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암살 가문의 천재 어쌔신-16화 (16/200)

16화. 데뷔탕트 (3)

쌍두독수리의 자세.

콜로세움 위의 목 없는 기사가 펼친 그 검식,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 기사가 일찍이 자신이 거느린 긍지 높은 제국 제1기사단 소속의 기사였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검마 오스왈드 그란델은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분노 이상으로 그란델 대공을 경악시키는 것은 저 소년, 시엔의 존재였다.

제국 제1기사단이 자랑하는 ‘쌍두독수리의 자세’를 마치 손바닥처럼 들여다보며 파훼하는 모습. 전장에서 무수한 제국 기사들을 쓰러뜨린 역전의 용사라 해도 믿을 정도의 노련미마저 느껴졌다.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저것은 절대로 알기 쉬운 속임수나 거짓말이 아니다. 최후의 일격이 내리꽂히고 기사의 몸에 깃들어 있던 오러가 스러지는 와중, 알기 쉬운 함성 따위는 울려 퍼지지 않았다.

감히 천박하게 소리를 지를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저 경외할 뿐이다.

지금 그들이 두려워하며 벌벌 떨고 고개를 조아리는 이 나라의 지배자, 라일라의 뒤를 이을 후계자가 저기에 있었으니까.

‘저 아이는 대체 뭐지?’

검마 오스왈드의 검에 쓰러진 나이트워커 가문의 암살자는 적지 않다. 누구보다 밤을 걷는 자들의 위협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그였다.

그런데 저 아이는 달랐다.

“왜 그러시죠, 그란델 대공 각하?”

바로 그때였다.

“표정이 좋지 않아 보이네요.”

남의 일처럼 시치미를 떼며 라일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뭐가 말이죠?”

“저런 터무니없는 재능을 가진 아이를 굳이 숨기려 들지 않고, 모두의 앞에서 보란 듯이 과시했지. 그 행위의 후폭풍을 감당할 수 있겠나?”

“후폭풍이라. 제가 달리 감당해야 할 폭풍이 있던가요?”

라일라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미소 짓는다.

“저는 그저 자랑스러운 제 아들을 자랑하고 싶었을 뿐이랍니다.”

저 능구렁이 같은 여자가 그 의미를 모를 리 없다. 그걸 알고도 후계자의 재능을 모두의 앞에서 드러내고, 대륙 전역으로 지펴나가게 불을 지피려 들다니.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자신의 셋째 아들, 오스카는 더 이상 대륙 제일의 검술 천재가 아니다.

그 영광은 이제 나이트워커 공작 가의 어린 암살자가 차지하게 될 테니까.

* * *

나이트워커 가문의 초청장을 받을 정도로 힘 있는 유력자들이 고작 맛있는 음식 좀 먹고 서커스나 보자고 여기까지 행차할 리가 없다. 오기 싫어도 올 수밖에 없는 이가 있었고, 정치적 목적과 이익을 위해 오는 자들도 있었다.

허례와 허식으로 가득 찬 가장무도회. 물론 그곳에 가면을 쓴 자들은 없다. 그들의 얼굴 가죽, 두꺼운 낯짝이 곧 가면이었으니까.

“시엔 공자님.”

그런 낯짝 두꺼운 아부와 아첨 속에서 지칠 대로 지쳐 있던 시엔에게 목소리가 들렸다.

낯이 익다. 하지만 아직 애티를 벗지는 못한 목소리였다.

“……아, 오스카 공자님.”

오스카 그란델. 훗날 검마 오스왈드에 이어 가주가 되고, 검성의 이름을 갖게 될 검의 천재.

“콜로세움에서 ‘목 없는 기사’를 쓰러뜨린 모습을 봤습니다. 그야말로 경이로운 검술 실력이었죠.”

“칭찬해 주시니 영광입니다.”

시엔이 가식으로 가득 찬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러나 대륙 제일의 검술 천재로 명성을 떨치는 공자님의 앞에서 자랑할 정도의 실력은 아니랍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시엔의 말에 오스카가 당돌하게 되물었다.

