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암살 가문의 천재 어쌔신-63화 (63/200)

63화. 검은 달의 베르나르트 (3)

제국 제1마탑.

신성 제국은 물론 대륙 최고의 명문 마탑으로 칭송받는 지성의 전당.

대륙 마법사들에게는 꿈과 같은 배움의 금자탑이자, 이 마탑에 입학하는 것이야말로 마법사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광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그 탑의 꼭대기에는, 제국 제1마탑은 물론이고 마법 학계 전체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마법의 왕이 있었다.

마도왕 바르무어.

“……베르나르트 후작이 무사히 공화국으로 망명에 성공했습니다.”

제1마탑의 최상층, 일명 《첨탑의 방》.

“도대체 교회 놈들은 대체 뭘 하고 있었지?”

“듣기로는 죽음의 성모가 직접 움직였다고 하지 않소!”

“그것도 모자라 사도들까지 움직여놓고서 놈을 놓치다니.”

그곳에는 마도왕 바르무어의 제1마탑을 필두로 제국 최고의 명문이라 불리는 8개 마탑, 일명 《에인션트 리그(Ancient League)》의 여덟 수장들이 모여 있었다.

“아무래도 나이트워커 가문의 ‘암살자들의 어머니’가 움직였다는 모양입니다.”

“그 괴물이 직접…….”

대륙 제일의 여덟 마법사가 모여 있는 그곳에 차가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를, 그제야 비로소 납득했다는 듯이.

“교회 측에서는 실패의 책임을 물어 마그데부르크 추기경을 처형했다더군요.”

“……이 와중에도 교회의 추기경이란 작자들이 빌어먹을 파벌 다툼이나 하고 앉아 있나.”

그 이야기를 듣고 마도왕이 코웃음을 쳤다.

사람이 사는 세상은 어딜 가나 똑같다. 성직자들의 세계도, 이곳 마법사들의 세계도 예외가 아니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바르무어 폐하.”

침묵하고 있던 제2마탑의 수장이 되물었다.

폐하. 그것은 버젓이 황제가 통치하고 있는 이 나라에서 ‘일개 후작’ 따위가 감히 자칭할 수 있는 이름이 아니었다.

그러나 마법사들의 세계에서는 아니다. 여기는 문자 그대로 바르무어의 왕국이었으니까.

“이 이상 베르나르트의 일을 교회 놈들에게 믿고 맡길 수는 없다.”

마도왕이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각 마탑에서 실력이 검증된 전투 마법사들을 소집하라.”

* * *

대륙 최대의 축제, 베네토 사육제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나 축제의 준비로 나라와 수도가 떠들썩한 것과 별개로 시엔의 일과는 더없이 평화롭고 정적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새벽까지 베르나르트의 흑마법을 배우는 것. 그저 하루하루 저택에서 수행에 매진하는 것이 전부였던 까닭에.

“「묘지기의 자세」─.”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팔을 뻗고, 베르나르트가 가르쳐준 학파의 이론과 이치를 되새기며 전신의 마력에 새겨넣는다.

“「암흑기사 생성」.”

그러자 발밑에서 휘몰아치는 마력이 사람의 실루엣을 이루며 검과 갑주의 형상을 취했다.

말 그대로 암흑으로 이루어져 있는 기사의 형태.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는 사악하고 악의로 가득 찬 모종의 마법을 써서 ‘생전에 기사였던 자의 사령(死靈)’을 불러온 것처럼 보일 것이다. 아니었다.

저것은 그저 암흑물질을 조작해 기사의 형상을 그럴싸하게 흉내 내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기사일 이유도 없고, 애초에 사람의 형상일 필요도 없다.

“「암흑생물 생성」.”

다시금 시엔이 손가락을 튕기자, 검과 갑주로 무장하고 있던 사람의 형상이 무너졌다. 헤아릴 수 없는 팔과 다리들을 촉수처럼 꿈틀거리는, 더없이 불규칙적이고 뒤틀린 이형의 괴물이 그곳에 있었다.

“「흑검(黑劍)」.”

다시금 주문과 함께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칠흑의 칼날이 끝없이 솟아나며 내리꽂혔다.

“「흑창(黑槍)」.”

칼날에 이어서는 창날의 형태를 벼리고 내리꽂는다.

‘……확실히 마법 자체는 가능성이 넘친다.’

이후로도 몇 차례 마법을 시험해보고 나서 시엔이 생각했다.

‘그러나 당장 암흑기사나 암흑생물은 소환 학파에 비해 특출한 장점이 없어. 게다가 암흑물질로 창이나 칼을 생성하는 것도 차라리 사이킥 나이프 쪽이 훨씬 더 손에 잘 맞는다.’

