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13계단의 시험 (3)
라파엘로 서펀트 제독을 노리는 암살자는 수도 없이 많다.
사실상 그 남자의 존재야말로 베네토 공화국의 해군력 그 자체라 할 수 있으니까.
문자 그대로 그 남자는 바다에서 이 나라를 지탱하는 기둥이었다.
그리고 세상의 실력 있는 암살자가 오직 나이트워커 가문의 인간밖에 없는 것은 아니다.
「히트맨(Hitman)」 로베르트 역시 그중 하나였다.
알기 쉬운 대의나 신념도 없이, 오직 돈을 위해 사람을 죽이는 프리랜서 청부업자.
그조차 쉽게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설마 암살 대상이, 알몸 차림으로 모두의 눈길을 사로잡으며 당당히 걸어 나갈 정도로 중증의 노출광이었을 줄은.
보란 듯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고 있는 이 상황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그는 나이트워커 가문의 암살자가 아니니까. 하물며 저 남자가 카지노를 나가 물속에 들어가는 시점에서는, 사실상 그를 놓친 것과 다름없다.
물에서는 그 누구도 저 괴물의 상대가 될 수 없을 테니까.
그렇기에 그 틈, 찰나의 짧은 공백을 노리려 했던 작전이 무용지물이 됐다.
로베르트가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려는 찰나였다.
“어딜 그렇게 급히 가시나?”
공화국 환락가의 뒷골목, 바로 그곳에서 기척조차 없이 목소리가 들려왔다.
“─.”
망령을 상징하는 순백의 라르바 가면을 쓴 남자였다. 소리를 듣자마자 로베르트가 소맷자락에 숨기고 있던 스틸레토 단검 「자비(Miséricorde)」를 내리꽂았다.
카앙!
동시에 시엔의 소맷자락에서 칠흑의 서슬을 빛내는 ‘왕 시해자’와 맞부딪친다.
두 자루 나이프가 맞부딪쳤고, 미끄러지듯 서로의 손목을 향해 뱀처럼 파고들었다.
타앗!
칼날이 서로의 손목을 내리긋기 직전, 시엔이 상대의 나이프를 쥐고 있는 상대의 손목을 쳐내며 스틸레토를 비껴냈다.
나이프끼리의 싸움에서는 거리를 좁히며 필사적으로 서로의 손에 들린 칼끝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칼싸움이 아니라 몸싸움에 가까운 형태로 팔이 교차하며 거리를 좁히는 격투의 양상.
꼬리에 꼬리를 물듯 서로의 나이프를 제압하기 위해 팔과 팔이 엇갈리는 찰나.
시엔이 손목의 스냅으로 나이프가 들린 상대의 팔을 쳐내고, 그대로 팔꿈치를 로베르트의 얼굴 방향으로 틀었다.
동시에 시엔의 팔꿈치 머리뼈를 대체하는 칼날의 뼈가 솟았다.
로베르트의 손에 들린 스틸레토처럼 시린 서슬을 빛내며.
촤악!
나이트워커 가문의 5식─ 가시나무의 자세.
칼날의 뼈, 그 이름처럼 금속 합금으로 교체된 칼날을 체내에서 사출해 강철조차 꿰뚫을 수 있는 공방일체의 검식.
그러나 시엔의 체내에서 사출된 칼날의 뼈가 히트맨 로베르트를 꿰뚫는 일은 없었다.
‘……읽혔나.’
가시나무의 자세는 숙달될수록 체내에서 칼날을 사출할 때 움직임을 읽히지 않는다. 거꾸로 말해 미숙련자가 가시나무의 자세를 구사할 경우, 충분히 사전에 움직임을 읽고서 피할 수 있다는 뜻이다.
도망치듯 거리를 벌린 로베르트가 스틸레토 단검을 빙글 역수로 고쳐 잡는다.
칼날의 뼈에 아슬아슬하게 스친 뺨의 자상을 뒤로하고.
찢어진 상처에서 피는 흐르지 않았다. 로베르트 역시 감정 없는 눈동자로 상처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나쁘지 않은 상대네.’
너무 쉽지도 않고, 거꾸로 시엔이 전력을 다해도 이길 수 없을 정도의 강적도 아니다. 마침 자신의 경지와 성과를 시험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상대.
애초에 13계단의 시험은 하이마스터가 되기 위한 첫걸음에 불과하다. 하물며 이 계단 하나 제대로 오르지 못하고 고꾸라지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상대가 기사나 마법사가 아니라 자신과 동류란 점.
시엔조차 섬뜩할 정도로 자기 자신의 존재를 죽이고 일체의 감정도 동요도 드러내지 않는다.
