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시궁쥐 추기경 (2)
시궁쥐 추기경, 로드리고 보르자. 과거에는 5마탑의 탑주이자 《파리 대왕》이란 이명으로 불렸던 8위계 마법사.
이 시대의 강자로 분류되고 있으나, 정작 그의 능력 자체는 전투에 그렇게까지 특화되어 있지 않다.
거꾸로 말해 전투에 그리 특화되지 않은 능력으로도 로드리고 보르자는 명실상부 당대의 강자란 칭호를 손에 넣은 셈이다.
“운명의 창이라.”
그렇기에 시엔이 가진 신기, 운명의 창에서 휘몰아치는 기류 앞에서 로드리고가 차갑게 조소했다.
“그깟 도구의 힘 따위로, 네깟 애송이가 나를 쓰러뜨릴 수 있을 것 같나?”
대답 따위는 들려오지 않았다. 대답할 필요도 없었다. 말없이 ‘왕 시해자’의 칼자루를 역수로 고쳐 잡고 쇄도할 뿐.
타앗!
거리가 좁혀지는 동시에 시궁쥐 추기경의 그 자리에서 육체가 덧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 대신 사람의 실루엣을 이룬 파리떼가 웅웅거리며 사방으로 흩어질 뿐.
「바알제붑의 자세(Ba'al Zebûb Stance)」.
이치 자체는 앞서 5마탑에서 비급을 지키고 있던 파리떼 수호자와 비슷하다. 그러나 눈앞의 충술사는 그깟 수호자 따위와 비교할 수준의 상대가 아니었다.
‘흑사충!’
그가 사역하는 벌레는 괴뢰충 하나가 아니다. 대륙 제일의 충술사 로드리고 보르자의 육신이 죽음의 파리떼가 되어 흩어졌고, 흩어졌다고 생각하기 무섭게 사방에서 죽음의 파리떼가 시엔을 향해 쇄도했다.
파지직!
시엔의 《뇌전의 장갑》에서 청색의 전류가 내달린 것은 직후의 일이었다.
「전기화상(Electrical burns)」.
쇄도하는 파리떼 모두를 저격하듯 사방으로 전류의 스파크가 퍼져나갔다.
‘검술로 쉽게 쓰러뜨릴 상대가 아니다.’
바로 그때, 감전된 파리떼 위로 마력이 내달리며 형태가 뒤틀린다.
갑각, 그것도 전기가 통하지 않는 절연체(絶緣體)가 흑사충 위로 덧씌워진다.
시엔의 수에 대응하며 로드리고가 내놓은 대답.
어느새 흩어졌던 파리떼가 다시금 뭉치며 사람의 실루엣을 이룬다. 그러나 거기에 더 이상 알기 쉬운 인간 로드리고 보르자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장수풍뎅이처럼 전신을 갑각으로 덧씌우고, 파리의 혐오스러운 눈동자를 가진 남자가 있었다.
무려 8,000개가 넘는 파리 특유의 눈동자가 얼굴 부피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사실상 파리 인간이나 다름없는 형상의 괴물.
그 상태로 보르자의 갑각 피부를 뚫고, 또다시 헤아릴 수 없는 벌레들이 체내에서 솟아났다.
아까의 흑사충이 아니다.
‘마흡충(魔吸蟲).’
오러와 마력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마나 그 자체를 집어삼키며 전력을 약화하는 벌레. 실력 있는 충술사는 이 벌레를 이용해 이미 발동된 마법 자체를 잡아먹는 것도 가능하다.
바로 지금처럼.
콰직!
시엔의 손에서 송곳처럼 벼려진 아이스 볼트가 허공에서 덧없이 스러졌다.
콰직!
그렇기에 마법사의 수단을 포기하고 어느덧 시엔이 땅을 박찬다.
체내의 오러가 휘몰아치며 손에 들린 왕 시해자가 흑광의 서슬을 빛냈다.
카앙!
바로 그때, 시엔의 발밑에서 칠흑의 칼날이 솟아났다.
‘어둑시니의 그림자 조작!’
재빨리 땅을 박찬 시엔이 거리를 벌린다. 어느 틈에 그림자 호수가 일대를 집어삼켰고, 그곳에서 ‘놈’의 형상이 솟아올랐다.
