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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 가문의 천재 어쌔신-43화 (43/200)

43화. 갈까마귀의 자세 (5)

월광검의 시린 서슬 위로 칠흑의 마력이 덧씌워진다.

앞서 시엔의 네버모어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끝없는 악의와 어둠을 품고 있는 검.

닿거나 스치는 걸로 어떤 저주보다 확실하게 상대를 즉사시킬 수 있는 동시에, 거꾸로 닿거나 스치지 않는 이상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그런 까닭에 가문의 4식, 갈까마귀의 자세는 여전히 검식(劍式)으로서의 정체성을 갖는다.

“이 칼에 스치기라도 하는 순간, 너는 죽어.”

요한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확실하게 죽는다.

“살고 싶으면 잘 보고 피하렴.”

“……말은 참 쉽네요.”

“어때, 참 쉽지?”

그 말이 이상할 정도로 섬뜩하게 시엔의 목덜미를 휘감았다.

게다가 나이트워커 가문에서 불의의 사고로 가족을 다치게 하고 죽이는 일은, 아주 드물다고 할 정도는 아니다. 가문의 검식 하나하나가 갖는 살상력은 아무리 상대를 봐주는 모의전이라 해도 자칫 방심하는 찰나의 순간 상대의 생명을 앗아가니까.

그중에서도 갈까마귀의 자세가 갖는 살상력, 특히 경지에 이른 마스터가 구사하는 4식은 가문 내에서조차 기피될 정도였다.

가족 앞에서 네버모어를 꺼내는 것 자체가 암묵의 금기로 여겨질 정도로─.

타앗!

느긋하게 자책에 빠져 있을 시간 따위는 없었다. 어느 틈에 월광검 위에 덧씌운 네버모어의 칠흑 같은 서슬이 휘둘러졌다.

그런데 검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중하(上中下)의 어느 세도 아니었다. 아니, 그것을 검을 휘두르는 모습이라 부르는 것조차 어색할 지경이었다.

마치 춤을 추는 듯한 경쾌한 움직임과 함께 엇박자의 흐느적거림이 공존하는, 기이함마저 느껴지는 이형의 자세.

도무지 움직임을 읽을 수 없다.

‘그럴 수밖에.’

죽음에 이르는 검, 네버모어는 살짝 스치거나 닿기라도 하는 시점에서 확실하게 죽는다.

따라서 굳이 급소를 노리거나 치명상을 입힐 필요조차 없었다.

그저 어떻게 해서든 ‘칼날이 몸에 닿는 것’을 전제로 휘둘러질 뿐.

거기에는 지금까지의 검식에서 볼 수 있는 이치나 교리가 통용되지 않았다.

마치 무희가 춤을 추는 것처럼 우아하고 화려하며, 검술로서의 ‘실용성’이 완전히 배제된 움직임.

일말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검.

이자벨과 그레텔 등, 갈까마귀의 자세를 통달한 대다수의 마스터가 검이 아니라 마법을 주력으로 쓰는 것 역시 이러한 맥락이었다.

갈까마귀의 자세가 갖는 검식으로서의 정체성은 철저히 네버모어를 어떻게든 상대에게 스치거나 닿게 하는 데 있다. 그런 까닭에 4식을 점점 능숙하게 구사할수록 점점 그 외의 ‘일반적인 검식’과 거리가 멀어진다.

가령 철저하게 정통파 검술에 집중하는 명경지수의 자세는, 검술로서 사도(邪道)라 할 수 있는 갈까마귀의 자세와 상성이 좋지 않다.

4식 갈까마귀의 자세를 능숙하게 구사할수록 3식 명경지수의 자세를 쓰지 못하게 되고, 거꾸로 3식을 능숙하게 쓸수록 4식을 쓰는 데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

그것 외에도 ‘가시나무의 자세’는 ‘검은 과부거미의 자세’와 어울리지 않는 등, 가문의 9검식 모두가 서로 알기 쉬운 시너지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그런 까닭에 가문의 하이마스터가 되는 것은 하나를 마스터하는 것과는 그 무게가 달랐다.

아무것도 없는 무(無)에서 1을 쌓아 올리는 것과 달리, 하나의 검식을 무의식의 영역까지 갈고닦고 거기에 완전하게 특화된 육체를 다시금 뜯어고쳐 또 하나의 마스터가 되는 것이니까.