‘이 상황에서 살아 돌아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나?’
그럴 리가.
아니, 그 사실은 오히려 로베르트 정도의 실력 있는 암살자가 누구보다도 잘 알 것이다. 여기가 누구의 땅이고, 자신이 지금 누구와 마주하고 있는지. 그럼에도 시엔이 보고 있는 놈의 마음속은 기이할 정도의 평정과 침묵으로 가득하다.
죽음의 공포도 두려움도 느껴지지 않는다.
─얼핏 망령의 자세를 구사하는 나이트워커 가문의 인간이라 해도 믿을 정도로.
‘뭐지?’
그 사실에 비로소 정체를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느껴진다.
‘처음부터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나.’
살아남을 거란 일말의 기대조차 버리고, 그저 기약할 수 없는 임무를 맡았을 가능성. 설령 실패해도 아무 동요 없이 죽음을 받아들일 각오가 없이는, 저 정도의 냉철함을 유지할 수 없다.
어느 쪽이든 개의치 않았다.
명경지수의 자세는 그저 ‘검을 다루는 방법’에 그치지 않는다. 심지어 이 자세의 마음가짐을 다루는 데는 오러조차 필요하지 않다.
이것은 문자 그대로 마음가짐(스탠스)일 뿐이니까.
물결 하나 일렁이지 않는, 고요히 괴어 있는 물을 거울삼아 시엔이 고개를 들었다.
동시에 시엔의 체내에 융합된 또 하나의 힘을 끌어냈다.
후우웅!
어느 틈에 발밑에서 휘몰아치는 칠흑의 마력이─ 어느새 칠흑의 파리떼가 되어 로베르트를 향해 쇄도하고 있었다.
벌레 사역.
그냥 파리가 아니다. 스치는 것으로 살점이 시커멓게 썩고 부패하는 죽음의 벌레, 흑사충(黑死蟲)이니까.
시엔이 손에 넣은 제5마탑의 비급 「꼭두각시 벌레의 서」에 깃든 경지는 괴뢰충을 조종하는 게 전부가 아니다. 일찍이 그가 쓰러뜨린 대륙 제일의 사역술사이자 충술사의 경지 그 자체가 녹아들어 있는 깨달음의 결정이니까.
물론 지금 시엔이 아무리 마도서와 융합했다고 해도 당장 시궁쥐 추기경에 필적하는 경지의 마법을 펼칠 수는 없다.
그러나 머지않아 그렇게 될 것이다.
흔들림 없는 평정의 마음가짐, 명경지수의 자세를 통해 적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응시하며─ 시엔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흑사충 무리가 쇄도했다.
“!”
동시에 믿을 수 없는 풍경이 벌어졌다.
닿는 것으로 살점을 썩히고 부패시키는 벌레의 무리 앞에서, 로베르트는 손가락 하나 꼼짝하지 않았다.
‘뭐지?!’
그냥 서 있었다.
흑사충에 뒤덮여 전신의 살점이 급속도로 부패하고 시커멓게 썩어 문드러지는 와중에도, 피부가 녹아내리고 진물이 흐르며 시체가 썩는 악취를 풍기는 와중에도, 그곳에 서 있는 로베르트는 비명은커녕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바로 그 순간.
“!”
내장까지 흑사충의 먹이가 되어 뼈밖에 남지 않았을 암살자가, 스틸레토를 고쳐 잡고 쇄도했다.
‘─.’
체내의 살점과 유기물이 모조리 썩어버린 채, 생체(生體) 밑으로 차갑게 빛나는 금속성 골격과 정교하게 새겨진 마력신경으로 기동하는 놈의 진짜 모습이.
‘《자동인형(오토마타)》!’
남들을 속이기 위해 사람의 가죽을 덧씌운 ‘저것’에게 있어 흑사충 따위는 애초에 위협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움직이지 않은 것이다.
콰직, 콰직!
놈이 재차 시엔에게 쇄도하는 동시에, 사람의 뼈대를 이루고 있는 금속 골격이 기괴하게 뒤틀리며─ 칼날처럼 솟아났다.
나이트워커 가문이 구사하는 가시나무의 자세.
그러나 금속의 뼈를 마구잡이로 사출하는 그 모습은 너무나도 무모하고 조악했다.
촤아악!
전신에서 솟아나는 칼날에 아랑곳하지 않고, 시엔이 어렵지 않게 칼자루를 고쳐 잡았다.
체내의 골격이 기괴하게 뒤틀리며 사출된 채, 어느덧 놈의 허리가 두 동강이 나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이야, 이것 참.”
