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마스터 시험 (2)
견진성사.
세례를 받은 신자가 신앙을 확고히 했음을 증명하는 성사.
“마스터가 되기 위해 견진성사를 치르는 것은 뼈를 만드는 시험과 비교할 수 있는 게 아니란다.”
세례성사, 견진성사, 고해성사, 성품성사…….
그러나 나이트워커 가문에서 말하는 성사는 교회에서 흔히 치르는 종교적 의례가 아니다.
견진성사 역시 마찬가지다. 교회에서 말하는 신앙의 확고한 증명, 종교적 의미의 성인식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성인식’이란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가문의 9가지 검식 중 하나에 완벽하게 통달했음을 증명하고 마스터로 거듭나기 위한 시험.
세례를 통해 밤을 걷는 자로 다시 태어났든, 뼈를 묻는 시험을 통해 메이드맨이 되었든, 견진성사를 통과하기 전까지는 결국 가문의 어린아이에 불과하니까.
애초에 메이드맨이 되는 시험에는 성사(Sacrament)란 이름조차 붙어 있지 않다. 그 정도로 무게감이 낮다는 것이다.
그런데 견진성사를 무사히 마친 마스터는 다르다.
말 그대로 어른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까닭에.
당장 누릴 수 있는 혜택부터 하늘과 땅 차이다.
휘하에 직속의 그림자 기사 부대를 비롯해 가문의 첩보 조직을 거느리고, 가주의 명령 없이 독자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재량이 주어지며, 나이트워커 공작 가문이 대륙 전역에 걸쳐 가진 별도의 영지와 작위를 하사받을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마스터부터는 세례를 마친 아이들의 대부(代父)가 될 자격을 얻는다.
“충분히 각오하고 있어요.”
과거로 돌아온 시엔이 가장 뼈저리게 깨달은 것은 남들이 규정해준 경지의 무의미함이었다.
익스퍼트니 마스터니, 그런 식으로 남들이 붙여준 라벨이 지금껏 얼마나 자기 눈을 가로막고 시야를 협소하게 바꾸는지. 그렇기에 메이드맨이니 마스터니 하는 ‘남들이 붙여준 경지’ 따위에 신경 쓰지 않고 자기를 갈고닦는 데 전념했다.
그런데 상황이 달라졌다.
운명의 수레바퀴는 당초 시엔이 상상하고 있었던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그리고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벌써 움직이고 있었다.
이 이상 느긋하게 수련이나 하며 여유를 부리고 있을 시간 따위는 없다.
가문을 위해, 가족을 위해, 이용할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이든 이용해야 했다.
“……너는 늘 그런 아이였지.”
각오를 다지는 시엔을 보며 라일라가 즐거운 듯이 물었다.
“그래서 어떤 검식을 마스터했니?”
“아무것도 마스터하지 못했어요.”
“……뭐라고?”
뜻밖의 대답에 라일라가 당혹스러운 듯 눈을 끔벅거렸다.
“솔직하게 말해서 저는 아홉 가지 검식 중에 무엇 하나 완벽하게 통달하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하나의 검식을 완벽하게 통달하지 않는 이상, 견진성사를 치를 수 없다는 걸 알지 않니.”
“검식을 「완벽하게 통달했다」는 게 뭐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엔이 되물었다. 너무나도 당돌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견진성사는 엄밀히 말해 검식의 마스터나 통달을 증명하는 자리가 아니에요.”
“그럼 뭐지?”
“그저 가족의 동의를 얻어내는 협상 테이블이죠.”
시엔이 말했다.
“마스터가 되는 것은 결국 가문의 마스터, 하이마스터, 끝으로 가주와 콘실리에리의 동의를 구하는 것뿐이니까요.”
일찍이 가문의 가장 지혜로운 자, 루나가 해주었던 말을 떠올리며.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저는 하나의 자세를 마스터했다고 불릴 자신이 있어요.”
“어떤 자세지?”
“망령의 자세.”
시엔이 대답했다. 라일라의 표정에 그녀답지 않게 당혹스러운 감정이 깃들었다.
나이트워커 가문의 암살자를 암살자로 성립하게 해주는 자세이자, 가장 수수하며 가장 통달하기 어렵다고 일컬어지는 가문의 제1식.
“그 의미를 알고 있는 거니?”
“왜 모를 거라고 생각해요?”
이 검술을 배우지 않고는 나이트워커 가문의 암살자를 자청할 수조차 없다. 그러나 정작 그들 가문의 역사 전체를 통틀어 제1식의 마스터에 도달한 자들의 숫자는 공식적으로 고작 네 명뿐이다.
