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죽어 마땅한 자 (4)
수도 베네토, 세공사의 거리.
보석이나 금속, 유리 등의 호화로운 장식을 다루는 일류 세공업자들의 거리이자, 대륙에서도 손꼽히는 사치품의 성지.
“어려운 임무를 맡아버렸네.”
바로 그 거리에 발을 들이며 비고가 입을 열었다.
“제국의 공안을 상대하는 게 처음이야?”
“아니.”
시엔의 물음에 비고가 고개를 젓는다.
“처음 놈들을 상대했을 때는, 미하일 대부가 곁에 계셨지.”
“그럼 다행이네.”
아무리 새벽어둠이 깊어도 이 도시는 절대 잠들지 않는다. 이곳 세공사의 거리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그림자 속에서 암약하는 나이트워커 가문을 비롯해 공화국의 적들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는 너야말로 놈들을 상대하는 게 처음 아니야?”
“왜 처음이라고 생각해?”
“그야…….”
이제 겨우 15살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말하려다 말고 비고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일찍이 어린 시엔이 보여준 터무니없는 재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였기에.
물론 비고의 말이 옳다. 적어도 지금의 시엔으로서는 그랬다.
그런데 훗날 이 세상에서, 대륙의 역사 전체를 통틀어도 시엔보다 놈들을 많이 쓰러뜨린 나이트워커 가문의 암살자는 없을 것이다. 심지어 가주 라일라조차도.
‘아퀴나스 추기경을 비롯한 최고위 이단심문관(Lord Inquisitor) 12인.’
‘그래, 전부 내가 죽였다.’
“돈 시엔, 그리고 돈 비고.”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직후의 일이었다.
“린치 경.”
시엔과 비고가 오기에 앞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던 그림자 기사 하나가 그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나이트워커 가문의 암살자들 역시 필요에 따라서 두 발로 뛰며 정보를 손에 넣는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밤을 걷는 자들의 ‘눈과 귀’가 되어 발품을 뛰고 허드렛일을 맡는 것은 그림자의 몫이다.
“경애하는 밤을 걷는 분들을 뵙습니다.”
그리고 그림자 기사 곁에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남자가 있었다.
“세공 길드의 수석 세공사 보첼리라고 합니다!”
“소개는 됐습니다. 사정을 말씀해 주시지요.”
“예, 예! 나이트워커 공작 각하에게 보고드린 대로, 그자는 3달 전에 우리 길드 출신의 1급 수석 세공사가 직접 써준 도제 추천장을 갖고 이곳을 직접 찾아왔습니다.”
“3달 전이라.”
시엔의 말에 수석 세공사는 다시금 고개를 조아리며 말을 이었다.
“추천장을 써준 당사자가 실력과 신용 모두 믿을 수 있다고 확답을 해줬지요. 실제로 우리 길드의 세공사에게 배우지 않고는 흉내 낼 수 없는 비전 커팅법과 세공 기술도 겸비하고 있었습니다.”
“추천장을 써준 길드의 수석 세공사는 지금 어디에 있죠?”
“신성 로마누스 제국 수도의 상업 특구에 세공 길드 지부를 설립하고, 그곳에서 지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지금쯤 죽었겠네.”
시엔이 담담하게 대답했고, 수석 세공사 보첼리의 표정이 새하얗게 질린다. 시엔으로서는 놀랄 것도 없었다. 그게 그들의 방식이니까.
“그자는 아직도 길드 공방에 남아 있습니까?”
“예, 예! 내일 새벽까지 급하게 끝마쳐야 할 루비 커팅 작업이 있기에 지금도 공방에─”
“그럼 그걸로 됐습니다.”
뭐라 말을 이을 틈도 없이 시엔이 고개를 젓는다.
“린치 경, 상황의 보고를.”
“여섯 명의 그림자 기사들이 조를 짜 교대로 감시 중이고, 그의 말처럼 공방에 들어가고 나서 달리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고 있습니다.”
“다 차려진 밥상이네.”
시엔의 말에 비고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후딱 가서 처리하자.”
* * *
세공사 길드의 작업 공방.
─정장 차림의 남자가 그곳에 있었다.
등 뒤에 있는 나이트워커 가문의 암살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모노클을 쓴 채 루비의 조각 세공에 열중하며.
“생각보다 늦으셨네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남자가 말했다. 마치 처음부터 이렇게 될 것을 예상했다는 듯이.
“우리가 올 줄 알고 있었나?”
“이 세상의 누구도 감히 나이트워커 가문의 눈과 귀를 속일 수는 없을 테니 말이지요.”
