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암살 가문의 천재 어쌔신-5화 (5/200)

5화. 암살 가문의 어린 천재 (3)

괴뢰사 미하일.

그의 뜻에 따라 춤추는 꼭두각시는 지금까지 시엔이 알던 비고가 아니다. 미하일의 힘을 통해 강화된 능력 역시 격이 달랐다.

강화된 것은 손에 들린 오러 블레이드뿐만이 아니다.

검술이나 보법 역시, 이제껏 비고가 배운 것들과는 완전히 다른 이질적인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전의 대결에서 보여준 것과는 감히 비교도 불가능한 정교하고 기계적인 움직임이었다.

저것은 더 이상 시엔이 알고 있는 비고 형이 아니다. 말 그대로 인형사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꼭두각시였다.

타앗!

미하일의 꼭두각시가 쇄도했다. 눈앞에서 얼음처럼 딱딱한 오러를 휘감은 칼날이 휘둘러졌다. 시엔의 손에 들린 철제 단검을 집어삼키기 위해서.

오러 블레이드는 강철조차 벨 수 있다. 설령 전신을 보호하는 두꺼운 판금 갑옷조차 숙련된 기사의 오러 블레이드 앞에서는 아무 의미도 없다. 하물며 시엔의 손에 들린 칼날은 말할 것도 없는 이야기였다.

그랬어야 했다.

카앙!

바로 그때, 일어날 리가 없는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칼날과 칼날이 맞부딪치는 소리다.

“받아쳤다고?!”

“그럴 리가!”

“이야, 제법인데.”

다른 이들과 달리 미하일은 곧바로 시엔의 기교를 눈치챘다. 힘으로 맞받아친 게 아니었다. 칼날이 맞부딪친 순간, 상대 칼끝의 무게 중심을 몸 바깥으로 비껴내듯 흘린 것이다.

‘아니, 아무리 칼날의 중심을 비껴냈다 해도 오러 블레이드를 상대로─.’

그리고 미하일은 바로 그 짧은 순간, 시엔의 칼날에 깃든 오러의 광채를 놓치지 않았다.

“숨기고 있는 카드는 그것뿐이니?”

“…….”

가까스로 한 차례 칼날을 비껴냈지만, 충격의 여파로 시엔의 칼날은 이가 빠진 뒤였다. 손상이 심하다.

소드 익스퍼트 수준의 기사가 쓰는 검기급의 오러는, 결코 검강급 오러 블레이드를 이길 수 없으니까.

그에 비해 미하일의 표정에는 여유가 넘친다. 마치 시엔이 가진 밑천을 모조리 시험하려는 기세였다. 설령 그 과정에서 ‘불의의 사고’가 발생해도 개의치 않겠다는 표정으로.

그들은 늘 이런 식이다. 나이트워커 가문의 인간들에게 있어 세상 사람들은 딱 두 부류였다.

가족과 가족이 아닌 자들.

시엔이 각오를 다지며 칼자루를 고쳐 잡는다.

어중간한 마음으로는 절대 살아남을 수 없다. 이것은 알기 쉬운 시험 따위가 아니니까. 여차할 때는 숨기려 했던 카드를 모조리 꺼내야 할 수도 있다.

‘마스터 어쌔신─.’

세례를 마친 뒤에 어엿한 한 사람의 몫을 수행할 수 있게 된 가문의 암살자들은, 전원이 예외 없이 「마스터(달인)」의 칭호를 받는다.

시엔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암살자들의 아버지, 시엔 나이트워커 공작.

유구한 가문의 역사 속에서, 시조 카산 이래 4인의 가주밖에 도달하지 못했던 위대한 암살자이자 당대 유일의 그랜드마스터.

시엔이 이빨 빠진 단검을 휘둘렀다. 미하일의 꼭두각시가 미처 움직일 새도 없이.

촤아악!

칼날이 휘둘러지고 피가 흩뿌려졌다. 그러나 비고를 향해서 휘두른 게 아니었다. 시엔이 제 칼날로 자기 손바닥을 내리그은 것이다.

그리고─

“!”

사방으로 흩날린 핏방울이, 과녁을 향해 질주하는 화살 세례처럼 내리꽂혔다.

1위계 공격 마법 「블러드 볼트」.

흩뿌린 혈액 하나하나가 핏빛 화살로 거듭나 쏘아졌다. 십수 명의 궁수들이 일사불란하게 활시위를 당기는 것 같았다.

핏빛 화살이 섬광처럼 내달린다. 겁에 질린 비고가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화살이 비고를 꿰뚫는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비고의 뺨과 귓전을 스치듯 지나며,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향해 내달릴 뿐.

우뚝!

