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마탑의 심연 (2)
배움에는 끝이 없다. 그렇기에 아무리 배워도 끝나지 않는 걸 끝날 때까지 붙들고 늘어질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행스럽게도 시엔이 새로운 비기(祕技)를 개발하고 손에 넣은 것은 그즈음의 일이었다.
공작 저택의 지하, 나락의 방.
파지직!
발밑에서 휘몰아치는 전류를 전신에 덧씌운 시엔이 고개를 들었다.
원소 학파 · 뇌전 속성의 6위계 마법 「뇌안(雷眼)」.
파지직!
천둥의 눈, 그 이름처럼 시엔의 두 눈동자가 초점을 잃고 청백색의 스파크로 빛나기 시작했다.
마력을 통해 신경계의 전기신호를 극도로 가속하고 감각을 극대화하는 강화 마법. 그저 오감을 강화하는 데서 그치는 마법이 아니다.
이 눈동자는 일대에 발생하는 그 어떤 미세한 전기의 작용조차 놓치지 않고 감지할 수 있다.
일정 거리 이내에 있는 상대의 움직임, 근육과 세포 활동에서 비롯되는 실낱같은 ‘전기신호’조차 예외가 아니다. 심지어 동작이 아니라 그저 무엇을 느끼거나 생각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뇌세포의 전기신호조차 마찬가지다.
말 그대로 일대 영역의 전기장을 감지하고 해독할 수 있는 능력.
이론상으로는 상대가 움직이려고 마음을 먹는 즉시, 뇌에서 발생하고 신경을 따라 이동하는 생체 전기신호를 미리 해독하고 앞서 움직이는 것도 가능하다.
상대가 움직이기 전에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상대가 움직이려고 ‘생각하는 찰나’에 앞서 움직이는 것이다.
마법이 아니라 오히려 검술이나 무도 쪽에서 지고의 경지라 일컬어지는 영역─ 「선(先)의 선(先)」.
어디까지나 이론상으로는 그랬다.
그러나 마법사는 기사가 아니다. 설령 아무리 극대화된 감각을 지니고 있어도 몸이 따라주지 못하는 이상 의미가 없다.
물론 뇌전 속성 마법 중에는 전류로 육체에 과부하를 걸어 움직임을 강화하는 마법도 있으나, 그마저 오러를 사용하는 기사의 그것에 비할 수는 없다. 하물며 이 마법은 워낙 고위계 마법이라 오러와 함께 병행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이론상으로 갖는 무궁무진한 가능성과 별개로 적어도 인간에게는 실전성의 벽에 부딪혀 사장된 마법.
시엔에게는 아니었다.
‘비기 · 제비반전술.’
순간, 청백색의 스파크를 덧씌운 눈동자가 카멜레온처럼 움직였다. 일대에서 벌어지는 일체의 전기적 작용을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
시엔의 움직임에 수비 태세를 취하고 있던 티아의 표정에 당혹의 감정이 실린다. 그리고 그 감정을 느끼기 위해 뇌세포 속에서 오가는 전기신호 하나까지, 시엔은 놓치지 않았다.
그저 볼 수 있었다.
뇌안을 통해 극대화된 감각과 함께 살과 피와 뼈를 뛰어넘으려는 인간찬가의 의지, 오러가 시엔의 육체를 이끌었다.
「전광석화의 자세」.
오러의 힘으로 강화된 터무니없는 각력이 폭발하며 쇄도했다. 거리가 좁혀졌다. 그리고 섬광처럼 좁혀지는 와중에도 시엔의 청백색 눈동자는, 시시각각 눈앞의 상대에게 벌어지는 온갖 ‘전기신호’를 낱낱이 해독하고 있었다.
일섬(一閃).
말 그대로 전광석화처럼 쇄도하며 시엔의 손에 들린 칼끝이 티아의 이마를 겨눈다.
“커헉!”
─동시에 자세가 무너져내린 것은 정작 티아가 아니라 시엔 쪽이었다.
“오라버니?!”
칼끝이 겨누어질 때조차 소리를 내지 않던 티아가 당황하며 소리를 높였다. 티아에게 부축받으며 무너진 자세를 추스른 시엔이 말했다.
“……조금 무리를 했네.”
“조금 정도가 아니잖아요!”
티아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길어봐야 유지하는 것은 2초 정도…….’
티아의 잔소리를 뒤로하고 시엔이 생각했다. 길어야 2초. 아무리 조커 카드라 해도 너무 짧다.
‘못해도 5초까지는 늘릴 필요가 있어.’
