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암살 가문의 천재 어쌔신-62화 (62/200)

62화. 검은 달의 베르나르트 (2)

“나에게는 가족도 없고, 가르칠 제자도 없었다네.”

시엔과 함께 저택의 광장을 걸으며 검은 달의 베르나르트가 말했다. 당장 그가 홀몸으로 영지의 전부를 버릴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겠지.

“게다가 나는 전투 마법사(Battle Mage)도 아니야.”

배틀 메이지. 사방에서 화살이 날아오고 칼날이 휘둘러지는 전장, 내지는 목숨이 걸린 일대일의 결투에서 싸우는 마법을 쓰기 위해 최적화된 실전파 마법사.

비록 아이러니하게 베르나르트의 마법이 그 무엇보다 전투와 파괴에 특화된 마법이기는 해도, 정작 베르나르트 자신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공방에 틀어박혀 순수하게 마도의 이치를 탐구하고 깨우치는 학구파, 일명 순수 마법사였으니까.

“자네와 나이트워커 가문이 바라는 게 ‘전투 마법사’로서의 가르침일 경우, 나로서는…….”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베르나르트의 우려에 시엔이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각하의 마법으로 사람을 어떻게 죽일지는, 우리가 판단할 영역이니까요.”

“……쓸데없는 걱정을 했군.”

말하고 나서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 말을 했는지 깨달았다. 시엔의 말이 옳다.

나이트워커 가문의 인간들이 쓰는 것은 검이 전부가 아니다.

“그래서, 지금 자네의 마법적 성취는 어느 정도지?”

본격적으로 수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베르나르트가 물었다. 가르치기 전에 학생의 성취도를 파악하는 것은 상식 중의 상식이었던 까닭에.

“그렇게 높지는 않습니다.”

시엔이 대답했다. 그 대답에 베르나르트 역시 놀라지 않았다.

“원소 학파 5위계 익스퍼트에 주력 속성은 뇌전(雷電), 염력 학파 3위계 마스터, 혈마법 학파 2위계 마스터입니다.”

아니, 정확히는 실망하지 않을 예정이었다.

“……뭐라고?”

애초에 시엔은 마법사가 아니었다. 태어날 때부터 마법사가 되기 위해 수련하고 제국 마탑에 들어가 엘리트 코스를 밟는 천생 마법사와 비교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

눈앞의 암살자는, 그가 알고 있는 어떤 19살 마법사보다 터무니없는 성취와 경지를 자랑하고 있었다.

심지어 시엔이 나이트워커 가문의 4식, 갈까마귀의 자세를 펼치기 위해 배운 ‘저주 학파’에 대해서는 완전히 입을 다물고 있었음에도.

‘마도왕 바르무어 후작의 장남이 27살 나이에 원소 학파의 7위계 익스퍼트, 물질 조작(Matter Manipulation) 학파 6위계 마스터에 도달했다고 들었다.’

물질 조작 학파.

마도왕 바르무어가 세운 제국 제1마탑을 상징하는 학파이자 마도 명가 바르무어 가문의 상징.

그들 학파의 마법사가 구사하는 「소원을 이루는 자세(Wishmaster’s Stance)」는 그 이름처럼 가장 완벽한 마법의 모습이라고 일컬어진다.

‘장남이 스무 살일 때는 원소 학파의 5위계 마스터, 물질 조작 학파의 4위계 익스퍼트였지.’

하물며 바르무어 가문은 대륙 제일의 마법 명가란 이름에 걸맞게, 헤아릴 수 없는 유능한 제자들은 물론 마도왕의 재능을 오롯이 계승하는 마법 천재를 장남으로 삼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베르나르트의 앞에 있는 시엔의 나이는 19살.

하물며 이 아이는 마법사조차 아니었다. 암살자였다. 그것도 검을 주력으로 삼는.

당장에 검의 재능에 있어 대륙 제일의 검술 천재라 불렸던 오스카마저 꺾었던 게 눈앞의 시엔이 아니었나.

게다가 얼마 전에는 샤를마뉴의 12기사를 상대로 결투해 승리했다는 터무니없는 소문의 당사자.

세상과 담을 쌓고 지내는 그의 귀에 들려올 정도로 시엔 나이트워커의 명성은 궤를 달리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검의 재능도 모자라 마법에서도 이 정도의 터무니없는 성취를 이뤘다고?

‘…….’

베르나르트 후작의 손에 파르르 떨렸다. 두려움이나 경외 같은 거창한 감정이 아니었다.

희열이었다.

바르무어 가문이 부러웠다. 미칠 듯이 질투가 났다. 마법사로 자신이 가지지 못한 전부를 가진 그들에게.

동시에 마법사로서 자신의 전부를 빼앗은 그들에게.

