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암살 가문의 천재 어쌔신-3화 (3/200)

3화. 암살 가문의 어린 천재 (1)

“시엔.”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것은 저택에 온 뒤로 반년 만의 일이었다.

일말의 기척조차 없이, 항상 상대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각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그 움직임은 지금의 시엔이 깨달을 수 있는 수준의 움직임이 아니었다.

한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공작 가문의 수장이라고 믿을 수 없는, 극도로 은밀히 절제된 달인의 기도비닉(企圖秘匿).

“오랜만이구나.”

“……나이트워커 공작 각하.”

“그런 딱딱한 호칭으로 부르지 말렴.”

정중하게 예를 표하는 시엔을 향해 라일라가 고개를 젓는다. 평소의 그녀답지 않게 상냥하고 다정한 미소를 머금은 채로.

“저는 아직 가문의 일원이 되지 않았는걸요.”

“하지만 곧 될 거잖니.”

시엔의 말을 가로막고 라일라가 말을 잇는다.

“하이드 경이 보고하길, 벌써 세례를 거행할 준비가 됐다더구나.”

“준비는 처음부터 되어 있었어요.”

시엔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들이 받아들이지 못했을 뿐이죠.”

“어머, 그것참.”

시엔의 말에 라일라가 무심코 웃음을 터뜨렸다.

당돌하다고 해야 할지 오만하다고 해야 할지. 라일라는 어느 쪽도 아님을 알고 있다. 이 아이는 그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뿐이다.

“보아하니 정말로 준비가 된 것 같구나.”

저택에 온 아이들이 혹독한 훈련 끝에 살아남아서 자신의 그릇을 증명하면, 정식으로 가문의 일원이 되기 위한 의식을 거행해야 한다.

일명 「세례성사」가 바로 그것이다.

교회에서 물로 죄를 씻는다는 종교적 의례를 말하는 게 아니다. 다시 태어난다는 표현은 문자 그대로의 의미였다.

가문의 비전을 통해 뼈와 근육은 물론이고, 신경과 세포 단위에서 육체를 강화하고 재구축하는 인위적인 환골탈태의 과정.

정상적인 방법으로 이런 완성된 육체를 얻기 위해서는, 재능 출중한 기사가 수십 년 동안 뼈를 깎는 노력을 거듭해도 보장할 수 없는 고도의 경지다.

일단 성공만 하면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뛰어넘는 초인적인 힘과 강화된 육체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강화된 육체조차 밤을 걷는 자들에게는 출발선에 서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에 불과했다. 그마저 그들이 구사하는 기술이나 검식을 오롯이 감당할 수 있다고 보장하기 어려웠으니까.

그런 까닭에 저택에 이끌린 아이들이 배우는 모든 훈련은, 바로 이 혹독한 개조 시술을 버티기 위한 사전 작업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아무리 늦어도 15살 전까지는 세례를 마쳐야 한다. 그러나 치열한 훈련 끝에 살아남고 연단된 아이들조차 이 극단적인 변체(變體)의 과정을 감당하지 못하고 대부분 목숨을 잃는다.

─그런데 지금 시엔의 나이는 고작 9살 남짓.

아홉 살 어린아이가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가문의 역사를 통틀어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딱 한 명 있기는 했다.

「밤의 아버지(Nightfather)」 또는 「최초의 밤을 걷는 자」 카산 나이트워커.

가문의 시조가 되는 산상노인 카산이 시엔과 같은 9살 나이에 세례를 받았다는 옛 문헌상의 기록이 남아 있긴 하다. 이제는 그 진위조차 제대로 확인할 수 없는 수백 년 전의 옛날이야기다. 그의 일화는 가문 내에서조차 지나치게 과장된 신화나 전설로 취급되기 일쑤니까.

심지어 그의 유년 시절은, 여기가 아니라 저 이역만리 동방 대륙에서 ‘하산 사바흐’로 불리던 때가 아닌가.

그런데 눈앞에 있는 이 아이는, 그런 수백 년 전의 허무맹랑한 신화를 체현하고 있다.

빨라도 너무 빠르다. 성급하게 일을 그르치는 것보다 좀 더 신중하게 시간을 들이는 게 좋지 않을까?

그녀가 그렇게 말했을 때, 그림자 기사단장 하이드 경이 과도할 정도로 신중을 기울였다는 말뜻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경이적인걸.’

문자 그대로 더 이상 가르칠 게 없었다.

라일라의 눈에 비친 시엔의 육체는 아홉 살 어린아이의 수준이 아니었다. 성장 속도나 체격, 근육량이나 골밀도 등의 육체적인 지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런 것들도 더할 나위 없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사소한 부분에 불과했다.

진정한 시엔의 가치는 안쪽에 있었다.

‘……마나의 축적과 순환이 믿기 힘들 정도로 능숙해.’

