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암살 가문의 천재 어쌔신-7화 (7/200)

7화. 세례성사 (2)

나이트워커 공작령의 지하 콜로세움.

철문이 개방되고 세례를 마친 시엔의 시험 상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인간조차 아니었다. 마수다. 어지간한 소국에서는 기사단 전력을 투입해야 할 정도로 위협적인 중급 마수, 미노타우로스.

적지 않은 숫자의 그림자 기사들이 맹수 조련사처럼 달라붙어, 마법이 깃든 사슬로 마수를 속박하고 있다. 마수가 포효하며 날뛸 때마다 놈을 구속하고 있는 무수한 사슬들이 부딪쳐 쇳소리를 냈다.

절그렁!

이윽고 그림자 기사들이 일제히 손에 들린 사슬을 내려놓는다. 괴물이 풀려났다.

자유가 된 미노타우로스는 주위의 그림자 기사들에 아랑곳하지 않고, 눈앞의 가장 탐스러운 먹잇감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쿵, 쿵!

걸을 때마다 지축이 요동치고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쇳소리, 그 소리처럼 저것은 그냥 미노타우로스가 아니었다.

철컥철컥-!

전신을 물샐 틈 없는 강철로 무장한 철갑 마수병이다.

소머리에 쓴 투구 역시, 황소의 뿔을 휘감듯 정교하게 가공된 강철이 덧씌워져 있었다. 심지어 양손에 들린 거대한 대형 도끼는 시엔의 체구를 가볍게 압도하고 남는다.

그에 비해 시엔이 손에 쥔 무기는,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작달막한 단검 한 자루였다. 제국 공용어로 「사슴잡이」란 뜻의 히르슈폔거(Hirschfänger)라 불리는 사냥용 단검이다.

‘전신 갑주로 무장한 마수를 상대로, 달랑 히르슈폔거 한 자루를 쥐여줬다고?’

투기장에 던져진 시엔의 모습과 무장 상태를 보자마자, 직전까지 마수를 구속하고 있던 그림자 기사들은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었다.

전신 갑주로 무장하고 있는 미노타우로스가 시엔을 향해 내달린다.

후웅!

손에 들린 대형 도끼가 휘둘러졌다. 압도적인 풍압과 함께 서슬 퍼런 도끼날이 시엔을 향해서 내리꽂혔다.

시엔이 땅을 박찼다. 아슬아슬한 시차를 두고 도끼날이 시엔의 머리카락을 스친다.

‘……뭐지?’

그 모습에 일순 그림자 기사들이 희미한 위화감을 느꼈다.

아슬아슬할 때까지 버틴 직후 보여준 시엔의 움직임, 경악스러울 정도로 빠르고 정교하다. 그럼에도 일찍이 시엔이 보여준 재능에 대해서는 놀랄 대로 놀랐다고 자부하는 그들이다.

정작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어째서 ‘아슬아슬한 순간까지 버텼는가?’ 하는 점이었다.

좀 더 빨리 피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일부러 늦게 피했다. 아무 까닭 없이 여유를 보일 시엔이 아니다. 방심과 여유란 말처럼 나이트워커 가문의 암살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말도 없을 테니까. 거기에는 반드시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그림자 기사들이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저 멀리, 투기장을 내려다보고 있던 라일라의 입가에 미소가 깃들었다.

시엔이 거리를 벌린 직후, 혈기를 주체하지 못하고 철갑 미노타우로스가 양날 도끼를 휘둘렀다. 그럴 때마다 머리카락이 스칠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며 시엔이 도끼질을 회피했다.

피하고, 피하고, 또 피한다. 이래서야 끝이 날 리가 없다. 이것은 어느 하나가 쓰러지기 전까지 끝나지 않는 죽음의 투기장이니까.

심지어 상대는 중형급 마수. 고작 이 정도로 힘을 빼거나 체력이 다할 리도 없다. 설령 무거운 전신 갑주를 휘감고 있다고 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대체 어쩌려는 거지?’

그림자 기사 하나가 생각한다. 바로 그때였다.

미노타우로스가 투우처럼 머리의 뿔을 내리꽂았고, 그 일격을 피하며 시엔이 몸을 뒤틀었다. 뒤틀고 나서는 칼자루를 빙글 고쳐 잡는다.

동시에 시엔의 손에 들려 있는 히르슈폔거가, 창백하게 시린 서슬을 내뿜었다. 그저 섬뜩하게 빛나기만 하는 반사광(反射光)이 아니다. 푸른 빛의 정체를 깨달은 그림자 기사들이 경악에 숨을 삼켰다.

검기(劍氣)였다.

‘오러 블레이드!’

‘아무리 세례를 마쳤다고 하나, 설마 저 나이에……?!’