“모두가 날 보고 대륙 제일의 검술 천재라고 말했지. 나도 그런 줄 알았어. 이 세상에 나보다 검술에 재능 있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말이야.”

“그야 대륙 제일의 검술 명가, 그란델 대공 가문의 아드님이시니…….”

“시치미 떼도 소용없어, 시엔 나이트워커.”

사교계에서 으레 볼 수 있는 가식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진실한 목소리였다.

“너는 나 이상의 재능을 가지고 있어. 나보다 2살이나 어린데도.”

툭.

“나보다 재능 있는 사람은 처음 봤어.”

손에 끼고 있는 가죽 장갑을 벗어 던지고, 오스카가 칼자루를 뽑는다. 스릉. 서슬 퍼런 소리에 홀에 있는 귀족들의 이목이 일제히 두 사람을 향했다.

“나랑 결투하자.”

오스카가 말했다.

“내게 우물 밖의 세상을 가르쳐줘.”

“……대공 각하께서는 이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아버지는 몰라. 지금쯤 제국 귀족들과 같이 있을 테니까. 그 틈에 몰래 빠져나왔지.”

오스카가 말했다. 그 말에 시엔이 쓴웃음을 짓는다.

“설령 공자님의 뜻이 그렇다 해도, 저는 공작 각하의 허락 없이…….”

“어머, 못할 거라도 있니?”

바로 그때였다. 기척조차 없이, 시엔의 곁에 라일라가 모습을 드러냈다. 갑작스러운 등장에 일말의 기척도 느끼지 못한 오스카가 흠칫 놀랐다.

“대륙 제일의 검술 천재, 오스카 공자님에게 검술을 배울 영광스러운 기회란다. 이런 기회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지. 그렇지 않니?”

그렇게 말하며 라일라가 미소를 짓는다.

“너의 전력을 다해, 오스카 공자님의 기대에 부응해 드리렴.”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공작 각하.”

시엔이 뭐라 대답할 틈도 없이, 오스카가 말했다.

“나이트워커 공작 각하의 말씀대로, 시엔 공자님께 기꺼이 저의 검술을 가르쳐 드리지요.”

“…….”

“바로 이 자리에서.”

12살 나이로 소드 익스퍼트에 도달하고 15살 나이에 상급, 20살에 마스터에 도달하게 될 대륙 제일의 천재 기사.

스릉.

바로 그 천재가, 시엔을 향해 칼끝을 겨누고 있다. 동시에 그의 등 뒤를 따라 여섯 장의 금빛 날개가 활짝 펼쳐졌다.

「미카엘의 자세」─.

훗날의 오스카를 검성(Sword Saint)이라고 불리게 해줄 상징적인 검식.

나이트워커 가문에 아홉 가지 검식이 있듯, 신성 제국 최강의 기사 가문이라 칭송받는 그란델 대공 가문에도 특별한 검식들이 존재한다.

심지어 가주의 직계비속(直系卑屬)밖에 배울 수 없으며, 일정 경지 이상에 도달할 경우 검술의 굴레마저 뛰어넘는 이능이란 점에서도 비슷하다.

마치 눈앞에 최강의 치품천사, 미카엘의 화신(化身)이 강림해 있는 듯한 경이로움.

“저게 바로 그란델 대공 가의 고유 검식, 미카엘의 자세!”

“오오,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시엔과 오스카, 두 어린 천재를 둘러싸고 귀족들이 웅성거렸다. 그리고 치천사의 날개를 펼친 오스카가 싸늘하게 되물었다. 금빛의 오러가 깃든 칼끝을 겨누고서.

“……왜 검을 뽑지 않지?”

“내가 왜 검을 뽑아야 하는데?”

코앞에 칼날이 겨누어져 있어도, 시엔이 허리춤의 칼자루를 뽑는 일은 없었다.

그저 너무나 무방비하게 두 팔을 활짝 벌릴 뿐.

