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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 가문의 천재 어쌔신-4화 (4/200)

4화. 암살 가문의 어린 천재 (2)

그 시각, 공작 저택 뒷마당에 있는 그림자 기사들의 수련장.

해가 중천에 뜬 시간. 사방이 탁 트여 있는 공터였다. 그러나 수련장 일대는 사방에서 부서져 내리는 햇빛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밤중의 칠흑이 깔린 듯 어둡고 캄캄했다.

어둠의 정체는 그림자 기사단장 하이드 경이 펼친 결계 마법이었다.

마법을 쓰는 기사단장이라니─.

검(劍)과 오러의 힘을 다루는 기사에게 있어, 마법의 원천이 되는 마력은 금기시되는 상극의 힘이다. 어설프게 두 가지 힘 모두를 병용하려 들었다가는 마나가 폭주를 일으켜 폐인이 되기에 십상이니까.

하지만 그림자 기사들에게 있어 그것은 그리 유별난 일이 아니었다. 그들이 섬기는 나이트워커 가문의 암살자들이 그러하듯, 그들 또한 일반적인 기사와는 궤를 달리하는 자들이었으므로.

그들은 기사도(騎士道)를 숭상하지 않는다.

기사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그 어떤 명예나 긍지도 없다. 명예를 알기는커녕 자기 이름조차 밝히려 들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반드시 주어진 임무를 완수했다.

대륙 제일의 암살자 가문에 충성하는 사냥개로서.

─밤의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저택에 이끌린 아이들은 모두가, 정식으로 세례를 받기 전까지 그림자 기사들 밑에서 그들의 싸우는 법과 이념을 배운다.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한다(Exitus acta probat).”

“칼날은 많을수록 좋다.”

“손에 쥘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무기다.”

“목격자가 없으면 암살이다.”

밤 아래에는 언제나 그림자가 있다. 아이들이 그림자 기사의 방식을 배우는 것은, 곧 가문의 방식을 배우는 것과 같다.

“시엔.”

짙게 내리깔린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그림자 기사단장 하이드 경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비고.”

주변이 어둡다. 눈을 감은 시엔이 손에 들린 칼자루를 고쳐 잡았다.

“지금부터 일대일 모의 대련을 시작하겠다.”

제5위계(5th Class) 결계 마법 「므두셀라의 어둠 장막」.

이 안에서 가로막히는 것은 시각이 전부가 아니다. 전신에 납덩어리를 몇 개씩 얹은 것처럼 감각이 무겁고 둔해질 테니까.

슈욱─!

그 순간, 코앞을 식별할 수 없는 어둠 속에서 날붙이가 시엔을 향해 쇄도했다.

카앙!

거리가 좁혀진다. 칼날과 칼날이 맞부딪치며 불씨가 튀었다. 잇달아 투박한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악!”

쇳소리에 이어서는 남자아이의 비명이 울려 퍼진다. 쥐고 있던 칼자루를 바닥에 떨어뜨리면서.

어느새 시엔의 손에 들린 칼끝이 남자아이의 미간을 겨누고 있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연계였다.

“어떻게……!”

“내 승리야, 비고 형.”

겨누어진 칼날 앞에서 상대 남자아이, 비고가 경악한다. ─도무지 인간의 눈동자라고 상상할 수 없는 기이한 광채가 깃든 눈으로.

어둠 속에서 정확한 시력을 가질 수 있게 도와주는 기초적인 1위계 보조 마법 「야시의 눈」.

하지만 비고가 마법을 써서 취한 전술상의 우위로도 시엔이 가진 순수한 감각을 당해낼 수 없었다.

한 치 앞조차 식별할 수 없는 어둠 속에서 시엔이 고개를 들었다. 이깟 어둠 따위는 결코 앞을 가릴 수 없다는 듯 태평하게.

“좋은 움직임이었어.”

“시엔…….”

“그렇지만 마법에 감각을 의존하는 건 좋은 습관이 아니야.”

칼날을 겨눈 시엔은 날붙이의 방향을 거꾸로 고쳐 잡더니, 칼자루를 비고에게 넘겼다. 비고가 넘겨준 칼자루를 잡고 일어섰다.

“조반니가 이 안에서 널 한 번 이겨본 적 있다던데, 대체 어떻게 이긴 거야?”

비고와 시엔. 끝으로 이곳에는 없는 조반니. 그들은 머지않아 세례를 앞둔 저택의 세 아이였다.

“걘 나한테도 이긴 적이 없는데.”

“……한 번 져준 거야.”

“내가 그럴 줄 알았지.”

“자기가 이길 때까지 끝이 날 기미가 안 보이길래.”

시엔의 말에 비고라 불린 남자아이가 웃음을 터뜨렸다.

“너는 진짜 당해낼 수 없구나.”

