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 가문의 병약한 막내님 123화
[‘네 열쇠의 조합’ 퀘스트를 달성하였습니다.]
[퀘스트 보상 : 메키우스의 가호]
그것은 황금색의 종이었다. 종의 표면에는 아름다운 용의 자태가 조각되어 있었다.
손에 들 만한 작은 크기였고, 나는 그것을 잡았다.
‘이능을 강화하는 게 아니라…… 아이템을 주는 거였어?’
조금 묵직했지만 충분히 쥐고 흔들 정도는 되었다.
조합해서 나온 아이템답게 아이템 설명이 떴다.
[세 번의 종소리가 들리면 악이 발걸음을 돌이킵니다.]
의외로 간단한 아이템 설명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악이 발걸음을 돌이킨다는 건 페르세토스를 물리칠 수 있다는 건가.
그런 것치고는 조작법이 너무도 간단하다.
‘그냥 이렇게 종을 흔들면…….’
나는 종을 한 번 흔들었다.
“…….”
하지만 종소리는 울리지 않았다.
“응?”
나는 다시 잡고 세게 흔들어 보았다. 그러나 역시 종소리가 울리지 않았다.
이게 만약 고장 난 것이 아니라면 종이 울리는 조건이 있는 걸까.
하지만 그에 대해서는 별다른 설명이 나와 있지 않았다.
한참 동안 종을 이리저리 살피던 나는 그것을 인벤토리에 넣었다.
그리고 [기억 저장소]를 통해 문헌을 찾아보기로 했다.
기억 저장소를 구현하자 수많은 책들의 목록이 보였다.
‘종…… 종…….’
어디에도 메키우스의 종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윈체스터에 돌아가면, 흑탑에서 모든 책을 샅샅이 읽어 봐야겠어.’
* * *
다음 날 아침, 오셀로는 이마를 짚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머리 아파.”
눈을 가늘게 뜬 오셀로를 보며 나는 혀를 끌끌 찼다.
“그러게 적당히 좀 마시지.”
“어제 어떻게 된 거야?”
“나는 무사히 약혼을 마쳤고, 오빠는 술을 실컷 마시고 주정을 부렸어. 결혼하지 말라느니, 혀가 엄청 꼬여서는.”
“……그거 말고 다른 말은 안 했어?”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됐어.”
오셀로는 제 머리카락을 이마 뒤로 넘기며 말했다.
나는 오셀로에게 말했다.
“씻고 와. 발코니에 에반이 와 있으니까.”
“뭐?”
오셀로가 눈썹을 찌푸렸다.
“아침부터 여자 방에는 왜 오는 건데.”
“뭐 어때, 나 혼자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애초에 내 방도 아니잖아…… 어젠 어쩔 수 없이 여기에서 잤을 뿐이라고.”
“무방비해, 샤샤. 잘 들어. 남자는 믿지 말…….”
오셀로가 투덜거리건 말건 나는 말했다.
“네 가지 열쇠로 얻은 물건이 있어. 이제 그것에 대해 머리를 맞대 보아야지.”
오셀로는 마지못해 침대에서 일어나서 샤워를 하러 들어갔다.
나는 잠시 후 에반이 앉아 있는 발코니로 갔다.
두 개의 찻잔, 찻물은 조금 식어 있었다.
“오셀로 공자는 일어났나?”
“네, 방금요. 술값은…… 윈체스터에 청구하셔도 돼요.”
나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에반이 피식 웃음기를 띠며 말했다.
“약혼녀의 오라비에게 야박하게 굴 정도로, 테일러스의 재정 상황이 나쁘지는 않아.”
어젯밤 오셀로가 먹어 치운 술들은 족히 평민 가정의 수년 생활비는 되는 정도의 금액일 것이다.
“이해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나는 격식 있게 감사 인사를 했다.
그리고 잠시 뒤 에반과 눈을 맞추었을 때, 그가 나를 계속 빤히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
“전처럼 격 없이 대해 달라고 해도, 역시 쉽지 않은가 보군. 나는 감옥에서의 만남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
에반의 말에 나는 문득 과거의 일을 떠올렸다.
“그때는 일곱 살이었고, 지금은…….”
에반은 고작 일곱 살인 나를 죽이겠다고 했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책을 보며 응원하던 에반의 인격이 달라진 모습에, 그에게 쓴소리 비슷한 것을 했었지.
주제넘게 자신을 비난한다고 나를 미워할 수도 있었지만 에반은 오히려 내게 다가왔다.
나를 위해 한 발짝, 한 발짝, 다시 앞으로 나아갔지.
“……가주님과 약혼할 정도로 자랐으니까요.”
나는 에반에게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볼에 따스한 바람이 느껴졌다.
“마음에 드는 대답이군. 기분이…… 좋아질 정도로.”
에반의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레카르도는 나의 어린 시절을 표현하며 앞뒤 분간 못하는 망아지 같은 성격이었다고 지칭했다.
퀘스트만 떴다 하면 앞뒤 안 가리고 돌진했던 시절이 있었지.
“샤샤…….”
이어서 내 이름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에 움찔했을 때, 발코니로 들어오는 오셀로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함, 성질 급하게 아침부터 와서 사람 쉬지도 못하게…….”