고작 3초 차이. 그러나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전황을 뒤바꾸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넉넉했다.
적어도 그 5초는, 훗날의 시엔이 ‘암살자들의 아버지’라 불렸던 전성기의 움직임을 어설프게나마 모방할 수 있다는 뜻이니까.
‘7할…… 아니, 6할 정도까지는 가능하겠지.’
그마저도 끌어낼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움직임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애초에 훗날의 시엔은 마법의 힘을 빌릴 필요조차 없이 숨을 쉬듯 ‘선의 선’을 구사하는 게 가능했으니까.
그러나 지금 당장으로서는 이걸로 족하다.
“대체 어떻게 뇌안과 함께 섬광의 자세를 펼치신 거예요?!”
“다 방법이 있지.”
마력과 오러는 양립할 수 없다. 설령 쓴다고 쳐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병렬, 서로의 힘이 섞이지 않는 바이패스(우회로) 신경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방금 시엔이 보여준 모습은 아니었다. 의심할 여지가 없이 전신을 마력으로 덧씌운 강화계 마법과 오러를 동시에 펼쳤으니까.
테레지아 경의 비기, 제비반전술.
어느덧 티아의 부축을 벗어나 후들거리는 두 다리로 섰다. 여전히 능력의 후폭풍이 심하다.
“그래도 아직 기술이 완성되지 않았거든.”
후들거리는 다리의 중심을 잡고 시엔이 말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티아에게 이 기술을 전수하고 싶었으나, 그 말처럼 이 기술은 아직 완전하지 않다. 하물며 지금 정도의 경지를 가진 시엔조차 오롯이 소화할 수 없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기술이다.
게다가 원소 학파의 5위계 익스퍼트의 경지를 가진 시엔이 무리해서 6위계 마법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지금 시엔 정도의 깨달음과 정신력 없이는 그조차 쉽사리 흉내 낼 수 없는 일이니까.
“약속할게.”
“……뭘요?”
“이 기술이 완성되는 대로, 제일 먼저 너에게 가르쳐 주겠다고.”
시엔이 말했다. 뇌안으로 극대화된 감각과 함께 제비반전술을 통해 오러의 힘을 가감 없이 뿜어내는 기술.
“그리고 네가 이 기술에 이름을 붙여줘.”
그때가 됐을 때 이 기술은 더 이상 제비반전술이란 이름으로 불리지도 않을 것이다. 심지어 무슨 이름이 될지는 시엔도 알 수 없었다.
“……열심히 생각해 볼게요, 오라버니.”
시엔의 말에 티아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 * *
그로부터 얼마 후.
나이트워커 공작령 내에 분봉(分封)된 베르나르트 후작의 영지, 그 지하에 있는 마도 공방.
나이트워커 가문의 재력을 통해 다시금 세워진 그 공방에서, 베르나르트는 밤낮을 틀어박혀 마도(魔道)의 탐구에 열중하고 있었다.
“베르나르트 후작 각하.”
“……왔나.”
베르나르트는 고개를 돌리는 일조차 없이, 모노클을 쓰고 탁상 위에 빼곡히 쌓여 있는 양피지 문서들을 읽기에 바빴다.
거창하게 마력을 휘몰아치지도 않고 대규모 마법을 영창하지도 않는다. 그저 책상 앞에 앉아 문서를 읽거나 집필하며 ‘분석할’ 뿐이다.
거기에는 마법에 대해 흔히 갖는 알기 쉬운 로망도 신비도 없었다. 그저 책상머리와의 싸움이 있을 뿐. 그나마 찾아볼 수 있는 마법의 흔적이라고는, 시험용 플라스크 속에서 출렁이는 소량의 마력이 전부다.
이것이 이 시대 마법의 모습이다.
“오늘은 수업이 없는 걸로 아는데, 달리 물어볼 것이라도 있나?”
여전히 등을 돌린 채 베르나르트가 물었다. 총애하는 제자의 호기심에 기꺼이 발 벗고 나서겠다는 스승의 목소리로.
“아뇨, 오늘 찾아온 것은 가르침 때문이 아닙니다.”
그 말에 비로소 모노클을 쓰고 문서를 읽어내리고 있던 베르나르트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바닥까지 흘러내린 칠흑의 장발이 가볍게 흔들렸다.
“수상쩍은 자가 가문의 영지로 향하고 있다고 들었거든요.”
“또 《에인션트 리그》의 암살자가……?”
