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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 가문의 병약한 막내님-105화 (105/124)

악당 가문의 병약한 막내님 105화

‘설마…….’

바몬트는 불쑥 떠오르는 생각을 부인했다.

이미 사망한 자는 엘리시온 아카다가 와서 이능을 사용해도 회복할 수 없다.

세상의 어떤 명의도 죽은 자에게 물을 수는 없단 말이다.

“……!”

샤샤는 메리에게 손을 뻗기 전, 바몬트를 싸늘하게 바라보았다.

바몬트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샤샤의 눈앞에, 1년 전 얻은 비장의 스킬이 떴다.

[스킬 ‘강령(B/LV.3)’을 사용합니다.]

* * *

‘사람은 죽으면 7일간 지상에 머물다가 명계로 향한다.

명계에서는 누구나 생전의 죄를 씻어 내기 위해 속죄를 위한 긴 고행의 기간을 가지게 되며, 전생의 업과 저주가 끊기려면 7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7년의 고행 끝 유백의 혼을 가지게 된 인간은 모두 메키우스의 품으로 돌아가 새로운 생명으로 인도된다.’

이것이 내가 흑탑의 고서에서 읽은 야누트의 사후 세계론이었다.

전설과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내가 정말 망자가 될 뻔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1년 전 흑탑에 올랐을 때였다.

황금으로 만든 흑룡 동상에 가까이 섰던 나는 미끄러지는 바람에 흑룡의 발톱을 건드렸었다.

그것이 푹 눌리더니 갑자기 생긴 통로로 떨어졌고, 눈앞에 퀘스트가 떴다.

300년 전 흑탑에 발을 들여 갇혀 있던 포블린을 처치하라고.

슬라임처럼 몽글몽글한 형태의 그 괴물이 덮쳐서 숨이 막혀 죽을 뻔했지만, 의식이 몽롱해지는 순간 어째서인지 에반의 얼굴이 환상처럼 눈앞에 나타나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내 이능으로 무사히 그것을 처리했다.

그리고 얻은 B급 스킬! 무려 이름이 ‘강령’이다.

물론 죽은 사람을 언데드로 만들어 되살리는 능력은 아니다.

혼을 잠시 불러들여 구현할 수 있는 스킬일 뿐.

죽은 지 오래되어 메키우스에게 인도된 영혼은 부를 수 없다.

― 바몬트…… 도련님이…….

죽어 있는 메리의 시체에서 회색의 반투명한 형태가 스멀스멀 일어났다.

그리고 바몬트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으…… 으…… 뭐야! 넌 뭐야!!”

― 바몬트 도련님이 내 목을 졸랐어.

나는 메리의 혼에게 물었다.

“그럼 어떻게 떨어진 거지? 바몬트는 여기 있고, 넌 옥상에서 떨어졌잖아.”

― 죽은 나를 매달아 놓았어요…… 문이 열리면 줄이 끊어지게…….

그 말을 들은 하인들이 메리에게 다가갔다.

“허리에 가느다란 줄이 묶여 있습니다. 메리의 말이 맞아요!”

“헛소리!”

바몬트는 빽 소리를 질렀다.

“너…… 넌 저 녀석이 죽인 거야. 저 기생오라비 같은 녀석이 널 죽였다고!!”

바몬트의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 아니, 당신이 나를 죽였어…….

바몬트의 바로 코앞까지 다가간 메리가 입을 쩍 벌렸다.

― 나를 왜 죽였어!! 당신도 죽어!!

엄청난 고함 소리에 바몬트는 눈에 빛을 잃더니 제 머리를 쥐어뜯으며 주저앉았다.

“악!! 아아악!!”

잠시 후 내게 돌아선 메리의 음성이 들려왔다.

― 아…… 가씨…… 고맙습…….

말을 마치지 못한 메리는 투명해지며 사라졌다.

망자의 혼을 붙잡을 수 있는 시간은 고작 3분 남짓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면 충분했다.

카실리온의 무죄를 밝히고 진짜 범인에 대해 밝히기에는 말이다.

“잘못…… 내가 잘못했…….”

바몬트는 덜덜 떨며 눈물 콧물을 짜고 있었다.

자기가 죽인 하녀의 혼령이 나타났으니 그럴 수밖에.

정신이 나가 버린 것 같은 모습이다.

“죽…… 죽지…… 죽지 마…… 메리…… 메리…….”

나는 하녀들에게 명령했다.

“덮을 것을 가져와서 메리의 시신을 수습해.”