물론 망명 당시에 베르나르트 후작이 보여준 허무의 폭풍은 충분히 쓸모가 있다. 그러나 지금의 시엔으로서는 감히 엄두조차 내지 못할 위계다.

지금 당장, 냉정하게 실전에서 투입할 수 있는 암흑물질 조작 학파의 효율을 헤아리고 결론을 내렸다.

아직 불완전하다.

‘오직 암흑물질로밖에 할 수 없는 게 뭐가 있지?’

아니, 애초에 암흑물질이란 뭐지?

곧바로 답이 나올 거란 기대는 하지 않는다. 동시에 시엔의 직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훗날 베르나르트가 개발하게 될 초위계 마법 아바돈(阿鼻沌)과는 별개로 이 마법이 시엔 자신에게 일깨워줄 가능성을.

‘궁금하다.’

동시에 지적 호기심을 갖고 탐구하는 그 자세야말로, 누구보다도 학자와 마법사에게 요구되는 덕목임을 시엔이 알 리가 없었다.

자기를 나이트워커 가문의 암살자 그 이상도 이하로도 생각하지 않는 시엔으로서는.

* * *

“설마 벌써 2위계의 마스터에 도달하다니.”

하루하루 시엔이 수련을 마치고 나올 때마다, 시엔이 가지고 오는 질문 내용과 성취에 베르나르트는 충격과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슬슬 다음 스텝으로 나아갈 때가 되었군.”

“다음 스텝?”

“내가 일찍이 제1마탑의 물질 조작 학파에서 수학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겠지.”

애초에 8위계에 이르러 학파를 창설하기 전에 베르나르트 자신부터가 ‘물질 조작 학파의 8위계 마스터’란 뜻이다. 그의 마법사로서의 경지는 결코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쌓아 올린 게 아니니까.

“자네가 이 이상의 위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물질 조작 학파를 일부 이해할 필요가 있지.”

“기대되네요.”

자신을 알기에 앞서 적을 아는 것. 시엔 역시 마다할 이유가 없는 배움이었다.

“「어두운 소원을 이루는 자세」─.”

그리고 그의 입에서 하나의 자세가 흘러나왔다. 1마탑의 범용 자세가 아니다. 일정 이상의 경지에 오른 자들이 구사하는 재해석된 고유 자세다.

시엔이 홀로 마법을 시험하고 그때마다 베르나르트에게 묻는 호기심 하나하나는 암흑물질 조작 학파의 맥을 짚는 통찰의 핵심이자, 베르나르트가 평생에 걸쳐 쌓아 올린 학문적 성과 그 자체였다.

‘검은 달의 베르나르트’가 쌓아온 삶 전체를, 하루가 멀다고 스펀지처럼 흡수하고 있다.

그러나 이상할 정도로 자기 삶이 부정당하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자기 자신이 정작 누구보다 질투심이 넘치고 속물이란 사실을 아는 베르나르트 스스로도, 이렇게까지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8위계 마법 ─ 「죽음의 별」.”

동시에 그의 손바닥 위에서 펼쳐지는 경이를 보자마자, 시엔 역시 놀라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직감할 수 있었다.

저것이 바로 훗날 베르나르트가 도달하게 될 초위계 흑마법, 아바돈의 전신임을─.

“학파의 구별은 어디까지나 이해를 돕기 위해 멋대로 붙여둔 이름에 불과하지. 나의 학파도, 물질 조작 학파도 다르지 않아. 원소 학파나 소환 학파도 마찬가지지.”

베르나르트가 말했다. 구역질이 날 것처럼 참을 수 없는 증오와 역겨움을 뒤로하고.

“그럼에도 그 학파가 마치 자기 소유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자기 영지가 침략이라도 받은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싸우고 다투는 아귀의 소굴, 그것이 마법 학계의 실체라네─.”

서로의 부족함을 메꾸고 보완하기는커녕, 자기 학파나 성과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 자체를 모욕처럼 받아들이고 매장하려 드는 것이 마법사의 세계다.

“그게 사람 사는 세상이니까요.”

눈앞에 있는 그의 제자는 달랐다. 그깟 학파니 뭐니, 어느 마탑 출신이니 따위에 얽매이지 않는 배움의 총아였다.

그렇기에 눈앞의 제자가 자신을 뛰어넘을 날이 너무나도 기다려져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베르나르트는 기꺼이 무엇이라도 질문에 답해줄 용의가 있었다. 몇 달, 크게는 몇십 년에 걸쳐 평생을 고심하고 고뇌하며 결론에 도달했던 것들을 즉답하며 눈앞의 제자가 시행착오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그것이 생전 처음 스승의 기쁨을 맛본 베르나르트의 하나밖에 없는 낙이었다.

