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암살 가문의 천재 어쌔신-58화 (58/200)

58화. 가족이 전부다 (2)

나이트워커 가문의 암살자는 조용함과 거리가 멀다. 그러나 그들 역시 필요에 따라서는 침묵의 계율을 지키며 어둠 속에서 움직일 때가 있다.

그들이 제국의 영토에 발을 들였을 때, 밤을 걷는 자를 상징하는 별과 단검의 문장 같은 것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신성 로마누스 제국령 북부, 베르나르트 후작령에서 조금 떨어진 어느 소귀족의 영지.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그곳에 있는 것이 대륙 제일의 암살자 가문을 이끄는 수장이자, 베네토 공화국을 다스리는 진짜 지배자란 사실을.

암살자들의 어머니, 라일라 나이트워커.

그리고 그녀의 곁을 수행하는 두 형제가 있었다.

시엔과 비고.

어디에나 있는 여행자로 위장하고 있는 그들 앞에서, 기척을 감춘 그림자 기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돈나 이자벨과 돈 미하일께서 무사히 베르나르트 후작과 접촉에 성공했습니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네요.”

이 대륙 전역에는 라일라의 눈과 귀가 있다. 그곳에 있는 그림자 기사 역시 그중 하나였다.

“제국 측의 동향은 어떻죠?”

“베르나르트 후작이 교회의 소환에 불응하자, 그를 체포하기 위해 제3기사단과 1개 규모의 신성연대(Heiliges Regiment)를 움직였습니다.”

제국 제3기사단, 일명 《장미십자 기사단》.

검마 오스왈드 그란델 대공이 지휘하는 제국 제1기사단…… 《철십자 기사단》의 무명에는 비할 바는 아니다. 원탁의 기사단이나 샤를마뉴의 12기사들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고작 자국의 일개 귀족을 체포하기 위해 움직일 체급 역시 아니었다.

게다가 제국 제3기사단과 신성연대의 존재는 어디까지나 ‘공식적으로 움직이는’ 병력에 불과하다.

“잘해주었어요. 추후 접선 장소에서 다시 속삭임을 듣도록 하죠.”

그 말을 끝으로 그녀의 눈과 귀는 사라졌다.

“낭패로구나.”

남겨진 라일라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설마 이렇게까지 대규모의 병력을 움직일 줄이야.”

“상대 역시 대륙 최강의 흑마법사니까요.”

시엔이 대답했다. 8위계 마법사. 학파를 창립하고 마탑을 세울 자격을 가진 마법사의 숫자는 대륙을 통틀어 두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다.

“작정하고 장기 농성으로 들어갈 경우, 제국 측에서도 쉽게 뚫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니겠죠.”

하물며 베르나르트의 장기, 사령술 학파는 전쟁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영향력을 가졌다 일컬어진다. 그 능력을 오롯이 수성에 쏟아부을 경우, 제국에서도 쉬운 싸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어려운 싸움이 되겠네.”

로브 밑의 전신을 ‘거미 허물’로 덧씌운 시엔의 형, 이제는 어엿한 7식의 마스터가 된 비고가 말했다. 시엔 역시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이쯤에서 갈라져야겠구나.”

각오를 다지는 두 형제를 뒤로하고 라일라가 말했다.

상대는 제국의 대병력. 그마저 공식적으로 움직이는 것이고, 물 밑에서 움직이는 쥐새끼들의 규모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임무에 나서는 나이트워커 가문의 암살자는 라일라, 시엔과 비고, 이자벨과 미하일.

끝으로 「늙은 암살자」 루치아노와 「밴시(Banshi)」 린 나이트워커, 두 명의 하이마스터를 합쳐서 도합 7명뿐.

그들에게 있어서도 결코 쉬운 싸움이 아닐 것이다.

동시에 그 정도였다.