그림자와 어둠을 자유자재로 조작할 수 있는 최고위 마수, 어둑시니.
로드리고가 벌레를 주력으로 다루는 까닭에 충술사란 멸칭으로 불리기는 해도, 일찍이 사역술 학파의 8위계 마스터이자 마탑주를 자청했던 마법사다.
그 정도 사역술사가 최고위 마수를 사역마로 부리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딱히 새삼스럽지 않다.
어둠으로 이루어진 사람의 실루엣, 어둑시니의 입꼬리가 히죽 찢어졌다.
콰지직!
어둑시니의 육체, 발밑의 그림자 호수, 빛이 들지 않는 하수도의 어둠 곳곳에서 칠흑의 칼날이 솟아났다.
수십, 수백 자루의 그림자 칼날들이 정확하게 시엔의 급소를 노리고 내리꽂혔다. 아니, 칼날조차 아니었다.
꼬챙이였다.
“시엔 나이트워커, 공화국 동부 자유도시 슬럼가의 출신.”
칠흑의 꼬챙이를 피해 내달리는 시엔에게 로드리고 보르자가 담담히 말을 잇는다.
“7살 때부터 범죄 길드 ‘나인 핑거스’의 암살자로 활약하며 사람을 죽였고, 아홉 살 때 그 성장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버려져 적대 길드에 사로잡혔지.”
카앙!
솟아오르는 꼬챙이를 칠흑의 흑광이 깃든 서슬로 튕겨내며 궤도를 뒤틀었다. 그러나 사방팔방에서, 심지어 머리 위의 천장에서 솟아나는 꼬챙이 전부를 튕겨낼 수는 없다.
‘도망쳐서는 끝이 없다.’
각오를 다진 시엔이 급제동을 걸고 방향을 틀었다.
“그 후 나이트워커 공작 가문에 ‘밤의 아이’로 거두어져, 고작 반년 사이 세례성사를 받을 준비를 끝마쳤다. 주력으로 구사하는 자세는 망령의 자세─. 아마도 이미 제1식의 견진성사를 통과하고 오의 ‘영야’를 구사할 수 있을 테지.”
제국의 혓바닥이 담담히 말을 잇는다.
“마법 경지는 염력 학파 3위계 마스터, 원소 학파의 뇌전 속성 5위계 익스퍼트에서 마스터 사이로 추정, 베르나르트의 암흑 물질 학파는 아직 실전에 도입할 경지는 아니겠지. 꼭두각시 벌레의 서 역시 마법을 쓸 수는 있어도 실전에 활용할 정도로 융합이 진척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둑시니의 꼬챙이를 미꾸라지처럼 피하며 자신에게 거리를 좁히는 암살자를 향해.
‘제기랄……!’
좁히려고 해도 좁힐 수가 없었다.
이 장소, 빛이 들지 않고 어둠으로 가득 찬 하수도는 어둑시니는 물론 로드리고에게 있어 최적의 전장이다. 심지어 비좁은 통로 속에서는 움직임조차 자유롭지 못하다.
마법사를 상대로 기사나 암살자가 상성상의 우위를 차지하는 것은 결국 오러를 이용하는 육체 능력, 더 나아가 기동성에 있다. 그러나 이 비좁은 하수도에서는, 심지어 발밑과 천장, 벽 어디서 어둑서니의 꼬챙이가 솟아날지 모르는 곳에서는 더더욱 움직임이 제약될 수 없다.
“게다가 네놈의 성장세로 미루어, 이미 실질적 전력은 가문의 하이마스터에 준하고 있다 봐야겠지. 아니, 실제로 또 하나의 검식을 마스터했을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겠고.”
그럼에도 눈앞의 강자는 결코 방심하지 않았다.
“확실히 네놈은 강하다. 아니, 강하다는 말조차 부족하지. 필시 훗날에는 ‘암살자들의 어머니’조차 뛰어넘는 괴물이 될 거다. 그때 나는 아마 네놈의 상대조차 되지 못하겠지.”
