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암살 가문의 천재 어쌔신-76화 (76/200)

76화. 체사레 보르자

의심할 여지가 없는 이 시대의 강자 중 하나, 시궁쥐 추기경 로드리고 보르자가 쓰러졌다.

바로 그곳에 있는 암살자, 시엔 나이트워커의 손에.

파리떼가 꼬이고, 쥐 떼가 모여들며 남자의 시체를 파먹기 시작했다. 시궁쥐 추기경, 그 이름에 어울리는 최후였다.

“쿨럭!”

시엔의 육체가 무너져 내린 것도 동시의 일이었다. 어둑시니의 그림자 꼬챙이에 꿰뚫려 발밑 일대가 피바다가 될 정도의 출혈, 흑사충에 당해 시커멓게 썩어들어가는 피부와 내장, 당장 상처를 놓고 봤을 때는 시엔 역시 치사에 이를 정도의 치명상이었다.

무릎을 꿇고 하수구의 오물 위에 고개를 처박으며 쓰러진다. 바로 그때,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놈이 있다.”

“추기경 예하의 순교를 헛되게 하지 말라.”

흐릿해지는 의식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후의 최후, 패배와 죽음을 직감하고 시궁쥐 추기경이 시엔의 눈을 피해 몰래 흘린 괴뢰충.

─ 이 몸의 순교를 헛되게 하지 마라.

자기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 숨겨둔 비장의 수.

쉽게 죽는 자는 절대로 강자가 될 수 없다. 시대의 강자란 것은 결코 거저 얻은 이름이 아니니까.

제국의 혀, 시궁쥐 추기경의 마지막 속삭임을 듣고 어느덧 제국의 쥐새끼들이 그곳에 모여들고 있었다.

스릉.

망설일 이유 따위는 없었다. 주저 없이 그들이 품에서 칼을 뽑고 시엔의 숨통을 끊으려는 찰나.

“이야, 아주 소설 같은 타이밍이네.”

“농담도 때랑 장소 좀 가려서 해, 요한 오빠!”

그들 역시 그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걱정할 것 없단다.”

마찬가지로 나이트워커 가문의 ‘혀’가 된 괴뢰충의 속삭임을 듣고서.

─상대의 눈을 피해 몰래 괴뢰충을 흘린 것은 시엔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가진 전부를 끌어내지 않고서는 결코 눈앞의 강자를 이길 수 없다. 시엔이 가진 「꼭두각시 벌레의 서」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

제국의 쥐새끼들 사이에 동요의 빛이 어린다. 동시에 그들이 재빨리 칼자루를 쥐고 땅을 박차려는 찰나였다.

“아직 아무것도 늦지 않았으니까.”

촤아악!

그러나 그들의 발이 땅에서 떨어지기도 전에, 육체가 산산이 갈려 나갔다. 그들 위로 휘감기고 있는 죽음의 실에 집어삼켜져서.

마치 수백, 수천의 톱날 장치 속에 갈가리 찢겨 흔적조차 남지 않듯.

「검은 과부거미의 자세」.

7식의 마스터 미하일, 심지어 하이마스터의 그것과도 감히 비교를 불허하는 정교함.

또각.

그곳에 있는 시엔의 가족들 사이에서 그녀 ‘암살자들의 어머니’가 홀로 걸음을 옮겼다.

《위도우메이커》라 불리는 라일라의 애장(愛裝)이자 칠흑의 벨벳 드레스 자락을 하수도의 오물 위에 늘어뜨린 채.

그 발소리를 듣자마자 시엔이 조용히 미소 짓는다. 세상의 무엇보다 마음이 평온해지는 소리. 아무 걱정도 없이 눈을 감고 잠들 수 있는 소리.

동시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 * *

찍찍, 찍,

어둠 속에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쥐가 우는 소리.’

깨닫고 보니 그곳은 어린 시절, 시엔이 살던 도시의 슬럼가였다.

앙상하게 말라비틀어진 어린 육체가 헐벗고 웅크린 채 추위에 떨고 있었다.

춥고 배가 고팠다.