“그걸 알고도 무슨 배짱으로 여기까지 쥐새끼처럼 숨어들었지?”
“쥐새끼로서 해야 할 일들이 있었거든요.”
“자카니 회장을 회유해 그란델 대공 가문과 이어준 게 네놈이었나.”
루비 모서리를 조심스럽게 커팅하며 남자가 조소했다.
“저는 신의 도구입니다.”
혹시라도 보석에 뜻하지 않은 흠집이 생기지 않을까, 아주 섬세하고 조심스러운 손놀림으로.
“도구는 제 몸을 돌보지 않으매, 망가지거나 부서지는 것을 겁내지 않습니다.”
남자의 손에 스퀘어 컷으로 깎아진 루비는 어느덧 멋들어진 육각형 모양으로 각진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제 손에 들린 조각칼이, 이가 빠지고 부서지는 것을 겁내지 않듯 말이지요.”
스릉.
동시에 시엔이 소맷자락 속의 칼자루를 고쳐 잡는다.
카앙!
남자의 손에 들린 조각칼이 시엔의 ‘왕 시해자’와 맞부딪쳤다.
‘빠르다……!’
좁혀지는 거리를 보며 비고가 숨을 삼켰다. 그러나 더욱 당혹스러운 것은 당황하지 않고 예의 기습을 맞받아친 그의 동생, 시엔의 여유였다.
물론 비고 역시 더 이상 과거의 미숙했던 자신이 아니다. 이제는 어엿한 나이트워커 가문의 암살자다.
그렇기에 자신의 대부 미하일이 가르쳐준 내용을 떠올린다. 무엇을 해야 할지는 너무나도 명백했다.
‘「그물거미의 자세」─.’
나이트워커 가문의 아홉 가지 검식이 아니다. 그것은 오직 퍼펫 마스터 미하일밖에 쓰지 않는, 그리고 그의 대자(代子) 비고밖에 배우지 않은 고유의 검식이었다.
촤아악!
직후, 비고의 소맷자락에서 오러가 깃든 와이어가 거미줄처럼 실내를 집어삼켰다.
함부로 움직일 수 없는 거미줄의 사각지대.
‘여기서 내가 끼어들어 봐야 방해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거리를 벌린 뒤 죽음의 거미줄로 시엔의 엄호와 서포트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타앗!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아도 시엔 역시 어렵지 않게 비고의 의도를 깨달았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나이트워커 가문의 암살자들이 무서운 이유였다.
세례를 마친 나이트워커 가문의 가족을 잇는 모종의 결속이자 의사 공명, 일명 <텔레파시(Telepathy)>라 불리는 초상 능력.
나이트워커 가문의 암살자를 가족으로서 성립하게 해주는, 피보다 강력한 무형의 결속.
실전에 앞서 미리 합을 맞출 필요도, 백 마디 말이나 제스처를 보여줄 필요도 없다. 심지어 시시각각 바뀌는 전황 속에서 말을 맞출 필요조차 없었다.
그저 알 수 있었다.
‘그물거미의 자세는 실내에서 적의 움직임을 봉쇄하는 데 특화되어 있다. 직접 전투에는 그리 적합하지 않아.’
그럼에도 엄호와 보조라는 점에 있어서 더할 나위 없는 최적의 기술이기도 하다.
비고가 놈의 발을 묶고 봉쇄하는 사이에, 실제로 쐐기를 박는 것은 시엔의 몫이다.
2대 1.
바닥과 천장, 기둥과 탁자, 실내 곳곳에 빽빽하게 이어진 죽음의 거미줄 사이로 시엔이 땅을 박찼다.
카앙!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남자의 손에 들린 것은 더 이상 알기 쉬운 조각칼이 아니다. 그렇다고 성기사나 제국 기사들이 쓰는 기사 검도 성직자가 쓰는 철퇴도 아니었다.
시엔의 손에 들린 것과 같은 단검(短劍)이다.
남자의 발밑에서 보랏빛의 불길한 마력이 휘몰아친 것은 동시의 일이었다.
‘「치사성 맹독구름」!’
독 구름을 들이마시는 즉시 전신의 구멍에서 피를 뿜어내며 죽어가는 독 학파의 5위계 마법. 너무나 끔찍하고 비인간적이기에 제국 국교회의 이름으로 사용이 금지된 금기 마법.
그런 금기의 마법을, 교회의 인간이 보란 듯이 사용하고 있다.
그게 그들의 방식이다.