쉽지 않은 싸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도 아니고, 성립하지 않는 승부도 아니다. 그저 쉽지 않은 싸움일 뿐. 그것이 나이트워커 가문의 인간이고, 나아가 암살자들의 어머니가 갖는 무게였으니까.

* * *

그 시각, 베르나르트 후작령의 본성.

신경증에 걸린 듯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툭툭 두들기는 흑발의 미남자가 있었다.

“아, 귀엽기도 하시지.”

남자의 모습에 핏빛 머리카락의 숙녀, 이자벨 나이트워커가 남의 일처럼 웃었다.

“제가 아는 ‘검은 달의 베르나르트’는, 좀 더 사악하고 카리스마 있던 흑마법사로 기억하는데요.”

“기품과 카리스마는 가진 것에서 나오는 법이지.”

발밑까지 흘러내린 장발의 미남자, 베르나르트가 말했다.

“나의 성과 영지, 가신과 기사들, 내 공방과 마도의 집대성을 모두 저버린 채 몸뚱이 하나밖에 없는 나에게는 무엇이 남지?”

“대륙 제일의 흑마법사, 암월이 남지요.”

“참으로 추하군.”

“그게 삶이니까요, 후작 각하.”

이자벨이 미소 짓는다.

“지금쯤 이미 일대에는 제국의 쥐새끼들이 도사리고 있을 거랍니다. 거기에 장미십자 기사단과 교회의 대병력이 도착해 포위망을 형성할 경우, 다 같이 개죽음을 맞는 거죠.”

“그때쯤에는 우리도 못 나가고 뒈질 겁니다.”

곁에 있던 미하일이 어깨를 으쓱이며 거들었다.

“그런데 저는 아직 죽고 싶지 않아서 말이죠.”

“제국의 추적을 따돌리며 도망치고 싶거든, 기회는 지금뿐이랍니다.”

“도와주러 온 애꿎은 사람 길동무로 삼지 말고 후딱 결정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미하일이 밉상스럽게 거들었다.

“그래야 죽어서도 곱게 천국에 갈 확률이 좀 오르죠.”

“……선택의 여지가 없나.”

그 말에 베르나르트가 쓴웃음을 내뱉었다. 미하일이 황당해서 되물었다.

“아니, 그럼 있는 줄 아셨습니까?”

* * *

공식적으로 대병력을 움직이는 것은 하루아침에 될 일이 아니다. 특히 제국처럼 광활하기 그지없는 영토를 자랑하는 나라에서는 더더욱.

그렇기에 그들은 주력 부대의 행차에 앞서, 혹시 모를 가능성을 방지하기 위해 있었다.

─바로 나이트워커 가문의 인간들이 움직일 가능성이었다.

베르나르트 후작령 가까이 진을 친 어느 막사.

그곳은 막사라기보다 작은 성당 그 자체였다.

내부에는 유황과 몰약으로 피운 향과 냄새가 은은하게 감돌며, 성당에서 느낄 수 있는 특유의 거룩하고 성스러운 정취를 느끼게 했다. 위태롭게 타오르는 촛불 속에 세 명의 실루엣이 있었다.

암월의 베르나르트를 체포하기 위해 파견된 제국 공안, 이단심문관.

촤악!

순백의 갑주로 무장한 교회 기사 하나가 다급하게 천막을 열어젖힌 것은 직후의 일이었다. 고요하고 거룩한 어둠 속으로 찬란한 햇빛이 스며들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형제님.”

미사를 집전하고 있던 이단심문관이 차분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아.”

되묻고 나서 이내 그 의미를 헤아린 듯 입을 다물었다. 거칠고 무례하게 천막 입구를 열었던 기사의 몸이 덧없이 무너져 내린다.

등 뒤에는 살이 파이고 척추가 드러날 정도의 커다란 치명상이 새겨져 있었다.

어느새 막사 바깥에는, 그저 끝없는 피바다가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잘린 사지와 내장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다. 살아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오밤중의 묘지를 거니는 것처럼 섬뜩한 침묵과 죽음의 공기가 감돌 뿐.

