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암살 가문의 천재 어쌔신-98화 (98/200)

98화. 마지막 황혼의 전투 (2)

제국 국교회의 군대는, 정작 제국의 이름을 자청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엄밀히 말해 황제와 제국의 소유가 아니다.

‘십자군(Crusader)’이라 불리는 교회 직속 사병 조직.

공식적으로 십자군을 움직이는 것은 제국 국교회의 수장이라 할 수 있는 교황밖에 없다. 그러나 올해로 겨우 7살밖에 되지 않는 코흘리개 교황이 제 의지로 그들을 움직일 수 있을 리가 없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그들을 움직이는 것은, 어린 교황을 꼭두각시처럼 조종하는 제국 국교회의 최고 의사결정기구─ 콘클라베(Conclave)에 소속된 열두 명의 추기경들.

그들의 뜻은 오직 하나였다.

이 땅, 스카디 제도에 사는 생명의 절멸. 제노사이드.

따라서 그들에 의해 교회군 총사령관의 직함이 주어진 남자가 입을 열었다. 그가 내릴 수 있는 딱 하나의 명령을.

“전군, 강림.”

천사들의 군세가 그곳에 있었다.

가까스로 사람의 형태를 갖춘 동시에─ 폭발할 것처럼 그로테스크하게 부풀어 있는 전신의 근육.

날개뼈를 찢고 튀어나온 순백의 날개는 피투성이로 젖어 있었고, 심지어 날 수조차 없었다.

전신에는 가죽과 사슬 등의 구속구가 장식처럼 줄줄이 휘감겨 있다. 게다가 얼굴에는 눈이나 귀도, 코도 없다.

그저 밑바닥을 알 수 없는 아가리가 덩그러니 달려 있었으니까.

거머리의 아가리처럼 커다란 입에 수천 개의 이빨이 줄지어 겹겹이 달려 있고, 굶주린 짐승처럼 게걸스레 침을 뚝뚝 흘리고 있다.

하품의 9품, 천사(天使)─.

저것이 바로 교회의 군(軍)이자 ‘천사병’이라 불리는 이형의 존재였다.

그 모습을 보며 여타 멧돼지 전사들처럼 제1열에서 방패를 세운 시엔이 조소했다.

‘누가 누굴 보고 괴물이라는지.’

놈들에 비해 이쪽에 있는 것은, 자식과 아내와 일족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각오를 다지는 ‘인간’ 전사들이다. 그저 피부의 색과 체격이 조금 다르다는 이유 하나로, 정작 저 괴물들의 손가락에 오크라 불리며 멸시받는.

그렇기에 전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방어 대열을 지키는 시엔이 방패를 세워 올렸다.

쿠웅!

─ 끼이이이익!

충돌과 함께 귀를 찢을 것 같은 괴성이 울려 퍼졌다.

동물의 울음이나 비명 같은 게 아니다. 마치 손톱으로 철판을 긁는 것 같은 소름 끼치는 목소리.

악마의 소리라 해도 믿을 정도로 끔찍하고 혐오스럽기 이를 데 없는 괴성.

저것이 정말로 신의 뜻과 의지를 대행하는 성스러운 힘을 품은 천사의 목소리라니, 웃음도 나오지 않을 지경이다.

끔찍하고 소름 돋는 괴성을 시작으로, 비로소 천사의 군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내일, 우리는 그 누구도 발할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제1열의 방패 방진을 담당하는 전사 군힐드는 전날 밤, 천둥망치 클랜의 야를 ‘토르비욘 라그나르손’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발할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두려운가?

두렵다. 두려워서 미칠 것 같았다.

두렵지 않을 리가 없었다.

저 잔혹하기 그지없는 제국의 이교도는 결코 그들을 명예롭게 죽이지 않는다. 그게 바로 오크들을 상대하는 제국의 전략이자 방침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지금, 스러지는 황혼 속에서 전열을 갖추는 오크 중 누구도 발할라를 부르짖지 않았다. 심지어 신을 외치지도 않았다.

그저 모두가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나 역시 두렵다.

그날, 토르비욘이 그렇게 말했듯이.

이 몸이 죽어 명예롭게 발할라에 들어가지 못하고,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영원히 썩지 않는 시체가 되어 방황하는 것이 두렵다.

평소처럼 전사들을 위해 사기를 북돋아 줘야 할 야를이 앞장서 겁쟁이처럼 약해빠진 소리를 하고 있다.

누구도 다가올 전투를 앞두고 제일 빠르게 발할라에 들어갈지 내기하지 않고, 떠들지도 않고, 술을 마시고 노래하지도 않았다.

