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불완전한 존재 (3)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동시에 알고 있었다. 그들 가문이 지긋지긋할 정도로 입에 담고 다니는 말을.
애초에 진실이란 믿고 믿지 않고의 문제가 아니다.
‘아니, 설령 그렇다고 쳐도…….’
나이트워커 가문의 인간이나 그림자 기사도 물론 오러와 마력, 두 가지의 힘을 동시에 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양립할 수 없는 성질의 힘을 섞이지 않도록 병렬의 형태로 쓰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지금 테레지아가 펼친 비기 · 《제비반전술》은 지금까지의 상식을 뿌리부터 뒤엎는 것이었다.
애초에 저 ‘에너지’를 뭐라고 불러야 할지조차 알 수 없었다.
오러이자 마력이고, 마력이자 오러의 성질을 머금는 제3의 무엇.
인간의 육체를 극복하는 동시에 세계를 극복하는 힘.
그렇기에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훗날의 기억을 고스란히 가진 시엔조차, 저 터무니없는 기술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아니, 차라리 납득이 된다.’
생각하고 깨달았다. 이 정도의 기술은 애초에 아무렇게나 자랑하고 다닐 게 아니다.
아마 이 비기를 본 사람 중, 살아남은 자가 없다는 뜻이겠지.
설령 테레지아를 죽이고 살아남은 자가 있다 쳐도 이 기술을 흉내 낼 수 없다고 생각해 불문에 부쳤을 것이다. 애초에 그녀가 하프 뱀파이어란 종족의 특성을 이용했다고 생각할 테니까.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다.
그저 나이트워커 가문의 인간들 역시, 인간과 괴물의 경계에 걸쳐진 동류(同類)란 점일 뿐.
‘게다가 그렇게 오래 지속할 수도 없는 모양이군.’
깨닫고 보니 테레지아의 호흡이 가쁘다. 척 보기에도 알 수 없을 정도의 터무니없는 체력 소모.
기술을 유지하는 자체로 터무니없는 수준의 체력 소모가 있다는 뜻이겠지. 애초에 이 정도 기술을 아무 대가 없이 쓰는 것은 비기가 아니라 사기(詐欺)라 불러야 할 테니까.
“너 이외에 이 기술을 쓸 수 있는 자가 있나?”
시엔이 되물었다.
“아니, 애초에 이 제비반전술이 네 작품은 맞나?”
“대답할 의무가 있습니까?”
테레지아 경이 싸늘하게 되물었다.
“적어도 당신이 이 기술을 쓸 수 있길 바랄 뿐이죠.”
“……이렇게까지 해주는 이유가 뭐지?”
“당신이 강해지길 바라니까요.”
테레지아가 대답했다.
“그것이 곧 로젤리아 샤를 공주님의 뜻이기도 합니다.”
테레지아 경은 로젤리아 샤를에게 있어 그저 충성스러운 부하 정도가 아니다. 그 이상이었다.
그렇기에 더 이해할 수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없는 자가 보내주는 호의처럼 순순히 받기 어려운 것도 없는 법이니까.
‘아무리 암살자의 나라를 세운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해줄 이유가 없다.’
검성 롤랑이란 기사도의 우상을 파괴하기 위해서 시엔을 이용하는 것은 납득할 수 있다. 그런데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해줄 이유가 없었다.
아니, 애초에 꼭 시엔일 필요가 있는가?
이 시점에서 가장 확실하게 검성 롤랑 경을 죽일 수 있는 암살자는 시엔이 아니라─.
대륙 최강의 암살자이자 암살자들의 어머니, 라일라 나이트워커니까.
그래서 더더욱 그녀의 꿍꿍이를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뭘 꾸미는…….”
그러나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테레지아가 덧씌우고 있던 핏빛의 결계가 스러졌다.
결계 바깥의 풍경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생각보다 커다란 소란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았다.
애초에 ‘암살자들의 어머니’의 눈을 이깟 결계 따위로 숨길 수는 없다.
그럼에도 라일라 역시 손을 쓰지 않고 그저 묵묵히 지켜볼 뿐이었다. 필시 이곳에서 벌어진 일들을 모두 지켜봤을 테지.
세상의 톱니바퀴가 다시금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시엔조차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테, 테레지아 경!”