─정식 명칭은 신성 로마누스 제국 국교회 「감찰성성(S. Congregatio Inquisitionis)」 소속 공안감찰부(公安監察部).
이 세상에 만연한 온갖 이단과 악으로부터 제국의 신앙과 질서를 지키는 수호자들.
암살, 납치, 협박, 고문, 회유, 그들은 ‘질서’를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마치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나이트워커 가문의 암살자들처럼─.
“시엔 나이트워커.”
독 구름을 피해 거리를 벌린 시엔이 자세를 다잡았고, 그런 시엔을 보며 남자가 미소 지었다.
“이걸로 비로소 확신할 수 있게 됐습니다.”
“뭘 말이지?”
“당신의 재능이 거짓이 아니란 것을.”
“…….”
“당신에게는 암살자들의 어머니, 그 이상으로 제국과 교회에 위협이 될 잠재력이 느껴집니다.”
“그게 어쨌다는 거지?”
시엔이 차갑게 조소했다.
“너는 어차피 여기서 살아 돌아갈 수 없다.”
“그야 그렇겠지요.”
주륵.
남자의 코와 입에서 핏물이 흘러나온 것은 직후의 일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자기 손으로 생성한 독 구름에 의해서.
“처음부터 기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무슨……!”
그 모습에 비고가 숨을 삼켰다. 그러나 시엔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러니 여기서 제가 발버둥을 치며 당신의 성장을 도와줄 바에야, 차라리 아무 경험도 주지 않고 곱게 쓰러지는 쪽이 낫겠죠.”
“네 손으로 날 쓰러뜨릴 각오는 없었나 보지?”
“오만은 인간이 저지르는 죄 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죄악이랍니다, 형제님.”
어느덧 눈과 귀에서 피를 쏟아내고 있는 와중에도 남자가 담담히 말을 잇는다.
“그렇기에 신의 종은 늘 겸손해야 합니다.”
“그러신가.”
“게다가 퍼펫 마스터 미하일의 대자가 직접 ‘그물거미의 자세’까지 펼치는 이상, 더더욱 제게 승산은 절망적이지요.”
“어떻게 그 이름을…….”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제국의 쥐새끼라고.”
당황하는 비고에게 남자가 조소했다.
“──쥐새끼는 세상 어디에나 있거든요.”
이 세상의 어디에나 나이트워커 가문의 눈과 귀가 존재하듯이.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싸움 역시 마찬가지였다.
알기 쉬운 화려한 격돌이나 발악은 없다.
전신에서 피를 뿜으며 남자의 몸이 덧없이 무너져 내린다.
제국 공안, 이단심문관이 가진 괴물 같은 전력을 모를 시엔이 아니다. 남자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시엔을 쉬이 이길 수 없을 거란 사실을, 남자는 너무나도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그렇기에 자신 같은 강자와의 싸움을 통해 양분과 경험치가 되는 것마저 거부했다.
심지어 그가 이길 가능성은 결코 제로가 아니었음에도.
그 사실에 무심코 소름이 돋았다.
“끝난…… 거야?”
“그런 것 같네.”
방 일대에 죽음의 거미줄을 드리우고 있던 비고가 자세를 거둔다.
뜻밖의 맥없는 결말이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더욱 뒷맛이 좋지 않다. 비고 역시 마찬가지였다.
“설마 저항을 포기할 줄이야. 그럼 애초에 왜 처음부터 자결을 하지 않았지?”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던 거겠지.”
시엔이 대답했다.
“아마 별 위협이 없다고 판단했을 경우에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동귀어진을 감행했을 거야.”
“보통은 거꾸로잖아.”
오히려 위협적이기에 손을 대지 않는다. 얼핏 듣기에는 이상할 수도 있다.
용기 있는 기사라면 자신을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위협의 싹을 자르기 위해 싸울 것이다. 그리고 기꺼이 역사에 자신의 용맹이 남겨져 대대로 칭송되길 바라겠지. 그게 기사들의 명예로운 사고방식이니까.
그들은 달랐다. 명예를 숭상하지도 않고, 자신의 업적이 역사에 남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가 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병적일 정도의 겸손함과 신중함으로 상황을 헤아린다.
그것이 바로 그들의 진짜 무서움이었다.
“역시 기분 나쁜 놈들이야.”
비고의 말에 시엔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 말대로였다.
“우리랑은 태생부터 다른 족속들이니까.”
쓰러진 제국 공안의 시체를 뒤로하고 시엔이 말했다.
“임무는 이걸로 끝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