이제는 아니었다.

“내가 창립한 학파의 이름을 알고 있나?”

“사령술 학파라고 들었습니다.”

“그래, 공식적으로 그렇게 알려졌지.”

그 유치하고 천박하며, 경멸 어린 이름에 베르나르트 후작이 자조했다.

“그런데 내가 8위계에 도달하고 이 학파를 창립할 당시, 이 학파의 진짜 이름은 달리 있었다네.”

베르나르트가 말을 잇는다.

“그 ‘진짜 이름’이 바르무어 가문의 심기를 거슬렀다는 이유 하나로, 마도왕 바르무어와 그의 지지자들이 그 이름을 거부했다네.”

그리고 학파 창립의 당사자 베르나르트와 일말의 상의도 없이 자기들 멋대로 ‘사령술’이란 이름의, 사실상 주홍글씨나 다름없는 쐐기를 박아버렸다.

오직 바르무어 후작의 심기를 거슬렀다는 이유 하나로.

죽은 영혼을 다루는 기술.

그 불경하기 짝이 없는 이름에 신성 제국이 마탑의 설립을 허가해줄 리 없었다. 그걸 알고도 바르무어 후작과 그를 지지하는 탑주들이 학파의 이름을 임의로 정해준 것이다.

‘아니, 알기 때문에 그렇게 지어준 거겠지.’

베르나르트 후작의 운명이 틀어진 것도 그때부터였다.

마법 학계에서의 매장. 사실상 마법사로서의 삶에 종지부를 찍은 것과 같다.

대륙 제일의 흑마법사란 칭호는 결코 달가운 이름이 아니다. 역설적으로 그 무엇보다도 손가락질받고 저주받을 이름이었다.

“그럼 사령술 학파의 진짜 이름이 뭐죠?”

시엔이 되물었다. 베르나르트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암흑물질 조작(Dark Matter Manipulation) 학파.”

* * *

어느 세계를 가도 사람이 사는 세계는 다 똑같다. 그것이 설령 긍지 높은 기사들의 세계이든, 신심 깊은 성직자들의 세계이든, 진리를 추구하는 마법사의 세계이든 마찬가지다.

정치와 처신(處身).

힘 있는 자의 심기를 함부로 거스르는 것, 주위의 분위기를 읽지 못하는 것, 그것은 그 자체로 죄악이다.

마법 학계는 바로 그 역겨운 관습과 구태의 화신 그 자체였다.

아울러 베르나르트의 죄는 바로 힘 있는 자의 심기를 거스르고 분위기를 읽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게 다였다.

그 이유 하나로 베르나르트는 마법사로서의 커리어에 사실상 종지부를 찍고, 마법 학계에서 매장되었다.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신성 제국에게 ‘특급 이단’의 혐의가 씌워져 십자가에 매달리게 될 처지가 되었다.

처음부터 베르나르트가 마법 학계의 이단아였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베르나르트는 바르무어 후작이 세운 제1마탑 최고의 엘리트이자 수석 마법사로서, 누구보다 장래가 주목받는 천재였으니까.

당장 그가 대륙에서 손꼽는 8위계 마법사란 사실이 그 증거다.

그런데 자신을 가르쳐준 물질 조작 학파에서 벗어나 독립 학파를 창설하고, 그것도 모자라 그 이름을 ‘암흑물질 조작 학파’로 명명했다는 사실이─ 감히 바르무어 가문과 제1마탑에 있어서는 용납할 수 없는 ‘정치적으로 어리석은 처신’이었다.

게다가 그게 다가 아니었다.

“학파의 창립 심사 당시에, 암흑물질 조작 학파의 당위성을 설명하기 위해 물질 조작 학파의 맹점을 지적하는 논문을 제출한 것이 결정적이었지.”

“키운 개가 주인을 무는 꼴이 됐으니까요.”

“하! 키우는 개라.”

시엔의 대답에 베르나르트 후작이 커다랗게 웃음을 터뜨렸다. 가식도 무엇도 없는, 정말로 웃겨서 참을 수 없다는 듯한 웃음이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나 맞는 말이었다.

‘……물질 조작 학파의 맹점이라고?’

그리고 눈앞의 상대가 이룬 업적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것은 시엔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시대에 마법사의 정점으로 군림하는 마도왕 바르무어.

훗날 시엔의 시대가 되어서는 마도왕의 아들이자 천재 장남, 아버지의 경지조차 뛰어넘어 대현자(Wishamster)의 이름으로 불리게 될 최강의 마법사를 떠올린다.

훗날 검성 그란델과 더불어 시엔에게 있어 최악의 적수가 될 상대의 마법에 ‘맹점’이 있다는 사실은 금시초문이었다.

