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암살 가문의 천재 어쌔신-57화 (57/200)

57화. 가족이 전부다 (1)

그날 밤, 수도 베네토에 있는 나이트워커 가문의 별장 저택.

“베르나르트 후작에게 무척 흥미가 있어 보이더구나.”

검은 달의 베르나르트 후작.

대륙에서 몇 없는 8위계 마법사이자 사령술 학파의 대가로, 그 사악함 덕분에 제국 국교회의 이름으로 「특급 이단(Grand Heresy)」의 죄목이 씌워지게 될 사상 최악의 흑마법사.

지금도 8위계의 경지에 이른 그 남자는 대륙에서 손에 꼽을 정도의 경지를 자랑하나, 그조차 훗날 그가 9위계의 벽을 뚫고 개발하게 될 하나의 흑마법에는 비할 바가 아니다.

훗날 기사도의 시대가 끝을 고하고 암살자가 새로운 시대정신이 되듯, 베르나르트의 마법 역시 마찬가지다.

「초위계 광역섬멸형 흑마법 · 아바돈(阿鼻沌)」.

그 자체로 전쟁의 향방을 결정 짓는 사상 최악, 최흉의 마법.

도가 없는 자가 도를 논하는 법이다. 훗날 신성 제국은 바로 그 금기의 흑마법을 병기화시켜 적극적으로 실전에 투입하게 된다.

당장 이단 혐의가 내려져 목숨을 부지하는 것조차 어려울 베르나르트가 무슨 수로 그 훗날까지 살아남아 초위계 마법을 개발할 수 있냐고?

“제국은 애초에 베르나르트를 십자가에 매달아 불태울 생각이 없을 거예요.”

“그럼?”

“오히려 그의 흑마법이 가지고 올 전략적 가치를 정확히 평가한 거죠.”

“흥미로운 관점이구나.”

라일라가 즐거운 듯이 미소 짓는다.

“계속 말해보렴.”

“어쨌거나 신의 나라를 자청하는 신성 로마누스 제국이, 공식적으로 그렇게 사악한 흑마법사의 마법을 대놓고 지원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하물며 그 마법을 전쟁에 이용하는 것은 더더욱 눈총이 따가울 테고요.”

“실제로 베르나르트는 8위계 마법사 중에서 유일하게 마탑을 세우지 못했지.”

8위계 이상의 마법사는 학파를 창립하고 마탑을 세워 탑주를 자청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검은 달의 베르나르트는 그가 흑마법사란 이유 하나로 8위계 마법사 중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마탑조차 세우지 못하는, 말 그대로 마법계의 이단아였다.

“제국의 이단 혐의는 결국 세상의 눈을 피하기 위한 속임수에 불과해요.”

시엔이 말했다.

“오히려 베르나르트에게 이단의 주홍글씨를 새겨서 사람들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 가두고, 평생을 쥐어짤 속셈이죠.”

─이 시기에 베네토 공화국은 베르나르트 후작의 망명을 거절하고, 후작은 도피 중 제국 공안에게 사로잡혀 교회의 재판대에 세워진다.

그러나 그는 죽지 않는다. 대신 여생을 신 앞에서 속죄하겠다는 맹약 아래 교회의 가장 어둡고 비밀스러운 지하에 감금되어 평생을 그들의 노예가 된다.

이단 혐의로 재판대에 세워지는 1,000명 중 999명이 죽는다. 하물며 ‘특급 이단’의 혐의가 씌워지는 경우는 죽음조차 사치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끔찍한 고통을 끝없이 맛보며 차라리 죽음을 애걸하게 되고, 그마저 포기하고 정신이 완벽히 붕괴할 때가 되어서야 겨우 죽음을 허락해준다.

그 절망 속에서 교회가 내밀어주는 손길은 그야말로 신의 자비처럼 느껴지겠지.

바로 그 ‘특급 이단’의 혐의로 최후를 맞이했던 시엔이기에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었다.

제국 입장에서는 일석이조일 것이다.

세상의 눈총을 의식할 필요 없이 베르나르트 후작의 흑마법을 전폭적으로 지원할 수 있고, 그 정도의 유능한 마법사에게 온갖 불법적 처사와 압박을 통해 성과를 쥐어 짜낼 수 있을 테니까.

이 땅에 신의 나라를 임하게 하겠다는 대의 아래, 신성 제국과 제국 국교회는 어떤 추악한 행위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가 베르나르트의 망명을 받아들이고, 그를 지원하자는 이야기니?”

“맞아요.”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구나.”

라일라가 말을 잇는다.

“네 말대로 베르나르트의 흑마법이 전쟁의 향방을 좌우할 정도로 터무니없는 잠재력을 가졌다 쳐도…….”