이미 시엔이 보여준 재능 앞에서 놀랄 대로 놀랐다고 자부하는 그림자 기사들조차, 이 순간 시엔이 보여준 절기에는 경악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럴 수밖에.

오러 블레이드를 펼칠 수 있다는 사실은 곧 ‘소드 익스퍼트(특급 검사)’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대륙에는, 평생을 바쳐 뼈를 깎는 노력을 거듭해도 익스퍼트의 발끝조차 도달하지 못하는 범재들이 대다수다. 그만큼 오러의 힘을 통제하기란 어려운 일이니까.

고위 기사 가문에서 최고의 재능과 혈통을 타고나, 최고의 스승 아래 교육을 받으며, 심지어 최고의 행운과 노력─ 일체의 요소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도 「특급 검사(소드 익스퍼트)」가 되는 데에는 적잖은 시간이 걸린다.

당장 제국 제1기사단의 엘리트 기사들조차 빨라야 14살, 늦어도 17살까지 익스퍼트 끝자락에 도달하는 게 보통이니까.

무려 불패의 검이라 일컬어지는 대륙 최강의 기사, 검성 그란델 대공조차 12살의 나이에 소드 익스퍼트가 되지 않았나!

그런데 지금 시엔의 나이는 고작 10살.

제국 제1기사단의 어린 엘리트들은 경쟁 상대조차 되지 않는다. 훗날 이 대륙을 호령하게 될 최강의 기사보다 무려 2년이란 세월을 앞서고 있는 셈이니까.

쿠웅!

재차 미노타우로스가 쇄도했고, 휘둘러지는 공격을 흘리며 시엔이 칼자루를 휘둘렀다.

그냥 칼날이 아니다. 무려 오러가 깃든 칼날이다. 비록 마스터(달인)의 오러에 비할 바는 아니었으나,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눈앞의 강철을 종잇장처럼 베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충분했다.

그러나 정작 시엔의 손에 들려 있는 오러 블레이드가 미노타우로스의 강철판을 뚫어도, 그 너머의 가죽에는 상처를 입힐 수가 없었다.

갑주를 뚫고 급소에 내리꽂히기에 날붙이가 너무 짧다.

이걸로 생채기를 줄 수 있어도 치명상을 줄 수는 없다. 딱 거기까지였다.

‘날붙이가 짧아서 닿지 않는다!’

‘아무리 오러 블레이드라고 해도, 저 두께의 철판을 뚫고 나서 상처를 입히기는 길이가 짧아.’

그림자 기사들 역시 같은 아쉬움을 토로했다.

오러 블레이드는 강철조차 능히 벨 수 있다. 그러나 시엔의 손에 들린 수십 센티미터 남짓의 단검으로는, 강철판을 뚫고 그 아래의 가죽에 생채기를 내는 게 고작이다.

그 이름처럼 칼날이 너무 짧았으니까.

“하다못해 갑주가 없는 상태로 싸웠어야 하는 게…….”

“말을 삼가라. 공작 각하의 결정이시다.”

“소, 송구합니다.”

그림자 기사 하나가 조심스럽게 아쉬움을 토해내자, 기사단장 하이드 경이 차갑게 일갈했다. 멀찍이서 그 모습을 내려다보는 라일라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여느 때처럼 차가운 표정으로 시엔의 모습을 지켜볼 따름이다.

바로 그때, 재차 미노타우로스가 쇄도했다. 시엔이 공격을 비끼며 다시금 히르슈폔거를 휘둘렀다.

아무리 거듭해도 생채기밖에 낼 수 없는, 무의미하기 짝이 없는 공격. 그랬어야 했다. 그림자 기사들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시엔의 칼날이 휘둘러지고 나서, 믿기 어려운 광경이 벌어졌다.

쿠웅!

미노타우로스의 가슴을 보호해주고 있던 흉갑(胸甲)─ 브레스트 아머가 맥없이 떨어져 내린 것이다.

‘설마!’

그제야 그림자 기사들 역시, 지금껏 시엔이 보여준 아무 의미도 없어 보이는 공격이 무엇을 의미했는지 비로소 이해했다.

‘처음부터 리벳(Rivet, 철판을 고정하기 위해 쓰는 대갈못)을 노렸던 것인가.’

‘흉갑을 잇대서 고정하고 있던 리벳을 오러 블레이드로 베기 위해…….’

‘그래서 아슬아슬할 정도로 거리를 유지하며 흉갑의 구조를 살펴봤구나!’

오러 블레이드의 절삭력을 통해 시엔이 노린 것은 미노타우로스 그 자체가 아니었다.

