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암살 가문의 천재 어쌔신-42화 (42/200)

42화. 갈까마귀의 자세 (4)

망령, ■■■, 명경지수, 갈까마귀, 가시나무, 나락, 검은 과부거미, 달그림자, 크라켄.

이 아홉 가지가 바로 검과 마법의 경계마저 초월한 나이트워커 가문의 자세이자 식(式)이다.

기술이나 형식의 굴레조차 초월한, 그야말로 이능에 가까운 경이.

그것은 나이트워커 가문의 4식, 갈까마귀의 자세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오히려 상대를 죽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아홉 가지 검식 중에서 가장 암살에 특화된 자세라고도 할 수 있었다.

일찍이 시조 카산이 태어났던 동방 대륙에서조차 금기의 술법이라 불리며 꺼려졌던 베일 속의 마법 《주살(呪殺)》─.

그 이름처럼 갈까마귀의 자세는 상대를 저주해서 죽이기 위해 존재하는 자세다.

앞서 그레텔이 보여준 ‘살 날리기’나 ‘고통의 칼날’처럼, 그 자체로 아무런 물리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의 정신과 영혼에 영향력을 끼쳐 부수고 파괴하는 최흉의 마법.

그리고 지금, 시엔의 손에 들려 있는 칠흑의 마검이야말로 바로 그 주살의 극의 그 자체였다.

죽음에 이르는 검, 네버모어.

네버모어는 그 어느 저주보다도 확실하게 상대를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지만, 동시에 어떤 형태로든 상대에게 닿게 하지 않는 이상 의미가 없다.

닿거나 스치는 모든 것을 즉사시키는 최악의 저주 마법이자, 갈까마귀의 자세를 여전히 가문의 ‘검식’으로 성립하게 하는 진정한 이유.

바로 그 죽음에 이르는 검이 시엔의 손에 쥐어져 있다.

마찬가지로 저주 마법의 대가이자 4식을 완벽히 통달한 그레텔이 그 의미를 모를 리가 없었다. 시엔 역시 그랬다.

훗날의 시엔은 물론 가문의 아홉 가지 검식을 어지간한 마스터 이상으로 능숙하게 다룰 수 있었다. 갈까마귀의 자세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런 시엔조차 4식의 극의, 네버모어를 펼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지금의 시엔은 훗날의 자신조차 도달하지 못했던 경지의 ‘갈까마귀의 자세’를 펼치고 있다.

이제 막 1식을 통달하고 마스터가 된 가문의 어린 암살자가, 벌써 두 개째 검식의 오의를 보란 듯이 구사하는 것이다.

그것도 증오와 원한을 동력으로 삼는 악의로 가득 찬 자세를, 역설적으로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가족에게 향하며.

“아…….”

깨닫고 보니 손에 들렸던 네버모어가 다시 칠흑의 마력 입자로 화하며 스러진다. 그러나 여전히 요한의 월광검은 시엔을 향해 겨누어진 채였다.

“그레텔 누님, 저는…….”

그 상태로 무너지듯 무릎을 꿇은 시엔이 말끝을 흐린다. 목소리가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괜찮아, 시엔.”

바로 그때, 다정한 온기가 시엔을 휘감았다.

“……내 잘못이야.”

그레텔이 애써 미소 지으며 말했다. 희미하게 떨리는 손발을 애써 뒤로하고.

“시엔 잘못이 아니야.”

“그렇지만…….”

“아니, 오히려 완전 대단하지! 1식도 모자라 벌써 4식의 오의를 펼치다니! 응, 역시 시엔이야!”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체를 하며 그레텔이 너스레를 떨었다.

“저는 절대…… 가족을 해치려던 게 아니었어요.”

“알고 있어.”

다정하게 시엔을 포옹하는 그레텔의 모습에, 애티 어린 소녀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시엔은 하나도 나쁘지 않아.”

시엔 잘못이 아니야.

그 순간, 시엔이 기억하는 그레텔의 최후가 겹쳤다.

마침내 구해낸 그녀는 그때도 똑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시엔이 가문을 위해 제국과의 전투에서 승리할 때마다 신체가 산 채로 잘려 나가는 지옥 속에 있었음에도, 자신을 책망하는 시엔에게 그런 말을 했었다.

앞도 볼 수 없고, 귀도 들을 수 없고, 심지어 목소리조차 제대로 낼 수 없는 그런 상황 속에서도─.

그렇기에 더더욱 자신의 미숙함과 어리석음이 증오스러웠다. 이 손가락을 도려내고 싶어질 정도로.

“아니에요.”

그렇기에 시엔이 고개를 저었다.