직후 미하일의 뜻에 따라 춤추던 꼭두각시의 움직임이 멈춘다.

비고를 조종하고 있던 마력의 실이 끊어진 것이다.

“어떻게─”

미하일의 표정이 경악으로 뒤틀린다. 그림자 기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혈마법!’

‘아무리 미하일 공이 마력을 숨길 생각이 없었다고 해도 이 정도 정확도라니……!’

그것은 불꽃이나 바람의 힘을 빌리는 단순한 원소 학파의 마법조차 아니었다.

비고의 칼날을 휘감고 있던 오러 블레이드가 덧없이 사라진다. 마찬가지로 꼭두각시의 육체를 내달리며 강화하고 있던 마나의 소용돌이가 거짓말처럼 멎는다.

“허억, 헉!”

괴뢰사의 실에서 풀려난 비고가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낯빛이 죽다 살아난 사람처럼 창백하다.

“역시.”

시엔의 비기에 미하일의 표정이 더욱 차갑게 얼어붙었다.

“어디서 그 마법을 배웠지?”

“저택 서고의 마법서를 보고 독학으로 배웠습니다.”

“흠, 독학으로 배운 것치고 정확도나 솜씨가 예사롭지 않던데.”

“열심히 했거든요.”

미하일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실소를 내뱉었다.

방금 시엔이 보여준 블러드 볼트는, 아무리 1위계라고 해도 이제 막 마법을 배운 풋내기의 그것이 아니었다.

투사체 숫자, 위력, 속도와 정확도, 무엇 하나 나무랄 구석이 없는 100점짜리 실전용 공격 마법이었으니까.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더 묻자.”

다 자란 마탑의 성년 마법사들조차 버거워할 노련미의 경지.

“너, 진짜로 몇 살이냐?”

“아홉 살이요.”

“뭐, 그렇다고 치자고.”

미하일이 크게 웃음을 터뜨린다. 웃고 나서, 거짓말처럼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누구 밑에서 검과 마법을 배웠고, 누가 너를 보냈지? 신성 제국이냐? 샤를마뉴 왕국이냐?”

“저는 제 의지로 여기 있는 겁니다.”

“그렇게 나오신다 이거지. 그럼 나도 뭐…….”

─바로 그때였다.

“그 정도로 해둬.”

화르륵!

목소리와 동시에 흑색의 불꽃이 시엔의 앞에 피어올랐다. 마치 시엔을 지켜주기 위한 장벽처럼.

“그러다 애 잡겠다, 미하일.”

“이자벨 누님……!”

두 사람 사이에 칠흑의 불꽃을 피어 올린 당사자가, 어느덧 시엔의 곁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핏빛 자수를 수놓은 벨벳 드레스 차림의 여성이었다. 어디 귀족 가문의 영애라도 되는 듯한 고귀함과 아름다운 기품을 품고 있다.

「블랙파이어(Blackfire)」 이자벨 나이트워커.

“이게 무슨 짓입니까, 누님.”

“너는 좀 더 가주님─ 공작 각하를 신뢰할 필요가 있어.”

“저 수상쩍은 애송이를 의심하지 않는 겁니까?”

“라일라 언니가 의심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마찬가지로 굳이 의심할 필요가 없지.”

이자벨이 어깨를 으쓱이며 웃었다.

“아무리 그래도…….”

“왜, 자기 옛날 일이라도 떠올랐나 봐?”

이자벨이 키득키득 웃었다. 미하일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저는 어엿한 가문의 일원입니다.”

“누가 뭐랬니, 사랑스러운 우리 철부지 막내야.”

그 말에 이자벨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잇는다.

“네가 불순한 의도를 가진 첩자로 가문에 들어왔다고 해서, 저 아이 역시 그럴 거라는 보장은 없다는 거지. 그렇잖아?”

“누님……!”

“뭐든 도둑이 제 발 저리는 법 아니겠니.”

첩자. 시엔 앞에서 울려 퍼진 그 한마디에 미하일의 표정이 차갑게 일그러졌다.

나이트워커 가문이 갈 곳 없는 뒷골목의 아이들을 거둬 그들의 일원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그런 발상에서 착안해, 의도적으로 밤을 걷는 자들의 눈에 띄게 함으로써 ‘어린 첩자’를 침투시키려는 시도가 몇 번 있었다.

미하일 역시 그런 식으로 육성된 첩자 중 하나였다. 그럼에도 그는 진실을 드러내고 진정으로 가문의 일원이자 가족이 되기를 바랐다.

그런 그의 결의는, 적어도 시엔이 기억하는 최후의 순간까지 유효했다.

“……히스테리 작작 좀 부리고 비키시죠.”