아무리 상성이 좋은 검식끼리라 해도 예외가 아니다. 가령 ‘명경지수의 자세’와 ‘가시나무의 자세’처럼 최고의 상성이라 일컬어지는 두 검식조차도 하나를 마스터하고 나서 나머지 하나를 마스터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훗날의 시엔이 갈까마귀의 자세, 네버모어를 쓰지 못한 것도 비슷한 이유였다.

그 시절의 시엔은 이미 명경지수의 자세를 마스터했고, 일평생에 걸쳐 체화된 3식이 새로운 자세를 배우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던 까닭에.

‘이제는 다르다.’

시엔의 머릿속과 별개로 이 육체는 여전히 새하얀 백지장에 가깝다. 이 백지장에 무엇을 어떻게 덧씌울지는 결국 시엔이 하기 나름이다.

“한눈팔지 마라, 죽는다.”

바로 그때, 죽음이 시엔의 눈앞에서 궤적을 그렸다.

흐느적거리는 듯한 엇박자 속에서 폭발하듯 가속하는 흑도(黑刀).

마치 무희가 춤을 추는 것처럼 우아하고 아름다운 움직임.

‘네버모어 앞에서 특별히 의식해서 지켜야 할 급소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스치거나 닿는 모든 것이 급소니까.

카앙!

시엔이 의식을 집중했다. 상대를 쓰러뜨리고 상처를 입히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노골적으로 자신을 지키려는 수비 자세도 아니었다.

맑고 깨끗한 거울에 눈앞의 악의로 찬 검을 비추고, 흔들림 없는 마음가짐으로 응시할 뿐.

심경(心鏡).

“호오, 명경지수의 자세라.”

요한이 흥미로운 듯 미소 짓는다.

나이트워커 가문의 검식 중에서도 가장 순수하다 일컬어지는 정통파 검술의 자세.

그에 비해 갈까마귀의 자세는 가문 내에서조차 사도의 끝이라 일컬어지는 자세다.

“네 마음의 거울에는 뭐가 비쳐 보이니?”

시엔은 대답하지 않았다. 느긋하게 상대의 말에 대답해줄 여유가 없으니까.

그대로 검이 짓쳐 들었고, 시엔이 의식을 집중했다.

마음의 거울.

상대를 보는 것이 아니다. 상대의 틈을 보는 것도 아니다. 시엔은 처음부터 요한을 보지 않고 있었다.

그저 철저하게 그의 손에 들린 악의의 칼날, 네버모어를 응시할 따름이다.

세상에 무적의 검식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설령 갈까마귀의 자세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카앙!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피하지 않는다. 도망치지도 않는다. 그러나 거기에 적을 쓰러뜨리겠다는 의지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카앙!

마치 거울을 마주하는 것처럼, 자신의 동작을 그대로 모방하며 대칭을 이루듯.

이것이 4식의 파훼법이다.

네버모어는 그냥 검이 아니다. 최고위 저주, 그것도 끝없는 증오를 마력에 담아 유지하는 마법이자 마검이니까.

세상의 그 어느 대마법사라 해도 저 정도의 고위 마법을 하루 종일 펼칠 수는 없다.

‘물론 더 좋은 파훼법은 등을 돌리고 도망가는 거지.’

어디까지나 도망치는 게 가능할 때의 이야기다.

그런데 세상의 누구도 나이트워커 가문의 암살자에게 등을 돌리고 도망칠 수는 없다.

─어느덧 요한의 손에 들린 네버모어의 빛이 흐릿해진다. 칠흑처럼 깊었던 어둠이 흩어지고 그 속에 깃든 달빛의 서슬이 빛을 흩뿌린다.

‘끝났나……?!’

생각하기 무섭게 아차 싶었다.

네버모어의 마력이 약해진 게 아니다. 오히려 일부러 마력을 흩트리고 그 속에 숨어 있는 월광검을 보란 듯이 보여준 것이다.

동시에 월광검에 서린 달빛이, 마치 화살처럼 시엔의 눈동자를 향해 짓쳐 들었다.

“!”

저것은 그냥 빛이다. 그 자체로 아무 상처도 입힐 수 없다. 설령 시엔의 동공을 노리고 화살처럼 꿰뚫었다 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시엔의 시야를 봉쇄하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찬란하고 강렬했다.

물론 눈이 감기는 정도로 상대의 움직임을 놓칠 나이트워커 가문의 암살자가 아니다.

문제는 상대 역시 나이트워커 가문의 암살자, 그것도 하이마스터의 정점에 서 있는 가족이란 점이었다.

시엔의 두 눈과 귀는 물론이고 전신의 오감을 모조리 집중해도 「눈 깜짝할 사이」에 상대를 놓칠 수 있는.

