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암살 가문의 천재 어쌔신-50화 (50/200)

50화. 레이디 마린 (3)

바다 위, 서펀트 가문이 진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그들의 영역.

‘아니, 대체 사람을 어디까지 끌고 나온 거야?’

시엔 역시 보통 사람의 수영 실력을 아득히 상회하는 육체를 가졌으나, 그것도 어디까지나 인간을 기준으로 했을 때 이야기였다.

처음부터 물속을 자유롭게 살아가는 그들에 비할 바는 아니다.

레이디 마린의 손에 이끌려 잠시 물속을 헤엄쳤다고 생각하기 무섭게, 그곳은 어느덧 망망대해 위였다.

검고 어두운 바다 위. 시린 별빛이 쏟아지는 물속.

시엔이 잠겨 있는 끝없는 밤바다가, 마치 괴물의 아가리처럼 불길하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Dead Men Tell No Tales).’

거대 바다뱀을 문장으로 삼는 서펀트 가문의 가훈이 무심코 떠올랐다. 얼핏 보기에는 나이트워커 가문의 암살자가 가훈으로 써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은.

그리고 그 가훈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푸흡!”

순간, 발밑이 와르르 무너지듯 시엔이 물속을 향해 가라앉았다.

열일곱 살의 소녀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터무니없는 힘이, 마치 고래가 사람을 끌어당기듯 두 발을 낚아채 물속으로 끌어당기는 것이다.

바닷속에서 죽는 자들은 아무 말이 없다. 설령 시엔이라 해도 예외일 수 없었다.

그렇기에 끝없이 가라앉는 와중에도, 시엔이 당황하지 않고 칼자루를 고쳐 잡았다. 그 상태로 발목을 낚아채고 있는 마린을 향해 칼날을 휘둘렀다.

‘물속이라 몸이 뜻대로 움직이질 않는다.’

몸이 무겁다. 이런 물속에서는 제아무리 시엔이라 해도 공격이 닿을 리가 없었다.

‘뭐, 여기서는 달리 여지가 없으니─.’

그 상태로 시엔이 전신의 마력을 회전시키며 팔을 뻗었다.

파지직!

물속, 정확히는 시엔을 중심으로 짜릿한 전류가 내달리며 퍼져나갔다.

알기 쉬운 1위계 마법조차 아니었다.

4위계 전격 마법 「라이트닝 스톰」.

말 그대로 수중에서 휘몰아치는 뇌전의 폭풍이었다.

바닷속에서 이 정도 규모의 뇌전 마법을 쓰는 것은 그야말로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 그러나 이 정도의 자살 행위라도 하지 않고서는, 당장 눈앞의 ‘괴물’에게서 벗어날 도리가 없었다.

죽을 정도로 짜릿한 고통이 시엔을 집어삼켰다.

‘이러니 전기 마법에 중독되는 미친놈들이 생기는구나.’

동시에 시엔의 주위를 헤엄치고 있던 레이디 마린이 물거품을 뿜어냈다. 그녀 역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커다란 고통에 몸부림치는 모습이 보였으나, 어느 쪽이든 물속에서는 말이 없는 법이다.

‘지금이다.’

그 틈에 감전의 고통을 뒤로하고 재빨리 헤엄쳐 물 밖으로 빠져나온다.

차박.

아무것도 없는 망망대해 위, 바로 그 위에서 문자 그대로 바다를 뛰쳐나왔다.

바닷속은 그들의 영역이다. 아무리 시엔이라 해도 수중전으로 서펀트 가문의 인간과 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제 그럴 필요도 없었다.

지금 시엔이 있는 곳은 바닷속이 아니었다.

물 위로 파문을 그리듯 두 발을 딛고, 시엔이 칼자루를 고쳐 잡는다.

1식의 초식, 수상비(水上飛).

바다 위에서 나이트워커 가문의 암살자가 칼자루를 고쳐 잡았다.

마찬가지로 바다 밑에서 침묵하고 있던 레이디 마린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를 가려주는 수증기도 무엇도 없이, 쏟아지는 달빛 아래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인간의 상체를 과시하며.

“여기서 올려다보는 밤하늘이 좋아.”

마린이 말했다.

“지상에서는 말이야, 아무리 별이 쏟아져도 세상이 빛나지 않거든.”

바다는 그렇지 않다.

하늘 위에 이지러진 달, 듬성듬성 박혀 있는 별들이 부서지듯 빛을 쏟아내고 있다. 그때마다 부서져 내리는 밤하늘이 바다 위에 겹쳐 별세계처럼 빛을 흩뿌린다.

물에 비친 달, 수월(水月).

