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마탑의 심연 (3)
이 세계에서 교차로(Crossroad)는 온갖 미신의 온상이다.
교차로에는 악마가 살고 있다거나, 길 잃은 영혼들이 속박되어 헤매고 있다거나 하는 것들.
사거리, 삼거리, 오거리, 몇 갈래로 나뉘어서 어디로 이어질지 모르는 길이─ 이 세계 사람들에게는 마치 운명의 미로 그 자체로 보일 테니까.
그 교차로 위에 길 잃은 남자아이가 있었다.
발밑에 널브러진 여행자들의 시체와 피바다를 뒤로하고.
“여기 있었구나.”
어느 틈에 별과 단검의 문장을 새겨넣은 암살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시엔과 그의 곁을 보좌하는 수정처럼 새파란 머리카락의 소녀, 티아 나이트워커.
두 사람의 등장에 어린 남자아이가 고개를 돌린다.
쩌억.
그리고 그 입이 사람의 턱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형태로 기괴하게 찢어졌다.
‘나락아귀의 턱.’
촤아악!
인간의 턱이 움직일 수 있는 가동 범위를 아득하게 뛰어넘는 동시에, 그 속에서 칠흑의 촉수 다발이 솟아났다. 마치 벌레를 낚아채려는 개구리처럼.
시엔과 티아가 재빨리 촉수들을 피해 거리를 벌렸다. 각자의 소맷자락 속에 숨겨진 칼날로 촉수를 베며.
촤아악!
직후 남자아이의 형상을 취하고 있는 괴물, 키메라의 날개뼈가 등을 찢고 솟아났다.
솟아났다고 생각하기 무섭게 급속도로 세포가 재생되며, 두 날개를 활짝 펼치고 비상했다.
‘비룡의 날개, 그리고 초재생 능력을 가진 마수.’
날개를 펼치며 터무니없는 속도로 쇄도하는 키메라. 온갖 성가신 특성이 줄줄이 달린 저것은 말 그대로 살육을 위해 창조된 생명이자 병기였다.
저공에서 빠르게 거리가 좁혀졌다. 그럼에도 시엔이 침착하게 칼자루를 고쳐 잡고, 날갯짓하는 괴물에게 일격을 먹일 기회를 노리는 찰나.
기괴하게 벌려진 턱 속에서 무엇이 튀어나왔다.
나락아귀의 촉수 다발이 아니다. 보랏빛 독기로 가득 찬 숨결이었다.
‘바실리스크의 맹독……!’
제아무리 나이트워커 가문의 인간이라 해도 저것을 직격으로 맞고 멀쩡할 수는 없다.
일찍이 시엔의 양분이 되기를 거부하고 자결했던 제국의 공안이 쓴 독 학파의 5위계 마법, 치사성 맹독구름의 기전(機轉)이 바로 저 바실리스크의 숨결을 바탕으로 개발된 마법이니까.
여전히 달라질 것은 없다.
독의 숨결을 내뱉으며 쇄도해야 할 키메라의 날개를 향해, 어느새 티아가 벼린 냉기의 투창이 내리꽂혔다.
촤아악!
정확하게 두 날개를 동시에 꿰뚫는 일격.
날고 있던 키메라가 비명을 지르며 땅에 고꾸라졌다. 그 틈에 시엔이 부채꼴로 퍼지는 독기를 피해 후방으로 쇄도하려는 찰나였다.
키메라의 발밑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끝없는 어둠의 호수가 되어 일대로 퍼져나갔다.
‘어둑시니의 고유 능력, 그림자 조작.’
인간 마법사 기준으로는 그림자 학파의 6위계 마법, 그림자 호수(Lake of Shadows).
콰직!
딛고 있는 그림자 호수 밑에서 어둠으로 된 칼날이 솟아올랐다.
그림자 칼날.
어둑시니. 지성도 무엇도 없는 괴물 주제에 인간 마법사를 기준으로 ‘그림자 학파 6위계’의 경지에 해당하는 마법을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는 최고위 마수.
‘벌써 이 정도의 키메라를 창조했을 줄이야.’
어둑시니, 바실리스크, 나락아귀, 비룡(飛龍), 최고위 마수부터 온갖 형질의 마수들이 저 어린아이의 육체에 하나로 녹아들어 있었다.
물론 아직은 마수 하나하나의 특성까지 완벽히 살리지 못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말이지.’
시엔이 내심 혀를 차며 거리를 벌린다. 바로 그때였다.
티아의 발밑을 따라 터무니없을 정도로 시린 냉기가 일대를 내달린다.
그녀가 무엇을 하려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굳이 말을 하거나 의도를 짐작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알 수 있었다.
쩌적, 쩍!