오히려 병적일 정도의 신중함과 겸손함으로 시엔의 실력을 헤아리고 고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
눈앞의 남자는 결코 시엔을 과소평가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항상 자기들의 상정 이상으로 시엔의 경지를 높게 평가하며 극도의 경계심을 갖추고 있었다.
“지금의 네놈은 날 이길 수 없다.”
그럼에도 그 정도였다.
“그 정도 실력에 ‘운명의 창’의 행운을 조금 빌리는 정도로, 정말 지금 날 쓰러뜨릴 수 있다고 생각했나?”
이것이 이 시대, 당대의 ‘강자’다.
대륙 제일의 천재로 떠받들어지며 하루가 멀다고 명성을 날리고, 절대 패배를 알지 못하는 시엔의 전력과 잠재력을 정확하게 평가하고도─ 여전히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존재.
“필시 자기의 잠재력과 힘을 구별하지 못하고 있는 거겠지.”
시궁쥐 추기경, 로드리고 보르자가 조소했다.
동시에 시엔 역시 웃음을 터뜨렸다.
“뭐가 웃기지?”
대답해줄 이유 따위는 없었다.
카앙!
어느덧 사방에서 내리꽂히는 칠흑의 꼬챙이에 맞서, 시엔이 도망치기를 멈춘다.
그저 손에 들린 흑검을 휘두를 따름이다.
「명경지수의 자세」.
나이트워커 가문의 아홉 가지 검식 중에서도 가장 순수하다고 일컬어지는 정통파 검술.
평정 속에서 끝없이 솟아나는 꼬챙이를 모조리 부러뜨렸고, 직후 시린 냉기가 내달렸다.
「빙결의 소용돌이」.
쩌적, 쩍!
끝없이 부러지고 다시 솟아나는 어둠의 창날이 휘몰아치는 냉기에 얼어붙었다.
마치 호수를 얼리듯 주위의 어둠 위에 빙결의 벽을 덧씌우고 틀어막듯이.
일찍이 티아가 그랬던 것처럼 일대의 그림자 호수 전체를 집어삼킬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자기 몸 주위의 어둠, 이 비좁은 하수도 속의 어둠을 얼리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족했다.
깨닫고 보니 칠흑의 파리떼와 마흡충, 그 외에 온갖 형태의 괴충들이 쇄도하고 있었다.
다시금 뇌전의 장갑에서 휘몰아치는 스파크로 벌레를 불태우고, 시엔이 고개를 들어 눈앞의 상대를 바라보았다.
일말의 감정조차 없는 차가운 눈동자로.
이걸로 확신할 수 있었다.
전력을 다해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대 따위가 아니다. 눈앞의 남자는 지금의 시엔이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지금까지의 적과 비교할 수 없는 강자였다.
그래서 웃었다.
‘……허세? 블러핑을 가장하고 있나?’
그 웃음에 로드리고가 생각했다. 아니었다.
“입은 재앙을 부르는 문이고(口是禍之門),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다(舌是斬身刀).”
비로소 침묵하고 있던 시엔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너는 네 입으로 재앙을 불렀고, 네 혀로 자기 몸을 벴다.”
“무슨…….”
그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로드리고가 숨을 삼켰다.
‘뭐지?’
공기가 달라졌다. 운명의 창을 통해 뒤틀린 ‘운명의 기류’ 외에도 설명할 수 없는 또 하나의 공기. 뭐가 달라졌는지, 그조차 이해할 수 없는 위화감.
이것은 절대 편린밖에 없는 운명의 창 따위로 낼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애초에 운명의 창 하나에 손쉽게 굴복할 정도로 이 시대의 강자는 거저 얻는 이름이 아니니까. 당장에 훗날의 시엔조차 완성에 가까운 형태의 ‘운명의 창’을 가졌던 체사레를 쓰러뜨리지 않았나.
그저 시궁쥐 추기경이 잘못 헤아린 것이 하나 있었다.
시엔 나이트워커는, 이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자기의 잠재력과 힘을 정확하게 이해하며 구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잠재력이 어느 순간 힘이 되어 눈을 뜰지 역시도.
─바로 이런 강자와 싸울 때였다.
고통 없이 얻는 것은 없다. 동시에 그 고통은 죽을 정도의 고통이 아니고서야 의미가 없다.