바로 그때였다.

그런데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을 아는가?

발할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보다 더 두려운 것?

명예로운 전사에게 그것보다 두려운 것이 뭐가 있다는 말일까?

나의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이 우리처럼 더럽혀지는 것이다.

최후의 결전을 앞두고 발퀴리아 협곡에 결집해 있는 오크들에게 천둥망치 부족의 수장이 말했다.

그래서 나는 발할라로 가지 않을 것이다.

설령 발할라로 들어가지 못할지라도, 그들의 등 뒤에는 지켜야 할 것이 있는 까닭에.

내가 사랑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그들이 우리처럼 끔찍하게 더럽혀지지 않기 위해, 나는 기꺼이 이곳에서 죽을 것이다.

이곳에서 죽을 것이다. 그들이 이 협곡 앞을 지키는 사이, 이 땅을 떠나 새로운 터전으로 향할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서.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전장 당일(當日).

모두가 두려움에 떨고 겁을 먹는 와중, 어느덧 스러지는 황혼 속에서 전사들이 외쳤다.

“우리는 발할라로 가지 않는다!”

“우리는 발할라로 가지 않는다!”

“우리는 영원히 썩어 이 땅을 떠도는 구울이 될 것이다!”

“방패 벽(Shield Wall)!”

쇄도하는 천사들의 군세를 앞두고, 우렁찬 외침들이 잇달아 울려 퍼졌다.

쿠웅, 쿵, 쿵!

협곡의 최전선에서 방패 대형을 담당하는 멧돼지 전사 ‘군힐드’ 역시 방벽을 세워 올렸다.

그 어느 때보다도 뜨겁게 타오르는 열기의 오러를 내뿜으며.

오러의 공진, 원 포 올.

오직 인간밖에 쓸 수 없는 인간찬가의 의지. 그리고 그 의지가 함께 모여서 공명할 때, 오러의 위력은 배가 된다.

그대들의 등 뒤에 있는 것을 떠올려라.

군힐드를 비롯해 그곳에 있는 오크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오늘, 이곳에 있는 전사 중 누구도 신을 위해 싸우지 않는다. 발할라에 들어가기 위해 싸우지도 않는다.

죽어도 구제받을 수 없고, 평생 이 땅을 떠도는 망령이 될 것이다. 알고 있다. 두렵다. 두려워서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럼에도 기꺼이 싸우기로 결심했다.

우리는 희망과 미래를 위해 싸울 것이다!

지켜야 할 것들, 사랑하는 것들을 위해서.

신을 위해서도, 사후세계를 위해서도 아니다. 오로지 이 순간, 그의 등 뒤에 있는 미래를 위해 싸운다.

그 어느 때보다도 뜨겁게 타오르는 인간의 의지가 쇄도하는 ‘신의 사자’에 맞서 방패를 세워 올렸다.

쿠웅, 쿵!

오러를 쓸 수 있는 것은 오직 인간뿐.

오직 인간만이 쓸 수 있는, 자신의 살과 피와 뼈를 초월하려는 인간찬가의 의지.

엘프나 드래곤, 리치나 뱀파이어 같은 불사의 삶을 살아가는 존재들은 결코 오러의 힘을 쓸 수 없다. 역설적으로 그들에게 있어 ‘불멸의 육체’는 애초에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니까. 오히려 찬미해야 할 신의 축복 그 자체다.

마찬가지로 신의 뜻을 대행하는 천사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에게는 오러가 없다. 그저 찬미해야 할 신의 축복이 존재할 뿐.

신의 축복과 인간의 의지가 맞부딪쳤다.

신과 인간의 군세가─ 격돌했다.

동시에 신의 목소리가 지축을 뒤흔들며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나, 시종 이스라펠(Israfil)이 하느님의 나팔을 불며 고하나니─.”

교회군 사이에 포함된 사도급 전력, 상품의 3품 이스라펠을 강림시켜 울려 퍼지는 신의 목소리.

“하느님 아버지의 앞에 서서 너희의 부끄러운 알몸을 돌아보라.”

「신 앞에 선 단독자의 아리아」─.

그 이름처럼 인간이 갖는 의지 그 자체를 무력화할 수 있는 저주와 부정의 아리아.

후우우웅!

목소리와 함께 공허의 폭풍이 휘몰아쳤다.

바로 그 틈을 노리고, 피투성이 천사 하나가 괴성을 내지르며 방패 벽을 돌파했다.

끝도 없이 쇄도하는 천사의 군세가 그 틈을 비집고 파고들며, 방패를 들고 있는 오크들을 향해 침이 질질 흐르는 아가리를 활짝 벌렸다.