마수를 지키는 강철 갑주, 그것도 갑주를 잇대 엮고 있는 철제 못을 베어내고 있었다. 철저하게 가슴 일대의 흉갑을 고정한 리벳만을 집요하게.

방금 그 일격을 통해, 미노타우로스의 흉부가 드러났다.

시엔의 손에 들린 수십 센티미터 남짓의 날붙이로도, 충분히 급소를 내리꽂을 수 있을 만큼 무방비하기 짝이 없는 생물의 급소가.

─처음부터 미노타우로스의 움직임은 시엔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 아니, 시엔이 압도하고 있었다.

그저 놈이 휘감고 있는 철갑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과제였을 따름이다.

속도로는 극복할 수 없는 체급과 방어력의 격차.

그리고 지금, 그 유일의 장벽이 사라졌다. 거기에는 그저 고깃덩어리가 있을 뿐이었다.

타앗!

시엔이 땅을 박찬다. 시린 칼날이 내달린다. 지금껏 셀 수도 없는 대륙의 강자들을 쓰러뜨린 칼날이었다.

검성 그란델 대공, 대현자 바르무어 후작, 아퀴나스 추기경…….

‘궁금하다.’

그저 순수하게 궁금했다. 이 칼날이 어디까지 닿을 수 있을지. 훗날의 자신이 그리게 될 미래가 너무나 보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슈욱!

더 이상 미노타우로스를 지켜줄 두꺼운 강철 갑옷 따위는 없다. 감각이 손끝을 따라 새겨진다. 살을 찢고 피를 흩뿌리며 육체 속으로 깊숙이 파고드는 감각.

칼끝을 꽂아 넣는 동시에 육체의 이음새를 따라서 날붙이를 움직였다.

어디 칼집을 넣어야 뼈와 살 사이의 틈새에 확실하게 파고들 수 있는지, 뼈와 힘줄이 엉긴 틈새를 따라 천 리를 내달린다.

이것 하나는 과거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시엔에게는 재능이 있었다. 생명을 죽이는 재능이었다.

설령 괴물이라고 해도 다를 것은 없다.

어디에 칼끝을 찔러 넣어야 확실하게 생물의 이음새를 끊어낼 수 있는지, 수천 마리의 소를 도축하고 해체하며 뼈와 살코기를 발라내는 도살자처럼 능숙하게 칼끝을 움직였다.

촤아악!

피가 흩뿌려졌다.

미노타우로스가 도끼를 휘두를 틈조차 없이, 끔찍하다 못해 기괴할 정도의 풍경이 펼쳐졌다.

직전에 놈의 흉갑이 떨어져 내린 것처럼, 이번에는 놈의 가슴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후두둑!

가슴 속의 뼈, 흉곽(胸廓)이 휑하니 드러났다. 가슴 속에서 지켜져야 할 심장과 온갖 장기들이 마찬가지로 후두둑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제아무리 마수라고 해도 뱃속의 오장육부를 모조리 게워내고 살아남을 수 있을 리 없다. 그게 생명의 이치이자 굴레였으니까.

쿠웅!

시엔의 몇 배는 되는 육중한 거구의 마수가, 그것도 물샐 틈 없는 강철로 무장한 괴물이 너무나도 맥없이 쓰러졌다.

승부가 났다.

미노타우로스의 시체를 등진 시엔이 고개를 돌린다. 칼날에 깃든 오러의 이채는 사라진 뒤였다.

‘……경이적이다.’

달리 형용할 말이 없었다.

밤을 걷는 자들의 정점에 서는 자, 가주에 어울리는 그릇. 흘러넘치는 재능의 성배.

아니, 그 이상이다.

천하의 라일라 나이트워커는 물론 역대의 그 어느 가주들조차 시엔이 보여준 정도의 재능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그녀의 말마따나 최초의 밤을 걷는 자, 시조 카산이 아니고서야.

“훌륭하구나, 시엔.”

바로 그때, 기척조차 없이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직전까지 관객석 끄트머리에 있던 라일라가, 어느새 그곳에 나타나 있었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공작 각하.”

“그런 딱딱한 호칭으로 부르지 말렴.”

암살자들의 어머니, 당대 밤을 걷는 자들의 수장.

그녀의 부드럽고 상냥한 목소리에 시엔이 망설였다. 그곳에 있는 그림자 기사들 속에서, 어린아이의 치기 어린 모습을 보여주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으므로.

“……어머니.”

그럼에도 시엔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미노타우로스의 도끼날을 마주할 때조차 보여주지 않았던 동요를 드러내며. 그 모습을 보고 라일라가 나직이 미소 짓는다.

“저택으로 돌아가자꾸나, 아들아.”

미소 짓고 나서 라일라가 속삭였다. 시엔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귀가 조금 붉어진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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