처음에는 질투도 했다. 으레 짓궂은 남자애 무리가 그렇듯 질 나쁜 해코지를 감행한 적도 있었다.

그것이 얼마나 철없다 못해 어리석은 행동이었는지를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나도 압도적인 격차 앞에서, 그런 어중간한 시기나 질투 따위는 아무 의미도 없다.

그저 초연해질 따름이었다.

반년이란 시간은 비고에게 있어 그 사실을 깨닫게 하는 데 충분했다. 다른 아이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수련장에 있는 그림자 기사들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하이드 단장님의 결계 속에서 이 정도의 정확도를 펼치다니…….’

이런 어둠 속에서도 정확히 상대의 위치를 파악하고 땅을 박찬 밤의 아이, 비고 또한 범상치는 않다. 당연하다. 이곳은 애초에 압도적인 재능의 원석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니까.

그런데 그 안에서조차 시엔이 보이는 경지는 감히 궤를 달리하는 것이었다.

나이트워커 가문의 암살자들에 비교할 바는 아니나, 그들 또한 순수한 악명으로 대륙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그림자 기사들이다.

‘체술을 썼나? 아니, 오러의 움직임은 일절 느껴지지 않는다.’

‘설마 순수한 감각만으로 단장님의 결계에서 비고를 상대한 건가?’

‘대체 어떻게…….’

그런 그들조차 시엔의 활약 앞에서는 좀처럼 평정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시엔의 체내에서는 오러나 마력, 어떤 마나의 움직임도 감지되지 않는다.

그런데 다른 누구도 아닌, 그림자 기사단장 하이드 경의 결계 마법 안에서 이토록 완벽한 움직임을 펼칠 수 있다고? 오러와 마력의 힘을 자유자재로 동시에 병행하는 14살짜리 밤의 아이를 상대로? 말이 안 된다. 아니, 불가능에 가깝다.

바로 그때였다.

“여기 있었구나.”

일대를 휘감고 있던 칠흑의 연무(煙霧)가 눈 녹듯 스러진다.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에. 느긋한 목소리가 울려 퍼질 때까지 그곳에 있던 그림자 기사들은 미처 그 기척을 깨닫지 못했다.

─단 두 명, 기사단장 하이드 경과 시엔을 제외하고.

“한참 찾아다녔잖아.”

“……!”

“네가 시엔이구나.”

그 외의 이들이 미처 깨닫지도 못하고 있는 사이에, 한 남자가 그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누님이 네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고.”

말끔한 정장 차림에 엉망으로 헝클어진 핏빛 머리카락. 세련됐지만 어딘가 다소 경박한 인상을 주는 청년이었다.

“다, 당신은……?”

남자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비고가 당황해서 되묻는다. 시엔은 말없이 침묵을 지켰다. 심지어 비고처럼 남자의 정체를 되묻는 일도 없었다.

모를 리가 없었으니까.

‘미하일 삼촌─.’

라일라의 어리고 철없는 남동생이자 가문의 막내.

지금의 그는 시엔을 모르지만, 시엔은 그렇지 않았다.

“흠, 과연.”

헝클어진 적발의 남자, 미하일이 턱밑을 쓰다듬으며 시엔의 모습을 위아래로 훑는다. 눈앞의 상품을 감정하는 듯한 차가운 눈동자를 하고서.

“누님께서 그렇게나 호들갑을 떠는 이유도 납득이 가네. 확실히 평범한 애송이는 아니야.”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그런데 너무 이상하단 말이지.”

의심스럽다는 눈으로 미하일이 말을 이었다. 수련장 일대의 그림자 기사들은 신경조차 쓰지 않고.

“너, 진짜로 아무것도 못 배운 뒷골목 출신이냐?”

“그렇습니다.”

“친애하는 우리의 섀도우 마스터(Shadow Master)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미하일이 곁에 있던 그림자 기사단장 하이드 경을 향해 되물었다.

“지금 미하일 공께서 보이시는 행동은, 공작 각하의 의중입니까?”

“누님은 말이야, 사람이 너무 좋아서 탈이야.”

하이드 경의 물음에 미하일이 남의 일처럼 답했다. 그가 말하는 ‘누님’이 누구를 지칭하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공화국 동부 자유도시의 슬럼에서 자랐다고 했지.”

“맞아요.”

“근데 나는 못 믿겠거든. 그런 밑바닥 범죄자 놈들의 기록 따위를 신용할 수가 있나.”

미하일이 싸늘하게 내뱉는다.

“게다가 수상쩍은 게 한두 가지여야 말이지.”

“뭘 의심하는 거죠?”

“하나부터 열까지.”

“…….”

“누님께 이야기를 좀 들었거든. 겸사겸사 네 가정교사나 그림자 기사들과도 이야기를 나눴지. 재능이 뛰어나고, 잘나고, 머리가 좋고─, 그까짓 말로 포장할 수 있는 영역을 아득히 뛰어넘었더군.”