바로 그때, 왕국의 기사들 사이에서 경악에 가까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녀의 등 뒤로 새겨져 있는 커다란 상처─.
게다가 제비반전술의 대가로 지칠 대로 지친 육체는 피로가 역력하다.
“……저의 패배입니다.”
그 상처를 뒤로하고 테레지아 경이 담담히 무릎을 꿇었다.
시엔의 앞에서, 나아가 세상 사람들의 앞에서 모두가 보란 듯이.
“그, 그럴 리가…….”
그곳에 있는 이들 중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결과였다.
설마 아무리 천하의 시엔이라 해도 상대는 왕국이 자랑하는 최강의 기사 전력, 그중에서도 톱 랭크에 손꼽히는 강자였으니까. 나이트워커 가문을 기준으로 따졌을 때도 하이마스터 중 최상위에 버금가는 강자란 뜻이다.
웅성거림이 커진다. 그 속에서 시엔이 차갑게 침묵했다.
‘소란스러워지겠어.’
그저 이 자리의 소란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아무리 터무니없는 재능을 가진 나이트워커 가문의 후계자라 해도, 눈앞에 있는 「창백한 백합」 테레지아 경을 상대로 승리를 거뒀다는 사실.
그 실체가 어떻든지 세상 사람들은 오직 결과밖에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시엔이 숨기고 있는 발톱이, 그들이 상상하는 이상으로 아득하게 크고 날카롭다는 사실을 알게 되겠지.
테레지아 경이 속해 있는 12기사의 수좌이자 로젤리아의 ‘일차 목표’…… 검성 롤랑 경 역시도.
“아, 아아아아아……!”
바로 그때, 자기가 상처를 입은 것처럼 호들갑스러운 비명이 울려 퍼졌다.
“이, 이럴 리가! 이럴 리가 없다앗! 피, 필시 무엇이 크게 잘못된 게 틀림없다!”
처음의 비겁하기 그지없는 패배도 모자라, 그 패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결투에서마저 패배해버린 3왕자 에릭의 절규였다.
“나이트워커 가문의 암살자가 수작을 부린 것이지! 그렇겠지!”
출혈 속에서 무릎 꿇은 테레지아의 어깨를 흔들며 에릭이 소리쳤다. 그녀의 상처 따위는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송구합니다, 왕자 저하.”
입술에서 흐르는 피를 뒤로하고 테레지아가 대답했다.
“제 패배입니다.”
“뭐?”
황망하다는 듯한 되물음.
“졌어?”
눈앞의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되물음.
“겨, 경이 졌다고……? 정말로……?”
말하고 나서는 스스로도 믿을 수 없는지 헛웃음을 터뜨린다.
“그, 그럴 리가 없잖느냐…… 이, 이길 거라며! 이겨준다며! 나더러 꼭 이겨준다고 약속하지 않았더냐아아앗!”
“참으로 송구합니다.”
“…….”
침묵이 내려앉았다. 얼어붙을 것 같은 침묵이었다.
“쓰레기…….”
침묵 끝에 에릭이 중얼거린다.
“이 쓰레기가 감히…….”
눈앞의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받아들이고 나서는 결국 분노가 되어 말을 잇는다.
“이, 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패배자 년……!”
스릉!
“네년이 패배한 덕분에 다 망했다! 어떻게 책임질 거야, 어?! 이 망할 패배자 쓰레기가! 감히, 감히 나의 명예에 먹칠을 하다니!”
허리춤에 매달린 검을 빼내 패자를 향해 겨누었다.
“죽여주십시오.”
테레지아 경이 담담히 중얼거린다.
“암, 그럼! 그렇고말고! 네놈의 목숨 백 개를 받아도 성에 차지 않는데, 설마 살아서 돌아갈 생각까지 했던 거냐?!”
그 말에 왕자가 더더욱 분을 참지 못하고 화풀이하듯 소리쳤다.
“하, 웃기지도 않도다! 죽어야지, 암! 내가 당장 죽여주마! 죽음으로 사죄해라, 이 패배자 년아!”
그리고 정말 분을 참지 못하고 검을 휘두를 듯한 기세에 시엔이 움직이려는 찰나.
“쓰레기.”
목소리가 들려왔다.
차갑고 투명하고 서슬 퍼런 목소리.
고개를 돌리자 바다처럼 새파란 머리카락의 숙녀가 그곳에 있었다. 육지 위에 두 발을 딛고서.
