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암살 가문의 천재 어쌔신-11화 (11/200)

11화. 암살자의 검술 (1)

“거짓말을 하고 있구나, 시엔.”

라일라가 말했다. 마치 속마음을 훤히 들여다보는 듯한 눈빛을 하고서.

“네가 익히고 있는 1식은 벌써 내가 가르친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었단다.”

“…….”

“고작 1년 정도 배웠다고 해서 이를 수 있는 경지가 아니지.”

그 말대로다. 실렌체에서 정식 기사를 압도할 당시 시엔이 보여준 제1식의 완성도, 그리고 암살자들의 어머니가 직접 펼친 ‘망령의 자세’를 관찰하는 능력. 절대로 이제 막 가문의 검을 배우기 시작한 풋내기의 경지가 아니었다.

“어느 틈에 그 정도의 경지를 손에 넣었니?”

“세례를 마친 그날부터, 밤낮으로 가문의 서고에서 제1식에 관련된 검술서와 검결(劍訣)들을 닥치는 대로 탐독했어요.”

시엔이 대답했다.

“저는 이 검술이 제일 익숙하고 마음에 들거든요.”

“망령의 자세는 가장 단순하고 수수한 검식이란다.”

라일라가 말했다.

“화려하지도 않고, 나머지 여덟 검식처럼 복잡하고 거창한 초식도 없지.”

철저하게 자신의 존재를 지우는 검술. 거기에 화려함이 개입될 여지는 없다.

“그런 ‘재미없는 검술’에 특별히 흥미를 갖는 이유를 물어볼 수 있을까?”

“나머지 여덟 가지 검식은, 결국 남을 죽이는 검이잖아요.”

“망령의 자세는 다르다는 거니?”

“네.”

“어떤 점에서?”

라일라가 흥미로운 듯이 되물었다.

“이 검은, 남이 아니라 자신을 죽이는 검이니까요.”

시엔이 대답했다. 그 말에 라일라의 눈동자에 놀란 듯한 이채가 깃들었다.

자신을 죽이는 검. 자신의 존재를 지우는 암살(暗殺)의 극의.

이 어린아이는 벌써 이 검식의 본질을 깨닫고 있다는 걸까.

“딱히 어머니에게 제 경지를 속일 생각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시엔이 말을 잇는다.

“저는 어머니에게 이 검술을 배우기 전부터, 이미 ‘망령이 되는 법’을 배웠거든요.”

뒷골목에서 범죄 길드의 사냥개로 사육되며, 철저하게 자신을 죽이며 살아온 어린 암살자.

“과연.”

라일라의 입가에 흡족한 듯한 미소가 걸린다.

물론 완전히 의심을 거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라일라는 이 이상 추궁하기를 멈추었다. 설령 시엔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해도 개의치 않겠다는 듯이.

“제1식은 가장 단순하지만 그만큼 심오하지. 그렇기에 마지막까지 배움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단다. 설령 지금의 나조차도 말이야.”

“명심할게요.”

나이트워커 가문의 역사 속에서 단 4인밖에 도달하지 못한 그랜드마스터 중 한 명이자, 암살자들의 어머니가 말했다.

“하지만 이만큼이나 제1식에 통달했다면, 지금은 잠깐 멈추고 다른 검식을 배우기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는걸.”

“어떤 검식을요?”

“제9식─.”

최초의 아홉 가지 검식 중 최후의 검식.

그것은 시엔으로서도 다소 의외의 말이었다. 어쨌거나 가문에 있는 아홉 가지 검식의 경우, 그 순서대로 하나씩 배우는 것이 보통이었으니까.

‘그중에서 하필 가장 복잡하고 까다로운 9식을?’

그런 시엔의 의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라일라가 말했다.

“「크라켄의 자세(Kraken Stance)」─.”

북해에 서식하는 두족류 형태의 거대한 바다 괴물. 그 괴수의 이름을 본뜬 검식은, 엄밀한 의미에서 검술조차 아니었다.