체내에서 마나를 통제하는 솜씨가 더할 나위 없이 효율적이고 완벽하다.

눈에 보이는 완벽한 육체 이상으로 몇 배는 정교하게 다듬어진 시엔의 내면.

저택에 오고 나서 몇 년 동안 수련을 거듭한 아이들조차 이 정도는 아니다. 아니, 신성 제국의 기사단은 물론이고 제국 마탑의 내로라하는 천재 중에서도 이 정도로 정교한 마나 호흡과 순환이 가능한 아이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이것은 절대 어린아이가 반년 만에 이룰 수 있는 성취가 아니다.

고위 마법사 가문에서 완벽한 혈통을 타고나, 젖먹이 때부터 온갖 영약(靈藥)을 물처럼 마시며 피도 눈물도 없는 엘리트 코스를 밟지 않는 이상에야 불가능하다.

“네가 제조한 독을 보았단다.”

게다가 시엔이 가진 재능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투명하고 깔끔하더구나. 맑은 수프에 타도 쉽사리 눈치채기 힘들 정도로 뒷맛도 깔끔하고.”

“파비오 교수님의 지도 덕분이에요.”

“아무래도 하이드 경의 이야기가 단순한 호들갑은 아니었던 모양인걸.”

그의 말마따나, 단순히 관찰력이 좋다거나 재능이 뛰어나다는 상투적인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느껴진다.

이 아이는 특별하다. 저택의 다른 어떤 아이들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아이는 진짜 천재입니다.’

직전에 하이드 경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라일라가 실소했다.

‘진짜 천재라.’

정말로 그 말대로다. 시엔의 천재성 앞에서 저택의 다른 아이들은 한낱 닭의 무리에 불과하다.

물론 이 저택에 있는 아이들은 절대 닭이 아니다. 저마다 한 마리 학이 되어서 찬란하게 날아오를 가능성을 간직한 재능의 원석이다.

하지만 어떤 찬란하게 빛나는 재능을 가진 아이도, 시엔 앞에서는 그저 빛바랜 돌덩어리에 불과했다. 그 정도로 시엔과 다른 아이들의 격차는 압도적이었다.

“검을 쥐어보겠니?”

“네.”

스산한 밤바람을 뒤로한 채 라일라가 입을 열었다. 시엔이 망설임 없이 소드 벨트에 매달린 한 자루 스틸레토 단검을 뽑았다.

송곳처럼 가늘고 예리한 칼끝이 시린 서슬을 흩뿌렸다.

“칼자루를 쥐는 동작이 무척 깔끔하구나.”

칼끝에 깃든 서슬을 보며 라일라가 말했다. 그걸로 충분하다는 것처럼.

“검을 집어넣으렴.”

“어…… 더 시험하지 않는 건가요?”

뜻밖의 허무한 말에 시엔이 못내 아쉬운 듯 되물었다. 그녀 앞에서 보여주고 싶은 것들이 산더미처럼 있다는 듯. 그런 시엔의 모습을 보며 라일라가 나지막이 미소 지었다.

“달리 보여주고 싶은 거라도 있니?”

“아, 그게─”

“아직 기사들 앞에서 오러 블레이드를 보여주지는 않은 모양이구나.”

“!”

정곡을 찔린 시엔이 놀라서 숨을 삼켰다.

“확실히, 네 나이에 그 정도의 경지를 이루는 것은 전대미문의 일이지. 그래서 숨긴 거니?”

“……맞아요.”

시엔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숨겼다. 심지어 시엔이 숨기고 있는 비기는 그것뿐이 아니었다.

“눈치가 빠르다는 건 좋은 미덕이지. 때로는 침묵할 줄도 알아야 하거든.”

“그래도 당신에게는 꼭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미 충분히 보았단다.”

─도대체 어떻게 그 어린 나이에 오러 블레이드를 펼칠 수 있는지, 정말 쓸 수 있기는 한지 캐묻거나 의심하는 일조차 없다. 그저 아들의 말을 신뢰하는 어머니처럼 미소 지을 따름이다.

“그리고 아직 보여주지 않은 것들은, 조금 더 훗날의 즐거움으로 남겨두자꾸나.”

그 말대로다. 굳이 거창하게 그림자 기사들의 상급 검식을 펼치고 오러 블레이드를 보여줄 필요조차 없다. 그녀는 아주 사소한 행동 하나를 보고서도 바다처럼 많은 것들을 헤아릴 수 있었으니까.

시엔 역시 모를 리가 없다. 그러나 아주 조금이라도 더 그녀의 마음에 들기 위해, 필사적으로 자신의 뛰어남을 어필하려는 모습에 얼굴이 붉어졌다.

몸이 아니라 마음마저 ‘진짜 어린아이’가 된 듯한 부끄러움에.

“네가 내 아들이 되어주면 무척이나 기쁠 것 같구나.”