눈도 귀도 코도 없이, 그저 거머리처럼 활짝 벌린 아가리와 수천 개의 혐오스러운 이빨이 쇄도했다. 뚝뚝 떨어지는 점액질의 침과 함께.

저것은 인간이 아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끔찍하고 혐오스러운 형상을 가진 저 괴물을 일컬어 교회는 ‘천사’라 부른다.

형용할 수 없는 절망과 무력감이 군힐드의 목덜미를 휘감았다. 아무리 굳게 다져도 무너질 수밖에 없는 의지의 무력함, 인간의 나약함.

당장 전부를 포기하고 무릎 꿇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달콤하게 속삭이는 신의 목소리.

‘웃기지 마라.’

그러나 그보다 더 커다란 가치가, 무너지는 군힐드의 의지를 지탱했다.

세상은 의지 하나로 헤쳐 나갈 수 있을 정도로 호락호락하지 않다.

“이대로 무너질쏘냐!”

동시에 인간은 그 의지 하나로 그 험난한 세상을 헤치고 나아가 이곳에 이르렀다.

“전열을 지켜라! 저 괴물 놈들이 방진을 돌파하도록 놔두지 마라!”

쿠웅!

그게 인간이니까.

사랑하고 지켜야 하는 것들이 등 뒤에 있다. 그렇기에 결코 무너질 수 없다. 설령 그게 신(神)을 향해서 대적하는 일이라 하더라도.

명예란 무엇인가, 형제들이여!

그곳에 있는 이들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사랑하고 지켜온 모든 것들이 놈들의 손에 짓밟히는데!

사도급 제국 공안이 퍼뜨리는 아리아 앞에서도, 심지어 그 위력에 가장 치명적으로 노출되어야 할 제1열의 전사 중 누구도 무너지지 않았다.

나 홀로 뻔뻔하게 오딘의 전당(발할라)에 들어가서!

감히 무슨 낯짝으로 신들을 뵙는단 말인가!

“우리는 발할라로 가지 않는다!”

“우리는 여기서 죽고, 여기서 끝날 것이다!”

그 누구보다 발할라를 칭송하며 명예를 부르짖어야 할 오크들이, 자기 발로 발할라에 들어가길 거부하며 소리쳤다.

신 앞에 선 단독자의 아리아.

그러나 그곳에 있는 이들 중 누구도 신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았다.

신 앞에서 너무나 당당하게 고개를 들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명예로운 인간의 찬가(讚歌)가 있을 뿐.

* * *

충분히 숙련된 정예 부대는 ‘원 포 올’이라 불리는 현상을 필요할 때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다.

특히 상황이 절실할수록 원 포 올의 의지는 강력해지며, 때때로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는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주는 계기가 된다.

필사의 각오와 함께 의지가 결속되며 벌어지는 진짜 인간의 찬가─.

체사레 역시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러나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설마…….’

그의 예상을 까마득히 벗어나 벌어지는 원 포 올에, 전황을 지켜보고 있던 체사레의 낯빛이 차갑게 얼어붙었다.

‘전황이 이렇게 흘러갈 걸 예상했나?’

그의 품에 깃든 운명의 창이, 그 어느 때보다도 커다랗게 요동치며 비명을 지르고 있다.

천년의 과거를 통해 쌓은 지혜와 함께 운명의 나침반을 가진 그조차 예상하지 못한 미래.

체사레의 날카로운 송곳니가 입술 위로 내리꽂혔다. 그리고 깨달았다.

인간을 이해하기에, 그는 이미 너무나도 멀리 와버렸다는 것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추기경 예하.”

“뭐, 별수 있겠습니까.”

걱정스러운 듯한 부관의 물음에 체사레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까라면 까야죠.”

무엇을 해야 할지는 정해져 있다는 듯이.

* * *

아무리 이 세계의 저울추를 유지하는 것이 소수의 강자라 해도, 결코 보병의 존재와 머릿수를 무시할 수 없다.

그럼에도 결국 이 세계의 저울추를 유지하는 주체는 어디까지나 소수의 강자다.

그렇기에 그 남자가 비로소 침묵을 깨고 움직였다.

“……버러지 같은 것들.”

쇄도하는 천사들의 군세가 방패 벽 앞에서 덧없이 가로막히고, 그 틈새에서 내리꽂히는 창이나 도끼날에 꿰뚫려 도륙당하고 있는 바로 그곳에서.

순백의 모피 코트를 걸친 흑발의 귀공자가, 홀로 담담하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일대에서 벌어지는 전쟁터의 소란이 마치 남의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더없이 여유로운 걸음걸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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