다.
“오오?”
‘조합’을 열자 고대 문자가 새겨진 커다란 원형 돌이 나타났다.
그것의 네 귀퉁이에는 황금 접시가 올려져 있었다.
[다양한 기능을 가진 물건을 조합할 수 있습니다.]
강화 비슷한 건가.
나는 시험 삼아 상점에서 산 5루비짜리 녹색 하급 포션 두 개를 올렸다.
그리고 붉은 버튼을 바라보자 조합이 시작되었다.
[5루비를 소모합니다.]
원형 돌이 빛나더니 잠시 뒤 가운데에 푸른빛 포션이 있었다.
“오, 중급 포션.”
중급 포션은 15루비.
그러니까 조합비까지 하면 조합을 통해 얻는 이득은 없었다.
어차피 하급 포션 두 개를 먹은 것과 중급 포션 하나의 효능이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조합’ 기능은 어째서 있는 것일까.
아마 두 개의 물건을 조합했을 때 효과가 극대화되는 물건이 있을 것이다.
포션보다는 기능이 좋은 물건으로 시험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신수의 정수와, 흑룡의 뿔에서 추출한 알약을 올렸다.
흑룡의 뿔은 생명력 증가 효과가 있었고, 신수의 정수도 생명력 10 증가라는 효능이 있다.
‘이건 조합비가 30루비네.’
잠시 후 원형판이 밝게 빛이 났다.
그리고 그 가운데, 영롱하게 빛나는 알약 하나가 놓여 있었다.
[용수의 환]
조합한 물품이라 그런지 능력치가 떠 있었다.
‘오! 생명력 40 증가! 대박!’
거의 죽기 직전의 상태에서도 용수의 환 하나면 금방 정상 생명력으로 회복되는 것이다.
귀한 물건끼리 조합해서 그런지 완성물이 좋았다.
‘그렇다면, 하나 더…….’
나는 조합한 용수의 환에 신수의 정수 알약을 하나 더 올렸다.
“응?”
그런데 신수의 정수 알약은 올려지지 않고, 자꾸 인벤토리로 되돌아갔다.
‘한 번 조합한 물건은 조합하지 못하나 보네.’
그리고 몇 가지 실험을 해 보며 조합의 법칙을 더 알아냈다.
조합하지 않은 물건이라고 해도, 거부되는 경우가 있다.
물건의 상성이 맞지 않아 조합이 불가능한 경우였다.
사실 대부분의 물건끼리는 조합 불가에 해당했다.
그리고…….
‘역시, 이 접시들.’
몇 번의 조합 시험을 끝내며 나는 접시를 유심히 보았다.
시스템상의 기능이라 만질 수는 없었지만, 왜 접시가 네 개인지는 곧 알 수 있었다.
네 접시에 4대 가문의 문장이 각각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원형판에는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네 개의 열쇠가 메키우스의 열쇠가 되어 빛난다.’
어쩌면, 열쇠란 탑의 열쇠일 것이다.
내게는 흑탑의 열쇠와 바네사 헤일로가 내게 맡긴 수탑의 열쇠가 있었다.
만약 네 개의 열쇠를 전부 모아 조합한다면 메키우스의 열쇠가 된다는 건가?
내가…… 메키우스의 열쇠인데? 아무튼 해 볼 만한 가치는 있지만.
‘그러다 아무것도 못 여는 열쇠가 되는 거 아니야?’
걱정이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열쇠는 각 가문의 가보와 다름없지 않은가.
그걸 내가 없애 버린다면…….
문득 다음 후계자가 될 진의 형형한 눈빛이 떠오르자 등골이 서늘해졌다.
하지만 나는 이내 원형판의 조합 버튼을 반대로 뒤집어 놓은 것 같은 버튼을 발견했다.
‘시험해 보자.’
아까 만들었던 중급 포션을 올렸다.
그리고 거꾸로 된 버튼을 선택하자 빛이 났다.
잠시 뒤 원형판 위에 올려진 중급 포션은 사라지고 접시 두 개에 하급 포션 둘이 놓여 있었다.
‘오오!’
다시 되돌리는 기능이 있는 모양이었다.
‘조합’처럼 5루비가 나가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혹시나 네 열쇠를 합쳐야 할 때가 오더라도, 쓴 뒤 다시 되돌려 놓으면 되니 부담이 없다.
‘모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조합 기능의 테스트를 끝낸 나는 하급 포션을 상점에 되팔고 창을 닫았다.
[이름 : 샤샤 윈체스터(LV.8)]
[직업 : 중급 구원자]
[특성 : 메키우스의 열쇠]
[능력치: 체력 38 / 근력 30 / 이능 20 / 지능 51 / 생명력 51]
[스킬 : 검은 지배(LV.5/SS), 피해 반사(LV.3/A) ]
내 프로필이 보였다.