달빛이 스미는 유리창 너머로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어둠 속에서 무겁고 육중한 밤바다가 수평 너머까지 거신을 꿈틀거린다.

“너는 어떻게 그 가능성을 확신하는 거니?”

“제가 확신하는 게 아니에요.”

시엔이 대답했다. 물론 시엔도 확신이 있다. 그런데 미래에서 봤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제국의 확신을 확신하는 거죠.”

“─.”

그렇기에 시엔이 말을 잇는다.

“특급 이단이란 명분을 소모하는 것조차 주저하지 않는다는 게 그 증거예요.”

감히 나이트워커 가문의 ‘별과 단검의 맹세’에 버금가는 가장 강력한 명분.

“그럼 더더욱 잘 알고 있겠구나.”

침묵 끝에 포도주를 홀짝이며 라일라가 말했다.

“우리가 별과 단검의 맹세를 이행하기 위해 얼마나 커다란 희생을 치러도 개의치 않듯, 제국 역시 마찬가지일 거란 사실을.”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가치.

시엔 역시 침묵했다.

“……감수해야 해요.”

“설령 우리 가족들이 피를 흘리게 되더라도 말이니?”

“피를 흘리지 않고 얻을 수 있는 평화는 없어요.”

침묵 끝에 시엔이 냉정하게 대답했다.

“의외구나. 네가 그렇게까지 말을 하다니.”

그들에게는 가족이 전부고, 가족 이외의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시엔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을 모를 라일라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가족들을 향하는 시엔의 사랑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그녀였다.

그 시엔이 이렇게까지 말을 하고 있다.

게다가 시엔의 주장에 일리가 없는 게 아니다.

애초에 라일라 역시 내심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저 자신의 결정이 가져올 무게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망설이는 것이다.

짊어진 게 많을수록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법이다.

암살자들의 어머니, 라일라 나이트워커는 대륙 제일의 암살자 가문을 이끄는 수장이자 이 나라를 다스리는 지배자들 위의 지배자다. 그녀의 잘못된 결정이나 오판 하나가 이 나라와 가문 전체를 파멸로 이끌 수도 있다.

“그들이 우리 가문의 ‘별과 단검의 맹세’처럼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가치를 내걸고 있는 이상, 제국에서 싸우게 될 자들은 네 상상을 초월하는 자들이 될 거란다.”

라일라가 말했다.

“사도들이 움직이겠지.”

“─.”

사도.

아홉 위계의 천사 중 3품 아래의 상품천사(First Sphere)들을 강림시킬 수 있는 제국 국교회의 고위 전력.

“어쩌면 그 이상의 괴물들이 움직일 수도 있을 거란다.”

“각오하고 있어요.”

시엔이 대답했다.

“그러니까 제가 피를 흘리게 해주세요.”

이윽고 시엔의 그 말을 들었을 때, 라일라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그저 미소 지을 뿐이다.

“너 홀로 감당할 수 있는 출혈이 아니야.”

“그래도…….”

“우리 모두 감당해야 할 출혈이지.”

지금은 자신을 믿고 사랑하는 아들을 믿을 때였다.

“아무래도 내가 직접 나서야겠구나.”

“!”

이어지는 라일라의 말에 시엔 역시 당황해서 숨을 삼킬 수밖에 없다.

“지금부터 호명하는 형제자매들에게 밤매로 소집령을 내리렴.”

암살자들의 어머니, 라일라가 직접 움직일 필요가 있는 임무. 그게 이 대륙에 얼마나 커다란 후폭풍을 가져올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함께 피를 흘리자꾸나.”

“어머니…….”

“서로가 딱 죽지 않을 정도로 말이지.”

“알겠어요.”

그럼에도 그녀는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기꺼이 싸울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것이 바로 대륙 제일의 암살자 가문, 나이트워커 가문의 정점에 서는 ‘암살자들의 어머니’였으니까.

* * *

그 시각, 신성 제국 남서부 라인란트팔츠주(州)의 슈파이어 대성당.

엄숙하게 울려 퍼지는 미사 속에서, 홀로 예배당의 끝자락에 베일을 쓰고 앉아 기도를 올리는 여성이 있었다.

어느새 그녀의 곁에 낡아빠진 로브 차림의 남자가 걸터앉는다. 기척조차 없이.

남자가 모습을 드러내자 마치 시궁창에 빠진 듯한 악취가 코를 찔렀다.

“베르나르트 후작이 교회 내부 첩보를 입수했다고 들었어요.”

베일을 쓴 여성이 입을 열었다.

“이야기를 듣자마자 영지로 돌아가 성문을 잠그고 수비 태세를 굳혔다지요.”