“제가 듣기로 물질 조작 학파는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마법이라 들었는데요.”

약점 없는 무결의 마법. 시엔이 짐짓 시치미를 떼며 되물었다.

“마도왕의 손짓 하나로, 그의 앞을 가로막는 적들을 개나 돼지로 바꿀 수 있다지요.”

“틀린 말은 아니지.”

그 말에 베르나르트 후작이 차갑게 조소했다.

“그런데 개와 돼지로 바꾸는 게 뭐가 그리 대수로운 일이지?”

베르나르트가 되물었다.

“적을 제압하고 죽이기 위해서는, 당장 나이트워커 가문의 암살자가 그렇듯 칼을 꽂아 넣는 게 훨씬 쉽지 않나.”

“그걸 손짓 하나로 그렇게 바꿀 수 있다는 게 중요하죠.”

시엔이 대답했다. 그 손짓을 피하려고 문자 그대로 개처럼 바닥을 뒹굴었던 그 싸움을 떠올리며.

“왜 손짓이라고 생각하지?”

바로 그때, 베르나르트가 되물었다.

“그야 「소원을 이루는 자세」는 손짓으로 마법의 시동을 거니까…….”

“자네는 동화를 믿나?”

“그럴 리가요.”

뜻밖의 물음에 시엔이 어이가 없어 대답했다.

“그런데 왜 ‘소원을 이루는 자세’가 있다고 믿지?”

“그게 무슨 뜻이죠?”

이어지는 말에 시엔이 되물었다.

“정말로 소원을 빌 수 있게 된 자가, 눈앞의 적을 개나 돼지로 바꿔 달라는 소원 따위를 빌 것 같나?”

“뭐, 보통 황제가 되겠다고 빌겠죠.”

물론 시엔 역시 물질 조작 학파나 그들이 구사하는 자세가, 정말로 전능의 힘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 시대 마도왕의 아들, 심지어 그 마도왕의 경지를 뛰어넘었다 일컬어지는 장남 ‘대현자’ 바르무어 후작 역시 시엔의 손에 패배해 쓰러졌다. 시엔의 손으로 직접 그의 숨통을 끊었으니까.

그러나 그것은 말 그대로 수단과 목적을 가리지 않는 결과의 승리였다. 당장 시엔조차 자신의 전부를 걸어야 할 정도의 혈전이었으므로.

그것을 같은 마법사, 심지어 같은 학파에서 수학한 마법사 베르나르트의 입에서 해당 학파의 ‘치명적 맹점’을 듣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이야기였다.

“나 역시 처음에는 알지 못했지. 설마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마법’에 그토록 치명적 결점이 있을 줄이라고는 말이야.”

“그게 뭐죠?”

그 치명적 결점을 지적했다는 이유 하나로, 베르나르트는 마법사로의 커리어에 종지부를 찍었다.

거꾸로 말해 천하의 바르무어 가문이 그렇게까지 해야 할 정도로 베르나르트의 통찰은 절대 헛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대륙 최강의 마법사는 물론 그의 학파가 겁을 내고 매장하려 들 정도의 맹점.

“그걸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서 나의 마법을 알 필요가 있다네.”

“꼭 알고 싶네요.”

베르나르트의 말에 시엔이 대답했다.

사령술이란 가짜 이름으로 알려진, 그와 동시에 암흑물질 조작이란 진명(眞名)을 가진 학파.

그것은 베르나르트와 마찬가지로 시엔 역시 마다할 이유가 없는 가르침이었다.

“자네는 우주를 알고 있나?”

우주. 그 터무니없는 스케일에 시엔이 일순 숨을 삼켰다.

“우리가 사는 행성 바깥, 지금도 끝없이 팽창하고 있는 칠흑의 세계라고 들었습니다.”

“그럼 그 우주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지?”

“글쎄요…….”

시엔 역시 천문학에 조예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부러 말을 흐렸다.

“바로 이것이라네.”

동시에 그의 발밑에서 검고 어두운 힘이 출렁거리기 시작했다.

후우웅!

“이 우주의 96%는 ‘73%의 암흑에너지와 23%의 암흑물질’로 구성되어 있지.”

휘몰아치는 어둠 속에서 베르나르트가 말을 잇는다.

“그리고 바르무어 후작과 제1마탑의 물질 조작 학파가 조작하는 것은 고작 나머지 4%에 불과하다네.”

“!”

“그마저 실질적으로는 별과 은하를 구성하는 0.4%밖에 되지 않는 티끌이지.”

일찍이 사령술이니 흑마법 따위의 알기 쉬운 이름으로 정의할 수 없는, 어느 의미에서는 우주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칠흑의 힘을 뒤로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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