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베네토 도둑 길드 (3)
“얼굴을 버린 당신에게, 진정한 얼굴 없는 자세를 가르쳐 드리죠.”
파지직!
벼락이 내리꽂히고 섬광이 휘몰아쳤다.
동시에 시엔의 코앞에 어느덧 차가운 기품이 서린 여성의 포커페이스가 밀착하듯 다가와 있었다.
두 다리의 오러를 폭발시키며 거리를 좁히는 쾌속 쇄도, 무척이나 낯이 익은 자세다.
“섬광의 자세…….”
“아뇨.”
무심코 시엔이 중얼거렸고, 모니카가 차분한 목소리로 고개를 젓는다.
“「얼굴 없는 자세」입니다.”
어느덧 어릿광대 마스크를 쓴 모니카가, 두 자루의 나이프를 손에 쥐고 쇄도했다. 시엔 역시 소맷자락에 숨겨진 왕 시해자를 꺼내 황급히 그녀의 일격을 맞받아쳤고, 시프 마스터가 움직였다.
칼날을 맞부딪친 그 상태로 거리를 좁히며 다가와 소드 레슬링(Kampfringen)을 펼치는 저돌적 검식.
“쌍두독수리의 자세─.”
“아닙니다.”
시엔의 말에 모니카가 다시금 고개를 젓는다. 칼날을 맞부딪치며 거리를 좁히며 관절기를 걸어 제압하는 그래플링 기술이자, 신성 제국 엘리트 기사들의 상징.
“얼굴 없는 자세입니다.”
그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쌍두독수리의 자세였다. 그러나 어릿광대 마스크를 쓴 ‘얼굴 없는 자’는 담담하게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직후 시엔을 제압하려는 그래플링 기술이 멈추고 거리를 벌린다. 그러자 독사처럼 날카로운 살기를 머금고 칼끝이 서슬을 빛내고 있다.
“독사의 자세…… 아니, 얼굴 없는 자세겠지.”
“그렇습니다.”
얼굴 없는 자, 시프 마스터가 대답했다.
이것이 바로 베네토 도둑 길드의 도둑들이 살아남기 위해 배우는 검이었다.
도둑의 검. 도둑질하고 훔친 검.
그 상태로 거리를 벌린 시프 마스터가 손가락을 튕겼다.
파자직!
동시에 그녀의 손끝에서 전류가 일렁이며 뇌전의 화살이 내리꽂혔다. 검이 아니다. 마법이다.
마법 자체는 별것 없는 1위계 공격 마법 「라이트닝 볼트」다.
그런데 그녀의 손끝에서 전류가 일렁이며 시엔을 향해 쏘아지는 속도는, 시엔조차 예상할 수 없을 정도의 터무니없는 초고속 사출이었다.
쏘아진 라이트닝 볼트가 아슬아슬하게 시엔의 뺨을 스치며 지나갔다.
파직!
그리고 지나갔다고 생각하기 무섭게 2발째의 라이트닝 볼트가 시엔의 발밑에 내리꽂혔다.
‘빠르다!’
보통 라이트닝 볼트가 아니다. 검을 쓰는 기사들이 ‘자세’에 따라 갖가지 개성과 특징을 갖는 것처럼 마법사들 역시 목적에 따라 마법에 개성과 특징을 부여하며 고유의 ‘자세(스탠스)’를 갖는다.
“「결투자의 자세」…….”
마법 중에서도 일대일 결투에 최적화된 마법 영창 방식이자, 결투 마법사들이 즐겨 쓰는 일명 속사 영창.
「퀵파이어링(Quick-firing) 라이트닝 볼트」.
“아뇨, 얼굴 없는 자세입니다.”
그럼에도 얼굴 없는 자가 담담히 대답했다.
검조차 아니다. 마법이고, 마법사의 자세다. 그런데 시프 마스터 ‘얼굴 없는 자’는 태평하게 그 기술을 일컬어 도둑의 검, 얼굴 없는 자세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얼굴 없는 자세였다.
도둑의 검, 일개 도둑들이 느긋하게 검이나 휘두르며 갈고닦고 있을 여유는 없다.
그저 남들의 것을 훔칠 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그들의 검이고 자세였다. 그게 바로 도둑들의 방식이자 이념(Stance)이니까.
“섬광의 자세나 독사의 자세는 그렇다 쳐도, 설마 쌍두독수리와 결투자의 자세까지 훔쳤을 줄이야.”
“훔치는 게 도둑의 일 아닙니까.”
베네토 도둑 길드의 마스터가 키득거렸다.
비교적 잘 알려진 범용 검식들이야 그렇다고 쳐도, 쌍두독수리의 자세나 결투자의 자세는 제국 기사나 제국 마탑의 마법사들 외에 함부로 배울 수 없는 고급 자세들이다.