“송구합니다, 성모님.”

질책하는 듯한 목소리에 악취를 풍기는 로브 차림의 남자, 일명 《시궁쥐 추기경》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쥐새끼들을 시켜 정보가 어디서 샜는지 경위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지금쯤 그 여자의 ‘눈과 귀’도 이 내용을 알았을 테고요.”

여자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듣자 하니 이미 공화국에 망명 의사를 타진했다죠.”

“공화국이 망명을 받아들일 거라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그에게는 이미 특급 이단의 혐의가 씌워져 있습니다. 그 무게를 모를 공화국과 나이트워커 가문이 아니죠.”

“그래요, 모를 리가 없겠죠.”

칠흑의 베일을 쓴 여자가 말을 잇는다.

“오히려 그렇기에 문제일 수도 있답니다.”

“…….”

“사도들을 움직이세요.”

“그 말씀은…….”

“그리고 저 역시 움직일 거랍니다.”

“!”

《죽음의 성모》가 말했다. 어느 틈에 그녀의 곁을 지키는 대자(代子)를 옆에 세워두고.

“사랑하는 저의 아들과 함께 말이지요.”

그 말에 남자, 시궁쥐 추기경이 나직이 숨을 삼켰다.

“알겠습니다, 성모님.”

삼키고 나서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물러났다. 어느덧 미사도 끝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단상 위에서 성가대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진다.

“준비는 되었니? 오스카.”

남겨진 그녀가 입을 열었다. 곁을 지키며 침묵하고 있던 청년이 묵묵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저는 늘 준비되어 있습니다, 어머니.”

그날,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 잊을 수 없는 소년의 얼굴을 떠올리며.

* * *

그로부터 얼마 후.

“이야. 못 본 사이에 주름이 또 느셨네요, 누님.”

“우리 미하일도 못 본 사이에 매 버는 솜씨가 많이 늘었네.”

능청스러운 남자의 목소리에 ‘이자벨 나이트워커’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나이트워커 공작령의 저택 앞 광장. 평소에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떠들썩함 속에서 시엔이 웃었다.

“어서 오세요. 미하일 형님, 이자벨 누님.”

“보아하니 우리가 제일 빨리 온 모양이지?”

“돈 루치아노께서 이미 와 계십니다.”

“어머나, 루치아노 할아범이 벌써?”

「늙은 암살자」라는 이름을 가진 가문의 하이마스터.

“비고 형도 칠왕국에서 임무를 마치는 즉시 돌아올 예정이고요.”

“마스터 비고도 참 멋진 남자로 자랐지.”

“뭐, 내 아들이니까.”

미하일의 말에 이자벨이 어이없다는 듯 대답했다.

“애 맡기 싫다고 징징대던 기억은 그새 까먹었나 봐?”

“애 아빠 되는 게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라서.”

미하일이 능청스럽게 대답했고, 바로 그때였다.

“두 사람 모두 어서 오렴.”

그들 앞에 기척조차 없이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이트워커 공작 각하.”

그 목소리 앞에서 미하일과 이자벨이 정중히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손등을 향해 입맞춤했다.

“우리 경애하는 암살자들의 어머니를 뵙습니다.”

시엔과 비고, 미하일과 이자벨. 네 명의 마스터.

거기에 돈 루치아노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손님을 합친 두 명의 하이마스터.

끝으로 그들 가문의 정점에 서는 그랜드마스터─ 라일라 나이트워커까지.

좀처럼 모일 일이 없는 나이트워커 가문의 인간들이 모이고 있었다. 심지어 가문 내의 행사나 무엇을 위해서도 아니었다.

오직 하나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였다.

“다들 배고프지? 식사가 준비되어 있단다.”

“다행이네. 오다가 굶어 죽을 지경이었는데.”

“아니, 누님께서는 다이어트 좀…… 어이쿠야.”

“…….”

말하려다 말고 미하일이 급히 입을 다물었다. 시엔 역시 화들짝 놀라서 숨을 삼켰다.

누구에게나 양보할 수 없는 가치가 있고, 들쑤실 수 없는 역린이 있는 법이므로.

제국에게는 신앙, 나이트워커 가문에게는 신뢰, 그리고 이자벨에게는…….

“아니 뭐, 앞으로 뭐 빠지게 운동 좀 할 테니 실컷 먹어둬야죠. 그렇죠?”

“응, 그렇고말고. 많이 먹어둬야지.”

미소 짓는 이자벨을 향해 미하일이 황급히 덧붙였다. 라일라 역시 생긋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기꺼이 피를 흘릴 각오가 된, 가족들의 별것 없는 일상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