바로 지금처럼.
“너는 여기서 죽는다.”
시엔이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그 목소리에…… 비로소 죽음의 공포가 로드리고 보르자의 목덜미를 휘감았다.
그의 말마따나 잠재력에 불과했던 것을, 이제는 힘으로 끌어낼 때였다.
타앗!
깨닫고 보니 시엔이 어느새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파리의 눈동자로 의태하고 있는 그의 눈조차 움직임을 파악할 수 없을 정도의 신속.
사역마 어둑시니가 재빨리 그림자 속에서 검과 방패를 세워 올려 그를 지키려 들었다.
그러나 그중 무엇도 시엔에게 닿지 못했고, 가로막지 못했다.
거리가 제로에 가까워졌다. 눈앞에서 휘둘러진 칠흑의 서슬에, 로드리고가 황급히 몸을 파리떼로 바꾸며 무너져 내렸다.
바로 그때였다.
침묵하고 있던 시엔의 입에서, 재차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영야(永夜)─.”
영원히 끝나지 않는 밤, 제1식이 갖는 최강의 오의. 시간의 절대성을 무너뜨리고 국소적 범위 내에서 시간의 흐름을 늦추거나 가속할 수 있는 나이트워커 가문 최강의 비기.
‘역시.’
그러나 대륙 제일의 기술 중 하나라 불리는 그 이름을 듣고도, 보르자는 결코 겁먹지 않았다.
오히려 쾌재를 불렀다.
‘아까의 그것은 그저 알기 쉬운 허세에 불과했나.’
보통 싸움에서 수세에 몰린 측, 내지는 쐐기를 박으려는 측은 관성적으로 자신이 쓸 수 있는 최고의 기술을 쓰려는 법이다. 그리고 시엔 나이트워커에게 있어 그 기술은 필시 1식의 극의라고 일컬어지는 영야일 것이다.
그러니까 썼다.
동시에 이 세상에 무적의 기술 따위는 없다. 설령 대륙 최강의 기술이라 불리는, 나이트워커 가문의 1식이 갖는 오의조차 예외가 아니다.
로드리고는 이미 영야에 대응할 방법을 갖춘 상태였다.
그래서 자기 존재를 헤아릴 수 없는 숫자의 벌레로 쪼개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어?’
일대에 느껴져야 할 시간의 뒤틀림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 대신 그곳에 있는 어둑시니를 향해 ‘왕 시해자’가 내리꽂혔다.
최고위 마수, 어둑시니의 몸이 산산이 조각나 무너져 내렸다.
‘바보 같기는!’
파리떼가 되어 흩어진 로드리고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비록 헛웃음을 터뜨릴 입 같은 것은 없었음에도.
‘내가 사역하고 있는 어둑시니가 고작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했나.’
오의의 이름을 눈속임으로 삼은 것까지는 확실히 놀라기야 했다. 그러나 그 정도였다. 이 정도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랬어야 했다.
어둑시니가 쓰러지고 파리떼가 되어 흩어진 보르자가 도망치듯 거리를 벌리려는 찰나.
그를 쫓지 않고 시엔이 두 팔을 벌렸다.
“「크라켄의 자세」─.”
아까와 마찬가지로 기술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그러나 눈속임을 위해 가짜 정보를 흘리는 게 아니었다.
헤아릴 수 없는 숫자의 사이킥 나이프가, 마치 벌레를 요격하기 위해 초소형의 송곳 형태로 벼려져 흩뿌려졌다.
─어느덧 초점을 잃고 청백색의 스파크로 빛나는 눈동자와 함께.
천둥의 눈.
‘뇌안……?!’
마력을 통해 신경계의 전기신호를 극도로 가속하고 감각을 극대화하는 강화 마법. 그저 오감을 강화하는 데서 그치는 마법이 아니다.
이 눈동자는 일대에 발생하는 그 어떤 미세한 전기의 작용조차 놓치지 않고 감지할 수 있다.
일정 거리 이내에 있는 상대의 움직임, 근육과 세포 활동에서 비롯되는 실낱같은 ‘전기신호’조차 예외가 아니다. 심지어 동작이 아니라 그저 무엇을 느끼거나 생각하는 것으로 발생하는 뇌세포의 전기신호조차 마찬가지다.