시조 카산과 조상 세대의 가주, 지금 시엔의 눈앞에 있는 「암살자들의 어머니」 라일라 나이트워커.
“망령의 자세를 마스터했던 가문의 암살자는 모두가 예외 없이 가주(家主)가 되었고, 훗날 그랜드마스터가 됐죠.”
끝으로 훗날의 시엔 자신이었다.
“다시 말할게요. 저는 가문의 제1식, 망령의 자세로 견진성사를 치를 거예요. 그리고 협상 테이블에서 가문의 동의를 얻어낼 거죠.”
“설령 스스로 그 자세를 완벽하게 통달하지 못했다고 생각해도 말이니?”
“─어머니는 어떠신가요?”
바로 그때, 시엔이 물었다.
“당대 유일의 그랜드 어쌔신, 망령의 자세를 비롯해 가문의 세 가지 검식을 완벽하게 통달하신 경애하는 암살자들의 어머니─.”
대륙 제일의 암살자 가문, 밤을 걷는 자들의 정점에 서는 바로 그녀에게.
“가주님께서는 정말 스스로 망령의 자세를 완벽하게 통달했다고 확신하시나요?”
“참으로 무례하기 이를 데 없는 물음이구나.”
“용서해 주십시오, 가주님.”
“그래도 무척 흥미로운 지론이야.”
그렇게 말하는 라일라의 표정에는, 동시에 즐거워서 참을 수 없다는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그래, 어쩌면 네 말이 맞을지도 모르지.”
직후, 미소가 사라지고 서릿발처럼 차가운 공기가 일대를 집어삼켰다.
“그럼 너는 앞서 내가 그랬던 것처럼 가문의 마스터와 하이마스터, 콘실리에리 루나 님, 그들 모두의 앞에서…….”
얼어붙을 것 같은 공기 속에서 라일라가 말을 잇는다.
“끝으로 나의 앞에서─ 우리 모두의 ‘동의’를 끌어낼 자신이 있니?”
“증명할 거예요.”
시엔이 대답했다.
“일찍이 어머니께서 그렇게 하신 것처럼.”
“좋은 마음가짐이구나.”
시엔의 대답에 라일라가 서릿발 같은 공기를 거두며 미소 지었다.
“그럼 지금 당장 보여주렴.”
시엔조차 예상하지 못한 뜻밖의 말과 함께.
“네가 진정으로 나의 동의를 얻어내고, 견진성사를 치를 자격이 있는지를.”
* * *
새벽달이 부러질 것처럼 가늘고 앙상하다.
나이트워커 공작 저택의 광장. 솟구치는 분수 줄기 너머, 흑색의 대리석으로 쌓아 올린 죽음의 청기사…… 묵시록의 기마상 앞.
시엔과 라일라가 광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뜻밖의 얼굴들이 그곳에 있었다.
“나, 나이트워커 공작 각하! 돈 시엔!”
“경애하는 밤을 걷는 분들을 뵙습니다!”
머지않아 세례를 앞둔 밤의 아이들 몇 명과 그림자 기사들이다.
그리고 시엔과 라일라가 그들의 등 뒤로 성큼 다가갈 때까지, 그중 아무도 두 모자의 기척을 깨닫지 못했다.
‘벌써 내 망령의 자세를 시험하고 있네.’
그저 소스라치게 놀라는 마음을 필사적으로 억누르며 평정과 예의를 지킬 뿐.
“늦은 새벽까지 수행에 열중하고 계시네요.”
라일라가 차가운 미소로 입을 열었다.
“소, 송구합니다, 공작 각하! 즉시 아이들을 물리고 자리를 비우도록…….”
“아뇨, 그럴 것 없어요.”
당황해서 고개를 숙이는 그림자 기사를 향해 라일라가 손을 내젓는다. 내젓고 나서는, 기사들 곁에서 함께 무릎을 꿇고 있는 밤의 아이들을 슬쩍 곁눈질로 흘겼다.
‘…….’
시엔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중에는 머잖아 시엔의 새로운 가족이자 동생이 될, 무척 낯익고 그리운 얼굴이 섞여 있었다.
수정처럼 새파란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
여느 밤의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초점 없이 검고 어두운 눈동자를 하고 있다. 과거의 시엔이 그랬던 것처럼.
‘티아…….’
《흑조(Black Swan)》 티아 나이트워커.