이 땅에서는 누구도 나이트워커 가문의 눈과 귀를 피해 갈 수 없다. 하물며 그들의 영지 위에서 벌어지는 일은 더더욱.
상대 역시 그걸 모를 정도로 어리석지 않다.
“글쎄, 그를 암살자라고 불러야 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시엔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게 무슨 뜻이지?”
“가는 길마다 닥치는 대로 보이는 사람을 잡아먹고 마을을 부수며, 이곳 나이트워커 공작성으로 향하고 있답니다.”
“잡아먹었다고……?”
“그렇습니다. 생존자들이 말하길, 입을 벌리고 개구리처럼 촉수를 뿜어 사람을 통째로 삼켰다네요.”
그 말에 베르나르트가 나지막이 숨을 삼켰다. 시엔의 말마따나 비밀스럽게 누구를 죽이러 온 자가, 눈앞에 있는 것을 보이는 족족 파괴하며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다닐 리가 없다. 하물며 ‘잡아먹는다’니.
“듣기로는 인간이 아니라 차라리 마수의 짓에 가깝지 않나.”
“아뇨, 확실히 인간의 모습이었습니다.”
시엔이 말했다.
“토벌을 위해 나섰던 그림자 기사 셋이 당했죠.”
“─.”
그 말에 베르나르트의 손이 처음으로 굳었다.
“그림자 기사들이 당할 때, 심지어 사람을 잡아먹을 때도 여전히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나?”
“그렇습니다.”
“……의태종(擬態種) 마수의 존재 자체는 그렇게까지 드물지 않지.”
그러나 짐승에게 있어 의태란 결국 포식자의 눈을 속이거나 먹잇감을 방심시키기 위한 약자의 생존 전략이다. 지금처럼 그림자 기사 셋을 쓰러뜨릴 정도의 힘 있는 ‘포식자’가, 하물며 동네방네 자기 정체를 떠벌리고 다니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약자의 생존 전략을 취할 이유가 없다.
무엇보다 나이트워커 가문의 땅에서, 그들의 영지를 위협할 정도의 마수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질 리도 없다.
“달리 짚이는 점이라도 있으신 듯하네요.”
시엔의 말에 베르나르트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키메라(Chimera)일세.”
“…….”
시엔이 짐짓 시치미를 떼며 그 의미를 되물었다. 하지만 그 정체를 모를 시엔이 아니었다.
“바르무어 가문의 숙원을 이루기 위해, 물질 조작 학파의 마법사들이 창조한 합성생물이지.”
물질 조작 학파는 그 이름처럼 세상의 물질을 자유자재로 조작할 수 있다.
그리고 생물, 생명 역시 물질이다.
시엔 역시 알고 있었다. 동시에 제국이 이 괴물을 훗날 전쟁에 어떻게 실전에서 「활용하는지」 역시도.
“저와 티아가 그것을 토벌하러 나설 겁니다.”
“……놈을 사로잡을 수 있겠나?”
“죽이지 말란 뜻입니까?”
시엔이 말했다. 그 말에 베르나르트가 잠시 침묵하고 나서 입을 열었다.
“상처를 내는 것 정도는 상관없네. 그저 죽이지 않고 숨통이 붙어 있는 채 포획하는 정도로 족하네.”
“쉬운 일은 아니지요.”
시엔이 짐짓 뜸을 들이며 대답했다.
“그럼에도 할 가치가 있는 일입니까?”
“그럴 거라고 확신하네.”
베르나르트의 대답에 시엔이 담담히 미소 짓는다. 처음부터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이.
훗날 베르나르트의 초위계 광역섬멸형 흑마법 ‘아바돈’과 함께 대륙의 저울추를 뒤바꾸게 될 신성 제국의 결전 병기 중 하나, 합성생물 키메라.
훗날 「혼종(Hybrid)」이라 불리게 될 제국의 생체병기.
심지어 그것은 제국조차 통제할 수 없는 말 그대로의 괴물이었다. 그리고 통제할 수 없는 괴물을 전쟁에 이용하는 법 역시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무차별 테러.
자기들도 감당하지 못하는 괴물을 의도적으로 적의 국가 시설, 심지어 민간인이 있는 도시나 마을 따위에 풀어놓아 무차별 타격을 주는 것.
‘아주 그냥 신이 하지 말란 짓들만 골라서 다해요.’
도가 없는 자가 도를 논하는 법이다. 그 사실에 헛웃음을 흘리며 시엔이 각오를 다잡았다.
‘때가 되었다.’
자기 손을 통해 운명을 바꿀 수 있는, 또 하나의 분기점이 그곳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