뒤이어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륙을 들쑤시며 명성을 날린 암살자라도 ‘밤을 걷는 분’의 칼날 앞에서는 하룻강아지가 따로 없네요.”
천하의 시엔조차 차마 거기서는 고개를 돌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속옷까지 카지노에 저당 잡혀 털리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전라의 남자가 있을 테니까.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런데, 혹시 물속에 들어가 주실 수 있을까요?”
“흠, 다행이네요. 저도 마침 바닷물에 뛰어들고 싶은 기분이라서.”
첨벙!
물에 뛰어드는 소리와 함께 비로소 시엔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물 위에서 배영 자세로 앞쪽의 전신을 드러내며 둥둥 몸을 띄우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
못 볼 광경에 시엔이 어이가 없어서 입을 다물었고, 라파엘로 제독이 대답했다.
“그나저나 설마, 히트맨이라 불린 프리랜서 암살자의 정체가 골렘이었을 줄이야.”
골렘(Golem).
마법사들이 신을 흉내 내며 그들의 마법으로 빚은 생물.
“이 정도로 정교한 수준의 골렘을 다룰 곳은 하나밖에 없지요.”
“뭐, 그러니 제 목을 노리러 온 거 아닙니까.”
라파엘로가 담담히 대답했다.
《에인션트 리그》의 일각이자 골렘 학파라 불리는 제국 제3마탑.
대륙 제일의 여덟 명문 마탑 중에서도 물질 조작 학파의 1마탑, 원소 학파의 2마탑과 함께 ‘빅3’란 이름으로 묶이는 명문 중의 최고 명문.
심지어 눈앞의 암살자는 알기 쉬운 어중이떠중이 골렘조차 아니다. 그 정교함이나 완성도는 그들이 추구하는 그 이상의 영역, 인간의 형상 그 자체를 모방하는 《자동인형》이었으니까.
애초에 저것은 ‘프리랜서’이기 이전에 인간조차 아니었다. 말 그대로 제3마탑의 골렘술사들이 조종하는 꼭두각시에 불과하니까.
‘게다가 놈과 싸울 때의 위화감…….’
어설프기는 해도 나이트워커 가문의 암살자를 의식적으로 모방하려는 듯한 움직임─.
걸리는 마음을 애써 뒤로하고 시엔이 말했다.
“마린 양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까?”
“뭐, 그녀도 바보가 아니니 오빠 모가지를 노리는 암살자가 어디 있어도 새삼스럽지는 않겠죠.”
“아뇨, 저는 마린 양 자신의 안전을 말하는 겁니다.”
“흠, 그것참.”
시엔이 차가운 목소리로 되물었다.
“동생을 아껴주시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시엔의 목소리에 깃든 의중을 헤아린 라파엘로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둥둥 떠 있던 몸이 어느 틈에 수중으로 가라앉은 채.
“그렇지 않아도 여동생에게는 이미 경애하는 밤을 걷는 분, 레이디 린께서 붙어 있답니다.”
“린 누님이─.”
애초에 시엔이 13계단을 오르는 시험을 감독하는 그녀가 멀리 떨어진 데 있을 리 없다.
“처음부터 놈이 올 걸 알고 계셨군요.”
“우리는 물 위에서 무능하니, 물 위에서는 돌다리도 두들겨 살펴야죠.”
“그래서 일부러 암살자의 시선을 돌리고 여동생과 떨어지기 위해 추태를 보여준 겁니까?”
이 나라를 지탱하는 기둥, 그 이름은 절대 가볍지 않다. 하물며 나이트워커 가문과의 거래를 통해서 가문의 최고 원로를 처치하고 ‘히드라의 수괴’에 앉은 젊고 야망 넘치는 가주는 더더욱.
“가족을 소중하게 여기는 게 세상에 나이트워커 가문의 인간밖에 없는 것은 아니라서요.”
“그걸 알고도 사랑하는 여동생을 샤를마뉴 왕국의 머저리 왕자에게 팔아넘기려 했습니까?”
“마린에게는 차라리 그게 나은 운명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라파엘로 제독이 말했다. 차라리 나을 수도 있다. 훗날의 미래를 똑똑히 기억하는 시엔이 차가운 목소리로 조소했다.
“바라지 않는 상냥함처럼 끔찍한 짓도 없는 법이죠.”
“흠, 여동생을 ‘가족처럼’ 챙겨주시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네요.”
시엔의 말에 라파엘로가 능청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역시 모를 리가 없었다.
나이트워커 가문의 인간들에게는 가족이 전부이며, 그 이외의 인간들은 아무것도 아니란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