“전부 제 잘못이에요.”

“시엔……?”

자신을 긍정하는 그레텔의 말을 부정하며.

“모두…… 제가 약하니까 벌어진 일이에요.”

시엔이 읊조렸다.

약하다. 그 말에 침묵하고 있던 요한이 헛웃음을 터뜨린다.

‘약하다고?’

고작 열일곱 살의 나이에 가문 역사상 몇 명밖에 마스터하지 못한 망령의 자세를 통달하고, 그것도 모자라 4식의 오의까지 펼치는 저 아이는, 여전히 자신을 약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저 소년이 생각하는 강함이란 무엇일까.

처음으로 웃는 남자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 * *

그날 새벽.

“광장에서 제법 커다란 소란이 있다고 들었답니다.”

“소란 정도가 아니었어, 라일라.”

창백한 역광을 등진 라일라의 말에, 웃는 남자 요한이 대답했다.

공식적으로 4식 ‘갈까마귀의 자세’와 8식 ‘달그림자의 자세’를 통달했다고 알려진 하이마스터.

“그 아이가 네버모어를 휘둘렀거든.”

“─.”

그 말에 라일라가 나지막이 숨을 삼켰다.

“어느 틈에 갈까마귀의 자세를…….”

“뭐야, 너도 몰랐던 거야?”

“그 아이의 재능은 늘 저를 놀라게 해주니까요.”

“그레텔이 위험했어.”

“…….”

라일라가 짧게 침묵을 지켰다.

“설마 눈앞의 애송이가 ‘네버모어’를 꺼낼 거란 사실은 상상도 못 했겠지.”

애송이. 이미 1식을 통달하고 마스터가 된 시엔을 그렇게 부르는 데에는 일말의 주저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 말대로다. 가문의 하이마스터들이 보기에 마스터는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애송이에 불과하다. 하물며 그 밑의 메이드맨 같은 것들은 말할 필요조차 없었다.

“시엔의 네버모어는 어느 정도의 경지였죠?”

“그걸로 견진성사를 쳤어도 될 정도였지.”

“…….”

요한이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심지어 시엔은 이미 망령의 자세를 통해 견진성사를 마쳤다.

“물론 지금 당장 성품성사를 치를 정도는 아니지만, 그것도 시간문제야.”

성품성사. 나이트워커 가문의 두 가지 검식을 통달하고 하이마스터가 되기 위한 의식.

“라일라, 너 대체 누구를 데려온 거니.”

요한이 말했다. 감히 스스럼없이 나이트워커 가문의 정점에 서는 가주의 이름을 입에 담으며.

“사랑하는 저의 아들이지요.”

“……아들이라.”

“뭐, 오라버니 말대로 제 배 아파서 낳은 자식은 아니지만요.”

라일라가 개의치 않고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요한의 표정에서 다시금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 대신, 무척이나 쓸쓸한 미소가 입에 걸린다.

“무척이나 그 아이를 신뢰하고 있구나.”

“믿는 게 아니랍니다.”

요한의 말에 라일라가 고개를 젓는다.

“그저 진실일 뿐이지요.”

“그래, 내 믿음 따위는 중요하지 않으니까 말이지.”

진실이란 믿고 믿지 않고의 문제가 아니다. 요한 역시 모를 리가 없었다. 그게 나이트워커 가문의 방식이니까.

“직접 확인해 보시겠어요?”

바로 그때, 뜻밖의 말이 들려왔다.

“뭐라고?”

“오라버니께서 시엔을 믿을 수 있을지 없을지, 두 눈으로 지켜보고 시험할 기회를 드리지요.”

“진실 앞에서 내가 믿고 믿지 않고 따위가 그렇게 중요했니?”

“물론 그리 중요하지는 않죠.”

라일라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나 가족의 믿음과 기대에 부응해주는 것 역시, 마찬가지로 우리 가문의 방식이니까요.”

“여전하구나, 라일라.”

그 말에 요한이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 * *

그 시각, 나이트워커 가문의 지하 수련장.

「나락의 방」.

사방이 칠흑 같은 어둠으로 휩싸여 있는 그곳에서, 시엔이 다시금 팔을 뻗고 의식을 집중했다. 일찍이 그레텔이 시엔에게 주었던 그 고통을 생생하게 떠올리며.

증오와 원념을 동력 삼아 펼치는 가문의 4식, 갈까마귀의 자세.

후우웅!

체내의 마력이 밑바닥을 알 수 없는 악의에 물들며 검고 어두운 빛으로 더럽혀진다.