처음 이 프로필 창을 만났을 때보다 한결 성장한 모습이었다.
그때는 머리숱도 많지 않았는데, 지금은 어엿한 여덟 살.
눈도 초롱초롱하고 예쁘다.
‘그나저나 에반은…….’
이내 창을 닫은 나는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뭐 하고 있을까.’
다크 이글의 일이 끝나고 가문으로 돌아간 뒤 어떤 소식도 없었다.
눈을 스르르 감았을 때 목소리가 들렸다.
“한가해 보이는군.”
바로 앞에서 들리는 듯한 목소리에 놀라 눈을 번쩍 뜬 나는, 내 방 창문을 바라보았다.
창틀에 오셀로가 앉아 있었다.
“아…… 닫아 놓는 거 깜빡했네.”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오셀로가 방 안으로 발을 디뎠다.
마치 제 방이라도 되는 듯 뻔뻔하게.
그리고 태연히 내 과자를 집어 들었다.
“단거 싫어하잖아.”
“좋아해.”
“언제부터.”
“오늘부터.”
아삭― 하고 과자가 씹히는 소리가 들렸다.
둘 다 근신 명령을 받은 날 이후로 오셀로는 가끔 내 방에 와서 나와 이야기를 나누곤, 아니, 나를 괴롭히곤 했다.
의자에 앉아 반나절 내내 빤히 나를 바라보며 부담스럽게 하기도 했고, 내 침대에서 낮잠을 자고 간 적도 있으며…… 오늘은 과자를 뺏어 먹는다. 그거 마야가 고향에서 공수해 온 거라는데.
“난 널 위해 근신까지 감안했는데.”
내게 다가온 오셀로가 비스듬히 나를 보며 물었다.
“넌 기껏 과자 하나 내게 주는 게 아깝냐?”
솔직히 할 말은 없었기에 시선을 피했다.
“많이 먹어.”
내 말에 오셀로의 입꼬리가 비틀리는 것이 보였다.
나 때문에 근신당했다는 것을 언제까지 써먹을지 모르겠다.
오셀로라도 근신이 풀리면 좋겠는데.
“옆으로 붙어 봐.”
“설마 또 올라오려는 거야?”
“나는 너 때문에 근신을 감안…….”
“알았어. 알았다고!”
내가 옆으로 비켜 주자 오셀로는 내 침대 위에 올라와 앉았다.
지극히 악당스러운 그 미소에 나는 한숨을 참았다.
내 옆에 앉은 오셀로가 내게 말했다.
아니, 말하기보다는 명령했다.
“눕고 싶어. 무릎베개해 줘, 꼬맹아.”
나는 절로 한숨이 나왔다.
* * *
오랜 시간이 지나는 사이 제국은 이전처럼 안정화되고 풍족해지고 있었다.
다크 이글의 뇌가 해독되었지만 ‘약속된 땅과 시신의 주인’이라는 암호 같은 말 빼고는 쓸 만한 정보가 없었다.
좌표가 하나 있었지만 가 보니 이미 폐허가 되어 있었고 말이다.
아카다에서는 여전히 문헌을 뒤지고 있다고 하지만 진척 사항은 별로 없었다.
그래도 제국이 안정화되며 어느새 그간의 재앙들은 사람들에게서 잊혀 갔다.
윈체스터에서도 그러했고.
카실리온은 아카다 가주의 허가를 얻어, 위탁 교육이 끝난 뒤에도 윈체스터 공작가에서 일하고 있었다.
엘릭서 개발은 무려 80퍼센트 수준! 그는 또한 윈체스터의 사업에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그 외에 일어난 특별한 일을 이야기하자면, 레카르도가 오르테니안을 흡수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정이 생겨 집으로 돌아가게 된 페르메티스가 갑자기 병으로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었다.
바쉬론이 비탄에 잠겼다는데, 장례가 치러지지 않아 전말은 모른다.
헥토르 할아버지는 해야 할 일이 있으시다며 내 교육을 전처럼 전임하시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편지를 통해 안부를 주고받았다.
레카르도는 여전히 과묵했지만…… 이전과는 다른 태도로 나를 아끼고 있다. 때로는 부담스러울 정도이다.
그리고 에반, 그 녀석은…….
“아가씨.”
콘솔 화장대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빛바랜 리소니아를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마야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의 뒤에는 드레스 숍에서 가져온 최고급 드레스들의 거치대와 하녀들이 있었다.
“드레스가 도착했어요.”
나는 심호흡을 한번 하고 거울 속 나를 바라보았다.
거울 속에는 올해 열여섯 살이 된 은발의 소녀가 서 있었다.
키는 마야보다도 컸고 몸은 점점 어른의 티가 나고 있었다.
“데뷔탕트 무도회를 위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