바몬트의 처분은 레카르도가 할 것이다.

“…….”

나는 옥상 위의 카실리온을 올려다보았다.

나를 보는 카실리온의 눈동자가 일렁이고 있었다.

녀석, 감동한 건가.

그리고 뒤돌아선 나는 흠칫 놀랐다.

“…….”

에반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샤샤.”

에반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 보고 있었던 거야……? 괜한 창피함이 느껴진다.

나는 에반을 비켜 가려고 했다.

에반의 얼굴을 보자 이 자리를 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등 뒤에서 울먹이는 고성이 들려왔다.

“죽지 마…… 아니 죽어!! 다 같이 죽자!!”

눈이 시뻘게진 바몬트가 단검을 들고 내게 달려오고 있었다.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은 입가에 흘러내린 침만 보고도 알 수 있었다.

스킬을 얻고 나서 두 번째 사용이라 설마 이런 부작용이 있으리라곤 예상치 못했다.

그리고 그 순간 무언가 나를 강하게 끌어당겼다.

치직― 치지직―

검을 뽑는 에반과 그 찰나의 순간에도 느껴지는 엄청난 스파크.

에반의 검날에는 푸른 기운이 서려 있었는데, 소드 오러를 쓰는 오셀로에게서도 느끼지 못했던 엄청난 중압감이 느껴졌다.

‘이렇게나…….’

온몸의 털이 삐죽 서는 느낌이었다.

오르테니안의 힘을 얻은 레카르도는 명실상부한 세계관 최강의 남자였다.

에반의 전성기가 도래해도, 레카르도를 이길 수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 만큼 강력해졌으니까.

이번 스물여덟 번째 회차에서 가장 크게 뒤바뀐 것이 있다면, 더는 에반 테일러스가 세계 최강이 아니라는 점일 거라고 생각했다.

‘……강해지다니.’

그러나 지금 나는 그 생각을 급히 수정했다.

레카르도와 에반이 맞붙는다면 그 승부의 결과는 누구도 모를 것이다.

메키우스가 남긴 선물 오르테니안을 흡수한 레카르도만큼이나, 어쩌면 그보다 더 에반은 강해져 있었다.

스윽―

에반의 검이 공중을 가르자, 공중에 검푸른 궤적이 생겼다.

이런 건 듣지도, 상상하지도 못했다.

그 검푸른 궤적은 바몬트의 가슴에 닿자마자 공간을 일그러트리며 바몬트를 잡아먹었다.

바몬트는 비명 한번 내지르지 못한 채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바몬트가 붉은 눈을 치켜뜨고 발을 내딛던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

바람이 불어왔다.

에반의 망토가, 그가 끌어당겨 안고 있는 내 쪽으로 살랑인다.

에반에게서는 시원한 향기가 났다.

공간에는 정적만 남겨져 있을 뿐이었다.

누구도 이 믿지 못할 만한 일에 입을 열지 못했다.

“…….”

한참 뒤 에반이 나를 잡은 손에서 힘을 풀었다.

나는 짙게 빛나는 에반의 푸른 눈동자를 보았다.

그는 눈썹을 조금 일그러트리고 있었다.

굳게 닫혀 있던 입술이 달싹이며 낮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다친 곳은?”

* * *

쾅―

오후 시간, 한가롭게 차를 마시며 수필집을 읽고 있을 때였다.

‘마음에 잔잔한 평화를…….’

요란하게 문이 열리고 서늘한 살기를 띤 오셀로가 내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래, 오셀로에게는 이게 노크지.

“너 괜찮아? 미친 방계 자식이 감히 달려들었다며!”

“별일 없어.”

“내가 화풀이할 몫은 남겨 뒀어야지. 에반 자식, 그렇게 다 없애 버리면…….”

나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비명도 못 지르고 죽은 게 바몬트에게는 좋은 일이었던 것 같다.

마야에게 듣기로는 오셀로가 제국 암흑가의 실질적인 보스가 되었다고 한다.

진은 윈체스터가의 후계로 표면에 나와서 영향을 끼친다면, 오셀로는 암흑가에서 세를 불린다.

무슨 일을 하는지는 듣고 싶지도 않다.

“탁자 위에 저건 뭐지?”

오셀로는 내가 탁자 위에 올려놓은 주머니를 보고 눈썹을 찌푸렸다.

오셀로가 온다는 걸 알았으면 숨겼을 텐데, 젠장.

어쩔 수 없이 솔직히 말했다.

“메리의 가족에게 전달할 위로금이야.”