그림자 호수 전체를 집어삼키듯 얼음의 벽이 일대를 꽁꽁 얼린다.
‘터무니없는 마력량이다.’
티아가 그림자 호수 위로 얼음을 덮어씌우자, 어둠 속에서 솟아나야 할 칼날 세례가 뚜껑처럼 닫혀 있는 빙벽(氷壁) 앞에 덧없이 가로막혔다.
그림자가 봉쇄되고 날개가 찢어졌다. 심지어 초재생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티아의 얼음 창에 깃든 저주에 가까운 냉기가 순순히 회복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때였다.
쩌적, 쩍!
그림자 호수 위를 덧씌운 빙벽이 거북이 등딱지처럼 갈라지며 부서지더니─ 급속도로 녹아내린다.
‘지금이다.’
시엔의 손끝을 따라 터무니없는 전류가 휘몰아친 것은 동시의 일이었다.
그림자 호수 일대를 꽁꽁 얼린 얼음이 녹아서 ‘진짜 호수’를 이루고 있는 그곳으로.
파지직!
《뇌전의 장갑》에서 사출된 초고압 전류가 호수를 따라 내달린다.
시엔이 낼 수 있는 최대의 출력과 위력, 거기에 더해 아티팩트의 마력 강화까지 추가된 뇌전 속성의 제5위계 마법─.
「아크 방전(Electric Arc)」.
그야말로 완벽에 가까운 타이밍의 합동 공격.
말을 맞출 필요조차 없다. 그저 서로가 알 수 있다. 그것이 나이트워커 가문의 가족들이니까.
알기 쉬운 괴성 따위는 울려 퍼지지 않았다. 애초에 저 정도의 고압 전류를 직격으로 맞고 목소리를 낼 여유 따위는 없을 테니까.
─그럼에도 죽지 않았다.
‘터무니없는 생명력이다.’
그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할 정도로 무력화돼서 의식을 잃었을 뿐.
어느새 시엔이 등 뒤로 도열하고 있는 그림자 기사들을 향해 말했다.
“고위 마수용 구속제어장치를 준비하세요.”
“알겠습니다, 돈 시엔.”
그림자 기사들이 준비해둔 구속구를 갖고 키메라에게 다가갔다.
혹시라도 구속 도중 놈이 벌떡 일어나 최후의 발악을 할까 신중에 신중을 기하며, 마지막까지 경계를 늦추지 않고.
* * *
그로부터 얼마 후, 나이트워커 공작 저택의 집무실.
라일라와 그녀의 곁을 지키는 시엔, 그리고 공화국 예법에 따라 라일라의 손등 위에 입맞춤하는 베르나르트가 있었다.
“예의 키메라에 대해 하실 말씀이 있다죠.”
라일라의 말에 베르나르트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참으로 유감스러운 말이나…….”
그리고 그녀의 말에 베르나르트가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지금의 역량과 설비로는, 이 이상 키메라의 분석이 어려울 것 같다는 말을 드리러 왔소.”
“흠, 그것참 유감스러운 일이네요.”
라일라가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키메라를 죽이지 말고 사로잡아달란 것은, 누구도 아니고 후작 각하의 요청이 아니셨나요?”
“……일찍이 1마탑에 몸담고 있던 시절, 바르무어 가문의 숙원이라 할 수 있는 ‘완전생물’의 실험에 참여했던 전력이 있었지.”
베르나르트가 말했다.
“그러나 이미 제1마탑의 생물 조작 정밀성과 진척도는 내가 아는 수준을 까마득히 상회했소.”
이 세계의 그 누구와 다를 바 없이 악으로 더럽혀진 손을 뒤로하고.
“귀 가문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려 했던 내 욕심이 과했던 모양이오.”
베르나르트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럴 수밖에.
애초에 제1마탑 역시 바보가 아니다. 심지어 그곳에 있는 베르나르트가 과거 물질 조작 학파의 8위계 마스터란 사실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그것을 알고도 굳이 키메라를 그들의 영지에 보냈다는 것은, 베르나르트조차 쉽게 키메라의 정보를 해독하고 분석하지 못하리란 확신이 있는 것이다.
“무엇이 더 필요하죠?”
바로 그때, 라일라가 되물었다.
“……뭐라고?”
“시간, 예산, 인력(人力)──. 이 중에 뭐가 필요하신가요?”
라일라의 말에 베르나르트가 당황하며 숨을 삼켰다.
“그게 무슨…….”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우리는 각하의 연구에 아낌없는 금전적 지원과 대가 없는 후원을 약속드리겠다고.”
나이트워커 가문의 후원. 그 말이 갖는 진짜 의미를 실감하고 베르나르트가 몸을 떨었다.