그래서 어둠 속을 가로지르는 쥐를 고양이처럼 움켜쥐고 게걸스럽게 삼켰다.

라일라의 손에 거두어지기 전, 범죄 길드의 사냥개로 길러졌던 어린 시절. 길러졌다는 말조차 어폐가 있었다. 적어도 길러지는 개는 밥이라도 제때 얻어먹을 테니까.

끝없는 굶주림 속에서 유일하게 배부름이 허락될 때는, 누군가를 죽이고 무사히 살아남았을 때였다.

그때는 유일하게 포상이 허락됐다.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는 흑빵과 식은 귀리죽이었으나, 시엔에게는 그조차 천상의 음식과 다르지 않았다.

“자, 먹어라.”

적대 길드에 사로잡히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 역시 사로잡은 시엔에게 ‘식사’를 내밀었다.

온갖 끔찍하고 혐오스러운 독충들이 바글바글 꿈틀거리는 빵과 죽이었다.

“남기지 마라.”

그것은 일명 ‘사람피부파리’라 불리는 파리였다. 살아 있는 사람의 몸을 숙주 삼아 알을 까고, 그 알에서 유충이 태어나 살을 파먹으며 자란다.

알기 쉬운 환상이나 악몽 따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실제로 어린 시엔이 적대 조직에 사로잡혔을 때 당했던 고문 중 하나였다.

“─여기 있었구나.”

바로 그때, 목소리가 들렸다.

시엔을 지옥에서 꺼내준 목소리.

그러나 알기 쉬운 어머니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

세상에서 가장 고약한 악취를 풍기는 남자의 목소리였다.

과거 5마탑의 수장이자 《시궁쥐 추기경》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남자, 로드리고 보르자가 그곳에 있었다.

* * *

“허억……!”

시엔이 악몽 속에서 깨어나 튕기듯 몸을 일으켰다.

“좋지 않은 꿈을 꾸었니?”

그리고 그의 곁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처가 깊단다, 좀 더 누워 있으렴.”

“어머니…….”

여느 때처럼 아들에게 다정하게 미소 짓는 라일라가 그곳에 있었다. 게다가 어느덧 주위를 둘러보니, 그곳은 나이트워커 공작 저택의 침실이었다.

“참으로 무모할 정도의 싸움을 했구나.”

시엔의 이마에 송골송골 맺혀 있는 땀을, 차가운 물에 적신 헝겊으로 닦아준다.

“그래도 이겼잖아요.”

“어째서 우리를 기다리지 않았니?”

시엔이 꼭두각시 벌레의 손을 넣고, 샤를마뉴 왕국령에 체류하고 있는 시궁쥐 추기경을 추적한 것.

이 정도 규모의 일은 아무리 시엔이라 해도 혼자 수행할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밤매를 보냈고, 가문의 정보망을 토대로 시궁쥐 추기경의 위치를 특정했다.

“그 남자는 늘 한 발짝을 앞서 도망쳤으니까요.”

실제로 시엔이 그들의 지원을 기다리며 숨을 죽이고 있는 이상, 그가 빠져나갈 가능성은 결코 적지 않았다.

“결과적으로는 우리가 오는 것을 기다려도 충분했지.”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그렇지 않았다. 이미 괴뢰충을 통해 거짓 정보로 놈의 발을 묶어둔 시점에서, 놈에게 도망칠 가능성은 남아 있지 않았으니까.

“싸워보고 싶었어요.”

시엔이 솔직하게 말했다.

“우리 가문을 위협하는 제국의 강자들이, 어느 정도의 힘을 가졌는지.”

얼핏 어리석을 정도의 호승심으로 들릴 수도 있다. 아니었다.

“놈들이 얼마나 강하고, 지금의 저는 어디까지 그들과 맞설 수 있는지. 놈과 싸워서 그걸 알고 싶었어요.”

그저 알고 싶었다.

“그래, 답을 손에 넣었니?”

라일라의 물음에 시엔이 말없이 미소 지었다.

* * *

제국 황도의 시스티나 대성당.

