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마탑의 심연 (1)
축제는 끝이 났다.
그로부터 얼마 후, 나이트워커 공작령.
“준비됐어, 티아?”
“네, 대부님.”
파지직!
시엔의 손끝에서 휘몰아치는 마력이 뇌전(雷電)의 속성을 머금고 쏘아졌다.
원소 학파 · 뇌전 속성의 1위계 공격 마법, 라이트닝 볼트.
그리고 쏘아진 라이트닝 볼트가 내달리며 눈앞의 표적 ‘티아’를 향해 쇄도하는 순간, 휘몰아치는 서릿발과 함께 일대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쩌적, 쩍!
비유도 무엇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 냉기에 덧씌워지며 얼어붙었다.
쨍그랑!
동시에 시엔의 라이트닝 볼트를 가로막은 얼음의 장벽이 산산이 무너지며, 작게 부서진 얼음 조각 하나하나가 시린 서슬을 머금고 시엔에게 쇄도했다.
빙결 폭발.
어느덧 폭발하는 얼음 칼날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갈가리 찢겨야 할 시엔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어느 틈에 땅을 박차고 공중에 뛰어오른 그림자가 소녀─ 티아의 머리 위에 드리워졌다.
“!”
그림자의 존재를 깨닫자마자 티아는 그녀가 펼칠 수 있는 최속(最速)의 마법, 아이스 볼트를 날리려는 찰나.
파지직!
이미 시엔의 손끝을 떠나서 내달린 라이트닝 볼트가 아이스 볼트를 펼치려던 티아를 향해 직격으로 내리꽂혔다.
전신을 내달리는 전류의 고통에 티아의 몸이 무너져 내린다.
승부는 그걸로 끝이었다.
“꼭 마법사처럼 싸우는구나, 티아.”
어느새 쓰러진 티아에게 손을 내밀며 시엔이 말했다. 그 말이 알기 쉬운 칭찬이 아니란 것쯤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
“……마법을 써서 싸우는 승부니까요.”
시엔의 말에 티아가 뾰로통하게 대답했다.
“그렇다고 네 본분까지 망각하란 뜻은 아니야.”
그들이 나이트워커 가문의 암살자란 정체성.
“설령 네 손에 무엇이 들려 있든, 우리가 암살자라는 정체성을 잊지 마.”
설령 검을 쓰든 마법을 쓰든 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그저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잘못했어요, 시엔 대부님.”
“사과할 것까지는 없어.”
고개를 숙이는 티아에게 시엔이 고개를 젓는다.
“오히려 마법의 성취는 나무랄 데가 없지. 그 나이에 냉기 속성의 4위계 익스퍼트라니, 가족들도 깜짝 놀랄 거야.”
“……대부님에게 그런 소리 듣고 싶지 않아요.”
시엔의 칭찬에 티아가 다시금 뺨을 부풀리며 말했다.
17살의 티아 나이트워커는 확실히 가문의 기준에서도 촉망받는 천재다. 그 어린 나이에 벌써 메이드맨이 된 것도 모자라 냉기 속성의 4위계 마법을 구사할 수 있다는 사실은, 대륙 전체를 통틀어도 쉽게 전례를 찾기 힘든 재능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눈앞에 있는 시엔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시엔이 그녀의 나이였을 때는 이미 견진성사를 치르고 마스터가 되었으며, 원소 학파 4위계는 물론 염력 학파와 혈마법 학파 등, 온갖 마법 학파까지 섭렵하고 있었으니까.
“오히려 대부님의 가르침이 있기에 가능했던 거죠.”
“뭐, 내가 가르쳤는데 못 하는 게 이상하지.”
“……가끔 느끼는데, 대부님은 의외로 자의식 과잉이에요.”
티아가 어이가 없어 덧붙였고, 시엔이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나 역시 어머니의 가르침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
시엔의 대모이자 암살자들의 어머니, 라일라.
“그게 가족이니까.”
“그렇네요, 대부님.”
그게 그들의 방식이다. 시엔의 말에 티아가 고개를 숙이며 미소 지었다.
“그리고 티아.”
이윽고 미소 짓는 티아를 향해 시엔이 조금 머뭇거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말씀하세요, 대부님.”
“아니, 그, 저기…….”
평소의 시엔답지 않게 뺨을 긁적거리고 나서, 자기도 모르겠다 싶은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그 뒤로 생각을 좀 해봤는데, 아무래도 대부란 호칭은 좀 그런 것 같아서 말이야.”