이토록 터무니없는 학살이 벌어질 때까지, 그곳에 있는 이들 중 누구도 바깥의 소란을 깨닫지 못했다.

비명도 칼날이 부딪치는 소리도 그 무엇도.

“…….”

그저 밤을 걷는 자가 그곳에 있을 뿐.

─칠흑의 붕대로 두 눈을 가린 여성이었다.

손에는 자기 키보다도 커다란, 터무니없는 길이의 태도(太刀)가 들려 있다.

그리고 흑색의 붕대로 가린 눈동자 밑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밴시…….”

피눈물이었다.

“……가족이 전부다(La famiglia è tutto).”

「밴시」 린 나이트워커. 흐느끼는 요정의 이름을 가진 가문의 하이마스터가 칼자루를 고쳐 잡았다.

가장 순수한 검술이라 일컬어지는 가문의 3식, 명경지수의 자세와 더불어 가문의 2식─ ■■■의 극의를 깨우친 가문 제일의 검사가.

* * *

그 시각.

「밴시」 린 나이트워커와 그리 멀지 않은 장소에서, 마찬가지로 밤을 걷는 자들의 가언(家言)이 울려 퍼졌다.

“가족이 전부다.”

그들 가문의 정체성을 나타내고, 결속하며, 그들의 존재를 규정 짓는 주문 같은 말.

“적습, 적습이다!”

제국 제3기사단, 장미십자 기사단의 별동대가 황급히 소리치며 임전 태세를 갖춘다.

어느새 그들 앞에 나이트워커 가문의 인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촤아악!

직후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를 무형의 칼날이, 그곳에 있던 기사의 투구 사이로 정확히 내리꽂혔다. 기사가 투구 사이의 눈구멍을 부여잡고 비명을 내질렀다.

날아오는 칼날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헤아릴 수 없는 수십, 수백 자루의 사이킥 나이프가 날카로운 송곳처럼 벼려져서 시엔의 주위를 공전하고 있었으니까.

“「크라켄의 자세」.”

거리를 벌린 채, 두 팔을 벌리며 시엔이 나지막이 속삭였다. 마치 악단을 지휘하는 지휘자처럼.

염동 학파의 마법, 보이지 않는 손과 결합된 사이킥 나이프가 일대의 기사들을 향해 폭격처럼 내리꽂혔다.

“당황하지 마라! 염동 학파의 마법이다! 눈 주위를 가려라!”

마력은 오러를 튕겨낼 수는 있어도 강철을 뚫을 수는 없다. 그리고 시엔이 노리는 것도 실제로 갑주의 틈새에 자그맣게 뚫린 홈이었다.

그렇기에 기사들이 황급히 투구의 바이저(Visor)를 내리고 수비 대형을 갖춘다. 실제로 그들이 세워 올린 강철 방패가 시엔의 사이킥 나이프를 튕겨냈고, 그대로 사각 방진을 구축하며 기사들이 밀집했다.

사이킥 나이프에는 오러를 실을 수 없다. 오러를 싣지 못하는 이상, 어지간한 마력으로도 갑주의 강판(鋼板)은 쉽게 뚫리지 않는다.

“비기─.”

그랬어야 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제비반전술》.”

시엔의 입에서 그 말이 흘러나올 때까지는.

* * *

“허억, 헉!”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강철 갑옷과 방패로 무장하고 수비 대형을 갖춘 기사들을 향해, 마력의 칼날이 내리꽂혔다.

그들을 지켜줘야 할 전신 갑주를 종잇장처럼 찢어발기며.

‘당장 놈들이 움직였다는 사실을 알려야……!’

그렇기에 황급히 말을 몰고 도망치며 기사단의 전령병이 생각했다. 동시에 아무것도 없어야 할 눈앞의 허공에 시퍼런 서슬이 빛을 내뿜는다.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7식 「검은 과부거미의 자세」.