“……조수로 고용할 1마탑 출신의 마법사, 최소 5위계 이상으로 다섯 명 이상이 필요하오.”
“그 외에는?”
“마도 공방에 내가 부탁하는 설비를 추가로 들이거나 제작해줄 수 있겠소?”
베르나르트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요구하는 것들을 나열했다.
“흠.”
이윽고 그 요구사항에 라일라가 침묵했다. 그녀의 침묵을 부정의 의미로 받아들였는지, 베르나르트가 이내 말을 수습하려는 찰나.
“그렇게까지 어려운 부탁은 아니네요.”
라일라가 순순히 대답했다.
“……!”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억지에 가까운 부탁이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기대조차 없었다.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에둘러 말하려는 속셈이었으니까.
아니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나이트워커 가문이 가진 진짜 힘이었다.
“물질 조작 학파 출신의 5위계 마법사 7명, 6위계 마법사 2명을 조수로 고용해 드리지요.”
“뭐라고……?”
이어지는 말에 베르나르트가 경악해서 숨을 삼켰다. 그야말로 자기 귀를 의심하는 것처럼.
4위계 마법사는 검으로 따졌을 때 소드 익스퍼트 하급.
5위계는 소드 익스퍼트 상급에 가까운 경지이며, 6위계는 소드마스터와 동격의 경지로 취급된다. 심지어 마법의 희소성 자체는 검보다 높고, 하물며 마법사 중에서도 최고 엘리트라 불리는 제1마탑 물질 조작 학파 출신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고용이라니, 제1마탑의 마법사를 대체 무슨 수로…….”
마법사의 세계를 아는 그이기에 더더욱 믿을 수가 없었다.
“공화국에는 재미있는 속담이 있답니다.”
경악하는 베르나르트를 뒤로하고 라일라가 즐거운 듯 입을 열었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는 없어도…….”
이어지는 그 말을 곁에 있던 그녀의 아들, 시엔 나이트워커가 받아 잇는다.
“행복 근처에 있는 요트를 살 수는 있다.”
* * *
베르나르트가 떠나고 나서, 남겨진 라일라가 그녀의 아들에게 입을 열었다.
“최신식 공방 설비에 마법사까지, 이러다가는 마탑을 세울 지경이 되겠는걸.”
“못할 거라도 있나요?”
그 말에 시엔이 태평하게 대답했다. 그 말에 라일라 역시 즐거운 듯 웃음을 터뜨린다.
“처음부터 그게 목적이었구나.”
“맞아요.”
밤을 걷는 자들의 대지, 나이트워커 공작령에 마탑을 세우는 것.
마탑(魔塔), 말 그대로 마법사들의 탑이자 배움의 전당. 그것이 바로 시엔이 베르나르트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또 하나의 목표였다.
“제1마탑, 더 나아가 《에인션트 리그》에 필적하는 명문 마탑을 우리 가문의 영지에 세우는 거죠.”
감히 마도왕은 물론 제국조차 함부로 손쓸 수 없는 그곳, 밤을 걷는 자들의 대지에.
물론 마탑은 세울 수 있다고 세우는 게 아니다. 애초에 마탑을 세우기 위해서는 마법사, 그것도 대륙에서 손에 꼽는 8위계 마법사가 탑주로 필요하니까.
“잊지 말렴. 우리는 공식적으로 베르나르트의 존재를 공표할 수 없단다.”
라일라의 지적에 시엔이 대답했다.
“공식적으로는 그렇겠죠.”
그러나 이미 나이트워커 가문이 베르나르트를 망명시키기 위해 제국을 발칵 뒤엎었다는 것은, 지나가는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베르나르트의 명성은 은자(隱者)들을 불러 모으기에 충분하겠지.”
라일라의 말에 시엔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도왕이 아니라, 우리 가문의 손으로 새로운 마법사들의 왕국을 세우는 거예요.”
“세상에 무너지지 않는 왕국은 없는 법이니까.”
─세상에 무너지지 않는 왕국은 없다.
마법의 왕을 자처하는 바르무어 가문, 나아가 제국의 명문 마탑 《에인션트 리그》가 다스리는 마법사의 왕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동시에 기억하렴. 세상의 어느 나라도 하루아침에 세워지지 않는다는 걸 말이야.”
“명심할게요, 어머니.”
라일라의 충고에 시엔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로 포석은 전부 깔아뒀다.’
터무니없이 커다란 포부를 가진 시엔의 마탑 사업.
그럼에도 당장 하루아침에 무엇이 바뀔 거란 기대는 처음부터 없었다. 그저 참고 기다릴 뿐이다.
심어둔 씨앗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울 때까지 그저 묵묵히.
─그리고 이제는 마법이 아니라, 다시 자신의 본업으로 돌아갈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