오셀로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죽은 하녀의 가족을 말하는 건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문에서 받은 봉급으로 아픈 어머니와 동생들을 먹여살린다고 했다.

환생하기 전의 내 사정이 떠올라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하녀가 죽은 건 제 사정일 뿐인데 왜 그 사람들에게 돈을 주는 거지?”

“왜냐면…….”

십수 년을 가족들과 함께했어도 위화감이 느껴지는 부분은, 생각의 방식이 나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신분제 사회에 더해 약육강식의 가풍 아래 자라난 진과 오셀로는, 약한 것이 희생당하는 것을 자연의 순리처럼 당연하게 생각했다.

소시오패스, 어쩌면 사이코패스 성향까지 있는 것은 선천적인 요소인 듯했고.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반박할 때 다른 설명은 필요하지 않다.

너와 나는 다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의견만 전달하면 될 뿐.

그렇지 않으면 속이 터지거든.

“뭐, 주인이 있는 하녀를 죽이는 일은 그 방계 자식의 월권이기는 하지. 아버지께서도 바몬트 아비의 작위를 회수하셨으니.”

오셀로는 내가 건넨 주머니를 잡았다.

이 정도면 평민 가정 기준으로 30년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혹은 가게를 매입하여 장기적인 소득을 창출할 수도 있겠지.

“그래도 마음에 들지 않아. 네가 하녀 따위를 대변하려다가 위험에 처했던 점은.”

눈을 찌푸린 오셀로의 말에 나는 싱긋 미소 지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너 언제부턴가 계속 이러는데, 일부러 이러는 거지?”

“아닌데?”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정말 생각이 다를 뿐이야. 나는 인간이라면 신분이나 힘을 떠나 생명은 전부 소중하다고 생각하거든. 그게 우리 생각의 차이이니까.”

오셀로 너는 모르겠지만, 사람에게는 인권이라는 게 있단다.

“비현실적인 이야기야. 도박판을 헤집고 다니는 들개들의 목숨 따위가 보잘 것 있다고?”

오셀로는 서늘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로젠토 평민들 전부의 목을 저울에 달아도, 네 손가락 하나의 무게와 비교할 수 없어.”

그건 네가 미친놈이어서고.

“저택의 하인들을 다 죽여서 피로 강을 만들어도 네 눈…….”

“그만. 나, 머리가 어지러워.”

나는 이마를 짚었다.

청소년 관람 불가의 묘사들을 이 나이부터 듣고 싶지 않았다.

“그것도 내가 윈체스터의 직계여서잖아.”

이내 오셀로에게 약간의 핀잔을 섞어 말했다.

내 말을 들은 오셀로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크게 흔들렸다.

“우리가 혈연관계가 아니었다면…… 오셀로가 나를 이렇게 소중히 여겨 줬을까?”

진지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오셀로의 정곡을 찌른 모양이었다.

“만약 내가 운이 나빠 하녀로 태어났다면 오셀로는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거잖아.”

오셀로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창을 등지고 있는 그의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너무 싸늘하게 말한 건가, 뒤늦게 생각했을 때 오셀로가 내게 다가왔다.

한 발짝, 두 발짝 다가와서 내 앞에 선 오셀로는 나를 내려다보았다.

“…….”

진과 닮은 짙은 녹안은 꽤 탁한 빛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그 안은 꽤 깊어서, 나는 오셀로의 기분을 알 수 없었다.

오셀로가 손을 뻗어 내 머리 위에 올렸다.

이내 붉은 입술이 달싹였다.

“생각해 보니까 샤샤.”

낮은 목소리는 조금 잠겨 있는 것 같았다.

“……네 말이 맞는 것 같아.”

생각지도 않은 그의 수긍에 나는 움찔 놀랐다.

“네가 뭐였어도, 아니, 뭐라도 나는…….”

그냥 수긍하는 척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오셀로는 자기가 수긍하지 않는 것에 그렇다고 말하는 성정이 아니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부인하는 스타일.

그런 오셀로가 정말…… 하녀의 목숨도 중요하다는 말에 수긍하는 걸까.

잠시 뒤 그는 내 머리 위에 얹은 손을 거두고 뒤돌아섰다.

“가 볼게.”

나는 얼떨떨한 눈으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나…… 소시오패스 교육에 소질이 있는 건가?

잠시 생각하고 있을 때, 눈앞에 다시 창이 떴다.

[특별 구역에 입장하시겠습니까?]

‘아까 일, 마무리 지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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