미하일이 말했다.

“놈들 밑에서 길러질 때부터, 고도로 훈련된 전문 암살자에 가까운 활약을 보였다면서?”

시엔이 저택에 오고 나서 반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그 반년 사이에 시엔이 쌓아 올린 것들을 되새기며, 심지어 그 전부터 보여준 시엔의 활약에 미하일이 황당하다는 듯 말을 잇는다.

“뭐, 그래. 사실 잘났다는 게 딱히 나쁜 건 아니지. 애초에 여기는 그런 잘난 애들밖에 못 오는 데니까. 그런데 말이야.”

시엔이 미처 대답할 틈도 없이 미하일이 말했다.

“너는 좀 달라.”

“뭐가 다르다는 겁니까?”

“도를 넘었지. 지나치게.”

천부적인 암살자의 재능이 없다면 애초에 이 장소에 있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여기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이트워커 가문이 자신들의 일원을 선택하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니까.

하지만 그런 재능의 원석들이 넘쳐나는 이곳에서도 시엔은 홀로 압도적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밉상스러운 건 여전하군.’

미하일은 글러 먹은 인간이지만 절대 바보가 아니다. 다시 말해, 지금 시엔이 보여준 재능은 가문의 구성원조차 순순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수준이란 뜻이다.

그것은 이미 세기의 재능이나 천재라고 부를 만한 영역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너 같은 놈을 뭐라고 부르는 줄 알아?”

“뭐라고 부르죠?”

“거짓말쟁이.”

“…….”

그 말대로다.

시엔이 저택에 와서 보여준 행적은 그야말로 수상하다는 말 외에 달리 부를 방법이 없었다. 오히려 수상한 게 정상이다. 처음에는 의심도 샀고, 지금에 와서도 그 의심을 완전히 벗어던지지는 못했다.

심지어 그것은 지금 시엔이 보여줄 수 있는 재능의 극히 일부에 불과했음에도.

“아니면 누님의 말마따나, 위대하신 밤의 아버지에 필적하는 재능을 지녔을 수도 있겠지.”

미하일의 말에 시엔이 헛웃음을 터뜨린다. 그림자 기사들은 웃지 못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녀가 그런 말을 내뱉다니!

최초의 밤을 걷는 자, 시조 카산에 필적하는 재능. 그 말의 무게를 모를 리가 없는 그들이었던 까닭에.

“당신이 믿고 믿지 않고는 중요한 게 아닙니다.”

“흠, 어디서 많이 들어본 대사 같은데.”

시엔의 말에 미하일이 쓴웃음을 짓는다.

“그래도 기왕 이렇게 됐으니, 나는 좀 믿고 싶어서 말이야.”

섬뜩한 살기가 시엔의 목덜미를 향해 내달린 것은 직후의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게, 우리는 가족이 될 사이잖니?”

“……!”

“가끔은 이렇게 마음을 터놓고 대화도 해야지.”

눈앞에 있는 미하일 나이트워커는 손끝도 까딱하지 않고 그 자리에 있다.

움직인 것은 그가 아니었다. 직전까지 시엔의 곁에 있던 형 비고였다.

“시, 시엔?!”

비고의 손에 들린 날붙이가 섬뜩하게 빛났다. 아니, 그저 창백하게 빛만 내뿜는 서슬이 아니다. 얼음처럼 딱딱하게 경화된 마나가 칼날에 응축돼 시퍼런 이채를 내뿜고 있었다.

‘오러 블레이드!’

고도의 경지에 이른 검객만이 펼칠 수 있는 검의 극의이자, 강철조차 종잇장처럼 베어버릴 수 있다고 일컬어지는 이상의 칼날.

타앗!

맞받아칠 수 없다. 아무리 시엔이라 하더라도 지금 당장 저 푸른 칼날과 맞서는 것은 자살 행위였으니까.

그런데 시엔보다 몇 수는 아래에 있어야 할 비고가, 기사들의 꽃이라 일컬어지는 ‘오러 블레이드’를 구사하고 있다. 그것도 날붙이 위로 오러를 얇게 덧씌운 수준조차 아니다.

마스터 이상의 기사가 아니고서는 흉내낼 수 없는 검강(劍罡)급 오러 블레이드.

“자, 잠깐만! 시엔! 이건 내가 아니라 몸이 멋대로……!”

“알아.”

겁에 질린 비고가 당황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시엔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답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바로 눈앞에 있었으니까.

“슬슬 숨겨둔 것들을 더 보여줘야 할걸.”

「괴뢰사(퍼펫 마스터)」라 불리는 가문의 암살자가 차갑게 웃었다.

“가족의 믿음을 배신하고 싶지 않다면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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