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 가문의 병약한 막내님 111화
“좋아요.”
나는 셀리아를 보며 웃음기 한 점 떠오르지 않은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셀리아 영애가 나를 의심하니 그 의심을 거두어 드리도록 하죠.”
그리고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나뿐 아니라, 이곳에 참여한 모든 영애의 몸에서 열쇠가 나오지 않는다면 이 무례에 대해 톡톡히 책임질 준비를 해야 할 거예요.”
차가운 내 경고에 셀리아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셀리아, 이럴 필요까지는…….”
급속히 냉각된 분위기에 라슬라가 셀리아를 말리려 했지만 셀리아는 입을 열지 않고 나를 응시할 뿐이었다.
범인을 확신한다는 듯.
“헤일로 전대 가주님의 열쇠를 샤샤 공녀님이 가져갔다고 들은 적 있어요.”
“바네사 헤일로 가주님이 돌아가시기 전 제게 직접 맡긴 거랍니다.”
“어쨌건 아카다의 열쇠에 욕심낼 만한 사람이 여기에서는…….”
셀리아의 눈이 좌중을 훑었다.
영애들은 모두 그녀의 눈을 피했다.
나는 그녀의 말을 이었다.
“나밖에 없다는 건가요?”
그녀는 오늘 제 눈에 거슬리는 나의 제거를 확신하고 있을 것이다.
“그건 수색을 해 봐야 알겠죠. 영애께서 협조하신다면요.”
나의 명예가 바닥까지 떨어지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고.
“협조하죠.”
내 말에 셀리아의 입술에 미소가 스쳐 갔다.
“아가씨, 이쪽으로 오시지요.”
나는 셀리아의 하녀의 안내를 따라 몇 발짝 걷다가 멈추어 섰다.
그리고 그 하녀의 손목을 탁 잡아챘다.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내게 향해 있었다.
“몸수색을 할 필요까지는 없겠어요.”
셀리아의 눈동자가 미미하게 흔들리는 순간은 내게 즐거움을 주었다.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내었거든요.”
내 말에 라슬라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누군가요. 감히 아카다의 보물을 훔쳐 간 범인이.”
내게 손목이 잡힌 하녀의 표정이 부자연스러웠다.
하녀이지만 영 하녀답지 않은 눈빛을 가진 이 아이는 아마 평범한 양민 집안의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아닐 것이다.
나는 하녀의 손을 그대로 들어 다른 하녀들에게 말했다.
“이 하녀의 몸을 수색해라.”
그러자 곧장 마야가 끼어들어 하녀의 다른 손목을 잡았다.
저들끼리 수색하는 척하며 못 찾았다고 무마할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하녀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가고 있었다.
“이…… 이게 무슨 말이죠?!”
셀리아 영애는 제 각본에 이런 건 없었는지 당황한 기색을 역력히 드러냈다.
잠시 후 하녀의 몸에서, 툭 하고 열쇠가 떨어졌다.
모든 사람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건 내 열쇠야.”
황급히 라슬라가 열쇠 목걸이를 하녀들로부터 돌려받았다.
그러자 하녀는 눈을 굴리더니 나를 지목하며 말했다.
“제가 훔치지 않았어요. 이 공녀님의 하녀가 저를 잡는 척하며 제 품에 목걸이를 넣었다고요. 모르시겠어요?!”
그래, 쉽게 인정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셀리아의 눈동자가 역전의 기회에 번뜩이는 것이 보였다.
“애나가 이모님의 열쇠를 훔칠 이유가…….”
하지만 나는 그럴 기회를 허용할 생각은 없었다.
“아얏!”
내가 하녀의 손목을 살짝 힘을 주어 비틀자, 하녀에게서 고통스러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제 정적들을 가해자로 만들어 제거한 술수의 실체는 이제 모두의 앞에서 까발려질 것이다.
“저건……!”
사람들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죄의 낙인이에요.”
나는 그녀의 손목을 치켜들며 말했다.
제국의 범죄자들은 범죄를 저지르면 손목에 낙인을 찍는다.
사람을 해친 자는 칼 모양의, 뭔가를 훔친 자는 주머니 모양의, 누군가를 때린 자는 망치 모양의 선명한 낙인이 찍힌다.
로웬과 로빈에게도 같은 낙인이 있었다.
어릴 적 도둑질을 하다가 낙인을 받았다고 한다.
사람은 변했어도 죄의 흔적은 몸에 남아 존재하는 것이다.
보통 화장품이나 붕대로 낙인을 가리고 다니는데, 이 하녀의 손목에도 그런 흔적이 보였다. 역시나 손목 살결의 경계선이 보이는 부분을 문지르자 낙인이 보였다.
“샤샤 윈체스터 공녀의 말을 믿으시겠어요, 도둑의 낙인이 찍힌 한낱 하녀의 말을 믿으시겠어요?”
나는 사람들을 향해 느긋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까지 많은 영애들이 셀리아 영애에게 나쁜 짓을 하려다 들켜서 추출되었죠. 하마터면 나도 그럴 뻔했다니까요. 하녀가 이상한 걸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필시 내 몸수색 때 내 몸에서 열쇠를 발견했다고 우기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그들에게 아주 강력한 의심의 씨앗을 심어 주었다.
너희들이 머리가 있다면 잘 생각해 봐, 하는 느낌으로 말이다.
“……!”
셀리아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꼭 쥔 주먹이 파들파들 떨렸다.
“애나, 네가 도둑이라니…….”
하지만 그녀는 나에게 뒤집어씌우기를 깔끔히 포기한 듯했다.