시엔은 물에 비친 달 위를 걷고 있었다.

“밤을 걷는 자…….”

마찬가지로 시엔의 모습을 보며 마린이 무심코 그들의 이명을 입에 담는다.

“설마 이걸로 끝이라고 하지는 않겠지?”

밤하늘 위에 두 발을 딛고 있는 시엔이 말했다.

“물론이지.”

밤바다 밑에 다리를 감춘 마린이 대답했다.

“여기는 나의 영역이니까.”

그 순간, 시엔이 딛고 있는 밤바다를 따라 시린 냉기가 내달렸다.

촤아악!

시엔의 발밑 일대에서 바닷물이 꼬챙이처럼 솟아나 쇄도했다. 어느 틈에 날카롭게 얼어붙은 냉기의 창날이 되어서.

사방에서 쇄도하는 얼음 꼬챙이를 피해 시엔이 밤하늘 위를 내달렸다.

거리가 좁혀지는 것은 찰나였다.

스릉.

시엔의 손에 들린 ‘왕 시해자’가 마린의 목덜미를 향해 겨누어졌다.

“겨우 이 정도야?”

칼끝을 겨누며 시엔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적어도 내가 아는 ‘라파엘로 제독’의 실력은 이깟 소꿉놀이 수준이 아니었는데 말이야.”

시엔이 그녀에게 준 기회는 알기 쉬운 동정이 아니었다.

레이디 마린에게 가치가 없는 이상, 그녀가 내미는 손길을 잡아줘야 할 이유 역시 없었다.

“맞아, 소꿉놀이지.”

마린이 차갑게 미소 짓는다.

“네 소꿉놀이에 잠깐 어울려준 것뿐이야.”

“뭐?”

“애초에 싸움은 이미 끝나 있었거든.”

소꿉놀이에 어울려주는 것은 시엔 쪽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녀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꿈틀.

그제야 비로소 섬뜩한 냉기가 처음으로 시엔의 등줄기를 타고 달렸다. 소름에 전신의 털이 쭈뼛 설 정도로.

발밑으로 끝없이 펼쳐진 검은 바다 위가 마치 괴물의 아가리 속에 있는 것처럼 불길하고 꺼림칙하다.

─착각이 아니었다.

“!”

“밤하늘을 삼키는 뱀(Jormungand).”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내 깨닫는다.

“서펀트 가문의 거대 사역마…….”

이 바다 밑에, 심해의 괴수가 턱을 벌리고 있었다.

‘저 나이에 벌써 이 정도 규모의 초대형 사역마를?’

끝없이 펼쳐진 검고 불길한 밤바다, 그곳은 처음부터 바다가 아니었다. 처음부터 놈이 벌린 아가리 속의 ‘작은 호수’였다.

너무나도 거대하고 압도적이어서 발밑에서 입을 벌리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다.

“어때, 이대로 함께 삼켜질래?”

마린이 물었다.

“그랬다가는 너도 무사하지는 못할걸.”

“어차피 물거품이 될 바에야, 이 아이에게 삼켜지는 쪽이 나을지도 모르지.”

마린이 웃었다. 동시에 바닷속에서 침묵하고 있던 ‘바다뱀’이 낮게 울며 그 위용을 과시했다.

여전히 그 입은 너무나도 거대해서, 일대의 지평을 모조리 집어삼키고도 끝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다.

“뭐, 네가 하기에 따라서는 살려줄 수도 있지.”

레이디 마린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무릎이라도 꿇을까?”

“별과 단검의 이름을 걸고 맹세해.”

“……뭘?”

“─나랑 결혼하겠다고.”

그 말에 시엔이 웃음을 터뜨렸다.

“혹은 이대로 사이좋게 삼켜지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아마 이어지지 못한 남녀의 비극처럼 보일걸?”

“와, 진짜 막 나가네.”

시엔이 황당해서 대답했다. 그 말에 마린이 의기양양하게 웃는다. 오히려 칭찬이라도 들은 것처럼.

“사람들이 우리 죽음을 두고 뭐라고 수군거릴지 궁금하지 않아?”

“비극의 커플이라도 되는 줄 알겠지.”

시엔이 남의 일처럼 중얼거린다.

나이트워커 가문의 인간은 절대 ‘피로 맺어진 가족’을 가질 수 없으니까. 그게 그들의 방식이다.

다시 말해 ‘피로 맺어지지 않는 가족’은, 얼마든지 가질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시엔이 허탈하게 웃었다.

과거에 물거품처럼 덧없이 사라졌던 그녀가, 이렇게 터무니없는 재능을 가졌을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기에.

고개를 내린다.

