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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 가문의 병약한 막내님-102화 (102/124)

악당 가문의 병약한 막내님 102화

아버지가 윌너스 광산의 소유권을 내게 맡긴 것이 열 살 때였다.

그래…… 고작 열 살 때!

― 매번 네게 들어가는 치료비가 얼마인데,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어?

내 치료비를 감당하지 못하겠으니 스스로 광산의 물건을 팔아 해결하라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었지.

오빠들까지 합심해서 그 귀한 광산을 내게 떠넘겼다.

덕분에 내 창고와 내 계좌에는 돈이 쌓이다 못해 넘쳐흐를 정도이다.

윌너스 광산의 채산성과 그곳에서 채굴되는 보석들의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높다.

그 덕분에 나는 오늘의 데뷔탕트 무도회를 색다르게 준비했다.

“아가씨께서 여러분을 위해 준비하셨습니다.”

“우와!”

“세상에, 너무 아름다워요.”

“어머. 이렇게 아름다운 선물을 주시다니……!”

마야가 미리 준비한 액세서리들을 가져오자 영애들이 몰려들었다.

4대 가문 중 다른 가문의 영향력에 속한 영애들도 보석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했다.

“제 오빠들의 서임식과 저의 데뷔탕트 무도회를 축하해 주셔서 감사해요.”

“영애님, 잘 쓸게요.”

“저…… 오늘 다리가 부러져서 참석하지 못한 제 여동생 것도 가져가도 될까요?”

어떤 영애가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물론이죠. 얼마든지 준비되어 있어요.”

나는 보석을 아끼지 않았다.

그것들이 내게 큰 가치가 없다는 이유는 둘째로 하고, 재물을 통해 다른 가문들의 호의를 이끌어 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원래 윈체스터는 다소 폐쇄적인 가문으로 역사적으로 다른 가문들을 배척하거나 힘으로 지배하고는 했다.

하지만 언젠가 있을 페르세토스와의 전쟁을 생각한다면 미리 협력 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하다.

“공녀님께 답례의 선물을 보내드리고 싶어요.”

“저희 파렐 영지의 과수원에서 최상급 도르베리를 가져다드릴게요.”

“공녀님, 주말에 일정이 있으세요? 파티에 초대하고 싶어요.”

“저희 저택에서도 파티가 열려요. 꼭 와 주시면 좋겠어요.”

역시, 재물이 많으면 호의를 얻는 것은 어렵지 않다.

나를 어려운 눈으로 보던 영애들도 옆에 다가와서 친해지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그런데.”

나는 내게 반짝이는 눈빛을 보이는 영애들에게서 시선을 거두어 셀리아에게 옮겼다.

그리고 싱긋 미소 지으며 물었다.

“셀리아는 갖고 싶은 보석 없어요?”

한편 내 브로치에 대해 부럽다는 듯 늘어놓았던 셀리아는 말이 없다.

“페리도트보다 더 아름다운 보석들도 있는데.”

헤일로는 다시 번영을 되찾기는 했지만, 절대 윈체스터만큼 부유하지는 않다.

그러니 다른 가문의 영애들이 내게 갖기를 원했던 적의는…….

“……괜찮습니다.”

똥 씹은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는 자신만이 고이 간직하게 되는 것이다.

그녀의 말에 당황하며 부끄럽다는 듯 호호 웃었으면, 만만한 상대라는 이미지가 뇌리에 인식되었겠지.

하지만 나는 그런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았다.

‘지금껏 데뷔탕트 무도회를 미뤄 온 건 귀찮아서일 뿐이야.’

누가 사교계의 여왕벌이 되든 신경 쓸 생각은 없다. 하지만 나를 건드리면 만만하게 대해 줄 생각은 없어.

이 메시지는 분명히 전해졌을 것이다.

“윈체스터 저택이 이렇게 아름다운지 몰랐어요.”

“윈체스터는 정말 부유하고 번영하고 있군요.”

자신을 따르던 영애들이 행복한 얼굴로 연신 윈체스터가와 나의 미모를 찬양하자, 셀리아는 휙 돌아서서 가 버렸다.

그녀에게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페르메티스와 비슷한 성격은 어딜 가나 한둘은 있다니까.’

나는 셀리아로부터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운 나쁘게도, 지금껏 나를 지켜보고 있었던 듯한 눈 하나와 마주쳤다.

그인 줄 알았다면 굳이 보지 않았을 것이다.

“…….”

미간이 빠른 속도로 굳으려 했지만 일부러 귀 쪽 잔머리를 뒤로 넘기며 고개를 돌렸다.

* * *

바빴던 무도회가 드디어 끝났다.

― 공녀님, 꼭 티타임에 불러 주세요.

― 저도요. 곧 제 생일 파티인데 초대하면 와 주시겠어요?

나와 친해지고 싶어 눈치를 보던 목소리들이 아직도 귀에 웅웅대었다.

아무튼 나는 많은 영애들의 호의를 얻을 수 있었다.

더불어 내 오빠들에게 다른 마음을 먹고 있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지도 대충 눈치챌 수 있었고.

― 공녀님 선물과 함께 공자님들의 선물도 보내도 될까요?