“레이디 마린……?”
당장 눈앞의 여기사를 향해 검을 내려치려던 에릭 왕자의 손이 멎는다.
“오, 오오, 내 사랑! 역시 믿고 있었소! 역시 그대가 와줄 것이라고!”
직전까지 일그러졌던 표정이 거짓말이었다는 듯, 늠름한 사각턱을 과시하며 씩 미소 짓는다. 정말 버터처럼 느끼한 미소였다.
“기다리시오! 지금 당장 이 쓰레기를 베고 그대의 마음에 답해줄 테니!”
“…….”
미소 짓는 에릭 왕자를 향해 마린이 걸음을 옮겼다. 그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에릭이 다시금 새하얗게 빛나는 치아를 과시하며 입을 열려는 찰나였다.
“너, 진짜 구제불능의 쓰레기야.”
콰직!
“아아아악!”
마린의 손이 검을 쥐고 있던 에릭의 손목을 쥐고 비틀었다. 쥐고 있던 검이 떨어지고, 에릭이 꼴사납게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아무리 물 밖에서 무능하다고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이트워커 가문의 인간들 같은 괴물을 기준으로 했을 때의 이야기였으므로.
“너 같은 구역질 나는 쓰레기보다는 시엔이 백 배쯤 나아.”
마린이 말했다. 그 말에 시엔과 마린의 사랑 이야기에 심취해 있던 공화국 사람들이 열기를 머금고 환호와 휘파람을 터뜨렸다.
“……천 배는 낫지.”
휘몰아치는 환성 속에서 시엔이 남의 일처럼 중얼거렸다.
* * *
“제비반전술이라.”
그날 밤, 나이트워커 가문의 별장 저택.
샤를마뉴 왕국의 3왕자나 서펀트 가문의 일 같은 것은 더 이상 그들의 화젯거리가 아니었다.
“오러이자 마력이며, 마력이자 오러이기도 하다니. 참으로 터무니없는 기술이야.”
“짐작 가는 바가 있으신가요?”
“아니, 유감스럽게도 나 역시 들어본 적이 없구나.”
시엔의 물음에 라일라가 고개를 젓는다. 그럴 수밖에.
“게다가 내 생각에, 테레지아 경의 제비반전술은 아직 완성된 기술 같지도 않아 보이는구나.”
“실전에서 쓰기에는 지나치게 지속이 짧아요. 그녀 자신조차 몇 분 정도를 유지하는 게 고작이었고요.”
“실전성이 아예 없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 그런데 너무 리스크가 커. 기껏해야 허를 찌르는 용도의 조커 카드 정도겠지.”
말 그대로 불완전한 기술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흥미로운 기술이기는 하구나.”
동시에 그 기술이 완성됐을 때, 그게 얼마나 터무니없는 가능성을 가졌는지 모를 두 사람이 아니었다.
“어머니께서 수련해보시는 게 어때요?”
그렇기에 시엔이 물었다. 대륙 제일의 암살자이자, 테레지아 경의 말처럼 괴물과 인간의 경계에 걸쳐 있는 암살자들의 어머니.
“아니,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 기술을 배울 수 없단다.”
라일라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째서죠?”
“나는 이미 너무 늦었거든.”
너무 늦었다. 체념에 가까운 그 말에 시엔이 조용히 침묵했다. 그 말의 의미를 모를 리 없는 까닭에.
아마 훗날의 시엔이 제비반전술의 존재를 알았을 때도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너는 아니란다, 시엔.”
지금의 시엔에게는 아니었다.
“뭐가 아니란 거죠?”
“너는 아직 어리지.”
열여덟 살, 아직 끝없는 가능성으로 넘칠 나이.
“테레지아 경의 말처럼 너는 아직 불완전한 존재니까.”
라일라가 말했다.
“인간도 그렇다고 괴물도 아니며, 인간이자 동시에 괴물일 수도 있는 존재.”
“어머니도 마찬가지잖아요.”
그것이 세례를 마친 나이트워커 가문의 인간이므로.
“아니, 유감스럽게도 나는 아니란다.”
그럼에도 시엔의 말을 부정하며 라일라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이미 ‘완전한 괴물’이니까.”
“…….”
인간과 괴물의 경계 따위에 어중간하게 걸쳐 있는 존재가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