시궁쥐 추기경, 로드리고 보르자의 선종(善終)을 애도하며 장례 미사가 거행되고 있었다.

장송곡과 함께 제국의 추기경들이 엄숙하게 남자의 시체─ 쥐에게 뜯어먹히고 파리가 들끓는 썩어 문드러진 ‘시궁쥐 추기경’을 관에 넣는다.

추기경들이 엄숙하게 미사를 집전하는 와중, 혼자서 예배당의 끝자락에 앉아 기도를 올리는 여성이 있었다.

칠흑의 베일을 쓴 여성이었다.

어느덧 그녀의 곁에 기척조차 없이 남자의 실루엣이 착석했다. 순백의 모피 코트를 걸친 흑발의 귀공자였다.

“어서 와요, 로드 체사레.”

베일을 쓴 여성이 담담히 대답했다.

로드 체사레.

요정왕 멀린과 함께 일찍이 신의 아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살아온 고대의 괴물이자, 대륙 전체를 통틀어 수를 손에 꼽는 최고위 뱀파이어.

신성 제국과 교회의 신성(神聖)에 더없이 어울리지 않는 이단의 괴물이 그곳에 있었다.

“약속대로 제국과 교회는 그대와의 약속을 이행할 거랍니다.”

베일을 쓴 여성이 말했다.

“장례 미사가 끝나는 즉시, 교회가 소유하고 있는 운명의 창의 지분 전부를 양도하지요.”

“저 역시, 하느님의 이름 아래 이 몸 바쳐 ‘교회의 적’과 싸울 것이라 약속드립니다.”

체사레가 미소 짓는다. 그것이 그들 사이의 거래였다.

“마침 보르자 추기경 예하의 좌(座)가 공석이 되었답니다.”

여성이 담담히 말을 잇는다.

“추기경 예하의 의지를 이어, 그대에게 ‘보르자의 세례명’과 추기경의 좌를 약속하지요.”

로드리고 보르자의 뒤를 잇는 제국 국교회의 새로운 추기경.

체사레 보르자(Cesare Borgia)─.

“그 외에도 우리는 돌아가신 추기경 예하가 소유하고 있던 발렌티노와 로마냐의 공작, 디오이스의 백작, 우르비노의 작위는 물론, 추가로 교회군 총사령관을 맡길 것을 약속할 겁니다.”

새로운 이름과 직함을 손에 넣은 괴물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하느님의 끝없는 자비를 찬미할 뿐입니다, 경애하는 《죽음의 성모》님.”

* * *

부상이 회복된 뒤에도 시엔은 쉽게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마도서 「꼭두각시 벌레의 서」와 융합한 후폭풍 탓이었다.

어디를 가도 벌레가 들끓고 있었다.

전신의 마력이 자기 통제를 벗어나 날뛰기 일쑤였고, 의도치 않게 벌레 사역마가 곰실거리거나 사라진다. 심지어 몸속에, 피부 아래는 물론 내장에서 헤아릴 수 없는 수의 벌레가 꿈틀거리는 환각과 가려움에 필사적으로 의식을 유지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눈을 감고 도망칠 수도 없었다.

도망쳐봤자 어린 시절의 시엔이 겪었던 지옥 같은 악몽이 되살아날 뿐이니까.

세상에 대가 없는 힘은 없다. 마도서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심지어 마도서와의 융합에 성공하고 나서도 그 힘을 100% 끌어내는 것은 별개의 이야기다.

그럼에도 시엔 나이트워커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무슨 대가라도 치를 각오가 되어 있었다.

이깟 징그럽고 혐오스러운 벌레의 환각 따위, 대가라 부를 가치조차 없는 것이었다.

지옥 같은 삶 속에서 그를 향해 내밀어준 어머니의 손길을 기억하고 있다. 그 상냥함과 다정함을.

라일라의 미소가 아직 가족이 되지 못한 밤의 아이에게 보이는 가식이라 할지라도 좋았다.

그 상냥함에 보답하기 위해 시엔은 무슨 짓이라도 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강자와의 싸움을 통해 벽을 뚫고, 8위계급 마도서의 힘과 융합하고 더욱 강해진 시엔이 해야 할 일.