― 공녀님은 오셀로 공자님과 특히 친하시다고 들었어요. 정말인가요?!

‘뭐가 그렇게 잘생겼다고…… 솔직히 잘생기기는 했지. 하지만 성격을 알게 되면 바로 도망갈걸?’

후, 하고 작은 한숨을 내쉰 나는 눈을 감고 뭔가를 속삭였다.

“기억 저장소.”

그리고 눈을 뜨자 내 앞에는 빛의 선으로 구성된 도서관이 보였다.

나는 그 책들 중 ‘윈체스터 공작가의 가보’를 찾았다.

기억 저장소는 내 머릿속에 도서관을 하나 만드는 기능으로, 열두 살 무렵에 숨겨진 물건을 찾는 퀘스트를 수행한 보상으로 받은 기능이었다.

한번 본 것은 무엇이든 책으로 만들어서 기억 속에 보관할 수 있었다.

흑탑에 있는 도서들의 70퍼센트가량이 현재 나의 기억 저장소에 들어와 있었다.

“찾았다.”

아까의 서임식 이후 궁금했던 것들을 풀 시간.

나는 아까 오빠들이 받은 가보들을 찾아보았다.

진이 받은 가보는 ‘아리아크네의 나선시계’.

고대의 위대한 연금술사가 만든 시계로 내기에서 돈을 따는 작은 행운부터 암살자의 습격에서 목숨을 보호하는 큰 행운까지, 다양한 행운을 유발하는 효과가 있다.

신비한 힘을 지녔으니 가보라고 불릴 만하다.

그리고…….

‘찬탈자의 단검.’

이건 고대 시대의 힘이 담긴 유물이었다.

“……그런데 이거, 흠.”

일족의 왕인 형을 시기한 동생이, 형의 그림자에 숨어 청동 단검으로 형을 살해했다.

단검에는 형이 흘린 피의 원한이 서려 맹독이 되었으며, 검을 쓰는 자가 ‘찬탈자의 단검’을 소유한다면 탐욕이 강해지는 대신 강한 공격 효과를 얻는다.

“정말 적절치 않네.”

나는 레카르도가 눈썹을 찡그린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왜 헥토르 할아버지는 오셀로에게 이런 검을 주신 걸까.

그러잖아도 둘의 사이가 좋지 않아 신경 쓰이는 판국이니 더욱 그러했다.

“모르겠어. 뭔가 뜻이 있으신 건가.”

나는 기억 저장소의 책을 정리하고 침대에 누웠다.

저녁쯤이면 에반의 경위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쯤 4대 가문의 가주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베루스가 진행 중일 테니…….

그리고 그때 내 눈앞에, 눈에 익은 창이 떠올랐다.

[특별 구역에 입장하시겠습니까?]

“……!”

이건 분명 틀림없이 그 장소로 이끄는 메시지였다.

무도회에서 선명한 벽안으로 나를 응시하던 에반이 떠올랐다.

그의 입가에 옅게 스쳐 가던 미소까지 아주 선명히 말이다.

나는 한참 동안 창을 응시했다.

* * *

“체노아 테일러스가 아버지만큼 강하지는 않지만, 벌써 병으로 서거할 나이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레카르도의 집무실, 은촛대의 촛불이 일렁였다.

진 윈체스터는 레카르도의 앞에 서 있었다.

“그럴지도 모르지.”

레카르도의 말에 진의 눈썹이 움직였다.

“그런데 왜 추궁하지 않으셨습니까, 아버지.”

“체노아 테일러스의 죽음에 어떤 비밀이 있건 간에, 에반은 가주직을 물려받았고 테일러스 공작가에서 그를 대체할 인물은 없으니 체노아의 죽음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레카르도는 새카만 창밖을 보며 말을 이었다.

“중요한 것은 제국의 정국과, 가문에 끼치는 영향일 뿐.”

진은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베루스의 판단은 어떠합니까.”

“가주직이 비어 엉망이 되었던 헤일로 때와는 다르다. 찬성도, 반대도 필요치 않은 일.”

레카르도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진은 서늘한 눈빛으로 입술을 달싹였다.

“어쨌든 오늘 이곳에서 테일러스의 주인이 바뀌었음을 각인시키는 것에는 성공했군요.”

테일러스의 가주, 에반 테일러스로서의 첫 대외 행보였다.

제 아버지의 죽음을 알리는 자리.

“에반 테일러스는 기민한 성격이지만, 어떤 사유에 관해서는 꽤 성급하다.”

진이 눈썹을 꿈틀했다.

레카르도의 짙은 시선은 창밖을 향해 있었다.

“영 괘씸하고 마음에 들지 않지만.”

에반의 벽안은 예전과 다름없는 농도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기운마저 숨길 수는 없었다.

특히, 낯설면서도 익숙한 그 느낌은 분명.

“8년 만에 그가 윈체스터에 다시 돌아온 이유는.”

레카르도는 문득 눈썹을 찡그렸다.

“……떠났던 이유와 같겠지.”

오래전 헥토르에게서 받았던 편지가 책상에 쌓인 책 속에 꽂혀 있었다.

― 에반 테일러스는, 샤샤를 위해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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