그 어둠 속에서 시엔은 자신이 잃은 것들, 그리고 자신에게서 그것을 앗아간 것들을 떠올렸다.

훗날의 시엔조차 미처 도달하지 못한 4식의 극의를 다시금 펼치기 위해서.

이 세상의 무엇보다 밉고 증오스러운 것들.

미워해야 할 것 따위는 세상에 넘칠 정도로 있었다. 지금의 자신이 가진 원한은 이 시대의 그 누구에 비해도 뒤질 자신이 없다고 확신했다.

“큭……!”

그러나 휘몰아치는 악의는 시엔의 손끝에 모여서 검의 형태를 이루지 못하고 덧없이 스러졌다.

훗날의 시엔이 4식의 오의를 시도하려다가 실패했을 때와 같다.

‘어째서─.’

아무리 밉고 증오스러워도, 아무리 강력한 증오와 원념을 갖고 있어도 뜻대로 펼쳐지지 않는다.

그때와 같았다.

헤아릴 수 없는 사랑하는 가족들을 잃고, 그 증오를 벼려도 시엔은 ‘네버모어’를 손에 넣을 수 없었다. 시엔이 가진 증오와 악의는 이 세상의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정도의 동력을 갖고도 시엔은 갈까마귀의 자세를 마스터할 수 없었다.

‘뭐가 부족한 거지?’

자신에게 되물었다.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레텔 누님의 고통의 칼날에 꿰뚫렸을 때랑 지금이 뭐가 다르지?’

의지가 부족한 것도, 증오가 부족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펼칠 수 없었다. 그 사실이 그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뭐가 그렇게 밉니?”

바로 그때였다. 낯설고 익숙한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울려 퍼진다.

동시에 칠흑처럼 검고 어두운 그곳에, 달처럼 창백하고 시린 서슬이 빛을 흩뿌렸다.

‘월광검─.’

그리고 그 검이 누구의 손에 들려 있는지는 물을 필요조차 없는 것이었다.

“……가족을 위협하는 모든 것들이요.”

시엔이 대답했다. 그 말에 요한이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서 눈앞의 사랑하는 가족 앞에서 이 검을 휘둘렀구나.”

바로 그 죽음에 이르는 검을 고쳐 잡고 웃는 남자가 조소했다.

“마력이 폭주하고 이성을 놓치고, 그야말로 저지를 수 있는 온갖 끔찍한 실수란 실수는 모조리 저지르고 말이야.”

“맞아요.”

시엔이 달리 부정하지 않고 대답했다.

“전부 제 잘못이에요.”

“그래, 네 잘못이지.”

요한이 담담하게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자칫 그레텔이 크게 다칠 수도 있었어. 뭐, 그녀쯤 되는 하이마스터가 정말 네 공격을 못 막아서 당할 리는 없겠지. 그래도…….”

그래도 그레텔은 기꺼이 시엔에 맞서 전력을 내지도, 상처를 입히려 들지도 않았다.

그들에게는 가족이 전부이고, 그 상황에서 그레텔은 기꺼이 자신이 죽거나 다치는 쪽을 택했으니까.

“너의 네버모어는 미숙해. 의지와 통제를 벗어나 멋대로 날뛰는 짐승의 이빨에 불과하지.”

요한이 말했다.

“전부 네가 약하니까 그렇게 된 거야.”

“그럼 어떻게 해야 더 강해질 수 있죠?”

“하루아침에 깨달을 수는 없는 일 아니겠니.”

시엔이 당돌하게 되물었고 요한이 대답했다.

“그래도 뭐, 그 정도로 넘쳐나는 증오가 있으니 못할 것도 없겠지.”

웃는 남자, 요한 나이트워커가 웃었다.

“─누군가를 죽도록 미워하는 것도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라서 말이야.”

나이트워커 가문의 4식 갈까마귀의 자세, 8식 달그림자의 자세─.

그리고 비공식적으로는 가문의 역사를 통틀어 셋밖에 통달하지 못한 ‘망령의 자세’를 완벽히 깨우친 그랜드마스터가 웃으며 말했다.

“너의 증오를 힘으로 바꾸는 법을 가르쳐주마.”

“……가르쳐 주세요.”

“그래, 가르쳐줄 거란다.”

어느새 그의 손에 들린 월광검의 서슬이 달빛을 잃는다. 잃었다고 생각하기 무섭게 검고 어두운 칠흑의 마력이 휩싸이며 그 위에 새로운 형태를 덧씌웠다.

죽음에 이르는 검, 네버모어.

월광검 위에 덧씌운 네버모어는, 앞서 시엔이 보여준 것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어둠과 악의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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