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갈까마귀의 자세 (2)
“오랜만이에요, 오라버니.”
「웃는 남자」 요한 나이트워커.
나이트워커 가문의 최고 전력, 하이마스터. 심지어 그들 중에서도 첫손가락에 꼽히는 실력을 자랑하는 강자.
순수한 전투력만 놓고 본다면 콘실리에리 루나조차 능가하는 실질적인 가문의 2인자.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라일라 나이트워커와 가주(家主)의 자리를 놓고 다투었던 그녀의 오빠.
“티아, 잠시 자리를 비켜줄 수 있겠니?”
“알겠어요, 가주님.”
라일라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티아가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머지않아 티아가 모습을 감추고, 세 사람이 남겨졌다.
라일라와 그녀의 오라버니 요한, 아들 시엔.
“볼 때마다 몰라볼 정도로 강해지고 있구나.”
그런 시엔을 보며 요한이 미소 짓는다.
“자랑스러운 저의 아들이니까요.”
“아들이라.”
그 말에 요한이 차가운 실소를 흘린다.
“누가 보면 배 아파서 낳은 줄 알겠네.”
“…….”
그 실소에 일대의 공기가 얼어붙는다.
“언제까지 이런 유치한 가족 놀이를 할 셈이니?”
마치 절대로 입에 꺼내선 안 될 금기(禁忌)를 입에 담은 것처럼.
“딱히 오라버니가 제 앞에서 무슨 헛소리를 하든 신경 쓰지는 않지만…….”
라일라가 지금까지와 비교할 수 없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곁에 있던 시엔조차 무심코 소름이 돋을 정도의 기백으로.
“이 아이의 앞에서는 아니랍니다.”
“흠, 무섭기도 하지.”
요한이 어깨를 으쓱이며 물러섰다.
“뭐, 그래도 오해하지 말렴, 시엔.”
그대로 시엔을 향해 미소 지으며 말을 잇는다.
“나도 딱히 널 싫어하지는 않거든.”
“…….”
“우리에게는 가족이 전부니까 말이지. 그렇지 않니?”
“응, 그거야 물론이지.”
바로 그때였다.
“─그 외에 달리 우리에게 뭐가 남아 있는데?”
애티 어린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서 오렴, 그레텔. 그리고 헨젤.”
“응, 라일라 언니! 늦어서 미안해!”
두 명의 하이마스터, 둘이서 합쳐 「마녀 사냥꾼」의 이름을 가진 헨젤과 그레텔 남매가 나란히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만이네, 요한 형.”
평소 그들이 보여주는 어린아이 같은 치기 속에서, 송곳처럼 서슬 퍼렇게 빛나는 어금니를 슬쩍 드러내며.
“둘 다 여전히 기운이 넘쳐 보여서 다행이구나.”
“그러는 형도 여전해 보여서 다행이야.”
요한이 어깨를 으쓱이며 걸음을 물렸고, 바로 그때였다.
“다, 다들…… 싸우지 마…….”
눈에 띌 정도로 소심하고 기어가는 듯한 목소리가 쭈뼛쭈뼛 이어진다.
“가, 가족끼리 싸움은…… 좋지 않으니까…….”
「대량학살장치」 앨리스 나이트워커.
“돈나 앨리스의 말처럼, 쓸데없는 다툼은 이 정도로 하지요.”
「늙은 암살자」 루치아노 나이트워커가 말했다.
“우리의 가주, 경애하는 암살자들의 어머니─.”
그 외에도 어느덧 나이트워커 가문의 ‘하이마스터’들이 하나둘씩 그곳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나의 검식에 통달하고 마스터가 됐음을 증명하는 견진성사.
그리고 견진성사에 이어 두 개의 검식을 통달해야 치를 수 있는 「성품성사(Sacri Ordines)」.
바로 그 성품성사를 무사히 치러야 올라갈 수 있는 가문 내 최고 전력.
“어서 오세요, 친애하는 나의 형제자매들.”
그들을 거느린 채 암살자들의 어머니가 미소 지었다.
“사랑하는 나의 전부들이여.”
* * *
가주와 콘실리에리 및 하이마스터 사의 회동은 일명 ‘최고 회의’라고 불리며, 설령 시엔이라 해도 아직 이 자리에는 입회할 수 없다.
물론 내용 자체는 나중에 라일라의 입을 통해 얼마든지 들을 수 있고, 거기서 무슨 이야기가 오갈지 짐작이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정작 시엔의 신경을 사로잡는 것은 달리 있었다.
웃는 남자, 요한 나이트워커.
마지막 순간까지 라일라와 가주 자리를 놓고 다투었던 가족.