“누나가 이참에 진짜 히스테리가 뭔지 보여줄까?”

“이야, 평소에는 안 부리는 것처럼 말씀하시네.”

“둘 다 그쯤 하렴.”

바로 그 순간.

미하일과 이자벨, 두 명의 밤을 걷는 자들에 이어 또 하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감출 기색도 없이 노골적으로 과시하고 있는 존재감. 지금까지의 난입자들과 격이 다르다. 그 의미를 헤아린 시엔이 조용히 숨을 삼켰다. 바로 전까지 서로 잡아먹을 것처럼 으르렁거리던 두 남매도 마찬가지였다.

“누님……!”

“소란스럽게 해서 미안해, 라일라 언니.”

미하일이 당혹스러운 듯 말끝을 흐렸고, 이자벨이 정중하게 예를 표하며 말을 정정했다.

“─아니, 경애하는 나이트워커 공작 각하.”

“다시 봐서 기쁘구나, 이자벨.”

가주 라일라 나이트워커가 그곳에 있었다.

“마찬가지로 친애하는 우리 가문의 형제자매들도.”

들리는 목소리는 하나였으나 기척은 하나가 아니었다.

암살자들의 어머니, 라일라의 등 뒤로 그녀가 거느린 가문의 일족들이 집결해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 시엔과 다를 바 없어 보이는 또래 소년소녀부터 젊고 아름다운 남녀, 백발이 무성한 초로의 노신사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내뿜는 기백은 비록 라일라에 비할 정도는 아니었으나, 적어도 그곳에 있는 두 어린 남매를 압도하고 있었다.

“돈나(Donna) 나이트워커.”

“우리의 가주, 경애하는 암살자들의 어머니를 뵙습니다.”

각양각색의 모습을 가진 가문의 암살자들이 그들의 수장 앞에서 정중히 예를 표하고 있다.

“공작 각하!”

“삼가 나이트워커 공작 각하를 뵙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림자 기사들 역시 무릎을 꿇고 검을 세로로 내리꽂는다.

“쓸데없는 소란은 이쯤 해두렴, 미하일.”

남동생 미하일의 철없는 행동을 나무라되, 그 이상은 묻지 않고 라일라가 쓴웃음을 지었다.

“이걸로 모일 수 있는 형제자매들이 모두 모였구나.”

“공작 각하……!”

뭐라고 말을 이으려는 미하일에게, 라일라는 지그시 그녀의 손가락을 입에 댔다. 그 이상은 무엇도 말할 필요가 없다는 듯이. 그리고 그 이상 무엇도 용납할 수 없다는 듯이.

“자, 사랑스러운 밤의 아이들아.”

라일라가 미소와 함께 말을 잇는다.

“때가 되었단다.”

때가 되었다.

그 의미를 헤아린 어린 형, 비고의 표정이 하얗게 질렸다.

“저는 준비됐어요.”

그런 비고를 뒤로하며 시엔이 말했다. 일말의 주저도 없는 목소리로.

그토록 기다리던 세례의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 * *

사방이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짙은 어둠이 내려앉은 그곳은 얼핏 오래된 예배당의 일실을 떠올리게 했다. 고딕 양식의 부조(浮彫)와 검고 하얀 대리석으로 쌓아 올린 아치형 천장 역시, 보는 이로 하여금 장엄한 위압감을 느끼게 하기에 지나치게 충분했다.

콰직!

바로 그곳에서 육체가 뒤틀리는 소리가 났다.

콰직, 콰직!

뼈가 뒤틀리고 근육이 갈가리 찢기며, 피가 분수처럼 솟는 소리였다.

“커헉……!”

남자아이 하나가 대리석 모자이크 타일 위에 엎드린 채 피를 토해냈다. 검붉은 피였다. 뒤이어 체내의 골격이 기형적인 각도를 취하며 멋대로 뒤틀렸고, 별개의 생물처럼 육체를 찢고 튀어나왔다 들어가기를 거듭했다.

얼마 후.

끔찍하게 뒤틀리던 육체의 폭주가 멎는다. 간신히 붙어 있던 호흡이 멎고 정적이 내려앉는다. 싸늘한 침묵, 죽음의 소리다.

아이에게는 ‘조반니’란 이름이 붙어 있었다. 하지만 저택에서 죽어간 무수한 아이들처럼, 이름이 기억될 일은 영영 없을 것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라일라가 담담히 고개를 돌렸다.

마찬가지로 주위를 에워싼 채 침묵하고 있는, 가문의 형제자매들을 뒤로한 채.

“참으로 안타깝기도 하지.”

라일라가 짐짓 유감스러운 듯 중얼거렸지만, 그녀의 목소리에서는 그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 애초에 별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는 듯이.