동시에 제자의 호기심에 답하기 위해서라도, 그 어느 때보다 마법사로서의 학구열에 불타고 있는 자신을 깨달을 수 있었다.

* * *

“축제까지 딱 3주일이 남았구나.”

얼마 후, 나이트워커 공작 가문의 저택.

“모처럼 형제자매들이 다 같이 모이겠는걸.”

“떠들썩해지는 게 기대되네요.”

물론 사이좋게 축제나 즐기자고 나이트워커 가문의 인간들이 모일 리 없다.

“베르나르트에게 배우는 마법은 잘 되고 있니?”

“지나치게 잘 돼서 탈이죠.”

시엔이 짐짓 너스레를 떨며 웃었다.

“제국 제1마탑과 바르무어 후작의 ‘물질 조작 학파’의 치명적 맹점을 알게 됐어요.”

“그래, 그가 학파 설립 심사 당시 학계에서 매장된 논문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들었단다.”

이 세상 어디에나 나이트워커 가문의 눈과 귀가 있다. 라일라 역시 크게 놀라지 않고 말했다.

“─그게 마법사란 족속들이지.”

학자로서의 성과와 업적을 남기는 데 평생을 천착하는 주제에 역설적으로 누구보다도 소통하지 않고 단절을 자처하는 자들.

“애초에 베르나르트에게 이단 혐의를 씌우는 과정에서 마법계의 입김이 있었겠죠.”

“결과적으로는 실패했지.”

라일라가 말했다.

“그러니 《에인션트 리그》가 얌전히 있을 리 없을 테고.”

대륙 최고 명문으로 손꼽히는 여덟 마탑의 총칭.

앞서 명분을 준 것은 나이트워커 가문과 공화국이다. 교회는 물론 베르나르트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마법의 왕’이 얌전히 있을 리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이곳은 제국의 땅이 아니다. 그들 나이트워커 가문이 지켜야 할 땅이자 그들의 소유물, 베네토 공화국의 영토였으니까.

“때마침 올해 사육제에는, 흑마법에 관련된 값비싼 물품들이 제법 준비가 되었다는구나.”

“베르나르트 후작의 영지를 몰수하는 과정에서 일부가 암시장에 흘러 들어갔겠죠.”

베네토 사육제는 그냥 축제가 아니다. 앞서 베네토 도둑 길드의 얼굴 없는 경매회조차 애들 놀음으로 보일 정도의 터무니없는 암시장이 열리는 것도 이즈음이다.

손에 넣는 것으로도 국가 대 국가의 밸런스를 깨트릴 수 있는 온갖 보구들이 모이는 자리.

이 정도 규모의 거래를 통제하고 뒤끝이 남지 않도록 마무리 짓는 것은, 설령 나이트워커 가문조차 그들 가문의 역량 전부를 동원해야 할 일이다.

“게다가 그게 다가 아니란다.”

라일라가 말했다.

“올해 사육제에는, 우리 가문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손에 넣어야 할 값비싼 상품이 있거든.”

나이트워커 가문조차 탐을 낼 정도의 상품.

“그게 뭐죠?”

“아마도 그 힘에 대해서는, 나보다도 네가 더 잘 알 거란다.”

라일라가 대답했다. 그 말에 시엔이 나지막이 숨을 삼켰다.

“운명의 창…….”

“그것도 유례없을 정도로 커다란 파편이지. 듣기로는 창촉의 가장 끄트머리 일부란 듯하더구나.”

“……!”

일찍이 신의 아들을 찔러 죽였다고 일컬어지는 창이자, 산산이 부서져 수십 개의 파편이 되어 흩어진 신기.

그것이 사육제의 상품으로 흘러들어온 이상, 시엔과 나이트워커 가문이 신경 써야 할 상대는 제국의 교회와 마법사가 다가 아니었다.

‘체사레…….’

시엔의 어린 시절, 레서 뱀파이어를 이용해서 차도살인을 계획하고─ 그 대가로 자기 목숨처럼 소중한 ‘운명의 창’의 파편을 넘겨준 피의 영주, 체사레 줄리오.

그가 살던 고대 제국의 시절에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이름으로 불렸던 남자이자, 운명의 창이 신의 아들을 찔러 죽이는 역사의 광경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 기억하는 자.

대륙 전체를 통틀어 그 수가 손에 꼽히는 최고위 뱀파이어, 엘더 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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