가주 라일라, 콘실리에리 루나와 함께 언더보스(Underboss)로 나이트워커 가문의 최고 지도부를 구성하는 3인방.
‘역시 소문이 사실이었나.’
그가 가족들 앞에서 보이는 비협조적 태도나 비아냥 같은 것은 새삼스러운 것도 없다.
그런 까닭에 가문 내에서는 그를 향해 경계 어린 눈길을 보내는 이들도 적지 않다. 당장에 티아가 보여준 경계심처럼.
그러나 몇몇 가족들의 우려와 달리, 요한은 그런 알기 쉬운 배신자 같은 것이 아니다.
나이트워커 가문의 인간들을 잇는 결속은 그렇게 허술하지 않다. 마찬가지로 시엔이 신경 쓰고 있던 ‘소문’ 역시 그가 가문의 배신자이니 뭐니 하는 시시한 내용이 아니었다.
‘─요한 나이트워커는 하이마스터가 아니다.’
두 개의 검식에 완벽하게 통달한 가문의 암살자.
가문의 제4식 「갈까마귀의 자세」와 8식 「달그림자의 자세」를 구사하는 최강의 하이마스터.
아니었다.
티아가 보여준 경계의 빛, 시엔 역시 명백히 느낄 수 있었던 위화감. 그 위화감의 정체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자신을 죽이는 검.
‘요한은 이미 망령의 자세를 마스터했다.’
가문의 두 가지 검식이 아니라, 3개의 검식을 완벽하게 통달한 그랜드마스터. 그것이 요한이 숨기고 있는 진정한 실력이었다.
“앗! 찾았다!”
바로 그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애티 어린 소녀의 목소리.
“……그레텔 이모.”
“여기 있었구나, 시엔!”
“벌써 회의가 끝났어요?”
“에이, 한참 멀었지!”
그렇게 말하며 그레텔이 시엔이 앉은 분수대 옆에 걸터앉았다.
“그런데 도중에 빠져나와도 돼요?”
“난 지루한 게 딱 질색이거든. 어차피 바보 헨젤이 듣고 있기도 하고.”
겉보기에 17살의 시엔보다도 한참은 어려 보이는 소녀, 높게 봐야 열두 살 정도일까. 말투나 행동거지 역시 또래 나이에 걸맞은 애티가 물씬 풍기고 있다.
“요한 일은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
“저는 딱히 신경 쓰지 않아요.”
“응, 그럼 다행이네.”
그레텔이 생긋 미소 짓는다.
“언젠가는 너도 이해하게 될 거야.”
“뭘 말이죠?”
시엔이 짐짓 시치미를 떼며 물었다.
“저래 보여도 요한 오빠는 사실 불쌍한 사람이거든.”
“……그렇군요.”
“그러니까 가족인 우리가 이해해줘야지. 특히 시엔, 너는 우리 가문을 이끌어갈 차기 가주니까 말이야.”
그레텔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는 서로의 전부니까.”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고요.”
“응, 맞아.”
물론 시엔 역시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명심할게요, 그레텔 이모.”
“에이, 이모가 뭐야, 이모가!”
그레텔이 뺨을 부풀리며 말을 잇는다.
“앞으로는 누나라고 불러!”
“알겠어요, 그레텔…… 누님.”
“응!”
시엔이 쑥스러운 듯 말을 흐렸고, 그레텔이 생긋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좋아! 그럼 오랜만에, 이 누나가 우리 조카 실력 좀 봐줄까?”
“저야 좋죠.”
죽음의 청기사, 창백한 말의 기수를 상징하는 장엄한 기마상이 우뚝 솟은 분수대 광장. 서늘한 밤공기와 창백한 달빛, 솟구치는 분수의 물줄기 소리를 뒤로하고.
일대의 시간이 정지한 것 같은 착각 속에서, 시린 마력이 내달린다.
「마녀」의 이명을 가진 하이마스터 그레텔, 가문 내에서도 몇 없는 마법을 주력으로 다루는 암살자.
그렇기에 그녀의 마력이 일렁이는 것보다 한 발자국 빠르게, 시엔이 움직이고 있었다.
「결투자의 자세」.
검의 자세가 아니다. 마법사의 자세(스탠스)였다.
마법 중에서도 일대일 결투에 최적화된 마법 영창 방식이자, 마법의 고속 영창에 중점을 둔 쾌속의 자세.
거기에 아티팩트 ‘뇌전의 장갑’을 차고 있는 시엔의 손끝에서, 전격의 스파크가 벼락처럼 내달렸다.
심지어 속도를 위해 희생돼야 할 위력 역시, 뇌전의 장갑 덕에 통상 라이트닝 볼트의 몇 배 가까운 출력을 내보이고 있었다.