최후의 순간까지 시엔의 곁을 보좌하며 맞서 싸우길 자처했던 가문의 하이마스터.
그러나 당장 섣불리 손을 쓸 생각은 없다. 어차피 저 아이는 시엔이 있든 없든 무사히 세례를 통과하고 어엿한 밤을 걷는 자가 될 테니까.
“모처럼 우리 가문의 검을 보여줄 기회이니, 미리 봐둬서 나쁠 것은 없겠죠.”
“영광입니다, 공작 각하!”
그렇게 말하며 라일라가 손가락을 튕기자, 그림자 기사들과 밤의 아이들이 황급히 물러나듯 거리를 벌린다.
시엔은 움직이지 않았다. 라일라 역시 움직이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그 자리에 서서 정지한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깨달았을 때는 어느덧 쇳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시엔의 소맷자락 속에서 튀어나온 왕 시해자가 라일라의 소맷자락과 부딪치고 있었다.
호흡도 하지 않고, 심장도 뛰지 않고, 세포의 신진대사마저 동결한 채, 오러도 마력도 무의식적으로 내뿜는 ‘생명의 기운’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을 더 이상 살아 있는 인간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럴 리가.
망령이 그곳에 있었다.
‘저게 바로 암살자들의 어머니와 그 대자(代子)가 펼치는 망령의 자세……!’
그림자 기사들 사이에서 경악 어린 동요가 깃들었다. 곁을 지키는 아이들의 경우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조차 깨닫지 못했다.
“아…….”
오직 하나, 티아란 이름의 소녀를 제외하고서.
봐도 보이지 않고 들려도 들리지 않는다.
─그저 호수에 비친 달을 마주하는 위화감이 있을 뿐.
“훌륭하게 자신을 감추고 있구나.”
“얼마 전에 몇 가지 깨달음을 얻었거든요.”
“일개 도둑 길드의 장물아비 따위에게 말이니?”
라일라가 즐거운 듯 웃었다.
“얼굴 없는 자세는 확실히 흥미롭지. 그러나 그게 다야.”
달리 그녀에게 보고를 올린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시엔이 무엇을 배웠는지,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마치 손바닥처럼 들여다보고 있었다.
“가짜는 절대 진짜를 이길 수 없거든.”
“그럴지도 모르죠.”
그러나 설령 그녀라 해도 시엔이 ‘얼굴 없는 자세’를 통해 깨우친 깨달음의 형태마저 들여다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 아니, 그녀가 재미있는 말을 들려주더군요.”
“꼭 들어보고 싶구나.”
“아무리 어머니라도, 함부로 남의 영업 기밀을 떠벌리고 다닐 수는 없죠.”
시엔이 짓궂게 웃었고, 그 말에 라일라 역시 미소 지었다.
“그래, 신뢰는 무엇보다 중요하니까.”
그 말대로다. 지금 시엔에게 필요한 것은 백 마디 말이 아니라 딱 한 차례의 증명이었다.
다시금 라일라의 기척이 사라진다. 아니, 없어졌다.
그 상태로 일찍이 얼굴 없는 자, 모니카가 말해준 깨달음을 떠올렸다.
─없는 게 꼭 없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거든요.
세상에서 가장 비천한 존재가 알려준 가르침.
그 검결(劍訣)을 되새기며 시엔이 눈을 떴다. 그대로 주위의 풍경을 아주 천천히 새겨넣었다.
시린 밤공기, 솟구치는 분수 줄기, 죽음의 청기사, 이지러진 달…….
온갖 것들이 넘쳐흐르는 그 풍경 속에 그것이 있었다.
「없는 것」.
생명의 기운도 밤바람의 숨결도, 스러지는 달빛도, 새벽 공기를 머금고 흐르는 공기조차 닿지 않고 느껴지지 않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 거기 있었다.
‘없어도 있는 것.’
그렇기에 바로 그 ‘없는 라일라’를 향해 시엔이 땅을 박찼다.
재차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전히 시엔의 칼끝이 라일라의 급소를 향해 겨누어지는 일은, 그야말로 꿈에서나 가능할 일이다.
“용케도 알아차렸구나.”
그럼에도 시엔의 일격을 소맷자락으로 가로막으며 라일라가 흡족하게 미소 짓는다.
“설마 그걸 베네토 도둑 길드의 검결에서 배울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말이야.”
“뭘 말이죠?”
시엔이 시치미를 떼며 되물었고, 라일라가 대답했다.
“진정한 제1식의 마스터가 되기 위한 비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