투덜투덜, 나는 오셀로에게 눈치를 줬지만 에반은 느긋한 표정 그대로였다.
오셀로는 에반과 마주 앉은 내 의자를 옆으로 조금 민 뒤, 자신이 에반을 마주 보았다.
아주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아, 머리야…….’
그래도 막 씻고 나와서인지 오셀로에게서 향긋한 냄새가 풍겼다.
술 냄새까지 풍겼으면 정말 싫었을 뻔했다.
“아무튼 시작하지. 대책 회의.”
오셀로의 말에 나는 한숨을 삼키고 입을 열었다.
“우선 제가 물건을 하나 보여 드릴게요.”
* * *
“와아…… 설마 했는데.”
백탑에 들어선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이미 네 열쇠를 합쳐서 종으로 만들어 버린지라, 각 탑에 출입은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 종을 가져다가 대어 봐. 물건의 형태가 변해도 본질은 그대로인 경우가 많으니.
그런데 카드키처럼 종을 가져다 대자 백탑의 문이 열릴 줄이야.
이걸로 지탑이나 수탑도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 된다.
- 종의 쓰임에 대해서는 백탑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열두 개의 층.’
백탑은 흑탑과 마찬가지로 열두 개의 층으로 되어 있었다.
수많은 도서들과, 테일러스가의 가보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백룡의 동상을 터치해도, 흑룡 때처럼 선물이 뜨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여기 들어와서 마음껏 책과 자료를 읽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들떠 있었다.
나는 빠르게 백탑의 책들을 골라서 읽기 시작했다.
과연 흑탑만큼이나 유용한 지식들이 잔뜩 있었다.
‘이 파라티온 아카다 전기를 먼저 읽었다면, 오셀로가 그 음식을 먹고 여자로 변하는 일은 없었을 텐데…….’
실용 서적부터 테일러스의 시각으로 쓴 대륙의 역사에 관한 책까지.
고서까지도 훌륭했다.
‘문제는…… 종을 쓰는 방법에 대한 책은 없네.’
나는 인벤토리에 넣어 둔 종을 노려보았다.
아이템 설명만 읽어도 카드키 용도로 사용하라고 만들어진 것은 아닐 텐데, 도무지 어떻게 쓰는지 모르겠다.
과거에 흑탑의 열쇠가 주인을 판단해 문을 안 열어 주었던 것처럼, 혹시 이것도 주인의 기량을 파악해 종소리를 안 내는 건가 하는 합리적 의심까지 들고 있었다.
어떻게든 알아내고 만다, 생각하며 책을 덮었다.
물론 성과가 하나도 없지는 않았다.
엘릭서 제조를 다루는 책이 있었는데 이것도 완전본은 아니지만 현재 80퍼센트 이상에 도달한 엘릭서 제작에 몇 퍼센트라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돌아가서 카실리온을 만나면 알려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럼, 오늘은 끝.’
이틀 뒤 윈체스터로 돌아가기로 했다.
백탑을 내 마음대로 옮길 수는 없으니 그때까지 이곳의 책들을 최대한 읽어 지식 보관소에 저장해 놓는 것이 최선이다.
아마 내일도 백탑에 박혀 있는 하루가 될 것 같다.
독서를 끝낸 내가 탑 밖으로 나오자 어느새 하늘이 캄캄해져 있었다.
“으으, 찌뿌둥해.”
약혼식도 끝나고 할 일은 집으로 돌아갈 일밖에 남지 않았기에 나는 처음에 입었던 기사의 옷을 입은 채였다.
누군가 공녀임을 알아볼 일이 없으니 귀찮을 상황도 없을 것이다.
탑을 나서서 방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걷고 있을 때였다.
“못된 윈체스터, 죽어라!”
“죽어라!”
앳된 목소리들에 흠칫한 나는 황급히 소리가 나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윈체스터 죽어라! 어둠의 윈체스터는 죽어 마땅해!”
덤불 주변에서 아이들 서넛이 전쟁 놀이를 하고 있었다. 예닐곱 살쯤으로 보이는 아이들이었다.
그러고 보니 약혼식 때도 봤던 아이들 같은데, 테일러스의 혈족인가 보다.
목검을 가지고 있는 두 아이는 하얀 종이를 몸에 두르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테일러스, 그리고 새카만 가죽을 걸치고 있는 한 아이는 보나마나 윈체스터 역이었다.
“큭! 내가 죽다니! 역시 테일러스가 너무 강하다!”
윈체스터 역할을 맡은 아이는 장렬히 전사하고, 다른 아이들 둘이서 만세를 불렀다.
“테일러스가 이겼다! 테일러스 최고!”
“테일러스 만세! 나쁜 윈체스터는 테일러스의 발끝에도 못 미친다고!”
놀이가 끝나고 윈체스터 역할을 했던 아이가 일어서서 뾰로통하게 말했다.
“이제는 나도 테일러스 할래. 윈체스터는 싫어.”
“나도 싫어. 그냥 네가 계속해.”
“맞아. 안 그러면 안 놀아 준다.”
두 아이의 역할 강요에 윈체스터 역할을 했던 아이가 울상을 지었다.
‘흐음…….’
그 모습을 유심히 보던 나는 아이들에게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