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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 가문의 병약한 막내님-119화 (119/124)

악당 가문의 병약한 막내님 119화

“하나…… 둘, 셋, 네 놈.”

오셀로는 입맛을 다시며 수를 세었다.

복면의 남자들 중 리더로 보이는 자가 눈썹을 찡그렸다.

“뭐 하는 거지?”

윈체스터의 공녀는 ‘흑염’의 이능을 사용할 수 없다고 알고 있다.

그러니 아무리 자기가 윈체스터의 직계라 하더라도 이능을 가진 성인 남자 넷을 상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게다가…… 독도 먹였다고 했으니.’

홀스는 하녀를 통해 그녀의 식사에 독을 넣겠다고 했다.

당장 눈치채지는 못해도 체력과 이능이 많이 약화되었을 터…….

“다 죽이면 한 소리 하려나. 하면 어때, 그래도…… 흠.”

그런데 아름다운 얼굴에 가득 담긴 저 광기는 뭐란 말인가.

“두려워하지 않는데요, 대장.”

“세상 물정 모르는 여자가 허세를 부리는 것뿐이다.”

오늘 그가 맡은 임무는 윈체스터 공녀를 쓰러트리고 납치하는 것이다.

‘확실히…… 무척 아름답긴 하군.’

잘록한 허리에 눈이 간 그는 입맛을 한번 다셨다.

성질이 워낙 고약해 보이기는 하지만 이런 여자일수록 복종시키는 맛이 있지.

게다가 그 고고한 윈체스터 가문의 딸이다. 저런 여자가 살려 달라고 빌면…….

“얌전히 항복하면 다치게는 하지 않겠다.”

으스대듯 제게 말하는 자객의 모습에 그녀의 입술 끝이 재미있는 것이라도 본 듯 쭉 찢어졌다.

“아하하하! 방금 뭐라고 했어? 감히 날 다치게 하지 않겠다고?”

이내 울려 퍼지는 우스워 죽겠다는 웃음소리.

“저급한 열성 주제에 말하는 꼬라지가 우스워 배가 터질 지경이군. 네 따위가 나를 봐주겠다고 지껄인 거야? 나를?”

‘열성’. 성격 더러운 4대 가문의 귀족들이 하급 귀족을 깔볼 때 말하는 멸칭이었다.

하급 귀족 출신인 자객의 리더는 표정을 굳혔다.

“자기도 반쪽짜리 주제에 함부로 지껄이는군. 주변을 둘러봐라. 이곳에 널 지켜 줄 자는 아무도 없어.”

“반쪽짜리라면 설마 샤샤를 말하는 거야?”

자신의 이름을 3인칭으로 부른 그녀는 일순간 눈을 세모꼴로 떴다.

“나를 모욕하는 것은 참아도 샤샤를 모욕하는 건 참지 못해. 음, 사실은 네놈이 무릎을 꿇고 싹싹 빌어도 참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아무튼 더 열받았어.”

‘정신분열이라도 있는 건가.’

그런 말은 못 들었는데, 생각하던 자객의 리더는 입을 열었다.

“공녀가 열이 받건 말건 내 알 바 아니다. 어쨌든 투항하겠다는 의지가 없다면 강제로 쓰러트릴 수밖에 없지.”

그리고 소매 밖으로 날카로운 한 쌍의 칼을 꺼내 전투 자세를 취했다.

그의 뒤에 서 있던 남자들도 모두 포위진을 짜며 에워싸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는 경계는커녕 두려운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벌레 같은 자식이 입만 살아서 잘도 지껄이네.”

그녀는 남자들이 포위해 가는 와중에도 조금의 동요 없이 말을 이었다.

“네놈들을 명계로 보내 주기 전에 묻지. 이 일을 사주한 사람…… 지금 몰래 우리를 지켜보는 그 못생긴 대머리 영감인가? 생긴 것부터 싸하더니.”

그녀는 공중의 어느 지점을 바라보더니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기분 나쁜 저 기구부터 터뜨려 줘야지. 기분 나쁘게 감히 누구를 훔쳐봐.”

일순간 얇은 흑색 실 같은 것이 그녀의 손가락에서 쏘아져 나간 느낌이었는데, 제대로 보이지 않았기에 잘못 본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해 줄 답은 없다. 널 여기 데려온 네 약혼자를 원망해라.”

“아아, 에반 테일러스?”

여자의 녹안에 더 짙은 분노의 광기가 타올랐다.

“방금 말 잘못 꺼냈어. 그 자식 얼굴 떠오르니까 더 열받아서, 역시 곱게 죽이기는 힘들겠다.”

약혼자 얼굴을 떠올리는데 열이 받는다고……?

머릿속에 쎄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설마.’

그리고 그때 오셀로의 손에서 뻗어 나온 어떠한 형태에 남자는 온몸이 굳었다.

“너희들은 감히 샤샤 윈체스터에게 허튼짓을 하려 했어. 그 애의 털끝 하나 건드렸다가 태어난 걸 후회하며 죽나, 오늘 나한테 깔끔하게 베어 죽나 그게 그거일 테니…….”

검은 형태가 보이는 오러의 검.

“아무튼 죽어라, 벌레 같은 자식들아.”

오러, 소드 오러…… 검은 뱀이 휘감고 있는 듯한 오러의 형태이다.

“……!”

“소드 오러라고?!”

남자의 외침은 오래가지 않았다.

오셀로의 소드 오러가 대지를 꿰뚫었기 때문이다.

강렬한 흑염의 기운은 남자들 중 세 명을 한 번에 쓰러트렸다.

그제야 남자는 제가 잘못된 의뢰를 받았음을 깨달았다.

“…….”

가능성은 둘이다.

하나는 샤샤 윈체스터 공녀가 사실은 흑염의 이능은 물론 오러까지 사용하는 엄청난 강자인 것.