속도와 위력,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깔끔한 일격.
“우와, 대단해! 진짜로 대단해, 시엔!”
그러나 그 일격이 그레텔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피하지도 막지도 않는다. 그레텔을 향해 벼락처럼 내달린 시엔의 라이트닝 볼트가,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그대로 멈춰 있었다.
1위계 염력 마법 「보이지 않는 손」.
‘저걸 낚아챘다고?!’
시엔 역시 사이킥 마법에는 적잖은 조예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눈앞의 풍경을 보자 아연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공격 마법을, 사실상 두 손가락으로 정확히 낚아챈 것이다.
“그나저나 어릴 적에는 9식이나 염력 마법에 그렇게 열중이더니─ 요새는 흥미가 시들시들해 보이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시엔이 멋쩍은 듯 쓴웃음을 짓는다. 당장에 배워야 할 것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까닭에, 그리고 눈앞에 닥쳐 있는 시간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던 까닭에.
“그래도 포기하지는 않았어요.”
“그래, 여전히 마법에는 흥미가 있다는 뜻이지?”
“네.”
시엔이 고개를 끄덕였다.
“9식 ‘크라켄의 자세’도 사이킥 마법도 마찬가지예요.”
“응, 아주 좋아! 그래야 우리 시엔이지!”
시엔의 말에 그레텔이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모처럼이니까, 이 누나가 특별히 보여줄게.”
“뭘요?”
“나이트워커 가문의 암살자가 ‘마법’을 쓰는 방식을.”
시린 냉기가 등줄기를 타고 훑는다.
동시에 그레텔이 손가락을 튕겼다.
“「못된 마녀의 자세」.”
나이트워커 가문의 9가지 검식이 아니다. 애초에 검을 쓰지 않으니 검식이라 부를 수도 없을 테고.
그렇다고 신성 제국이나 샤를마뉴 왕국 등의 마탑에서 쓰이는 자세도 아니었다.
검이 아니라 마법을 주력으로 쓰는 가문의 암살자, 그레텔 나이트워커의 고유 자세.
─오러는 인간의 육체를 극복하려는 의지다.
오직 인간밖에 쓸 수 없는, 썩어 문드러진 망자가 되어서도 자신의 살과 피와 뼈를 초월하려는 인간찬가의 의지.
그런데 마력(魔力)은 달랐다.
세계를 극복하려는 의지.
인간이 아니더라도 마력을 쓸 수 있다. 아니, 오히려 불사의 삶을 살아가는 엘프, 드래곤, 더 나아가 리치나 뱀파이어 같은 괴물일수록 마력을 더 능숙하게 다룰 수 있다.
세계의 미움을 받고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마(魔)의 존재일수록 마력의 적성 역시 높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나이트워커 가문의 인간들은 참으로 기이한 포지션을 취하고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인간의 끝자락에 발을 걸치고 있는 존재.
평소에는 인간을 자처하며 인간찬가의 의지를 부르짖는 주제에, 필요할 때는 얼마든지 세계의 미움을 받고 자연을 거스르는 괴물의 영역에 발을 걸칠 수 있다.
그리고 인간과 괴물의 경계에 서 있는 나이트워커 가문의 암살자, 그레텔이 손가락을 튕겼다.
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망치로 대못을 두들겨 박는 듯한 소리였다.
“─!”
시엔이 가슴팍을 움켜쥐고 비명을 내질렀다.
그런데 정작 시엔의 몸에는, 아무런 생채기 하나 보이지 않았다. 실제로 상처를 입지도 뼈가 부서지거나 내장이 뭉개진 것도 아니다.
정작 대못이 박혀 있는 것은 시엔이 아니라, 어느새 그레텔의 손에 들린 ‘볏짚 인형’이었으니까.
염력을 통해 허공에 두둥실 떠오른 못과 바늘, 온갖 자그맣고 날카로운 날붙이가 인형을 향해 차례대로 내리꽂히고 있었다.
그때마다 시엔이 고통 속에서 숨을 삼켰다.
결코 알기 쉬운 염동력이 아니다.
대륙에 존재하는 무수한 마법 학파 중에서도 가장 배우기 어렵고 끔찍한 마법. 특히 ‘인간 마법사’는 종족의 제약 때문에 사실상 배우기가 불가능하다고 일컬어지는 괴물의 전유물.
‘살(煞) 날리기─!’
증오와 원념을 동력 삼아 펼치는, 그렇기에 어느 의미에서 염력과 가장 밀접하게 그 묘리가 닿아 있는 금기의 마법.
─저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