게다가 눈앞의 시프 마스터가 구사하는 자세가 고작 이게 다일 리 없다.
“제가 왜 앞서, 당나귀처럼 추하게 바닥을 구르는 법을 가르쳐드렸는지 아십니까?”
“자세에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정답입니다.”
각각의 자세에는 저마다의 이념과 정신이 깃들어 있다.
가령 쌍두독수리의 자세는 용맹을 미덕으로 삼고 적을 굴복시키기 위해 정복 군주의 기사들이 휘두르는 검이다. 그런 투지가 깃든 검을 일개 좀도둑 따위가 휘둘러 봐야 자살 행위나 다름없을 것이다.
그 이념이야말로 자세의 ‘얼굴’이고, 그렇기에 얼굴을 버리는 것이다.
쌍두독수리의 얼굴을 버리고, 쌍두독수리의 자세에 깃든 용맹함의 이념(스탠스)을 버리고, 얼굴 없는 자가 되어 휘두르는 것.
얼굴 없는 자세, 그 이름처럼 이 자세에는 얼굴이 없다. 그저 장물처럼 남들의 검과 마법을 훔쳐서 상황에 맞는 적재적소의 가면을 쓸 뿐이다.
“나도 쌍두독수리의 자세에는 나름의 조예가 있지.”
생각하고 나서 시엔이 칼자루를 고쳐 잡는다.
훗날 제국 기사들의 시체로 산을 쌓았고, 그때마다 그들이 펼치는 쌍두독수리의 자세를 질릴 정도로 보아왔다. 심지어 암살자들의 아버지로서 시엔이 쓰러뜨리고 보아온 자세는 그게 다가 아니었다.
눈앞의 시프 마스터조차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뭐, 그렇다고 처음부터 너무 밑천을 드러낼 필요는 없으니까.’
그렇기에 검을 고쳐 잡고 시엔이 거리를 좁혔다.
거리가 좁혀진다. 칼날이 맞부딪친 채로 시프 마스터를 향해 파고들었다. 날붙이의 리치가 무의미해지는 거리까지 파고들어 그래플링 기술, 소드 레슬링을 펼치는 저돌적 검식.
그러나 시엔이 펼치는 것은 더 이상 쌍두독수리의 자세가 아니었다.
알기 쉬운 용맹함도 저돌성도 느껴지지 않고, 기사의 고결함이나 긍지도 없다.
─그저 「얼굴 없는 자세」였다.
콰직!
시엔이 그래플링 기술을 걸었고, 시프 마스터 역시 쌍두독수리의 자세에 담겨 있는 묘리를 이용해서 역으로 시엔의 관절기를 흘려넘겼다.
“아직도 쌍두독수리의 얼굴이 보입니다.”
시엔의 공격을 능숙하게 흘려넘기며 시프 마스터가 말했다.
“……쉽지 않네.”
“뭐, 그래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아주 희미하게 보이는 정도라서.”
어릿광대 마스크를 벗으며, 차갑고 기품 어린 여성의 목소리가 말을 잇는다.
“아마 개처럼 짖는 법을 마스터할 즈음에는 완벽하게 얼굴을 버릴 수 있을 것 같네요.”
“그거 생략해준 거 아니었냐?”
“뭐, 경애하는 밤을 걷는 분이 개처럼 짖는 광경이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구경거리는 아니죠.”
“……너 그러다 진짜 칼 맞는다.”
포커페이스를 지키며 모니카가 어깨를 으쓱였고, 그 모습에 시엔이 어이가 없어서 쏘아붙였다.
바로 그때, 시린 밤바람이 불어왔다. 바람 속에는 바닷가의 소금 냄새가 섞여 있었다.
“뭐, 알다시피 ‘얼굴 없는 자세’는 결국 마음가짐이 다입니다. 사실 이 이상 가르칠 것도 없죠.”
모니카가 말했다.
“게다가 목숨을 걸고 남의 자세를 훔쳐 베끼는 우리 좀도둑들과 달리, 시엔 공자님께서는 그럴 필요조차 없으시고요.”
그 말대로다.
나이트워커 가문의 서고에는 그들 가문의 아홉 가지 검식 외에도 헤아릴 수 없는 자세들이 기록되어 있다.
‘역시 얼굴 없는 자세를 배우는 게 정답이었다.’
기사들의 고결함도, 마법사의 긍지도 없다. 심지어 암살자의 살검과도 달랐다.
세상에서 가장 비천한 자세.
밑바닥 도둑들이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며 쌓아 올린, 비겁하고 비열하기 짝이 없는 처세술.
바로 그 ‘하찮은 처세술’이 대륙 제일의 암살자 가문, 훗날 그들의 정점에 설 시엔에게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르침을 주고 있다.
그 사실이 너무나도 새롭고 즐거웠다.