그리고 뇌안과 함께 펼쳐지는 사이킥 나이프의 요격─.
천검의 폭격이 내리꽂혔다.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그조차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파리떼로 바꾼 자기 육체, 헤아릴 수 없는 수의 파리 하나하나 전부를 모조리 요격할 거라고는.
마치 절대로 빗나갈 리 없는 필중(必中)의 운명처럼─.
‘운명의 창……!’
사이킥 나이프는 결국 마력으로 벼린 칼날이다. 오러를 받아칠 수 있어도 강철을 뚫을 수는 없다.
‘아니, 아직 늦지 않았다!’
그렇기에 앞서 전기화상에 대응해 파리떼 위에 절연체를 덧씌운 것처럼, 이제는 강철에 맞먹는 갑각을 덧씌우며 보호할 뿐.
카앙!
동시에 흩어진 파리 하나하나를 요격하는 사이킥 나이프가, 강철 앞에 덧없이 맞부딪쳤다.
마력은 강철을 뚫을 수 없다는 지극히 알기 쉬운 상식.
그랬어야 했다.
그리고 그 상식이 무너져 내렸다.
비기 · 제비반전술.
‘사이킥 나이프에 오러를……?!’
강철의 갑각을 덧씌운 파리떼를 향해 시엔의 사이킥 나이프가 멈추지 않고 내달렸다.
콰직!
파리채로 파리를 때려잡듯, 하수도에 흩어진 파리떼 하나하나를 남김없이 염력의 칼날이 꿰뚫고 있었다.
아무리 육체를 쪼개 무수(無數)의 벌레로 바꿔 도망쳐도, 그 전부를 잡아버린 시점에서 살아남을 방법 따위는 없다.
콰직!
칼날에 꿰뚫려 뒤틀린 파리 사체가 바닥을 나뒹굴고, 어느덧 살점이 모여 융합하듯 하나의 형상을 이루었다.
다 죽어가는 남자의 육신이었다.
“커헉……!”
입에서 왈칵 피가 쏟아져 나왔다.
“이상하네.”
죽어가는 로드리고 보르자를 보며 시엔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이미 사이킥 나이프에 오러를 실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줬는데.”
“뭐라고……?”
그날, 베르나르트를 구출하기 위한 작전에서 오스카 그란델에게 보여주고 말았다. 자신의 사이킥 나이프가 강철을 꿰뚫는 그 광경을.
그게 비록 제비반전술의 정체까지 이어지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사이킥 나이프에 오러를 실을 수 있다는 정보까지는 보여준 것이다.
그럼에도 정작 로드리고 보르자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 사실에 시엔이 재차 헛웃음을 터뜨렸다.
“뭐야, 오스카랑 ‘죽음의 성모’님께서 말해주지 않았나?”
시엔이 차가운 목소리로 조롱했다.
솔직히 말해서, 시엔조차 이것은 예상하지 못했다.
오히려 시엔에게는 시궁쥐 추기경이 ‘사이킥 나이프가 강철을 꿰뚫을 수 있다’는 정보를 가졌다는 전제로 이어질 또 하나의 비장의 수가 있었으니까.
정작 그 수를 보여줄 필요조차 없었다. 그들이 말하지 않은 까닭에. 그 사실이 너무나도 우스꽝스러웠다.
“쓰고 버리는 ‘장기 말’은 그쪽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네.”
“아, 아아…….”
쓰고 버리는 장기 말.
로드리고 보르자가 감정 없는 목소리로 죽은 제국의 쥐새끼들을 향해 조롱했듯, 이제는 그 자신이 조롱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그, 그럴 리가 없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시궁쥐 추기경이 웅얼거렸다.
“서, 성모님께서 이 몸에게 감춘 정보가 있을 리가……!”
“내가 말했지.”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를 향해 시엔이 담담히 말을 잇는다.
“너는 여기서 죽을 거라고.”
이 시대의 강자를 향해 흑광의 칼날이 휘둘러졌다.
훗날의 기약 없는 시대가 아니라 지금 이 시대, 당대의 새로운 강자가 태어났음을 알리는 죽음의 서슬이 차갑게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