나지막이 두 팔을 벌리는 라일라의 주위로, 무엇인가 두둥실 떠올랐다.

옷자락 밑에, 소매 속에, 몸 곳곳에 숨겨진 단검이 손을 대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움직인 것이다.

문어의 다리 숫자와 같은 여덟 자루 단검.

그 여덟 개의 칼날이, 살아 있는 두족류의 다리처럼 시엔을 향해 저절로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후우웅!

배를 집어삼키는 크라켄과 같이 사방에서 날아드는 칼날들.

그것은 마력의 힘으로 움직이는 검이었다.

─1위계 염력 마법 「보이지 않는 손」.

염동력을 이용해 다수의 칼날을 조종하며, 그 움직임이 마치 배를 천천히 옥죄며 집어삼키는 크라켄과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

망령의 자세가 가장 단순하기에 역설적으로 심오하다고 일컬어지는 검식이라면, 역으로 이 ‘크라켄의 자세’는 대놓고 끔찍할 정도의 정밀함과 극도의 기교를 요구하는 검식이었다.

염동 마법, 보이지 않는 마력의 손을 이용해 칼자루를 쥐고 휘두르는 그 기술은 엄밀히 말해 검술의 영역조차 아니다.

마검술(魔劍術)이다.

마력으로 움직이는 손이 자신의 진짜 손보다 정교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그 보이지 않는 손을 무려 여덟 개나 동시에 조종하며 고도로 숙련된 검객처럼 움직이기란, 그야말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하지만 나이트워커 가문의 암살자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하물며 그중에서 가장 완벽에 가까운 육체를 가진 순혈 중의 순혈, 시엔에게 있어서는 더더욱.

마나 회로가 처음부터 마력과 오러의 힘을 병행할 수 있도록 최적화된 시엔의 육체가, 마력을 내뿜으며 1위계 염력 마법 ‘보이지 않는 손’을 펼친다.

마력의 손으로 조종하는 것은 시엔 자신의 칼날이 아니었다.

시엔에게 날아든 라일라의 여덟 자루 단검을, 거꾸로 낚아챘다.

우뚝!

날아드는 여덟 자루 칼날이 일제히 정지한다. 그대로 칼끝의 방향을 바꾸며, 역으로 라일라를 향해서 내달리기 시작했다.

시엔이 조종하는 8개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염동력의 힘으로 조종하는 칼날을, 같은 염동력의 힘으로 빼앗는다.

“아주 훌륭하구나.”

시엔의 역습을 보며 라일라가 흡족한 듯이 웃었다. 직후 그녀를 향해 날아든 칼날이 허공에서 정지했다.

이번에는 라일라의 ‘보이지 않는 손’이 다시 시엔의 단검을 낚아챈 것이다.

“기억하렴. 이 검식을 펼칠 때 너는 크라켄을 조종하는 기수(騎手)이고, 네 손에 들린 칼날을 절대로 놓치지 말아야 한단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크라켄의 고삐를 확실히 쥐고, 뺏기기 전에 상대를 죽여야지.”

다시금 라일라가 염동력으로 낚아챈 칼끝이 방향을 바꾼다. 그리고 아까와 마찬가지로 시엔을 향해 내리꽂혔다.

후우웅!

그것을, 또다시 뺏는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쇄도하는 칼날들이 급격히 방향과 궤도를 틀어서 시엔의 보이지 않는 손을 피해갔다.

낚아채지 못했다.

그 상태로 여덟 자루의 칼날들이 엇박자로 사방에서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멈추는 일은 없었다. 그렇다고 다시금 보이지 않는 손을 써서 뺏기에는 라일라가 조종하는 단검들의 움직임이 너무나 불규칙해서, 도무지 의식을 집중할 틈이 없다.

할 수 없이 시엔이 도망치듯 땅을 박찼다.