“조반니의 시체를 치워주세요.”

“명령을 받들겠습니다, 공작 각하.”

머지않아 그림자 기사들이 대리석 타일 위에 널브러진 조반니의 시체를 수습했다.

사사로운 정 같은 것은 없다. 저택에 오는 아이들은 대부분이 저런 결말을 맞이한다. 그들은 자신이 기회를 준다고 말하지만, 그것이 허울 좋은 위선에 불과함을 하이드 경은 깨달을 수 있었다.

라일라 나이트워커는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이다. 다른 밤을 걷는 자들 모두가 그렇듯이.

아니, 그중에서도 감히 비교를 불허하는 독보적인 수준의 괴물이었다.

물론 그런 라일라를 주군으로 섬기고 있는 본인부터가 남 말을 할 처지는 아니었지만.

그림자 기사단장으로서 결코 떳떳한 인생을 살아왔다고 할 수 없고, 흔히 생각하는 명예로운 기사의 삶과도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결코 저들에 비할 바는 아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저 여자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이제 시엔 차례군요.”

조반니의 시신을 수습하고 나서, 라일라가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을 내린다.

“의식을 치를 준비는 되었습니다.”

“그 아이를 예배당으로 데려오세요.”

“존명.”

고개를 끄덕이며 하이드 경이 휘하의 그림자 기사들에게 고갯짓했다.

철컥철컥-.

엄숙한 정적 속에서 기사들의 갑주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진다.

머지않아 마지막 아이, 시엔이 그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나이트워커 공작 가문의 저택에 지어진 비밀스러운 지하 예배당. 가문의 시조, 산상노인 카산 나이트워커와 그가 거느린 고대 암살자 교단의 잔재.

동방 대륙에서 온 그들은 광신과 열정으로 무장하고 있었지만, 이 대륙에서 보편적으로 섬기는 유일신을 믿지 않았다. 비록 지금 와서는 가문의 구성원조차 신앙하지 않는 이교(異敎)가 되어버렸으나, 그들이 수행했던 전통과 형식만큼은 여전히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들이 세례라 부르는 이 끔찍한 의식 역시 마찬가지였다.

“준비는 되었니, 아이야.”

고풍스러운 로브를 두른 라일라가 속삭였다. 마찬가지로 의식용 로브를 걸친 시엔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고통스러운 시간이 될 거란다.”

“각오는 되어 있어요.”

“그래.”

라일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이고 나서, 그녀가 품속의 무엇을 손에 쥐었다.

흑색의 알약이었다.

수은과 유황, 황금과 납, 그 외에 온갖 비밀스러운 약재를 법제화한 영약.

밤의 아버지 ‘카산 나이트워커’가 대륙에 정착하기 전, 동방 대륙에 있던 그들 암살자 교단의 원류는 이것을 일컬어 외단(外丹)이라 불렀다.

복용하는 것만으로 인간을 아득히 초월하는 힘을 얻을 수 있다고 전해지는 금단의 선약.

“받아먹어라. 이것은 내 몸이다.”

그들 가문이 대륙에 정착하고 이곳의 종교와 동화되면서, 이 시대에는 불리는 명칭 역시 달라졌다.

「성체(聖體)」.

뒤이어 라일라가 손에 들린 황금의 잔을 내밀었다. 잔을 따라 핏빛의 액체가 넘실거린다. 물론 피가 아니다. 그렇다고 포도주도 아니었다.

“이것은 내 피로 맺는 새로운 계약의 잔이다.”

외단의 체내 흡수를 촉진하는 특수한 용해제. 그들은 이것을 「성혈(聖血)」이라고 불렀다.

“너희는 모두 이 잔을 받아 마셔라.”

라일라가 손에 쥔 성체를, 성혈이 담겨 있는 금빛 잔에 담는다.

“─이것은 나의 피다. 나는 너희들을 위해 이 피를 흘리는 것이다.”

마셔라. 먹어라. 나의 살과 피를.

엄숙한 정적 속에서 의례적인 절차가 끝을 맺는다.

라일라가 시엔을 향해 금빛의 잔을 넘겼고, 시엔이 묵묵히 그것을 받아들였다.

“─가족이 되고 싶니?”

암살자들의 어머니, 라일라가 조용히 물었다. 의례적인 물음이 아니다. 오직 시엔을 향해서 속삭이는 다정한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에 시엔이 웃었다.

‘저는 항상 당신의 아들이었어요.’

웃고 나서 시엔이 대답했다. 차마 그 말을 입 밖에 내지 못하고, 손에 들린 금빛 잔을 목구멍 너머로 묵묵히 들이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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