“아무리 네 재능이 뛰어나다 해도, 감히 미카엘의 자세 앞에서 그런 여유를…….”

“딱히 여유를 부릴 생각은 없는데.”

시엔의 발밑에서 힘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친 것은 직후의 일이었다. 심지어 오러조차 아니다.

‘……!’

마력이었다.

“이 거리에서, 정말 나와 마법으로 싸울 셈이라고?”

“왜? 못 싸울 거라도 있어?”

애초에 기사와 마법사의 결투는 상성상 마법사가 압도적으로 불리하다. 특히나 지근거리에서 마법사가 이기기 위해서는 보통의 실력 차이로 어림도 없다.

“내가 적당히 봐줄 거라고 착각하지 마라.”

“아니, 그럼 미카엘의 자세까지 펼쳐놓고 어영부영 봐줄 생각이셨나?”

“그걸 알고도 검이 아니라 마법으로 싸우겠다고?”

“우물 바깥의 세상을 보고 싶다고 했지.”

─대륙 제일의 검술 천재를 압도하는 검술 재능의 소유자가, 이제는 정작 검술이 아니라 ‘마법사의 방식’으로 싸우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헛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모욕감에 손발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였다.

“그러니 기꺼이 그 기대에 부응해줘야지.”

시엔이 차갑게 조소했다.

제국 제일의 마도 명가, 바르무어 후작 가의 천재 장남조차 일대일 결투에서는 마법으로 오스카를 이길 수 없었다. 심지어 장남이 몇 살 위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게 검과 마법의 차이다.

‘가능할 리가 없다.’

아무리 하늘이 내린 재능을 타고났다고 해도 검과 마법 모두를 통달할 수는 없다.

‘절대로 질 수 없다.’

애초에 질 생각도 없었다. 아니, 설령 져도 검으로 지는 것은 차라리 납득할 수 있다. 지금껏 자신이 우물 속 개구리에 불과했음을 깨닫고, 더 나아갈 수 있는 동기부여와 깨달음의 계기가 될 테니까.

그런데 마법으로 지는 것은 이야기가 180도 달랐다.

자신을 뛰어넘는 검술 재능을 가진 상대에게 검도 아니고 마법으로 패배하는 것.

그것은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것이다.

‘아니, 애초에 패배할 리가 없다.’

봐줄 생각도, 정정당당하게 대응할 틈을 줄 생각도 없다. 이겨야 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촤아악!

오스카의 등 뒤로 펼쳐진 치품천사의 날개가, 휘황찬란하게 빛을 내뿜으며 펄럭였다.

동시에 날개를 구성하고 있는 오러의 깃털이, 화살처럼 일제히 시엔을 향해 쏘아졌다.

그에 맞서 시엔의 ‘보이지 않는 손’이 주위를 휘감았다. 여섯 개의 팔에 검을 쥐고 있는 동방 대륙의 악신─ 아수라처럼.

아니, 그 이상이다. 시엔이 펼친 손의 숫자는 여섯 개가 아니었으니까.

여덟 개의 팔과 거기에 들린 여덟 자루의 사이킥 나이프가, 쏟아지는 오러의 깃털 세례를 튕겨냈다.

‘저 자세는!’

카앙!

강철로는 오러를 막을 수 없다. 그러나 마력으로는 오러를 막고 튕겨낼 수 있다.

오러와 마력, 두 가지는 처음부터 공존할 수 없는 형태의 의지이자 상극의 힘이니까.

‘상대가 갑주를 입지 않아서 다행이네.’

물론 마력의 힘으로 오러를 맞받아치거나 막아낼 수는 있어도, 강철을 뚫을 수 없다. 그래서 아까 전의 목 없는 기사를 상대로는 이 자세를 펼치지 못했다. 사이킥 나이프로는 강철을 뚫지 못하니까.

그런데 평복 차림의 오스카는 그렇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손에 들린 사이킥 나이프로 얼마든지 상처를 입히고 피를 흘리게 할 수 있다. 전신을 지켜줄 믿음직스러운 강철 갑옷을 입고 있지 않으니까.