그 모습을, 암살자들의 어머니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지켜보고 있다. 하지만 그녀가 조종하는 여덟 자루의 칼날들은 그렇지 않다.

어지간한 고위 마법사조차 그녀가 진심으로 구사하는 보이지 않는 손에 간섭할 수 없을 것이다.

아홉 가지 검식이라고 해서 그게 꼭 오러를 쓰는 체술이나 검술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상대의 숨통을 끊기 위해, 그들은 그 어떤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으니까.

기술이나 형식의 굴레조차 초월한, 그야말로 이능(異能)에 가까운 경이.

라일라의 ‘보이지 않는 손’에 들린 여덟 자루 단검이 다시금 시엔을 옥죄듯 거리를 좁혔다.

촤아악!

사방에서 크라켄의 촉수가 휘감기는 듯한 착시─.

그러나 그보다 빠르게, 시엔이 땅을 박차고 눈앞에 있는 암살자들의 어머니를 향해 쇄도했다.

크라켄의 자세는 가문의 검식 중에서 가장 복잡하고 극도의 기교를 필요로 하지만, 정작 그런 것치고 나머지 여덟 검식에 비해 결정적이고 치명적인 결함을 하나 내포하고 있었다.

이 검식을 파훼하기 위해서는 달리 거창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다.

딱 하나, 거리를 좁히는 것으로 족하다.

굳이 대양의 바다 괴수를 죽일 필요는 없다. 그저 괴물 위에 타고 있는 기수를 노릴 뿐.

보이지 않는 손을 이용해 다수의 칼날을 조작하며, 심지어 적과 거리가 좁혀지는 상황에서는, 아무리 제9식에 통달한 암살자라고 해도 자신을 지키기 쉽지 않을 테니까.

눈앞에서 자신을 죽이기 위해 휘둘러지는 칼날을 받아칠 때는, 결국 자신의 진짜 손에 들린 칼보다 믿음직한 무기가 없다.

보이지 않는 손은 결국 보이지 않는 손일 뿐이다. 실제 수족이 가진 정교함을 대신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제9식이 가진 최대의 결함이었다.

공세를 쥘 때는 어떤 검식보다도 압도적인 우위를 자랑하지만, 역으로 방어에서는 최약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검식.

쉽게 거리를 허락하지 않는, 엇비슷하거나 더 높은 수준의 강자를 상대로 지근거리에서 제9식을 펼치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

라일라가 그랬듯 훗날의 시엔이 제9식을 굳이 마스터하려 하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였다.

나이트워커 가문의 암살자가 노리는 것은 피라미 따위가 아니다. 그들이 죽여야 할 표적들은 대다수가 자신과 엇비슷하거나 강한 ‘진짜 강자’뿐이니까.

어느덧 거리를 좁힌 시엔이 라일라를 향해 칼끝을 내밀었다.

그녀가 조종하는 여덟 자루의 칼날이 시엔의 급소 앞에서 정지한 것도 동시의 일이었다.

“한 자루든 여덟 자루든 일천 자루든, 사람 하나의 숨통을 끊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충분하지.”

시엔의 대처를 보며 라일라가 흡족한 듯 웃었다.

그야말로 100점짜리 정답이란 듯이.

물론 라일라가 전력으로 ‘크라켄의 자세’를 구사할 경우, 애초에 이렇게 순순히 거리를 좁히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지금의 시엔과 라일라 사이에 있는 격차는 엇비슷함의 수준을 까마득히 초월하고 있으니까.

그러나 이것은 실전이 아니다. 라일라 역시 어디까지나 자신의 아들을 가르치기 위한 수업을 진행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이 자세는 아홉 검식 중 가장 치명적인 위력을 자랑하지만, 그것 이상으로 치명적인 결함을 내포하고 있단다.”

“방어력이 극도로 취약하다는 점이죠.”

“그렇지.”