“네?”
티아가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가문 내의 공식 석상에서는 모를까……. 당장 나이 차이도 두 살밖에 나지 않고, 평소에 그렇게까지 깍듯하게 예를 차리는 것도 좀 그런 것 같아서.”
시엔이 말했다.
“가족이니까, 평소에는 좀 더 허물없이 대하는 게 낫지 않을까……?”
아무리 그들 가문의 규율이 이질적이라 해도 그들 역시 이 세계의 사람이다.
“그럼 뭐라고 불러야 하죠?”
순진하게 고개를 갸웃거리는 티아에게, 시엔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오빠라고 불러.”
붉어진 귀를 감추며 시엔이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에 티아가 푸훗, 소리를 내며 무심코 웃음을 터뜨렸다.
“알겠어요, 시엔 대부님.”
웃고 나서 티아가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친애하는 저의 오라버니─.”
‘살아남아요, 오라버니.’
동시에 마지막까지 시엔 앞에서 미소 짓던 티아의 모습이 겹친다. 멋쩍은 듯 웃고 있던 시엔의 입가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시엔 오라버니?”
어두워진 시엔의 모습에 티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시엔이 이내 아무것도 아니란 듯 웃으며 말을 얼버무렸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오라버니가 그렇게 말하는 것치고, 아무것도 아니었던 적이 없는 것 같은데요.”
티아가 의심스러운 듯 물었다. 시엔 역시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그래, 확실히 가벼운 일은 아니지.”
웃고 나서 시엔이 대답했다.
“그래도 너에게는 아직 일러.”
“……또 어린애 취급.”
“자기 입으로 어린애가 아니란 애들이 보통 애들이더라.”
“저도 이제 어엿한 가문의 일원이라고요.”
시엔의 말에 티아가 못마땅하다는 듯 투덜거렸다.
“……오라버니는 바보예요.”
쏟아지는 햇살 속에서 그녀의 머리카락이 수정처럼 새파랗게 빛났다. 훗날 그녀가 갖게 될 흑조(Black Swan)란 이명과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투명하고 아름다운 푸른빛으로.
* * *
“실로 경이로웠네.”
시엔과 티아의 마법 결투를 지켜보고 나서, 그것이 대륙에서 손꼽히는 8위계 마법사 베르나르트의 순수한 감상이었다.
비록 그가 골방에 틀어박혀 사는 학구파 마법사라고 하나, 마탑에 몸을 담을 적에는 최소한의 호신을 위해 전투 마법 정도는 몸에 익혀두고 있었다. 애초에 필수 과목이기도 했고.
그러나 눈앞에서 그들이 펼치는 마법은 그가 알고 있던 어느 전투 마법사의 그것과도 달랐다.
아니, 저것은 마법(魔法)이라고 부를 수조차 없었다.
진리를 추구하지도 않고 이치를 탐구하지도 않고, 심지어 법의 궁극에 닿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들에게 있어 마법이란 그저 목적을 이루는 도구이자 기술, 다시 말해 마술(魔術)에 불과하다.
“그 나이에 원소 학파 · 냉기 속성의 4위계 익스퍼트라.”
게다가 티아란 이름의 저 소녀. 비록 시엔에 비할 바는 아니나 마법의 재능 자체는 제1마탑의 어느 17살 엘리트조차 압도하는 경지였다.
‘참으로 터무니없는 가문이다.’
그렇기에 시엔에게 암흑물질 조작 학파를 가르치는 것과 별개로─ 티아와 함께 ‘원소 학파’를 가르치는 마법 교사가 되어달란 제의를 받았을 때,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다행히 뇌전과 냉기 속성에는 조예가 있다고 자부하네. 마침 학부 시절 때 전공과 부전공이기도 했고, 가르치는 것도 어렵지 않지.”
애초에 원소 학파는 마법의 기본, 어느 마법을 배워도 필수적으로 배워야 하는 토대에 가까우니까.
“겸사겸사 저도 냉기 속성을 좀 배우고 싶네요.”
“뇌전 속성으로 5위계 익스퍼트가 된 것도 모자라서, 냉기 속성까지 섭렵하겠다고?”
시엔의 말에 베르나르트가 터무니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원소 학파를 이루는 화염, 물과 냉기, 바람, 대지, 뇌전(雷電)의 5대 속성은 일정 경지부터 사실상 별개 학파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별도의 이해를 요구하며, 그렇기에 하나의 속성을 골라서 전공으로 삼는 게 보통이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시엔은 이미 뇌전 속성 5위계도 모자라 냉기 속성까지 섭렵하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전기와 물, 뇌전과 얼음.