‘당했─!’

스릉.

어느덧 요한의 손에 들린 네버모어가 시엔의 얼굴 앞에 겨누어져 있었다.

몇 밀리미터를 까딱하는 것으로 시엔의 몸에 닿을 수 있을 정도의 거리에서.

서슬 퍼런 죽음의 공포가 목덜미를 휘감았다.

‘이걸 눈앞에 두고도 그레텔 누님은…….’

그 사실에 다시금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의 동요가 치솟았다.

“다시 묻겠다, 애송아.”

그런 시엔을 뒤로하고 요한이 차가운 목소리로 되물었다.

“뭐가 그렇게 밉고 증오스럽지?”

앞서 물었던 것과 같은 질문이다. 그 질문에 시엔이 침묵했다.

가족을 위협하는 모든 것들.

그게 처음 시엔의 대답이었다. 그런데 그걸로는 부족했다.

짧은 정적 끝에, 시엔이 대답했다.

“신성 제국의 황제, 합스부르크 가문의 막시밀리안.”

“그래, 참으로 밉상스러운 놈이지.”

요한이 웃음을 터뜨리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가 무슨 짓을 했기에 그토록 증오스럽지?”

“그 남자는 저의 전부를 앗아갈 존재니까요.”

시엔이 대답했다. 그 대답을 눈앞의 가족이 어떻게 생각할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검마 오스왈드 그란델, 마도왕 바르무어, 죽음의 성모 빌헬미나 아퀴나스.”

이 시대의 제국을 저마다 빛과 그늘 속에서 지탱하고 있는 강자들의 이름.

그리고 시엔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검성 그란델 대공 및 7인의 제국기사단장들.

대현자 바르무어 후작과 5인의 제국 마탑주.

아퀴나스 추기경을 비롯한 최고위 이단심문관(Lord Inquisitor) 12인, 신성군단장 8인.

그들의 뒤를 이어 훗날의 제국을 수호하는 칼날이 될 이들의 이름을 헤아렸다.

시엔 나이트워커가 죽여야 할 블랙리스트.

“정답이다.”

그렇기에 요한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리 세상을 미워하고 증오해도 달라지진 않지. 증오는 바람이 아니거든.”

증오는 바람이 아니다.

“그럼 뭐죠?”

“누군가를 찔러 죽이는 창이지.”

일찍이 시엔의 품에 숨겨진 ‘운명의 창’처럼.

“네 증오는 모자라지 않아. 아니, 오히려 너무 과해서 탈이지.”

“그럼…….”

“그런데 아무리 세상이 밉다고 해도 세상 전부를 창끝으로 찌를 수는 없는 노릇이라서.”

“─.”

제국을 무너뜨리겠다고 생각했다.

가족을 위협하는 이 세계와 운명이 증오스러웠다.

처음부터 시엔은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세상이 밉고, 나라가 밉다고 해서 그 전부를 창으로 찔러 죽일 수는 없다.

아무리 강력한 악의로 가득 차 있어도 직접 찌르지 않는 이상, 창은 의미가 없다.

그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그레텔이 보여준 고통의 칼날, 그 고통이 시엔에게 보여준 그레텔의 최후, 그 순간 시엔이 증오하고 있던 것은 제국이나 세상 같은 거창한 게 아니었다.

─당장 눈앞에 있는 한 사람.

오히려 너무나도 많은 짐을 짊어지고 헤아릴 수조차 없을 정도의 적들을 상대해야 했기에 잊고 있었다.

어느 때나, 어느 순간이나, 죽여야 할 적은 눈앞의 하나뿐이었다.

동시에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증오하는 세상을 이룬다. 그들이 곧 세계이고, 그들 하나하나를 죽이는 것이야말로 곧 세상을 죽이는 것이다.

후우웅!

체내의 마력이 휘몰아치며 다시금 증오와 악의로 가득 찬 빛을 머금었다.

“종말을 고하는 검(Nevermore).”

네버모어.

악의로 가득 찬 검을 고쳐 잡고 살생부의 ‘마지막 이름’을 속으로 되새겼다.

가문의 그 누구도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설령 훗날의 시엔조차 경악하며 그 존재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그 남자의 이름을.

수백 년 전, 동방 대륙에서 ‘하산 사바흐’란 이름으로 고대 암살자 교단을 이끌었던 나이트워커 가문의 시조.

밤의 아버지, 그리고 최초의 밤을 걷는 자.

카산 나이트워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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