다음 스텝을 밟고 나아갈 때였다.

나이트워커 가문의 최고 전력─ 하이마스터가 되기 위해서.

* * *

그로부터 얼마 후.

“시엔 나이트워커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성모님.”

새롭게 추기경의 좌에 오른 남자가 말했다.

《피의 추기경(Blood Cardinal)》 체사레 보르자.

교회가 소유하고 있는 운명의 창 지분을 넘겨받고, 그 대가로 교회를 위해 충성을 바치고 있는 괴물.

“게다가 5마탑의 비급마저 뺏겼으니, 이제 나이트워커 가문은 눈과 귀뿐 아니라 ‘혀’까지 손에 넣었겠지요.”

체사레의 말에 빌헬미나가 대답했다.

“다행히 오스카의 새로운 자세가 완성되었답니다.”

어느덧 그녀의 곁을 지키는 대자를 뒤로하고.

“너무 늦지 않아서 다행이죠.”

“…….”

오스카 이스카리옷, 그 아이의 모습을 보며 체사레가 일순 눈동자를 끔벅거렸다. 끔벅거린 끝에 웃음을 터뜨린다.

“뭐가 웃기십니까?”

그 웃음에 침묵하고 있던 오스카가 되물었다. 허리춤에 매달린 백색 칼자루 위에 손을 올리고, 노골적으로 적의를 감추지 않으며.

“운명을 믿니, 아이야?”

“예?”

“마침 내가 운명을 좀 알지.”

체사레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너는 절대로 그 아이에게 이기지 못할 운명이야.”

“무슨…….”

“운명이란 거스를 수 없기에 운명이니까.”

운명을 뒤틀고 조작할 수 있는 힘, 그 신기의 힘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더 나아가 운명 그 자체를 이해하는 괴물이 말했다.

“실제로도 그렇지 않았니?”

“─.”

“너는 무슨 일이 있어도 시엔을 이길 수 없어.”

그게 운명이니까.

“오히려 너의 운명은, 그 아이가 성장할 양분이 되어 잡아먹히는 먹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그 이상 헛소리를 지껄였다가는…….”

“완성된 이 아이의 ‘새로운 자세’는 어떻죠?”

바로 그때, 침묵하고 있던 빌헬미나가 말했다.

아들을 지키거나 옹호하려는 어머니의 비호가 아니었다. 오히려 상품의 가치를 감정사에게 물어보는 것처럼 차가운 목소리였다.

“그걸로도 무립니다.”

체사레가 담담히 대답했다.

“강자와의 싸움을 통해 ‘벽’을 뚫은 시엔 나이트워커는 지금 이상의 강함을 손에 넣을 겁니다.”

“…….”

“그렇기에 오히려 더 커다란 성장의 여지를 제공하겠죠. 누구보다 성모님께서 잘 알지 않겠습니까.”

침묵이 내려앉았다.

“참으로 아까운 일이네요.”

침묵 끝에 빌헬미나가 슬픈 듯이 말을 잇는다. 정말로 슬픈 듯이.

“이렇게나 공을 들여 키웠는데─.”

결국 적에게 좋은 일밖에 되지 않을 운명이라니.

깊은 아쉬움이 깃들어 있는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것은 마치 지금까지의 고생이 허사가 되어 실망하는 목소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어머니……!”

두 사람의 대화에 오스카가 당황하며 칼자루를 고쳐 잡았다.

“저에게 증명할 기회를 주세요!”

아들의 호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죽음의 성모와 체사레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친애하는 체사레 추기경? 새 아이를 키워야 할까요?”

새로운 아이. 그 말에 오스카가 경악하며 숨을 삼켰다.

“이 아이는 아주 잘 자란 ‘양분’입니다. 그게 이 아이가 존재하는 유일의 이유이고, 그 점은 확실히 보증하죠.”

피의 추기경, 체사레가 담담히 대답했다.

“적에게 넘겨주기에 너무나 아까울 정도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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