“그럼 어째서 제게 이 검식을 먼저 가르치시려는 거죠?”

시엔이 되물었다.

“진짜 강자는 절대로 쉽게 거리를 허락하지 않고, 그런 강자 앞에서 이 검식은 무용지물이지 않나요.”

“그럴지도 모르지.”

라일라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렇지만 어울릴 것 같지 않니?”

“어울린다……?”

무엇이?

시엔조차 그 말의 의미를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되물었다.

“상상해보렴.”

라일라가 즐거운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잇는다.

“자신을 죽이는 검이자 최강의 방패에 그 누구보다 통달한 네가, 최강의 창이라 불리는 이 검식을 쓰는 모습을─.”

크라켄의 자세는 철저하게 공격에 특화되어 있다. 역설적으로 거리를 좁힐 때는 그 무엇보다 약해진다.

제1식─ 망령의 자세는 그렇지 않았다.

자신을 죽이는 이 검식의 극의에 이를 경우, 설령 그 어떤 강자 앞에서도 쉽사리 공격을 허락하지 않는다. 보여도 보이지 않고, 들려도 들리지 않으니까.

그저 호수에 비친 달이 존재할 뿐─.

“……!”

최강의 방패와 함께 손에 들린 최강의 창.

날뛰는 괴물을 제어하는 보이지 않는 기수.

그 의미를 이해한 시엔이 나지막이 숨을 삼켰다.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과 함께.

나이트워커 가문의 검식은 아홉 가지, 나이트워커 가문의 암살자는 그 검식 모두에 어느 정도 통달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결국 마스터의 경지까지 노리며 전공할 수 있는 숫자는 한정되어 있다.

아홉 가지 검식에 어느 정도 정통하고 적재적소에 활용할 수 있는 가문의 일원을 일컬어 「메이드맨(Mademan)」.

그리고 아홉 가지 검식 모두에 정통하며, 그중 하나의 검식을 완벽히 통달한 자를 「마스터(Master)」라 부른다.

나아가 두 개 이상의 검식에 완벽히 통달한 자를 일컬어 「하이마스터(Highmaster)」.

끝으로, 3개의 검식에 통달한 자를 일컬어 「그랜드마스터(Grandmaster)」.

시조 카산을 비롯해 훗날의 시엔과 지금의 라일라가 도달한 경지.

딱 거기까지였다.

그 이상에 도달한 자는 아무도 없다. 아무리 뛰어나고 터무니없는 재능을 가져도 마스터할 수 있는 검식의 개수는 3개가 최대. 그것은 수백 년 가까이 가문의 전통 속에서 시조 카산을 포함해 깨지지 않은 역사였다.

‘어느 정도 할 줄 아는 것’과 ‘잘하는 것’ 사이에는 커다란 벽이 있다. 그리고 ‘잘하는 것’과 ‘완벽하게 하는 것’ 사이에는, 그보다 더 커다란 장벽이 있다.

그러나 이미 훗날의 시엔은 3개의 검식을 완벽하게 마스터했다. 비록 지금의 미숙한 육체로 검식의 위력을 완전히 끌어낼 때까지 다소 시간이 걸릴 테지만, 어쨌든 머릿속에 세 가지 검식의 극의가 들어 있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그런 자신이 처음으로 되돌아가 모든 것들을 다시 시작하고 있다. 이제 막 가문의 검식을 차례대로 배우기 시작한 어린아이가 되어서.

“저도 궁금해요.”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았다.

훗날의 시엔조차 가문의 검식 중 마스터에 도달한 것은 3개의 식이 전부였고, 그중에 제9식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미래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로 다시 시작하는 지금의 육체라면─.

인간의 한계를 까마득하게 뛰어넘는 이 아홉 가지 이능을 최대 몇 개까지 소화해낼 수 있을까.

아니, 전부 다 익히지 못하리란 법이 어디 있는가?

“저에게 제9식을 가르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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