어느덧 아무것도 없어야 할 허공에는, 무수히 엉켜 있는 핏빛의 실들이 뚝뚝 핏방울을 떨어뜨렸다.

* * *

곳곳에서 승전보를 올리고 있었다. 그때마다 그녀의 눈과 귀가 승리를 속삭였고, 때가 무르익자 라일라 역시 침묵을 깨고 움직였다.

후작령 북단의 어느 교차로, 앞서 약속된 접선 장소.

“처음 뵙겠어요, 베르나르트 후작.”

가문의 두 형제자매, 미하일과 이자벨을 따라 그의 전부를 버리고 도망친 흑발의 미남자가 있었다.

“제공해주신 정보를 토대로 형제자매들이 포위망을 무너뜨린 참이랍니다.”

“……어째서 나의 망명을 받아줬지?”

“유감스럽지만 이야기는 나중으로 미루죠.”

라일라가 말했다.

“미하일, 이자벨. 후작 각하를 모시고 움직이렴.”

“……누님께서는 어쩔 생각이십니까?”

“나의 전부를 지켜야지.”

그녀의 전부.

암살자들의 어머니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누님.”

그 말에 미하일 역시 더 이상 묻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머지않아 그들이 물러가고 나서도 라일라는 교차로 위에 남아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이 무사히 살아서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아?”

바로 그때, 그녀의 발밑을 따라 깔린 쇄석 위로 또 하나의 그림자가 겹친다.

툭!

뒤이어 그림자의 발밑에, 나이트워커 가문의 눈과 귀를 자처하는 그림자 기사의 시체가 쓰러졌다.

“기다리고 있었단다, 빌헬미나.”

고개를 돌리는 일조차 없이 라일라가 말했다. 그녀의 등 뒤에서 칠흑의 베일(Veil)로 얼굴을 가린 여성을 향해.

“네가 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

라일라가 그렇듯 그녀에게도 여러 이름이 있었다.

《죽음의 성모》 빌헬미나.

“다시 봐서 기뻐, 라일라 언니.”

베일 속에서 즐거운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쩐지 라일라와 무척이나 닮아 보이는 목소리였다.

* * *

1년 전, 시엔이 처음 배운 제비반전술은 그 이름처럼 회심의 비기이자 필살기였다.

유지하는 것 자체로 지나치게 소모가 크고, 기술을 쓰고 나서의 후폭풍도 심하다.

그러나 1년 뒤의 이 시점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1초’.

굳이 거창하게 마력과 오러를 공존시킬 필요도 없다. 그저 손바닥 뒤집듯, 찰나의 순간에 바꾸는 걸로 족하다.

시엔이 손에 넣은 자기류의 제비반전술.

마력으로 이루어진 사이킥 나이프를 오러로 반전시켜 갑주를 꿰뚫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딱 1초를 반전시키는 것으로 족하다.

시엔의 눈앞에 쌓여 있는 기사들의 시체가 그 증거였다.

‘살아 있는 자는…….’

생명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확실하게 끝맺음을 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렇기에 시엔이 걸음을 옮기려는 찰나였다.

쓰러져 있는 기사들의 시체 더미 속에서, 하나의 실루엣이 덤덤히 몸을 일으켰다. 아무런 상처조차 없이.

“오랜만이네, 시엔 나이트워커.”

목소리가 무척이나 낯이 익다. 투구 속에 감춰진 정체를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어떻게 사이킥 나이프에 오러를 실었지?”

훗날 시엔에게 있어 최강의 적수가 될 검사. 시엔의 손에 쓰러진 롤랑 경의 뒤를 이어 검성(Sword Saint)의 이름을 손에 넣고, 그와 마찬가지로 시엔의 손에 쓰러지게 될 운명의 기사.

오스카 그란델.

그러나 눈앞의 청년이 ‘검성’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될 미래 따위는 영영 없을 것이다.

그의 손에 들린 불길하고 어두운 칼날이 그렇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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