하녀에게서 도둑의 표식마저 나온 마당에 나를 몰아붙인다는 것은 억지였으니까.
이 불신의 시선들을 만회하려면 시치미를 떼는 방법밖에 없을 것이다.
하녀를 이용해 지금까지 남에게 무수히 많은 죄를 뒤집어씌워 온 주제에 셀리아는 뻔뻔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어떻게 네가 나를 배신할 수가 있어! 나는 그렇게 잘해 줬는데!”
“아…… 아가씨…….”
하녀는 안절부절못한 표정으로 사람들 앞에 무릎을 꿇었다.
“차라리 죽어 버려, 애나. 이렇게 내 명예를 떨어뜨리다니. 그것도 내 생일 파티에서…….”
셀리아의 말에 애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차라리 죽어 버리라고!”
겉보기에 셀리아는 하녀 때문에 큰 피해를 입고 상처받아 화를 내는 것처럼 보였지만, 나는 셀리아가 그녀에게 죽으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입을 다물게 하기 위해서.
마침내 체념한 하녀가 품에서 칼을 꺼내는 것을 본 나는, 재빨리 스킬을 사용했다.
[스킬 ‘검은 지배(SS/LV.10)’를 사용합니다.]
얼마 전 레벨 10에 다다른 ‘검은 지배’는 걸려 있던 레벨 제한이 풀려 엄청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상대를 제압하는 것은 물론 공격할 수도 있었다.
하녀는 그것을 들 새도 없이 바닥에 큰 소리를 내며 고꾸라졌다.
“아악!”
하녀가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를 내었다.
셀리아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을 보며 나는 하녀에게로 몸을 숙였다.
그리고 일그러진 표정의 그녀를 보며 낮게 속삭였다.
“네 목숨은 성치 못하겠지만, 네 가족은 윈체스터의 명예를 걸고 내가 보호해 줄게.”
아까 이곳 별장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에반이 내게 보낸 편지가 도착했다.
에반의 부하가 전한 편지에는 별장의 어떤 구역을 확인하라는 팁이 적혀 있었다.
그곳으로 간 마야는 어떤 일가족이 가둬져 있는 것을 확인하고 그들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2년 동안 잡혀 있었다고 하는데, 이는 셀리아가 데뷔탕트 무도회를 치른 시기와 거의 일치했다.
“저 여자가 네 가족을 가두고 너를 이용한 복수를 할 마지막 기회일 텐데, 놓치면 후회하지 않겠니.”
“…….”
하녀의 눈망울이 일렁였다.
이내 고개를 끄덕인 하녀가 입을 열었다.
“전부 셀리아 아가씨께서 제게 시키신 일이에요!”
그 충격적인 고백에 사람들은 놀라 대화를 멈추었다.
셀리아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는 것이 실시간으로 보였다.
라슬라의 얼굴 또한 굳어 가고 있었고, 믿기지 않는다는 듯 셀리아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물건을 훔쳐 샤샤 공녀님께 뒤집어씌우라고 했어요!”
“거짓말이야. 애나! 다 거짓말이잖아. 난 그런 적 없어!”
“샤샤 공녀님뿐 아니라, 한나 백작 영애님도…… 아리스 부인도, 그리고…….”
“닥쳐! 닥치라고!”
언제나 평온을 유지했던 셀리아의 미간은 더할 나위 없이 흉하게 찡그려졌다.
그녀의 목에는 핏대가 서 있었고, 드러내지 않던 강한 분노가 눈에 가득 담겨 있었다.
“네 가족들을 전부 죽여 버릴 거야!”
셀리아는 연좌제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윈체스터에 대해 비난할 때 그들이 종종 중범죄자에게 연좌제를 적용해 그들의 가족까지 추방하는 것을 매우 야만적으로 생각한다고 말하곤 했으니까 말이다.
그렇기에 완전히 뒤바뀐 표정으로 길길이 날뛰는 그녀의 모습이, 평소 셀리아를 동경하던 영애들에게 큰 충격으로 와닿고 있을 것이다.
이내 화를 참지 못한 셀리아는 애나가 떨어뜨린 칼을 잡고 애나에게 달려들었다.
[스킬 ‘피해 반사(A/LV.8)’를 사용합니다.]
하지만 내 스킬로 인해 셀리아는 그대로 뒤로 고꾸라졌다.
이 또한 어릴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아아악!!”
손목의 뼈가 부러졌는지 제 손을 잡고 울먹이고 있었다.
“너무 아파!! 악!!”
하지만 어느 영애도, 하녀들조차 셀리아에게 가까이 가지 않았다.
셀리아는 눈물범벅이 된 채 하얗게 질린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제 누구도 그녀를 전과 같은 동경의 눈으로 보지 않았다.
혐오와 불신, 노골적인 경멸이 섞인 시선만 쏟아질 뿐.
영애들은 내게 우르르 다가와 나를 걱정했다.
“다치신 곳은 없으세요, 공녀님?”
“셀리아 영애가 저런 분인지 알았더라면 따르지 않았을 거예요.”
“공녀님, 못된 술수를 알아채시다니 대단하세요.”
스륵-
누구의 걱정도 받지 못한 채, 셀리아는 처참한 표정으로 몇몇 하녀들의 부축을 받으며 퇴장되었다.
내년에는 누구도 셀리아의 파티에 오지 않을 것이다.
“공녀님…….”
그녀가 사라진 뒤, 굳은 표정의 라슬라가 내게 말을 건넸다.
“드릴 말씀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