다른 하나는 눈앞의 이 흉포한 여자가…….

“하하하하하! 언젠가 꼭 테일러스의 숲을 엉망으로 만들고 싶었어! 불태우고 싶었다고!”

……샤샤 윈체스터가 아닌 것.

여자의 가냘픈 손에 다시 흑염의 오러가 서렸다.

쿠과과과광-!

* * *

남자들을 모두 쓰러트린 오셀로의 입가에는 선연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그리고 뒤늦게 아차, 하며 입술을 달싹였다.

“한 놈은 살려 둘걸, 그래야 그 대머리 영감이 사주했다는 걸 말해 줄 텐데.”

하지만 이내 어깨를 으쓱했다.

“……아, 하나 남았잖아?”

오셀로의 말에, 나무 뒤에 숨어 있던 하녀는 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마…… 마녀…….’

깔깔 웃으며 훈련된 자객들을 쓰러트리는 공녀의 위력은 막강했다.

보았던 모든 것이 거짓말처럼……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제발…… 제발…… 그냥 지나갔으면…….’

하지만 하녀의 간절한 바람은 오래가지 않았다.

“으아아악!!”

오셀로가 하녀가 숨은 나무 옆으로 고개를 쑥 들이밀었기 때문이다.

오셀로에게 이 숲속에 숨어 있는 누군가를 찾기란 식은 죽 먹기라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눈물 콧물을 흘리며 하녀는 애원했다.

“제…… 제발 살려 주세요! 제발 살려 주세요, 공녀님!!”

새카만 흑염의 기운은 목을 옭아매는 느낌이었다.

“잠깐, 생각해 보니 너…… 낯이 익네.”

오셀로는 수년 전 테일러스의 볼모로 와 있을 때, 자신을 기분 나쁘다는 듯 쳐다보며 중얼거리던 하녀의 얼굴을 기억해 냈다.

“사리 분간 못하는 건 여전하고, 건방져서 명을 재촉하는 것도 여전해.”

“아악, 살려 주세요!”

더욱 짙어지는 기운의 중압감에 하녀는 바닥으로 머리를 박았다.

벌벌 떨며 애원하는 와중 오셀로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살고 싶어?”

악마의 목소리였지만 하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애원했다.

“네, 살려 주세요. 공녀님, 제발요…….”

오셀로의 입술 끝이 악당처럼 비틀렸다.

“살려 줄지 말지는 네가 다 불고 나면 결정할게.”

* * *

망원경의 렌즈는 찰나의 순간에 터져 버렸다.

아카다에서 큰돈을 주고 구해 온 귀한 것인데, 아깝게 되었다.

‘언젠가 항의를 해야겠어. 중요한 순간에 이렇게 부서져서, 제대로 보지도 못했잖아.’

홀스는 투덜대었다.

아마 지금쯤 자객들이 윈체스터 공녀를 납치했을 것이다.

되도록 건들지 말라고 했지만, 자객 대장이란 놈이 호색한이어서 지금쯤 무언가 일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겠다.

‘뭐, 그 일까지 염두에 둔 거니. 흐흐.’

윈체스터 공작의 분노가 에반 놈을 향하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그때 제 방문이 쿵쿵 울렸다.

홀스는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어떤 놈이냐.”

하지만 대답 없이, 다음에 들려온 소리는 더욱 컸다.

콰직-!

강한 충격의 소리와 함께 문이 통째로 넘어갔다.

쿠콰광-!

앉아 있던 홀스는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먼지가 피어오르는 방의 입구에는, 여기 있으면 안 되는 자가 서 있었다.

홀스는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은 표정으로 경악하며 삿대질을 했다.

“위…… 윈체스터 공녀!!”

살벌한 광기가 어린 눈을 빛내며, 즐거운 듯 입술까지 비튼 그녀는 한 손에 하녀의 뒷덜미를 잡고 서 있었다.

위풍당당한 기운이 온몸에 배어 있었다.

‘대체 어떻게!!’

홀스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그 자객들은 굉장히 뛰어난 이들이고, 에반은 지금 자신이 이어받은 정무에 적응하느라 바쁘다.

그래서 약혼식이 있는 이틀 뒤까지 서로 떨어져 있을 것이다.

하녀를 통해 외곽까지 공녀를 끌어냈으면 변수 따위는 없을 텐데 대체 왜……!

“귀신이라도 본 듯한 얼굴이군.”

홀스는 본능적인 두려움에 뒤로 두 발짝 물러섰다.

“고…… 공녀,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

홀스의 머리가 재빠르게 돌아갔다.

‘흑염을 사용하지 못한다고 했는데…… 설마 자객들을 쓰러트린 건 아닐 테고…… 우선 상황을 파악하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씀해 주시면 제가 조치를…….”

“야, 말해.”

공녀의 사나운 눈초리가 하녀에게 향하자 하녀가 바들바들 떨며 엎드렸다.

“다 홀스 님이 시키셨어요. 자객들이 있는 외곽 숲으로 유인하라는 말씀도, 그리고 아가씨의 음식에 독을 넣으라고 하셨습니다…….”

“아, 독도 그랬구나. 근데 그거 내성 있어서 소용없는데.”

손을 풀며 중얼거리던 윈체스터 공녀가 주먹을 꽉 쥐었다.

분명 여자의 주먹이었다.

그런데 보통이 아닐 것 같은 예감이…….

“고…… 공녀…… 저 미천한 것이 거짓을…….”

“닥치고 너도 죽어.”

퍽-

홀스는 대번에 쌍코피를 뿜으며 장렬하게 뒤로 나가떨어졌다.

녹안에 선명한 광기가 서려 있었다.

‘샤샤 건드리려고 했던 새끼들은 다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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