“「크라켄의 자세(Kraken Stance)」.”

나이트워커 가문의 제9식이자, 엄밀히 말해 검술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자세가 펼쳐졌다.

여덟 개의 보이지 않는 손이 오스카를 향해 쇄도했다. 그 손에 들린 여덟 자루의 사이킥 나이프와 함께.

북해에 서식하는 두족류 형태의 바다 괴수가 다리를 뻗어 배를 휘감고 천천히 침몰시키는 것과 같은 압살(壓殺)의 검식.

그 이름처럼 시엔이 펼친 ‘보이지 않는 손’이 여섯 장의 날개를 가진 치천사의 자세를 옥죄고, 착실히 구석에 몰아넣고 있었다.

‘그냥 마법을 잘 쓰는 정도가 아니다……!’

오스카가 날개로 자신의 몸을 감싸는 방어 태세를 취하고, 오러의 깃털을 일제히 내리꽂았다. 그런데 그 공격이 모조리 가로막혔다.

시엔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저 나이에 사이킥 마법을 저렇게까지 정밀히 다룰 수 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저것은 이미 마도(魔道)에 있어 대륙 제일의 천재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다.

심지어 그 마도의 경지를 검술과 조화하고 있었다.

오러와 마력, 검과 마법, 당초 섞일 수 없는 상극의 힘을 이렇게까지 조화롭게 다루다니.

보이지 않는 손과 사이킥 나이프에 깃든 것은 결코 마법사로서의 재능이 다가 아니었다. 일찍이 시엔이 보여준 검술의 재능이, 저 칼끝에 똑똑히 깃들어 있었다.

암살자의 검과 사이킥 마법이 조화되며, 마치 실체 없는 여덟 명의 암살자를 동시에 상대하는 듯한 압박감.

치품천사의 날개로 자신을 휘감아도 그 틈을 노리고, 역공을 가하려 해도 틈이 없다. 도저히 거리를 좁힐 수조차 없다.

──마치 절대로 넘을 수 없는 벽이 눈앞에 있는 것 같았다.

대륙 제일의 검술 천재라고 생각했던 자신을 압도하는 검술 재능. 그것도 모자라 저 아이가 펼치고 있는 마도의 재능은, 감히 대륙 제일의 마법 명가 바르무어 가문의 이들조차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서서히 숨이 가빠졌다. 이대로 천천히 촉수에 휘감겨 압사당하는 듯한 질식감이 엄습했다.

입이 바짝바짝 말랐다.

그란델 대공 가문이 자랑하는 미카엘의 자세, 여섯 장의 금빛 날개로 몸을 휘감고 방어 태세를 취하며 필사적으로 버티는 게 고작이다.

검으로 압도당하고, 마법으로도 압도당하며, 그것도 모자라 검과 마법으로 동시에 농락당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나의 노력은 도대체 뭐였지?’

딛고 있는 발밑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태어날 때부터 기사로 태어났다.

검 이외에는 감히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했다.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 배우고 싶은 것, 이 모두를 포기하고 검에 자신의 삶을 바쳤다.

그런데 그렇게 배운 검으로도 이기지 못하고, 심지어 저 아이는 심지어 마법까지 쓸 줄 알았다.

자신보다 두 살이나 어린 나이에 소드 익스퍼트의 경지에 이른 것도 모자라 대륙 최고 수준의 마법 재능까지 갖고 있다니.

‘이럴 리가 없다.’

삶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질 수 없다. 이대로 자신의 삶을 부정당할 수는 없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겨야 했다.

그렇기에 치품천사의 날개로 몸을 감싼 오스카가 이를 악물었다.

악물고 나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루시퍼의 자세」─.”

훗날에 ‘검성’이라 불릴 자의 입에서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악마의 이름이자, 최강의 치품천사 미카엘의 대척점에 서 있는 타락천사의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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