이 두 속성을 전투에서 자유자재로 다루는 시엔과 티아의 모습을 떠올리며 베르나르트가 전율했다.
“자네들의 말마따나, 내가 가르치는 마법으로 사람을 어떻게 죽일지는 자네들이 판단할 영역이겠지.”
그렇기에 베르나르트가 일대에 휘몰아치는 원소를 휘감으며 말했다.
“불꽃과 열, 물과 냉기, 대지와 금속, 공기와 바람, 빛과 전기. 원소(Element)라고 두루뭉술하게 말해도 그 실체는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까다롭고 복잡하다네.”
─대륙에서 손꼽히는 8위계 마법사가 펼치는 마법의 기초.
“냉기란 물이 아니라 열의 부재에서 비롯되고, 금속에는 열이나 전기의 전도(傳導)가 탁월해지는 것처럼, 실제로는 이 세상의 전체가 서로 떼놓을 수 없는 유기적 결합과 조화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아야 하지.”
그것은 이미 기초라고 부를 수조차 없는 무엇이었다.
마력 속에서 불꽃이 피어오르고, 서릿발이 소용돌이치며, 흙으로 된 대지가 강철로 뒤덮이고, 휘몰아치는 칼날의 바람 속에서 일대가 진공(眞空)이 되거나, 강철 위로 벼락이 내리친다.
마치 세상의 이치를 자유자재로 다스리는 신처럼.
“그리고 그것을 이해시키는 것이 나의 역할이겠지.”
일찍이 요정왕이 있던 신비주의의 시대에 종말을 고하고 제국과 바르무어 가문이 가져온 분석주의 마법.
그리고 그 분석주의 마법이 낳은 새로운 시대정신의 총아이자, 역설적으로 그렇기에 마법 학계의 질투와 시기를 받고 매장된 마법사가 말했다.
마찬가지로 기사도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새 시대를 가져오게 될 나이트워커 가문의 두 암살자에게.
─시엔이 뇌전 속성의 마법을 이용해 새로운 비기(祕技)를 손에 넣은 것은 그로부터 얼마 후의 일이었다.
* * *
시엔과 티아가 본격적으로 마법 수련을 시작하고 몇 주 후.
제1마탑의 지하 최심부에 있는 마도왕의 비밀 공방.
마탑주 바르무어를 필두로 물질 조작 학파의 대가들이 모여 있는 그 방에서, 잠들어 있던 남자아이 하나가 눈을 떴다.
“저, 정신이 드니……?”
졸린 듯 눈을 비비는 아이에게 젊은 대학원(大學院) 마법사 하나가 머뭇머뭇 다가갔다. 바로 그때였다.
히죽.
남자아이의 입이, 사람의 턱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형태로 기괴하게 찢어지며 벌려졌다.
“히, 히이익!”
그 순간, 벌려진 입에서 칠흑의 촉수 다발이 솟아나 마법사를 휘감고 그대로 집어삼켰다. 마치 개구리가 파리를 삼키듯이.
꿀꺽.
“성공입니다.”
마도왕 곁에 있던 석좌교수가 속삭였다. 졸지에 괴물의 먹잇감이 돼버린 그의 가엾은 제자 앞에서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최고위 마수 ‘어둑시니’의 고유 형질 일부 및 고위 마수 바실리스크와 나락아귀 2종, 중급 마수 7종의 생명 물질이 거부 반응 없이 무사히 실험체에 융합되었습니다.”
“감축드립니다, 폐하!”
물질 조작 학파, 그 이름처럼 그들 학파는 이 세상의 물질을 자유자재로 다루고 조작할 수 있다.
그리고 생물(生物)─ 생명 역시 물질이다.
“……아직 부족하다.”
가신들의 칭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눈앞의 피조물에 일말의 흥미도 없는 목소리로 마도왕 바르무어가 말을 잇는다.
“이깟 불완전한 키메라 따위는, 감히 아버님께서 꿈꾸신 「완전생물」의 비원(悲願)에 발끝조차 닿을 수 없다.”
“전투 마법사들을 들여보내 곧바로 폐기할까요?”
석좌교수의 말에 바르무어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내 고개를 젓는다.
“아니.”
그의 앞에 펼쳐진 피조물이자 실패작을 향해 감정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런 괴물을, 굳이 우리 손으로 힘들여 폐기할 필요는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