세상은 넓고 아직 이 세상에는 시엔이 배울 것들로 넘쳐나고 있다는 사실.
‘……뭐가 그랜드마스터냐.’
암살자들의 아버지, 시엔 나이트워커 공작.
유구한 가문의 역사 속에서, 시조 카산 이래 4인의 가주밖에 도달하지 못한 위대한 암살자이자 당대 유일의 그랜드마스터.
강해질 대로 강해졌다고 생각한 자신이 알고 보니 우물 속 개구리에 불과했다. 통달했다고 생각했던 가문의 세 가지 검식조차 통달이 아닐 수도 있다. 그 사실이 너무나도 유쾌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뭐가 그렇게 웃기십니까?”
웃음을 터뜨리는 시엔을 향해 모니카가 물었다.
“그냥, 즐거워서.”
“개처럼 짓는 게 그렇게나 즐거우신지.”
“……너 진짜 입조심 잘해라.”
시엔이 어이가 없어서 쏘아붙였다. 그리고 담담하게 말을 잇는다.
“나는 세상에서 제일 강해질 거야.”
“그야 그렇겠죠.”
소금 냄새가 섞여 있는 바닷바람을 뒤로하고 시엔이 입을 열었다. 모니카 역시 달리 부정하지 않고 어깨를 으쓱였다.
“밤을 걷는 자들의 정점, 나이트워커 가문의 가주가 될 분이니까요. 아마 세상에서 제일 강해질 테죠.”
“뭐, 그거야 이미 기정사실이지.”
시엔이 달리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허세도 자신감도 아니었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거보다 훨씬 더 강해질 거거든.”
“…….”
일순, 포커페이스를 지키고 있던 모니카의 표정에 동요의 빛이 어린다. 고작 열다섯 살짜리 시엔의 눈동자에서 깊이를 알 수 없는 야망의 그림자를 엿볼 수 있었던 까닭에.
“그러니까 너도 미리미리 잘 보여야 할 거다.”
“지금도 충분히 열과 성의를 다해 가르치는 중입니다.”
“그래, 그걸로 됐지.”
“참, 그러고 보니 ‘결투자의 자세’로 퀵파이어링 라이트닝 볼트를 속사 영창할 때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아티팩트가 있습니다.”
“무슨 아티팩트?”
“《뇌전의 장갑》입니다.”
모니카가 품에서 무엇을 꺼냈다. 흑색의 가죽 장갑이었다. 파직, 파직, 찌릿찌릿한 스파크를 튀기며 청색의 전류가 일렁이고 있는.
“아시다시피 퀵파이어링 라이트닝 볼트는 속도를 얻는 대가로 위력이 급감하는 흠이 있지요. 그것을 이 장갑에 깃들어 있는 전격 마력으로 강화해줄 수 있을 겁니다.”
“아니, 뭐 이런 걸 다 주고 그러냐…….”
파지직!
장갑을 받아들자, 그 속에 깃든 강력한 전격 속성의 마력이 섞여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뇌전의 장갑을 끼고 시엔이 시험 삼아 손가락을 튕겼다.
일개 도둑 따위가 결투자의 자세나 퀵파이어링 라이트닝 볼트를 쓸 수 있다는 사실은 확실히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 나이트워커 가문의 암살자는 아니었다.
파지직!
시엔의 손끝에서 전격 마력이 일렁이며 쇄도했다. 몇 발의 라이트닝 볼트를 속사하고 나서, 시엔이 흡족하게 웃었다.
위력과 속도 모두 나무랄 데가 없다. 당장 즉전력(卽戰力)으로 투입해도 무방할 정도로 훌륭하다. 설마 이렇게까지 빨리 실전에서 쓸 수 있는 기술이 늘어날 줄이야. 뜻밖의 횡재였다.
“고맙다.”
“뭐가 말입니까?”
“그야 이런 비싼 아티팩트까지 공짜로 다 주고…….”
“왜 공짜라고 생각하시는지.”
“……?”
“아니, 제값 주고 사셔야죠. 도둑놈도 아니고.”
모니카의 말에 시엔이 어이가 없어 입을 다물었다.
“아니, 그 비싼 수업료를 줬는데 이거 하나 서비스로 못 줘?”
“공화국 금화 500닢입니다. 꽤 비싼 아티팩트라서요.”
“너, 내가 금괴 100킬로그램 준 거는 기억하고 있지?”
“수업료로 확실히 받았죠.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시엔이 황당해서 중얼거렸다.
“……이거 완전 도둑놈이 따로 없네.”
“그야 도둑 길드 마스터니까요.”
베네토 도둑 길드의 13대 마스터, 모니카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 * *
그로부터 얼마 후, 시엔의 어깨에 나이트워커 가문의 밤매 두 마리가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