밤바다에 비친 달과 별이 시엔의 발밑에 있었다.

그리고 시엔이 딛고 있는 밤하늘 밑에는, 그보다도 더 커다란 괴물의 아가리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밤하늘을 삼키는 뱀이.

‘어떻게든 빠져나갈 방법이…….’

없지는 않다. 그마저도 100% 확신할 정도는 아니다. 생각 끝에 시엔이 고개를 젓는다.

굳이 빠져나갈 이유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이것이야말로 시엔이 바랐던 결말이었다.

“좋아, 약속할게.”

“아니, 맹세해.”

마린이 차갑게 대답했다.

“당장 이 자리에서, 나를 신부로 삼겠다고 말이야.”

같이 죽거나 결혼하거나, 둘 중 하나. 정말 황당하기 그지없는 상황이었다.

“……나랑 눈 맞았냐?”

시엔이 어이가 없어서 중얼거렸다.

* * *

“참으로 어리석고 경솔한 짓을 저질렀구나.”

그날 밤.

시엔이 레이디 마린과 있었던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라일라가 그녀답지 않게 차가운 목소리로 시엔을 질책했다.

“그래도 충분히 걸어볼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엔 역시 순순히 물러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물러날 수도 없었다.

“그녀는 라파엘로 제독 이상의 ‘세계 뱀’을 사역할 재능이 있어요.”

“라파엘로 제독의 사역마를 본 것처럼 말하는구나.”

“어머니 역시 레이디 마린의 사역마는 보지 못했죠.”

시엔이 당돌하게 대답했다.

“그렇게 그 아이가 마음에 드니?”

물러서지 않는 시엔을 보며 라일라가 되물었다.

직전까지의 냉기가 누그러진, 그러나 그 이상으로 걱정 어린 목소리로.

“그녀가 보여줄 가능성이 마음에 들어요.”

시엔이 대답했다.

나이트워커 가문의 인간들은 아이를 낳을 수 없는 게 아니다. 낳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 역시 필요에 따라서는 정략적 목적 등을 이유로 혼약을 맺고 유력 가문과의 다리를 놓는다. 물론 후손을 남기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그 점에서는 오히려 레이디 마린이야말로 시엔에게 있어 최고의 파트너가 될 것이다.

“게다가 서로의 이해가 일치하니, 쓸데없는 걱정을 할 필요도 없고요.”

시엔이 대답했다.

짧은 정적이 내려앉았다.

“처음에는 다들 그런 식이지.”

정적 끝에 라일라가 입을 열었다. 의미심장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아무런 감정도 없이 정략적으로, 정치적 목적으로, 어디까지나 서로의 이익을 위해서 협력하고 손을 잡다가도…… 사람 마음이란 참 알다가도 모르는 거야.”

“제가 설마 가문의 금기를 어길까 걱정하는 겁니까?”

“나로서는 알 수 없는 노릇이지.”

“저에게는 가족이 전부예요.”

시엔이 짐짓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레이디 마린과 서펀트 가문도, 전부 가족을 위해 쓰고 이용하고 버리는 카드에 지나지 않죠.”

일말의 감정도 없는 목소리로 담담하게.

“그리고 가족을 위해 우리는 그 카드가 필요해요.”

“참으로 냉정하구나.”

“가족을 위한 일이니까요.”

“이미 결정된, 하물며 왕가와의 혼담을 이렇게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란다.”

라일라가 말했다.

“아무리 나라도 서펀트 가문 내부의 결정을 물리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쉽지 않지. 감수할 리스크도 적지 않고 말이야.”

라일라가 말했다.

“그래도 그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니?”

“네.”

시엔이 대답했다.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거란다.”

“각오하고 있어요.”

창과 칼을 들고 싸우는 전쟁이 아니다. 어느 의미에서는 그런 알기 쉬운 전쟁 이상으로 피 튀기는 것이 바로 가문과 가문 사이의 정쟁(政爭)이다.

아니, 하물며 이 정도 규모의 정쟁에서는 창과 칼을 들고 싸우는 일도 배제할 수 없다.

침묵 끝에 라일라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너란 아이는 참 알다가도 모르겠구나.”

자식의 고집 앞에서 어쩔 수 없는 어머니처럼.

* * *

그로부터 얼마 후.

나이트워커 가문의 「별과 단검」이 새겨진 서신 하나가, 공화국 전체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그들 가문의 후계자, 시엔 나이트워커가 보내는 약혼 서신.

그리고 약혼 서신의 당사자는 ‘이미 샤를마뉴 왕국과의 혼담이 내정된’ 서펀트 가문의 영애…… 레이디 마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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