“될 거예요.”

귀가 빨개진 시엔이 대답했다.

“저도 그러길 바라니까요.”

“그러니.”

지금까지와 사뭇 다른 목소리에 라일라가 흥미로운 듯 미소 짓는다.

짧은 문답 끝에 라일라는 망설임 없이 등을 돌렸다. 그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고.

시엔 역시 한동안 그런 라일라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오래 기다렸다.’

하이드 경을 비롯한 그림자 기사들이 시엔의 경이적인 재능에 감탄하는 것과 별개로, 정작 시엔으로서는 하루하루 속이 타는 것 같았던 반년이었다.

시엔은 그들이 가르치는 모든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심지어 그들보다 더 잘 알았다.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이미 한 번 가문의 정점이자, 가문의 역사를 통틀어 단 4명밖에 도달하지 못한 「그랜드 어쌔신(Grand Assassin)」의 경지에 이른 시엔이다.

그런 시엔이 보기에, 가문의 사냥개에 불과한 그림자 기사들의 가르침은 턱없이 어설프고 미숙했다. 가정교사들의 가르침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아무리 빨리 배운다고 해도 몇 년은 걸리게 될 육성 과정을 하루아침에 끝마칠 수는 없다. 다짜고짜 배우지도 않은 기술을 펼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애초에 지금의 연약한 육체로는, 밤을 걷는 자들의 검식은 말할 것도 없고 가장 기본적인 연공법(練功法)조차 감당하지 못할 테니까.

그런 까닭에 시엔은 묵묵히 인고의 나날을 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불길할 정도로 꺼림칙한 재능을 가진 천재.

남들이 어떤 눈빛으로 자신을 보든지 개의치 않고, 세례의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 해낼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일단 무사히 세례를 마치고 가문의 초인적인 육체만 손에 넣는다면 많은 게 달라질 것이다.

기다렸던 때가 눈앞에 있었다.

* * *

그날 새벽, 가주 라일라의 이름으로 ‘가문 회의’를 소집한다는 전서가 각지에 퍼져나갔다.

머지않아 세 아이의 세례식이 거행될 것이다.

대륙 벽지에서 의뢰를 수행하는 몇몇 인원들, 그리고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몇 명을 제외하고, 가문의 구성원이 모이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오랜만입니다, 누님.”

“어서 오렴, 미하일.”

라일라의 집무실에 핏빛 머리카락의 청년이 찾아온 것도 그즈음의 일이었다.

“칠왕국 군도에서의 일은 잘 마무리됐니?”

“참으로 유감스럽게도…….”

남자는 짐짓 과장스럽게 고개를 숙이며, 라일라의 손등 위에 입맞춤했다.

“제1왕 누아다와 그의 첫째 아들이 ‘불행한 사고’로 운명하셨습니다.”

“어머나, 그것참 불행한 소식이구나.”

라일라가 차갑게 웃는다.

“그러고 보니, 저택에 흥미로운 아이가 나타났다고 소문이 자자하더군요.”

“재미있는 아이란다.”

라일라가 미소 지으면서 대답했다.

“아홉 살이라고 믿을 수가 없을 정도로 총명하고 영특하지.”

“나이는 믿을 수 있습니까?”

“그 아이, 시엔을 육성한 범죄 길드의 장부에 기록이 적혀 있었거든.”

라일라가 말을 잇는다.

“오늘로 마침 9년하고 다섯 달이 지났더구나.”

“뒷골목 범죄자 놈들의 장부를 신뢰하는 겁니까?”

“시엔의 활약은 도시 내 여러 루트를 통해서 교차 검증을 확보했지. 1년 전부터 무척 악명이 높았거든.”

“악명이라니─”

“적대 중이던 범죄 길드는 물론, 도시 경비대조차 그 아이를 고도로 훈련된 전문 암살자로 착각한 모양이야. 거액을 들여서 상류 사회에서 활약하는 일급 암살자를 고용했다고 생각하더구나.”

“……올해 겨우 아홉 살이 된 꼬맹이가 말입니까?”

“너무 늦지 않아서 다행이었지.”

그 아이는 지나칠 정도로 뛰어났다. 그래서 버려졌다. 라일라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여러 가지로 수상하군요.”

“음, 글쎄.”

시엔이 보여준 활약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을 뛰어넘었다. 오히려 수상하게 여기지 않는 쪽이 이상할 지경으로.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라일라는 그저 어깨를 으쓱일 뿐이다.

“그렇지만 아주 특별한 아이란다.”

“…….”

등 뒤로 스미는 역광을 뒤로한 채, 라일라가 나지막이 미소 짓는다. 뜻밖의 모습에 미하일이 놀라서 눈동자를 끔벅거렸다.

마치 아들 자랑을 하는 어머니처럼 흐뭇한 미소였던 까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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